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어린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분히 물리적이고 단순하다. 어떤 방법이든 상대방의 울음을 먼저 터트리게 한 승자만이 장난감을 차지한다. 힘이 센 자가 이기고 약한 자는 패배하는, 지극히 원초적인 해결 방식이다. 반면 성인들의 싸움은 이보다 훨씬 지루하고 복잡하다.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하거나, 법원을 수 차례 들락거리며 치열한 ‘말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냥 깔끔하게 치고 받고 싸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면 간단할 텐데,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 폭력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마초처럼 힘으로 승부를 가리고 싶다면 그저 대전격투게임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수밖에.

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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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1)

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전격투게임

대전격투게임은 액션 게임의 하위 장르로, 1대1 격투(시쳇말로 ‘맞장’)를 벌여 상대방을 눕히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일반적으로 화면 상단에 체력을 표시해주는 바(bar)가 있는데,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을 때마다 이 바가 점차 줄어들어 0에 도달하게 되면 패배하는 방식이다. 또한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체력이 많이 남은 쪽이 판정승으로 이기기도 한다. 일본의 스모처럼 장외로 밀어내면 승리하는 방식을 취한 게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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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2)

하지만 반드시 1대1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 게임에 따라 태그매치 형식으로 다수 대 다수의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전격투게임은 항상 정정당당함을 기치로 내건다. ‘17대 1’과 같이 한 쪽이 일방적으로 숫자가 많은 싸움은 대전격투라고 할 수 없다. [더블 드래곤(Double Dragon)], [파이널 파이트(Final Fight)], [골든 액스(Golden Axe)]처럼 주인공이 다수의 약한(?) 적을 상대하는 게임들은 비뎀업(beat’em up)이라는 장르로 분류한다. 반면 대전격투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대1로 싸워도 유불리가 없도록 비교적 비슷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통 권투나 레슬링 게임은 대전격투게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은 보통 스포츠 게임의 범주에 들어가거나 별도의 장르로 취급된다. 반면 대전격투게임은 다소 황당무계한 판타지적 요소를 포함한다. 손에서 불덩이를 만들어낸다거나 공중부양을 하는 등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싸움을 벌인다. 사실성을 표방한 일부 대전격투게임도 알고 보면 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다. 멱살이나 머리채를 휘어잡고 악다구니를 쓰는 ‘진짜 싸움’은 대전격투게임 안에 없다.

대전격투게임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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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3)

일격필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 전 프로야구선수 요기 베라(Lawrence Peter Berra)의 명언은 대전격투게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은 체력의 차이가 극심해도 방심할 수 없는 게 대전격투게임의 묘미다. 체력을 순식간에 빼앗을 수 있는 ‘한 방’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 따라 필살기, 수퍼파워, 스페셜 어택 등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특정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발동된다. 사실성을 강조한 게임에서도 연계공격(콤보, combo)을 통해 한 번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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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4)

폭력성

게임의 특성상 폭력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피가 튀고 멍이 드는 것은 약과다. 패배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게임들은 잔인한 표현을 다수 사용해 국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1993년 일본 SNK가 출시한 [사무라이 스피리츠(Samurai Spirits)]에서는 진검승부에 패한 자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거나 사지가 절단 나서 죽는다. 또 1992년 미국 미드웨이 게임즈가 출시한 [모탈 컴뱃(Mortal Kombat)]에도 척추를 뽑거나 머리를 날려버리는 자극적인 장면이 다수 포함됐다. 이와 같은 게임들은 국내에서 심의 등급을 받지 못하거나 잔인한 장면이 삭제돼 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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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5)

선정성

대전격투게임의 주 사용자층은 남성이다. 남성의 취향에 맞추다 보니 게임 속의 여성 인물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1992년 SNK가 출시한 [용호의 권(Art of Fighting)]에서는 강한 기술로 여성을 쓰러트렸을 때 해당 여성의 속옷이 드러나는 효과가 삽입됐으며, 1996년 아틀라스가 출시한 [호혈사일족 3]는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여성 캐릭터 때문에 국내 심의가 거절됐다. 또한 1996년 테크모가 출시한 [데드오어얼라이브(Dead or Alive)]도 여성의 가슴부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강조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전격투게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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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6)

최초의 대전격투게임은 1979년 출시된 [워리어(Warrior)]로 알려져 있다. 이 게임은 2명의 창 기사가 싸우는 모습을 조감도(bird's eye view) 형태로 만든 것으로, 상대방을 찔러 죽이거나 구석의 구덩이로 몰아넣으면 이기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성능에 한계가 있어 창 기사와 득점 상황만 벡터 그래픽으로 표현했고, 나머지 배경은 그림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격투게임에 본격적으로 무술이 채택된 것은 1985년 [쿵푸(Yie Ar Kung-Fu)]부터다. 이 게임은 점프를 하거나 앉는 것은 물론, 버튼과 조이스틱과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주인공 우롱(Oolong)으로 스모선수, 여자닌자, 봉술가 등의 다양한 적을 무찌르고 최후에 자기 자신까지 쓰러트리면 엔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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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의 영향을 받아, 1987년에는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가 등장했다. 이 게임은 방어 시스템, 도전자 난입 시스템, 약한 공격부터 강한 공격까지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 등 현대 대전격투게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어 1991년 후속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2(Street Fighter II)]가 출시되며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본격적인 대전격투게임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는 게임을 넘어 몇 편의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지금까지 대전격투게임의 교과서로 인식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캡콤의 라이벌 SNK는 [아랑전설(Fatal Fury)]를 출시했다. 일부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아류작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지만, 상대의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싸울 수 있는 라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독창적인 부분도 많았던 게임이다. SNK는 [아랑전설]에 이어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등을 내놓으며 연타석 홈런을 쳤고, 세가도 1993년 [이터널 챔피언(Eternal Champions)]으로 체면치레를 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모탈 컴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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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7)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3D 게임이 인기를 얻었다. 1993년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Vitua Fighter)]와 1994년 남코의 [철권(Tekken)]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들은 오락실뿐만 아니라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로도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기 제작사로부터 귀빈 대접을 받기도 했다. [소울 엣지(Soul Edge)], [소울칼리버(Soulcalibur)], [무사도 블레이드(Bushido Blade)], [사립져스티스학원(Rival Schools)] 등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종전의 2D 방식 게임이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2D 대전격투게임 특유의 화려한 효과 때문에 2D 게임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다. 이 덕분에 [스트리트 파이터], [아랑전설],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등의 후속작들은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다크스토커즈(Darkstalkers)], [길티기어X(Guilty Gear X)] 시리즈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은 2D 대전격투게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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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맞장'으로 승부를 가리는 -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 (8)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여러 작품을 접목한 크로스오버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SNK의 대표 게임을 합친 [킹오브파이터즈(The King of Fighters)]나 캡콤의 대표 게임을 합친 [마블대캡콤(Marvel vs Capcom)]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닌텐도도 슈퍼마리오, 피카츄 등 자사의 캐릭터를 총동원한 [슈퍼스매시브라더스(Super Smash Bros)]를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회사간의 대표 게임을 합친 크로스오버 게임도 등장했는데, SNK가 내놓은 [SNK대캡콤(SNK vs Capcom: The Match of the Millennium)]과 캡콤이 내놓은 [캡콤대SNK(Capcom vs SNK:Millennium Fight 2000)]가 그것이다. 크로스오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캡콤과 남코도 2012년 출시를 목표로 [스트리트파이터X철권(Street Fighter X Tekken)]과 [철권X스트리트파이터(Tekken X Street Fighter)]를 개발 중이다.

왕년에 잘나갔지만, 지금도 잘나가는 게임

오락실 세대라면 한번쯤은 접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전격투게임은 오락실 게임의 중심부에 있었다. 물론 대전격투게임은 지금도 가정용 게임기 타이틀로 꾸준히 출시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높은 게임장르 중 하나다. 하지만 오락실이 몰락하고 PC방이 대세가 되면서, 가정용 게임기가 대중화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대전격투게임의 인기가 한풀 꺾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철권 등의 일부 대전격투게임은 국내 e스포츠로 발전했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대전격투게임의 특성 때문이다. 언젠가 PC 온라인 플랫폼에 맞춘 새로운 대전격투게임이 등장한다면 대전격투의 르네상스가 올 수도 있다. 대전격투게임은 절대로 유행 지난 고전 게임 장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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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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