[보드게임의 세계] 입문용 보드게임의 떠오르는 보석, '스플렌더'

안수영 syahn@itdonga.com

스플렌더 (2014)
스플렌더 (2014)

스플렌더 (2014) <출처: divedice.com>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주위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보드게임이란 나만 즐기긴 아깝고, 친한 사람들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끈 솟게 만드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보드게임에 입문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가르쳐주기 가장 좋은 보드게임'을 고르기란 상당히 어렵다. 2015년 2월 기준, 현재까지 전세계에 발매된 보드게임은 무려 7만 5,000여 종에 달한다. 보드게임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 게임을 골라서 하기 어려울 정도의 숫자다. 실제로 보드게임 커뮤니티의 단골 질문은 보드게임 추천에 관한 것이다.

2014년 말 즈음, '입문용 보드게임 1순위'로 자리를 굳힌 게임이 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해서 실패한 적이 없다며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이 게임, 바로 '스플렌더(Splendor)'다. '빛남, 광채'라는 제목처럼, 이 게임은 말 그대로 2014년을 빛낸 게임 중 하나다.

게임 방법

스플렌더는 게임이 끝났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가진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플레이어들은 점수를 얻기 위해 개발 카드와 귀족 타일을 모아야 한다.

게임은 시작 플레이어부터 한 차례씩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진행된다. 게임 종료 조건이 중간에 충족되더라도 맨 마지막 순서였던 플레이어까지 게임을 진행하므로, 모든 플레이어는 똑같은 행동 기회를 가진다.

스플렌더
스플렌더

뒷면이 다른 3가지 카드 더미를 각각 잘 섞어 내려놓고 4장씩 카드를 펼쳐놓는다. 보석 토큰을 한 곳에 모아두고 인원수에 따라 귀족 타일을 배치하면 준비가 끝난다. 빠르고 손쉬운 게임 준비 시간도 이 게임의 장점이다. <출처: divedice.com>

자신의 차례가 오면 3가지 행동 중 하나를 골라서 할 수 있다. 첫째는 개발 카드를 구입하기 위한 보석을 모으는 것이다. 게임에는 5가지 종류의 보석이 있는데 사파이어(파란색), 다이아몬드(흰색), 에메랄드(초록색), 루비(빨간색), 줄마노(검정색)다. 그리고 특별히 황금(노란색)이 있다.

보석 가져가기
보석 가져가기

보석 가져가기. <출처: divedice.com>

플레이어들은 황금을 제외한 보석 중 서로 다른 종류의 보석을 3개 가져가거나, 한 종류의 보석을 2개 가져가는 것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다만, 한 종류의 보석을 가져가려면 그 보석이 공동창고에 4개 이상 남아있어야 한다. 보석은 여러 개 모아둘 수 있으나,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보석은 최대 10개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져온 보석은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한다.

카드 구매하기
카드 구매하기

카드 구매하기. <출처: divedice.com>

둘째, 이렇게 가져온 보석을 사용해 개발 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 개발 카드는 게임의 최종 목적인 '점수 획득'을 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다. 카드 왼쪽 위에 적혀있는 숫자가 곧 점수다. 개발 카드는 테이블에 각 단계별로 4장씩 펼쳐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개발 카드를 구입하려면 카드의 왼쪽 밑에 적혀있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표시된 보석을 공동창고에 반납하고 카드를 자신의 앞에 둔다.

개발 카드의 기능은 한 가지 더 있다. 개발 카드를 구입하면 그 이후에 다른 개발 카드를 구입할 때, 구입한 개발 카드 오른쪽 위에 그려져 있는 보석을 할인 받을 수 있다. 개발 카드를 많이 보유하면 할인 혜택을 중첩해서 받으므로, 추후에 개발 카드를 구입하는 데 더욱 유리하다.

카드 선점하기
카드 선점하기

카드 선점하기. <출처: divedice.com>

셋째, 지금은 구입할 수 없지만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카드가 있다면, 남들이 가져가기 전에 먼저 선점할 수 있다. 공동 창고에 있는 황금을 1개 가져가고, 원하는 카드를 손으로 들고 가면 된다. 황금은 아무 보석으로나 사용할 수 있는 '조커'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손에 들고 간 카드는 나중에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다른 개발 카드를 구입하는 것처럼 비용을 지불하고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손에는 최대 3장의 카드만 들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미 3장을 손에 들고 있다면 이 행동을 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차례의 마지막에 귀족 타일을
가져간다.
차례의 마지막에 귀족 타일을 가져간다.

차례의 마지막에 귀족 타일을 가져간다. <출처: divedice.com>

이렇게 세 가지 행동 중 하나를 행하고 자신의 차례를 마치면서 특정 조건이 충족된다면, 귀족 타일을 가져올 수 있다. 귀족 타일 왼쪽에 이 조건들이 나와 있는데, 대개는 일정 종류의 개발 카드를 여러 장 요구한다. 자신이 그 귀족이 요구하는 개발 카드를 해당 숫자만큼 가지고 있다면, 그 귀족 타일을 가져와서 자신의 앞에 둔다. 귀족 타일은 다른 기능은 없지만 3점을 준다.

누군가가 자기 차례를 마치고 15점 이상을 달성했다면, 맨 마지막 순서로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까지 차례를 진행하고 게임을 마친다. 점수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스플렌더는 2명에서 4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데, 인원에 따라 보석과 귀족 타일의 숫자만 조절하며 기타 다른 규칙은 동일하다.

게임 종료 조건의 중요성

누군가 15점 이상을 달성하면 게임이 끝난다는 규칙은 스플렌더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카드를 모아 점수가 높은 카드를 값싸게 구매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어느덧 게임이 끝나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값싼 카드를 모아 다른 카드를 손쉽게 살 수 있는 전략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게임이 단순한 카드 모으기가 된다. 특히 처음 게임을 하면 첫 번째 카드 더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게임 종료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5점 이상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15점 이상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15점 이상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divedice.com>

스플렌더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15점을 이상의 점수를 누구보다도 먼저 내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카드를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높은 점수를 내는 것이다. 또한, 게임이 끝났는데 동점일 경우에는 카드 수가 적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따라서 점수가 없는 카드 여러 장을 공짜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획득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4~5점짜리 큰 점수 카드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턴 보석을 모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게임 종료의 조건은 시작 플레이어의 유리한 위치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 15점에 도달하면 게임은 끝나지만, 승자는 먼저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점수를 많이 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먼저 게임을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은 초반에 좋은 보석을 선점해 유리하게 게임을 이끌어갈 수 있지만, 게임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점수 이상으로 득점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점수 차이를 벌려야 하는 압박을 시종일관 받게 된다. 차례를 늦게 갖는 플레이어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추격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순서의 유불리는 이 승리조건으로 희석되는 느낌이다.

입문용 보드게임

스플렌더는 이제는 오래된 게임 구조 중 하나인 '셋 콜렉션(Set Collection)' 게임 구조를 사용하는 고전적 게임이다. 스플렌더는 오랫동안 입문용 보드게임(Gateway Board Game)으로 알려진 '카르카손(2000)', '티켓 투 라이드(2004)',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2004)', '7원더스(2010)'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 이 게임들과 비교해 볼 만하다.

전형적인 입문 게임. 카르카손
전형적인 입문 게임. 카르카손

전형적인 입문 게임. 카르카손 <출처: divedice.com>

2015년 발매 15주년차를 맞이하는 카르카손도 보드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은 실존하는 프랑스 도시 '카르카손'을 배경으로 했다. 카르카손 도시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 타일을 뽑아 이어 붙여 도시를 건설하면서, 타일 위에 자신의 일꾼을 놓아 점수를 얻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다.

'타일을 하나 뽑아서 놓는다' 라는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매 게임마다 타일이 섞여 뽑히는 타일이 다르다. 때문에 몇 번을 플레이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이는 스플렌더의 핵심 재미 요소와 겹친다. 간단한 규칙, 말을 놓을 것인지/놓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면 되는 제한적 선택지, 하지만 매번 바뀌는 타일로 인해 매번 다른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재미는 스플렌더와 매우 유사하다.

티켓 투 라이드
티켓 투 라이드

티켓 투 라이드. 2004년 다이브다이스에서 한글판을 제작했다가, 최근 행복한바오밥에서 다시 한글판이 발매했다. 사진은 2004년 한글판. <출처: divedice.com>

2004년 처음 발매된 직후 입문자용 보드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게임은 '티켓 투 라이드(Ticket To Ride, 2004)'다. 이 게임은 북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철도 건설 게임으로, 단순한 규칙에 간접적인 경쟁 장치를 가지고 있어 호평을 받았다.

게임은 공급처에서 기차 카드를 모으고 게임판 위에 표시된 선로 색깔의 기차 카드를 내면, 그 위에 자신의 기차를 올려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꺼번에 긴 선로를 놓으면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으며, 게임 시작 시 나누어주는 티켓 카드가 요구하는 선로를 이으면 추가 점수를 준다. 따라서 보통은 티켓에 맞도록 선로를 놓는데, 이용할 수 있는 선로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이 게임과 스플렌더는 카드를 사용한다는 점, 카드/토큰을 모아서 자신이 원하는 루트/개발 카드를 산다는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또, 카드를 모으거나 선로를 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방해하는 점도 닮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1판.
상트 페테르부르크 1판.

상트 페테르부르크 1판. 최근 그래픽을 일신한 2판이 출시됐다. <출처: divedice.com>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2004년 발매돼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매 라운드마다 4단계에 걸쳐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카드를 구매하고, 구매한 카드를 통해 승점이나 돈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점수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일꾼이나 건물 카드를 구매할 때, 같은 종류의 카드가 있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점이 스플렌더와 닮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카드를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다는 점은 스플렌더와 판박이다.

하지만 게임이 끝날 때까지 가져간 카드를 건설하지 못하면 감점되기 때문에, 스플렌더보다는 제약이 크다. 스플렌더는 이 게임에 비해 더 단순하고 간편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지폐를 주고 거슬러 받지만, 스플렌더는 보석 토큰 몇 개의 교환으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스플렌더에 비해 다양한 카드 기능, 카드 업그레이드와 같은 다양한 전략적 루트가 있기 때문이다.

7 원더스
7 원더스

30분 안에 즐기는 문명게임. 7 원더스 <출처: divedice.com>

'7 원더스'는 2010년 등장한 문명 건설 게임이다. 7 원더스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카드 중에서 1장을 골라서 사용하고, 나머지 카드는 옆 사람에게 넘긴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받은 카드 중에서 또 1장을 골라서 사용하는 '드래프트 방식'을 중심 시스템으로 하고 있다. 카드의 기능이 다양한 것을 제외하면 게임 규칙은 단순한 편이라 보드게임 입문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게임이다.

물론 카드마다 기능이 달라 스플렌더보다는 복잡하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 중 하나를 사용하면 된다는 좁은 선택지,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차례에 카드를 내려놓아 이득을 누적해야 된다는 점은 점수를 쌓아나가는 스플렌더와 매우 유사하다. 스플렌더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점수가 공개돼 있듯이, 7 원더스도 자신이 어떻게 문명을 건설하고 있는지 한 눈에 확인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점수를 보며 전략을 고심할 수도 있다.

앞서 소개했듯이, 현재 입문자용 게임으로 널리 추천되는 게임들은 각각 독특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는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요소가 어느 정도 명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한 규칙'과 '짧은 게임 시간', '여러 번 플레이 할 수 있는 재미'가 그러한 요소다.

스플렌더는 이러한 호감의 요소들을 두루 갖춘 최고의 입문자용 게임 중 하나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 마르크 안드레

스플렌더의 작가 마르크 안드레
스플렌더의 작가 마르크 안드레

스플렌더의 작가 마르크 안드레. <출처: boardgamegeek.com>

보드게임 디자이너 마르크 안드레는 스플렌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디자이너다. 그는 1969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게임을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체스 클럽 대표였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어렸을 적부터 체스를 즐겼다. 10대에는 롤플레잉 게임에 빠졌다. 이후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역업에 종사했는데, 물건을 사고 팔고 돈을 버는 일을 게임처럼 즐겼다. 하지만 일에 소모되는 시간이 너무나 많아, 무역업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중점을 두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게임들 중에는 가족 게임들이 많다.

마르크 안드레가 제작한 첫 보드게임은 프랑스어로 사탕을 의미하는 기억력 게임 '봉봉스(Bonbons, 2011)'다. 이는 각 플레이어들이 서로 훼방을 놓는 간단한 기억력 게임이었다.

그가 제작한 2번째 게임이 바로 '스플렌더'다. 게임 제작사 스페이스 카우보이즈(Space Cowboys)는 쉬운 가족 게임, 혹은 코어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을 찾았는데, 2012년 스플렌더를 발견했다. 마르크 안드레는 2012년 5월 한 게임 축제에 참가했고, 보드게임 제작사 아스모디(Asmodee)의 직원 중 한 명과 만나 스플렌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카우보이즈 로고.
스페이스 카우보이즈 로고.

신생 게임 제작사, 스페이스 카우보이즈 로고.

스페이스 카우보이즈는 프랑스의 보드게임 제작사 아스모디의 창립자 세 명이 새로운 게임 개발을 위해 따로 설립한 보드게임 스튜디오였는데, 마르크 안드레가 만났던 그 직원이 이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스플렌더를 그들 회사의 첫 게임으로 출판했다.

마르크 안드레는 스플렌더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게임이라 자신한다. 그는 한정된 보석 토큰의 교환과 카드에 표시된 보너스 간의 균형이 스플렌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 안드레는 기존 게임들을 철저하게 해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가 '한 차례에 한 번의 행동'이다. 마르크 안드레는 현대 보드게임의 좋은 예제인 '카탄의 개척자(1995)', '카르카손', '티켓 투 라이드'에서 이 규칙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며, 좋은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마르크 안드레는 스플렌더의 확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스플렌더와 유사한 형태의 게임 시리즈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외면받은 비운의 신작

요즘에야 스플렌더가 게이머들 사이에 유명해졌지만, 첫 출시 당시 스플렌더는 게이머들에게 외면 받은 신작이었다. 스플렌더의 국내 공식 유통사는 '2013년 에센 박람회(Spiel 2013 in Essen)'에서 스플렌더의 프로토타입을 처음 접하고 이 게임을 계속 주목해왔지만, 게임 가격이 비싼 점과 병행수입 문제로 한글판 제작 여부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스플렌더의 프로토 타입
스플렌더의 프로토 타입

스플렌더의 프로토 타입. <출처: Space Cowboy facebook>

국내 유통사는 2014년 '뉘른베르크 토이 페어(2014 International Toy Fair Nurnberg)'에서 최종적으로 한국어판 제작을 결정했고, 2014년 예약판매 형식으로 출시 전부터 게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통사의 바람과 달리 첫 예약판매는 일주일 간 50여개에 그쳤다. 게임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수소문한 몇몇 게이머들은 게임성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논평했다.

스플렌더의 장점 중 하나는 보석 토큰인데, 이 보석 토큰이 게임을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진으로만 평가했을 때 게이머들에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석 토큰을 대신해서 카드를 사용했다면 더 저렴해졌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스플렌더가 판매된 이후 재평가됐다. 보석 토큰이 두껍고 무거워 손맛이 좋고, 빈번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토큰 형태가 카드 형태보다 내구성이 좋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플렌더에 대한 첫 인상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국내 유통사는 해외에서 샘플로 8개의 게임을 수입해 초보자 설명회를 열었지만, 참여율 또한 저조했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유통사에서 게임을 배송해주고, 게임 후기를 남기게 한 뒤 다시 회수하는 형식으로 홍보가 진행됐다. 이는 유통사가 게임성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매를 앞두고 쓰인 몇 편의 후기는 이 게임에 대한 평가를 반전시켰다. 이후 스플렌더는 영국 게임 엑스포(UK Game Expo)에서 최고 게임상(Best Game Award)을 수상하고, 2014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yahres)에 후보작(Nominee)으로 선정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게다가 유통사에서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스플렌더 턱박스를 제작하자, 판매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스플렌더는 외국에서도 박스가 과하게 크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휴대성이 불편한 편이었다. 유통사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템을 검토하던 중 턱 박스(Tuck Box)를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을 검토했다. 제조사가 아닌 유통사가 프로모션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플렌더 턱 박스
스플렌더 턱 박스

스플렌더 턱 박스. <출처: divedice.com>

스플렌더 턱 박스는 휴대성과 내구성을 살리기 위해 투박하지만 견고한 골판지를 사용했고, 단단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스플렌더 이미지를 아트지로 제작해 둘렀다. 하지만 예상과는 많이 다른 디자인과 골판지 박스는 스플렌더 출시 직후 호된 평가를 받았다. 턱 박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구매자들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예약 구매자들에게 증정된 턱 박스가 판매되기 시작하자, 턱 박스는 스플렌더와 함께 꾸준히 판매됐다. 턱 박스조차 스플렌더와 같은 길을 걸은 재미있는 사례다.

스플렌더 한국어판의 초기 생산량은 500개였는데, 위와 같은 유통사의 노력으로 이 중 200여개가 예약 판매됐고, 예약 구매자들의 호평이 이어지자 빠르게 소진됐다. 이후 스플렌더는 색약인 사람들을 위해 카드에 새롭게 아이콘을 표시한 2판이 출시됐고, 이 판본 또한 국내에 입고돼 빠르게 팔려나갔다. 코엑스에서 열린 2014 보드게임콘에서는 스플렌더 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보드게임 카페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입문자용 보드게임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4 골든 긱 어워드
2014 골든 긱 어워드

2014 골든 긱 어워드. <출처: boardgamegeek.com>

스플렌더는 비록 2014 독일 올해의 게임상을 '카멜 업(2013)'에 내줬지만, 2015년 골든 긱 어워드(Golden Geek Award)의 올해의 보드게임상(Board Game of the Year)을 수상하는 등, 여전히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베스트셀러의 예감

스플렌더는 정말 좋은 게임이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조용한 게임 분위기와 약한 게임 배경이 그것이다.

스플렌더는 조용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입문자용 게임이 보드게임의 긍정적 요소인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활발히 끌어내지 않는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스플렌더를 하면, 이야기꽃을 피우며 게임을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 고요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샌가 모두 게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요한 상태는 누군가 내가 가져갈 카드나 토큰을 가져갔을 때, 탄식과 함께 끝이 난다. 그리고 "아, 그때 그걸 내가 먼저 가져갔어야 했는데"로 시작하는 대화가 일어난다.

결국 스플렌더의 게임 규칙이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매력을 준다는 것이고, 이 집중이 풀릴 때 비로소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보드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화려한 카드 일러스트
화려한 카드 일러스트

화려한 카드 일러스트. 게임 중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 단점이다. <출처: divedice.com>

스플렌더는 게임 배경의 비중이 미약하다. 게임 배경은 보석을 채굴하는 광산, 운송 수단, 보석 세공소를 구매하고, 귀족들의 방문을 통해 명성을 얻는다는 줄거리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의 강렬함이 워낙 커서, 막상 게임 배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스플렌더
스플렌더

스플렌더는 전략적인 게임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성향에 잘 맞는 게임이다. <출처: divedice.com>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스플렌더를 즐기지 않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스플렌더를 처음 경험해봤을 때의 인상은 간결함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강조해 여러 번 게임을 즐기게 하는 다른 보드게임들을 비웃듯, 스플렌더는 오직 3가지 선택지만을 제공한다. 목적도 매우 단순하다. 점수 카드를 모으기만 하면 된다. 보드게임을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어렵지 않다.

스플렌더는 매번 다양한 상황이 펼쳐져, 매 게임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매번 다른 카드가 펼쳐지기 때문에 필승 전략이 나오기는 어렵다. 따라서 단순한 규칙일지라도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스플렌더는 최적의 효율성을 찾아가는 게임의 본질을 그 어떤 게임보다 간결하게 보여준다. 자잘한 규칙과 세부적인 내용을 없애고 게임의 재미, 그 본질만을 보여줌으로써 보드게임에 대한 흥미를 쉽게 느끼도록 한다. 가장 빠르게 15점 이상을 달성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행동은 무엇인지 매 순간마다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묘미는 정식 발매된 지 1년밖에 안 된 스플렌더가 앞으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오세권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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