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신호등은 꺼지고 AI는 틀렸다…교통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길 위의 운전자는 두 종류의 '지시'를 받으며 주행합니다. 하나는 국가가 도로에 세운 신호등이고, 다른 하나는 차 안에서 들리는 내비게이션과 AI 음성비서의 안내입니다.
요즘 차에는 완성차 순정 음성비서와 챗GPT 같은 생성형 AI, 티맵·카카오내비 같은 앱이 한 화면에 함께 들어옵니다. 그런데 만약 신호등이 고장 나 엉뚱한 신호를 보여준 경우, 또는 AI가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세요"라고 잘못 안내해서 사고가 났다면, 그 사고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답을 찾으려면 누가 잘못된 정보를 만들었는지, 누가 이를 알아차리고 바로잡을 수 있었는지, 사고 순간 차량을 실제로 통제한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차례로 살펴야 합니다.
신호등이 잘못됐다면, 국가가 책임질 수 있어
신호등은 국가배상법이 말하는 '영조물', 즉 공공시설입니다. 설치·관리에 하자가 있어 사고가 났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배상책임을 집니다.
법원은 고장 난 신호기가 방치돼 사고가 난 사건에서, 특히 직진 신호와 맞은편 좌회전 신호가 동시에 켜지는 '모순 신호'처럼 운전자가 고장을 알아챌 수 없는 오작동의 경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합니다. 보행자 신호가 꺼진 채 방치된 경우에도 하자가 인정된 바 있습니다.
다만, 고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배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전기가 끊어져 적색등이 꺼진 사정만으로는 하자를 단정할 수 없다고 봤고, 관리자가 신속히 점검·수리하고 수신호로 통제한 경우, 책임이 부정된 판결도 있습니다. 고장의 양상과 신고 후 방치 여부, 평소 관리 상태가 판결의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AI가 잘못 안내했다면…1차 책임은 운전자
신호등의 지시는 도로교통법 제5조가 운전자에게 '따르라'고 명령한 법적 신호입니다. 법이 믿고 따르라고 한 시설이 틀렸으니, 그 시설을 세우고 관리하는 쪽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반면, 내비게이션과 AI 음성비서의 안내는 법적으로 '참고 정보'일 뿐입니다. 운전자에게는 안내와 무관하게 눈앞의 신호와 표지판을 확인하며, 안전하게 운전할 의무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좌회전 금지 구역에서 "좌회전하세요"라는 안내를 따랐더라도, 법은 기계가 아니라 운전자를 탓합니다.
2024년 경인고속도로 부평IC 역주행 사망사고에서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을 잘못 봤다"고 진술했지만, 수사 대상은 운전자였습니다. 법원은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다 옹벽을 들이받아 동승자가 크게 다친 사건에서 전방주시 태만을 사고의 원인으로 봤습니다. 과실비율 인정 기준에도 '내비가 잘못 안내했다'는 이유로 운전자 과실을 줄여주는 항목은 없습니다.
내비게이션·AI 회사에는 과실이 없을까
내비게이션·AI 회사에 과실을 물으려면, 문턱이 높습니다. 제조물책임법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전제인 '제조물'은 '제조되거나 가공된 동산', 즉 손에 잡히는 물건이라, 형체 없는 소프트웨어와 AI, 앱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부터 다툼이 있습니다.
이용 약관은 대부분 경로와 정보의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두고 있고, 상당수가 무료 서비스라는 점도 책임을 좁힙니다. 실제로 내비게이션 제공사에 오안내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인정한 국내 확정 판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차주(운행자) 측 보험에서 배상받습니다.
기술의 수혜자가 책임을 떠안는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머지않아 자율주행차가 신호 정보를 통신으로 받아 주행하고, 고장 난 신호등과 AI의 판단이 얽힌 사고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마다 책임이 운전자 개인에게만 쏠린다면, 운전자는 첨단 기술의 수혜자가 아니라 책임을 대신 떠안는 소비자로 전락합니다. 신호등 사고에서 국가가 책임지듯 AI의 안내가 틀렸을 때, 책임질 주체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AI를 제조물책임의 틀에 담는 논의, '1차 배상 후 구상'으로 책임을 나누는 구조, 사고 시 AI 판단 기록에 접근할 권리 보장이 그 출발점입니다. AI의 목소리가 운전석까지 들어온 지금, 책임의 법도 그 속도를 따라잡아야 합니다.
관련 제도가 마련되기 전까지 운전자는 아래 사항을 숙지해야 합니다.
첫째, 신호등 고장으로 난 사고라면, 국가배상 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모순 신호였는지, 신고 후 방치됐는지가 관건이므로, 당시 신호 상태가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반드시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운전자 측 과실이 있으면, 그만큼 감액됩니다.
둘째, 내비게이션·AI 안내를 따르다 사고가 났다고 해서 운전자 과실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오류 제보 후 방치된 사정이 드러나면, 다퉈볼 여지는 있으니 안내 화면과 음성 기록을 남겨 두십시오.
셋째, 자율주행 기능을 쓰더라도 낯선 길일수록 안내보다 눈앞의 신호와 표지판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의 법은 마지막에 핸들을 쥔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입니다.
스마트카 시대의 가장 확실한 방어운전은 역설적으로 결국 ‘내 눈’입니다. AI가 똑똑해져도 확신에 찬 안내를 그대로 믿는 ‘자동화 편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비나 안개로 시야가 나쁜 초행길일수록 AI는 참고 하고, 실제 신호등과 표지판·노면 표시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AI도 틀릴 수 있고 신호등도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