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만에 육수 만들어주는 '고체 육수' 어떻게 탄생했을까?
[스케일업 X 서울먹거리창업센터] 델리스 (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마이크 타이슨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18년 9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아쉬운 점을 해결하고자 시도했던 '스케일업 프로젝트’, '스케일업 코리아'의 첫 시작을 알리는 문구였는데요. 매 순간 도전에 나서는 스타트업에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을 통해 링에 오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업 후 완성한 제품과 서비스로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정글과 같은 무한 경쟁 속 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이합니다. 도전자는 많지만 살아남아 성장하는 기업은 드물죠. 창업 후 투자유치에 실패하고 방향성을 잃어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부지기수입니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다윈의 바다'를 향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스케일 업(Scale-Up)'입니다.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성장입니다. 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가 단순 창업보다 외형 확대와 성장을 듯하는 스케일업을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타트업이 아닌 스케일업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2016년 12월, 서울시는 가락시장 현대화 시설인 가락몰 1관과 2관 3층에 농식품(Food·Agri Tech) 분야에 특화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서울먹거리창업센터'를 개설했습니다. 농식품 관련 아이디어와 상품 개발을 도와 농업 생산물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식품가공기술, 인허가, 특허, 디자인, 홍보·마케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개소 이후 서울먹거리창업센터는 누적 보육 스타트업 89개사, 누적 매출 266억 원, 고용창출 146명, 투자유치 49억 원 등의 성과를 거뒀습니다(2019년 6월 기준). 그리고 최근 서울먹거리창업센터는 스케일업에 대한 고민을 저희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은 시장 속에서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고 공감했죠.
서울먹거리창업센터와 함께 스케일업 고민을 시작한 첫 스타트업은 '델리스'입니다. 델리스는 뜨거운 물에 넣고 3초면 육수를 만들 수 있는 고체형 육수 '순간'을 개발했습니다. 2018년 9월, 도전을 시작한 스타트업, 델리스를 소개합니다.
3초면 완성하는 육수, '순간'
델리스가 개발한 '순간'은 고체형 육수다. 고체형 육수라니, 낯설게 느껴진다. 델리스도 고민이 많았다. 초기 개발 당시에는 '고형 육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체형과 고형, 어느 것이 낫겠느냐고 반응을 살폈다. 주변 반응은 그나마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 '고체형'에 긍정을 표했다. 기체, 액체, 고체.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 단어 아닌가.
고체형 육수는 말 그대로 고체로 만든 육수를 뜻한다. 끓는 물에 '순간'을 넣고 3초만 기다리면 멸치, 새우, 버섯, 채소 등을 넣고 푹 우려낸 육수를 만들 수 있다. 찬물에도 넣을 수 있다. 1분 정도만 잘 저어주면 된다.
우리네 주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조미료와 비슷한 방식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조미료는 우려낸 육수에 추가로 넣는 제품이지만 순간은 맹물에 넣어 육수를 만든다.
우리는 육수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대부분 비슷하다. 먼저 멸치, 다시마, 양파, 대파, 버섯 등 재료를 준비한다. 전문 식당은 재료를 통째로 넣어 대량으로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지만, 가정에서는 재료를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재료를 물에 넣고, 푹~끓인다.
그리고 재료를 건져내야 한다. (아, 다시마는 중간에 건져야 한다. 너무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나니까.) 재료를 그대로 잘 건져내면 다행이다. 끓이면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재료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멸치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자꾸 부서진다. 맑은 육수를 위해서는 촘촘한 망을 사용해야 한다. 건져낸 재료는 음식물 쓰레기다. 잘 분류해 버려야 한다.
델리스가 순간을 개발한 이유다.
소비자 목소리를 담아낸 순간
델리스는 설립 후 약 1년간 순간을 개발했다. 지난해 11월에 이르러 테스트를 끝내고 양산 체계를 갖췄다. 마지막에 집중한 것은 염도와 짠맛. 흔히 말해 간을 맞추는 작업에 집중했다. 평균적으로 한국인이 "간 잘 맞았네"라고 말하는 염도는 0.7%다. 하지만, 500㎖ 기준 물에 순간 하나를 넣으면 염도는 0.3~0.4%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수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고추장이나 된장을 추가로 넣어 요리하기 마련이다. 아예 짜면 간을 맞추기 어렵지만, 조금 싱거우면 소금을 추가해 간을 맞추면 그만이다.
작년 10월 25일, 델리스는 와디즈 펀딩으로 시장 반응을 살폈다. 목표액은 300만 원. 일주일 만에 200%를 달성했고, 약 한 달간 진행한 결과 521%를 달성했다. 261명의 서포터가 모였고 1563만 원을 펀딩 받았다.
델리스가 가장 우선시한 것은 현장 반응, 소비자 목소리다. 채소 육수인 채수 개발은 채식주의자의 요청을 반영한 결과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서울 HMR 쿠킹 페어', '프랜차이즈 박람회', '대한민국 식품대전' 등 다양한 전시회에 참가해 소비자 반응과 원하는 가격, 맛 평가를 꾸준히 조사했다.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순간에 녹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작년 2월, 경기도 양평에 40평 규모의 공장을 임대한 뒤 필요한 설비 장비를 구매했다. 이제 해썹 인증(HACCP-)도 마무리 단계다. 얼마 전 델리스는 인연을 맺은 홈쇼핑에서 해썹 인증과 함께 생산량을 더 높여 달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를 반영하는 중이다. 해썹 인증을 마무리하고 나면 델리스는 곧 순간을 홈쇼핑에서 소개 및 판매할 예정이다.
해외에 수출할 수 있을까?
델리스에 재미있는 반응이 찾아왔다. 해외에서 순간을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전까지 꾸준히 참여했던 전시회에서 만난 미국 선교사가 최소 물량을 발주해 받아 갔다. 2차, 3차 물량도 계약하기로 약속했지만 야속하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선교 활동을 멈춰 아직 진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존 유통업체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대상으로 오픈마켓을 구축하려고 계획 중인 사업가도 샘플을 요구해 가져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수출 기회를 잡은 셈이다. 델리스는 미국 수출용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성분을 제거한 제품, 치킨 육수도 준비했다. 다만, 아직 큰 규모의 계약으로 이어진 상황은 아니다. 현지 반응을 살피기 위한 최소 물량 주문이다. 지금은 이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해 멈춘 상황. 아쉬울 따름이다.
꾸준히 순간을 알릴 수 있던 전시회도 멈췄다. 델리스는 그나마 올해 상반기 띵굴시장과 창농불패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참관객은 1/10으로 줄었다. 전시회는 델리스처럼 새로운 먹거리를 개발한 스타트업이 자사를 알릴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다. 참여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고체형 육수, 술자리에서 떠올렸다
고체 육수 순간의 아이디어는 김희곤 대표와 장수문 이사가 술자리에서 떠올렸다. 두 사람은 71년생 동갑내기, 같은 경상도 출신으로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이다. 어느새 35년 지기다.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내고, 서울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만났다. 이제는 델리스에서 같은 방향을 보며 전진하는 중이다.
김 대표와 장 이사는 IT 관련 업계에서 일했다. 그게 25년 전이다. 김 대표는 IT 관련 대기업, 중소기업 등을 다니다 서울 풍납동에서 분식 프랜차이즈 '아딸(아버지와딸)'을 창업해 운영했다. 그리고 4년 뒤, 서울시가 몽촌토성 복원 개발을 결정하며 동네 주민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분식 프랜차이즈를 떼고 자영업으로 전환, 직접 메뉴를 개발하며 버텼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장 이사와 술한잔 하며 "뭐 할 수 있는 일 없을까?"라며 나누던 대화가 고체육수 순간이었고, 델리스였다.
순간으로 아이디어가 좁혀지며, 자료부터 찾았다. 육수, 조미료 관련 특허를 조사했고 천연재료를 이용한 조미료 관련 특허를 발견했다. 이걸 이용하면 고체 육수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해 특허권자를 찾아갔다. 특허권자는 한국식품연구소에 재직 중인 박사였다. 박사와 1년 동안 시제품을 개발하는 정부 과제를 함께 연구 진행해 고체 육수 초기 버전을 개발하고, 기술 이전을 받았다.
초기 설립 자금은 강원도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 '청년창업사관학교'를 통해서였다. 개발 사업화 자금과 사무실을 얻었다. 이후 서울먹거리창업센터 입주했고, 공장을 설립한 뒤 기술연구소를 등록해 벤처기업 인증도 받았다. 최근에는 청년창업사관학교 프로그램의 연계 지원으로 1억 원 투자도 받았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억 1000만 원.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 상반기 목표는 3억 원이었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도전하고 있는 스타트업, 델리스
지난 2019년, 델리스는 고체 육수 순간을 완성했다. 그리고 양산할 수 있는 공장과 생산 설비를 갖췄다. 1년 동안 꾸준하게 전시회에 참여하며 긍정적인 반응도 얻었다. 매출도 늘었고, 이를 바탕으로 직원도 늘었다. 모든 것은 이렇게 잘 흘러갈 줄만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순간을 알릴 수 있었던 유일한 행사인 전시회가 중단됐다. 이제 막 넓히기 시작한 네트워크, 판로 등은 그대로 멈췄다. 수출용 제품을 개발했지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초기에 기획했던 공장과 생산 설비 확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답답할 따름이다.
델리스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고체 육수 순간을 더 많이 판매하는 것.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하고, 생산량도 늘려야 한다. 국내용 제품과 수출용 제품으로 라인업을 세분화하고 해썹 인증도 어서 마무리짓고 싶다.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지…조금은 막막하다.
김희곤 대표가 물었다. 지금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느냐고.
* 델리스 다음 편에서는 스케일업하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