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맞이한 노 재팬, IT 시장의 분위기는?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2019년 7월 4일, 일본 정부는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의 대한민국 수출과 관련된 포괄 수출 허가를 개별 수출 허가로 전환한다. 이 세 가지 재료는 반도체 생산의 필수 물자로, 사실상 반도체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한 조치였다. 일본이 대 한국 수출 금지를 단행한 주요 원인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사실상 일본 아베 정부의 지지율 확보를 위한 한국 때리기의 일환에 더 가깝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일본 정부는 한국 반도체 기업의 물자 재고가 소진됨에 따른 반도체 산업의 사장화를 꿈꿨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내강외유의 기회로 삼았다. SK그룹의 소재 계열사 SK머티리얼즈는 기체 형태의 초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고, 폴리이미드 역시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아직 EUV용 포토 레지스트 국산화는 추진ㅡ중이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국, 일본의 의도와 다르게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일대 전환을 맞이했고, 코로나 19 사태에서도 굳건한 입지를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IT 업계의 노 재팬 현황은 어떨까?

카메라 업계, 이 악물고 버티기 돌입

올림푸스는 6월 30일부로 국내 철수를 발표했다. 출처=올림푸스
올림푸스는 6월 30일부로 국내 철수를 발표했다. 출처=올림푸스

카메라는 노 재팬 운동 당시 대체재가 없는 몇 안 되는 시장 중 하나였다. 패션이나 차량과 다르게, 카메라만큼은 일본 이외에 생산하는 국가가 독일, 미국, 중국, 스웨덴 정도밖에 없다. 덕분에 불매운동으로 인한 분위기 속에서도 잠잠히 시장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는 상태다. 또한, 대다수 카메라 기업이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버틸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

하지만 PEN, OM-D 시리즈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던 올림푸스(OLYMPUS)는 6월 30일부로 카메라 사업을 종료했다. 올림푸스한국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국내 카메라 시장이 축소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는 노 재팬 운동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일본 올림푸스 자체가 카메라 사업을 통채로 매각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수익성이 높은 의료기기, 현미경 사업부는 유지하고, 카메라 사업부만 펀드에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카메라 최대 커뮤니티인 SLR클럽에서도 노 재팬 운동이 활발하다. 출처=SLR클럽
카메라 최대 커뮤니티인 SLR클럽에서도 노 재팬 운동이 활발하다. 출처=SLR클럽

올림푸스는 조용히 퇴장했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캐논, 니콘, 소니, 파나소닉, 리코-펜탁스 등은 꾸준히 사업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 자체가 특정 시스템에 종속되면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경향이 있어, 시스템을 탈피하지 않는 한 한 회사 제품을 계속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음향기기 시장, 국산-미국산으로 재편 중

삼성닷컴에 설명되어 있는 하만. 출처=삼성닷컴
삼성닷컴에 설명되어 있는 하만. 출처=삼성닷컴

음향기기는 노 재팬 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음향 기기 자체가 대체재가 확실한 데다가, 걸출한 국산 브랜드부터 관록 있는 해외 브랜드까지 선택권이 많다. 게다가 애초에 소니나 오디오 테크니카, JVC 등 일본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시장도 아니었으니, 노 재팬의 영향이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국산 음향 가전은 삼성전자가 JBL, 하만카돈, 렉시콘 등이 포함된 하만을 인수하면서 선택권이 넓어졌고, LG전자 역시 영국 메리디안과 협업한 LG 엑스붐 시리즈, LG 톤프리같은 음향 기기부터 프리미엄 오디오인 LG 오브제 오디오까지 취급하고 있다. 중저가 시장도 인켈이나 브리츠, 캔스톤같은 중저가 오디오 업체가 포진해있고, 아이리버 아스텔앤컨 같은 휴대용 하이앤드 오디오 제품까지 있다.

LG전자 엑스붐 고 블루투스 스피커, 영국 메리디안과 협업한 제품이다 출처=LG전자
LG전자 엑스붐 고 블루투스 스피커, 영국 메리디안과 협업한 제품이다 출처=LG전자

예외는 있다. 일본 야마하는 악기 시장에서 강자인 만큼, 음향 기기 시장에서도 득을 보고 있고, DJ용 턴테이블 역시 파이오니아 제품의 점유율이 높다. 소니 역시 하이레스(Hi-Res) 인증이나 노이즈 캔슬링 부문에서 강세인 기업이라 꾸준히 선택하는 사용자가 있다. 살아남은 기업이 꾸준히 가고 있지만, 국내 기업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는 분위기다.

완판 행진 '동물의 숲' ··· 빗겨나간 노 재팬

모여봐요 동물의 숲 타이틀 이미지. 출처=닌텐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 타이틀 이미지. 출처=닌텐도

닌텐도 스위치는 2017년 출시된 휴대용 콘솔 게임기로, 슈퍼마리오나 젤다의 전설 같은 유명 게임을 독점 타이틀로 제공한다. 특정 게임을 하려면 반드시 닌텐도 스위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닌텐도 역시 일본 기업의 대명사인 만큼 노 재팬 운동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 2020년 3월에 독점 타이틀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출시하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당시 지나친 품귀현상으로 인해 구매후 되팔이 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출처=게임동아
당시 지나친 품귀현상으로 인해 구매후 되팔이 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출처=게임동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플레이어가 동물들과 함께 섬을 꾸미는 캐주얼 게임으로, 닌텐도 스위치로만 플레이할 수 있다. 동물의 숲 자체는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이나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처럼 꾸준히 출시되던 시리즈였으나,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또한, 동물의 숲 디자인이 된 닌텐도 스위치가 출시되면서, 대형 마트 개점과 동시에 닌텐도 스위치 동숲 에디션을 구매하려는 소위 '오픈런'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여전히 냉담한 시장, 재편되어가는 분위기

최근 폐점을 결정한 유니클로 산하 브랜드 지유(GU)와 한국 사업 철수를 발표한 닛산. 출처=GU, 닛산
최근 폐점을 결정한 유니클로 산하 브랜드 지유(GU)와 한국 사업 철수를 발표한 닛산. 출처=GU, 닛산

1년이 지났고, 많은 일본 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불씨는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올림푸스야 카메라 사업부 철수로 인한 자연스러운 퇴장이었지만, '불매운동 여파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해 공분을 산 유니클로, 부진한 성적에 국내 사업을 청산한 닛산, 혐한 방송을 운영한 화장품 회사 'DHC' 등 적잖은 기업이 철수하거나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다른 선택권이 있는 가전, IT 기기는 노 재팬 운동의 영향이 지배적이지만, 동물의 숲같이 문화 콘텐츠 시장은 선택적 불매 운동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예외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대체재가 없는 시장은 소비 시장 자체가 참을 수 밖에 없기 떄문이다. 노 재팬이 길어질수록 제 2의 동물의 숲 사례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한일 무역 분쟁이 촉발한 계기는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극우 성향에서 기인한다. 반도체 물자 수입 금지는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불과하다. 노 재팬 운동은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는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일본 기업들 역시 이같은 한국 시장 분위기에 적응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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