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매 시스템의 사회적 순기능과 기업적 이익

이상우 lswoo@itdonga.com

요즘 각종 국가 공사, 철도 사업, 국방 사업 등의 납품비리가 관피아, 철피아, 군피아 같은 타이틀을 달고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권력과 인적 네트워크에 기인한 납품비리는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으며, 혈세가 낭비되는 등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K방송사가 보도한 호남고속철도 CCTV사업은 해당 구매 업무 담당 부장의 자살과 국민혈세 134억원이 잘못 사용됐다는 내용으로 방송전파를 탔다(11월 8일 추적 60분 방송 분).

호남고속철도 비리
호남고속철도 비리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호남고속철도 CCTV사업에서 2009년에 1,500만 원에 납품됐던 장비가 2012년에는 거의 유사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2,770만 원으로 2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납품된 사건이었다. 불과 3년만에 1,270만 원이나 상승했다. 이러한 터무니 없는 가격상승에도 불구하고 납품될 수 있었던 것은, '철도고'라는 학연을 바탕으로 투명 경쟁을 통한 납품 업체 선정이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담당자의 부정부패와 이러한 비리를 걸러낼 업무 프로세스 및 시스템 부재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납품비리를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구매 컨설턴트라는 필자의 직업적 관점에서 찾아본다면, IT 기술을 융합한 구매 시스템 적용과 투명한 구매 업무 프로세스 운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구매 시스템은 기업과 사회에 이득이 될 수 있는 순기능의 요소가 존재한다.

첫 번째 순기능 – 납품 투명성 확대

최근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구매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구매 시스템을 도입하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으나 가장 우선시 되는 사항은 구매 업무 및 납품에 관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구매와 납품 업무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모두 수작업에 의한 '사람의 일'이었다. 대기업에 물건을 한번 납품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접대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며, 실제로도 이행했다. 물론 이런 '사람의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결국 수많은 비리가 발생했고, 투명하지 않은 거래가 결국에는 더 큰 사건과 공정한 경쟁을 방해했다.

따라서 대기업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은 구매 업무를 '사람의 일'에서 'IT시스템의 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투명성 때문이다. IT 시스템을 통해 구매 조건을 등록하고 그에 맞는 입찰 업체와 제품을 구매하도록 업무 변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IT 구매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모든 구매 업무가 시스템으로 이뤄지고 불투명한 거래가 일거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의 일'로 말미암은 문제에 대해 많은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IT 구매 시스템을 도입한 모 정유 업체는 구매 과정에서 담당자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도록 모든 입찰경쟁 단위(SG: Sourcing Group)를 세분화 하고, 해당 단위에 따라 자동적으로 구매 요청과 입찰 경쟁이 이뤄지도록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 적용하기로 했다. 해당 기업의 CEO와 임직원이 구매 담당자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납품 문화를 만들려면 사람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두 번째 순기능 – 원가 절감 및 비용 효율성 개선

기업의 입장에서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는 구매 시스템을 도입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야말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구매 시스템의 도입은 장/단기적으로 원가 절감 및 비용 효율성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 원가 절감과 비용 효율성 개선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며, 소비자 입장에선 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사회적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공장
공장

필자가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모 자동차 부품업체의 경우 제품 원가 비율이 91% 수준이었다. 해당 회사는 인건비와 다양한 간접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실제 제품 판매를 통해 가져갈 수 있는 수익 규모는 매우 작았다. 비단 어떤 한 회사의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물건을 만들고 팔아서 남는 수익이 크지 않으며, 이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이유는 지속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과 평균임금의 증가 등 다양하다. 제품 가격을 올리면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싼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외면해 버리면 그 기업은 살아 남기 수 어렵다. 기업은 현실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제품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원가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기업은 구매 시스템 도입으로 구매 과정에 드는 인력과 간접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투명한 입찰 경쟁 과정에서 경쟁력 높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부 원가 및 비용 절감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구매 시스템은 더 나아가 통합구매 또는 공동구매를 가능케 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원가 절감도 이끌 수 있다.

세 번째 순기능 – 거래 결과에 대한 정보화

세 번째 순기능은 거래 결과에 대한 정보화다. 이는 구매 전문가로서의 관점에서 보면 앞의 두 가지 내용보다 중요하고 기본적인 부문이다.

기업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전략을 수립한다. 실제로 기업은 고객 정보, 마케팅 정보, 시장 정보 등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그러나 구매 결과의 정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수집과 분석에 대한 노력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구매 정보 관리가 '사람의 일'에 속해있을 때는 제대로 기록되거나 관리되지 않았다. 필자는 심지어 일부 정보가 특별한 사유로 변경되거나 지워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산업현장에서 경험했다.

기업의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모든 업무 행위는 기록, 분석 및 관리돼야 한다. 그러나 구매 관련 정보는 다른 정보와 비교해 정확성과 활용성이 아주 많이 부족하다.

세계적으로 구매 부문의 경쟁력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애플 구매팀은 부품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협력사보다 더 많은 원자재 가격 정보와 오랫동안 쌓아온 구매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 협상에 임한다. 애플에 디스플레이 모듈을 공급하는 국내 모 기업 담당자도 애플의 구매 담당자가 가진, 방대하고 심도 깊은 구매 관련 정보력에 두 손 들고 애플이 요구하는 납품 단가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도 이처럼 구매 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분석 능력을 고도화하여 다양한 부분에 적용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높아질 때, 보다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해 본다.

끝으로 앞서 구매 시스템 도입을 통한 순기능을 강조했지만, 구매라는 업무는 아무리 시스템이 발전해도 일부 영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이 디지털과 시스템으로 이뤄진 세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일은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가며 즐겁게 하고, 판단과 결과에 대해서는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일하는 방식이 구현된다면, 글의 맨 앞에서 밝혔던 납품비리와 같은 사건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글 / 엠로 컨설팅 사업본부 임성민 수석 컨설턴트(simon@emro.co.kr)
편집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엠로 임성민 부장

엠로 임성민 부장
엠로 임성민 부장

국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KT 협력사 평가 방안 수립, 제일모직 구매 포털 및 협력사 평가 관리 시스템 구축,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기업간 IT 협업 시스텝 확산 방안 연구, 한국전력 조달시스템 통합 재구축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