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보드게임 속 다양한 경매 이야기, 게임 구조: 경매

안수영 syahn@itdonga.com

보드게임으로 경매의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다.
보드게임으로 경매의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다.

보드게임으로 경매의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경매(Auction)는 라틴어 'augeō'에서 비롯된 말로, 조금 많이 의역하자면 '지른다(I increase)'의 의미라 풀이할 수 있다. 도매시장에서 열띤 목소리로 "만 원!", "2만 원!"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새삼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경매의 기원

17세기 이전에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통상적으로 가격이나 협상(Negotiation)을 통해 거래됐다. 경매는 일반적인 거래 수단은 아니었지만, 경매의 역사는 꽤 길다. B.C 500년경의 헤로도토스(Herodotus)가 바빌론의 경매에 대해 묘사한 것이 경매에 대한 첫 기록이라 한다.

이 바빌론의 경매는 다름아닌 '결혼'을 대상으로 했는데, 바빌론에서는 경매 외의 방법으로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금지돼 있어, 모든 구혼자들은 경매를 통해 결혼해야 했다고 한다. 바빌론의 결혼 경매는 남자들이 구매자가 되어 처녀의 아름다움을 두고 경매하는 방식으로 실시됐다. 간혹, 아름답지 못한 처녀는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이럴 경우에는 딸을 경매에 내놓는 집안에서 결혼지참금을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역경매의 모습이다.

로마 제국 시기에는 노예와 같은 전쟁 약탈품을 나누거나, 채무자의 빚을 청산할 때 경매를 했다. 심지어 페르티낙스(Publius Helvius Pertinax) 황제가 근위병에 암살됐을 때는 황제 자리를 경매하기도 했다.

17세기 이후에는 영국에서 행해진 '양초 경매'가 유명하다. 양초가 다 타기 전까지 가장 큰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경매에서 이기는 방식이었다. 인터넷이 개발된 이후, 경매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효율적인 거래를 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다양한 경매의 방법이 온라인에서 행해졌다.

보드게임에서는 1930년대 개발된 '모노폴리(Monopoly)'에 경매의 요소가 들어있는데, 그런 만큼 보드게임 속 경매의 역사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경매의 종류

미술관 경매의 풍경. 보드게임, 마스터피스(Masterpiece,
1970)
미술관 경매의 풍경. 보드게임, 마스터피스(Masterpiece, 1970)

미술관 경매의 풍경. 보드게임, 마스터피스(Masterpiece, 1970) <출처: Boardgamegeek.com>

가장 일반적인 경매는 '오픈 경매(Open Outcry Auction)'다. 이는 도매시장의 경매처럼 누구나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부르고,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낙찰 받는 것을 의미한다. 오픈 경매에서는 가격이 점차 올라가는 레이스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원래 가격보다 더 비싸게 구입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보드게임에서는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 해당 물품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도록 하거나, 경매 물품의 가치를 모두에게 공개함으로써 승자의 저주를 해결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점을 이용해 원하는 만큼의 가격대까지 물건의 가격을 올려놓고, 다른 사람들이 비싸게 구입하도록 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오픈 경매가 순서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경매 방식이라면, 경매에 참여하는 차례가 고정적으로 돌아오는 '라운드 경매(Round Auction)'도 있다. 라운드 경매는 일반적으로 시작 플레이어의 왼쪽 사람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가격을 부르거나 패스를 할 수 있는데, 최종 낙찰자가 생길 때까지 한 방향으로 경매 참여의 권리가 돌아간다. 패스를 했을 때 더 이상 입찰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패스를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다시 입찰할 수 있는 게임도 있다.

블라인드 경매(Blind Auction)도 있다. 블라인드 경매는 '실드 경매(Sealed Auction)' 혹은 '히든 경매(Hidden Auction)'라고도 불린다. 블라인드 경매는 주먹에 원하는 만큼의 가격을 쥐고, 동시에 주먹을 펼쳐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플레이어가 해당 물품을 낙찰 받는 형식을 일컫는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얼만큼의 가격을 쓸지 미리 알 수 없고, 동시에 가격을 공개하기 때문에 레이스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경매에 비해 심리전과 입담이 주효한 전략이 된다.

블라인드 경매를 할 때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기회를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가급적 적은 금액으로 낙찰에 성공하는 것이 좋다. 또한, 경매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다른 플레이어가 큰 금액으로 낙찰 받도록 유도해 이후 경매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한 약간의 입방정은 이 경매 방식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또, 블라인드 경매에서는 경매에 건 돈이 낙찰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 버려지기도 하므로, 확실하게 이길 것이 아니라면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왕좌의 게임 보드게임(2003)에서 사용되는 블라인드
경매.
왕좌의 게임 보드게임(2003)에서 사용되는 블라인드 경매.

왕좌의 게임 보드게임(2003)에서 사용되는 블라인드 경매. <출처: divedice.com>

라운드 경매가 경매 참가자들이 원하는 만큼 순서대로 참여할 수 있다면, '원스 어라운드 경매(Once Around Auction)'는 모든 경매 참가자들에게 단 한번의 경매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시작 플레이어의 왼쪽 사람부터 원하는 가격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시작 플레이어가 가격을 불러, 가장 높은 낙찰가를 부른 플레이어가 물품을 낙찰 받는다. 정확하게 한 바퀴만 돌기 때문에 '일주 경매'라고도 한다. 이 방식에서는 물품을 구입할 때 단 한번만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원하는 가격을 부르자니 다음 플레이어가 더 큰 가격을 불러 낙찰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받을 수 있다.

네덜란드의 꽃 시장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네덜란드식 경매(Dutch Auction)'는 상품을 제시하고, 비싼 가격에서 시작해 점차 가격을 떨어뜨리는 경매 방식이다. 최고 호가로부터 점차 가격을 낮추어 가다가, 최초로 구매 희망자가 나오면 그 사람에게 낙찰을 하는 것. 최초로 구매의사를 밝힌 플레이어 한 명만이 구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기다리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낙찰 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매 게임

메디치(Medici,
1995)
메디치(Medici, 1995)

대표적인 경매게임, 메디치. <출처: divedice.com>

경매 게임의 정석을 꼽는다면 보드게임 '메디치(Medici, 1995)'를 빼놓을 수 없다. 플레이어들은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의 최고 명문가였던 메디치가와 교역하는 상인이 되어, 3일 동안 상품을 구매해 팔아야 한다.

시작 플레이어는 1장에서 3장까지 상품을 꺼낼 수 있으며, 이들 상품은 동시에 경매에 부친다. 따라서 동시에 몇 장의 상품을 꺼낼지, 그리고 어떤 품목으로 조합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매 가격이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경매로 나온 상품을 보고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상황을 체크해 어떤 상품이 효율적인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여느 경매게임과 달리 상품 구입 후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분명하다는 것이 이 게임의 장점이다. 특히, 이 게임은 각자 가질 수 있는 경매 상품이 라운드 당 5개라는 점을 고려해, 더욱 전략적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이미 경매 상품을 3개 가진 플레이어는 2개의 상품 조합만 입찰할 수 있기 때문에, 경매에서 전략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를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이 게임이 가진 특징이다.

아름다운 이집트 테마의 '태양신
라'
아름다운 이집트 테마의 '태양신 라'

아름다운 이집트 테마의 '태양신 라' <출처: divedice.com>

경매게임의 또 다른 명작은 '태양신 라(1999)'다. 파피루스에 새겨져 있을 것 같은 아트워크와 'Alea'라는 전통적인 보드게임 명가에서 발매된 게임으로, 2000년대 초반 상당한 인기를 끈 작품이다. '태양신 라'는 원스 어라운드 경매를 취하고 있다.

라운드마다 각자 3개의 비딩(bidding) 토큰을 가지고 시작하며, 이 토큰을 이용해 라운드마다 딱 3번만 경매에 낙찰 받을 수 있도록 제한을 두었다. 이 게임에서는 주머니에서 타일을 뽑아 경매 트랙에 올려두는데, 메디치와 같이 어떤 타일과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체 가치가 변동하게 된다.

태양신 라 타일 트랙이 모두 차면 시대가
끝난다.
태양신 라 타일 트랙이 모두 차면 시대가 끝난다.

태양신 라 타일 트랙이 모두 차면 시대가 끝난다. <출처: divedice.com>

재미있는 것은 타일을 뽑을 때, 태양신 라 타일을 뽑게 되면 시간이 간다는 점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라운드가 종료돼, 낙찰을 받지 못한 상태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때문에 타일을 주머니에서 뽑는 내내 긴장하게 된다.

'태양신 라'는 한때 국내에서 절판돼 많은 보드게이머들이 프리미엄이 붙은 비싼 가격에 해외구매를 한 게임이기도 하다. 이제는 오히려 해외에서는 절판돼 구매하기 어렵지만, 국내에서는 한글판이 발매돼 구하기 매우 쉬워진, 이상한 상황에 놓여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모던아트
모던아트

모던아트. <출처: boardgamegeek.com>

모든 경매 형식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단연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은 '모던아트(Modern Arts, 1992)'다. 모던아트는 각자 미술관의 미술품 수집가가 되어 가지고 있는 미술품을 판매하고, 가치 있는 미술품을 구입해 돈을 버는 게임이다.

처음 나누어 받은 카드를 어떤 타이밍에 판매하는가에 따라 미술품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품의 경매는 오픈 경매, 블라인드 경매, 원스 어라운드 경매, 가격 고정 경매(가격을 지정해 판매하는 것, 판매가 되지 않으면 본인이 구매한다), 더블 경매(2장의 카드를 한 번에 경매에 부치는 것) 등, 5가지 경매 방법 중 카드에 지정된 경매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로 경매 게임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상인
암스테르담의 상인

암스테르담의 상인. <출처: boardgamegeek.com>

네덜란드식 경매의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국내에서 상당히 헐값에 거래된 '암스테르담의 상인(Merchants of Amsterdam, 2000)'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상인에는 태엽 장치가 들어 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격이 낮아지는 것을 시계처럼 표시한다.

태엽 장치가 풀려 가격을 표시하는 침이 움직이면, 플레이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침을 삼키며 떨어지는 가격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할리갈리(Halligalli, 1993)'처럼 가장 먼저, 원하는 가격에 태엽 장치를 손바닥으로 내리친 사람이 그 가격에 해당 물품을 구입하게 된다. 이 태엽 장치의 소리는 무척이나 커서 긴장감이 감도는 방 안에서 더욱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국내에서 이 게임이 좋은 컴포넌트 질에 비해 헐값에 거래된 이유는, 게임의 밸런스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비싼 금액을 주고 경매 물품을 구매하는 일이 굉장히 잦았고, 경매 물품이 줄 수 있는 이득이 그리 크지 않아 국내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에게 평가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네덜란드식 경매를 체험하기에 이보다 좋은 게임은 없다.

화려한 일러스트가 장점인 피스트 오브
드래곤스톤.
화려한 일러스트가 장점인 피스트 오브 드래곤스톤.

화려한 일러스트가 장점인 피스트 오브 드래곤스톤. <출처: divedice.com>

블라인드 경매는 꽤 많은 게임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이 시스템을 주로 사용한 게임으로는 '피스트 오브 드래곤스톤(Fist of Dragonstones, 2002)'을 들 수 있다. 이 게임은 시타델의 작가 부르노 파이두티(Bruno Faiduti)가 그의 특기를 살려 각 캐릭터에 능력을 부여하고, 경매를 통해 캐릭터를 구매하도록 한 게임이다.

경매는 시종일관 블라인드 경매로 이루어지는데, 각자 다른 가치를 지닌 돈을 손에 쥐고 진행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돈을 낸 플레이어가 해당 캐릭터를 가져와 사용하게 된다. 심리전이 극에 이르는 게임이지만, 반복적으로 블라인드 경매만 사용돼 심심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재미있는 변형

'파워그리드(Power Grid, 2004)'는 경매 게임이라기보다는 전략 게임의 범주에 더 가깝지만, 게임 내부에 녹아있는 경매의 구조(Mechanics)는 아주 독특하다.

보드게임순위 Top10 중 하나인
파워그리드.
보드게임순위 Top10 중 하나인 파워그리드.

보드게임순위 Top10 중 하나인 파워그리드. <출처: divedice.com>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들이 도시에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데,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경매의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시작 플레이어는 여러 개의 발전소 중에서 원하는 것을 하나 골라서 경매에 부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패스를 하게 되면, 시작 플레이어는 발전소에 적혀있는 최소 가격을 주고 발전소를 구입할 수 있다. 이 때는 경매 물품을 선정하는 권한을 시작 플레이어의 왼쪽 사람에게 넘기게 된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발전소에 입찰해 낙찰받으면(시작 플레이어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가 발전소를 낙찰받으면) 시작 플레이어는 여전히 경매를 시작할 발전소를 고를 수 있게 된다.

각 플레이어마다 1개의 발전소만 경매로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시작 플레이어가 어떤 순서로 경매를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경쟁시켜 발전소를 비싸게 팔아 넘기고,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좋은 발전소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매 물품을 고르는 과정을 전략의 범주에 넣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이 소사이어티.
하이 소사이어티.

하이 소사이어티. <출처: divedice.com>

상류사회를 다룬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 2003)'는 그 테마로도 유명하지만, 상당히 독특한 게임성을 자랑한다. 플레이어들은 각각 다른 금액이 표시된 돈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며, 매 라운드마다 품위 유지를 위한 저택, 미술품, 사치품들을 경매로 사들인다. 경매는 앞서 내려놓은 플레이어보다 더 많은 돈을 내려놓으면서, 한 명의 플레이어를 남기고 모두 패스할 때까지(최종 1명에게 낙찰될 때까지) 진행한다. 다만 상류사회답게 이미 낸 돈은 다시 회수하지 않는다. 또한, 추가로 돈을 더 내서 그 합으로 비딩을 하며, 거스름돈은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800만불이면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잔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2000만불을 내고 구매할 수도 있다.

하이 소사이어티를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는 역경매에 있다. 사치품을 매 라운드마다 펼칠 때, 안 좋은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술품을 훔쳐가는 도둑이나, 카지노에 갔다가 빈털터리가 되는 상황 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플레이어는 이 카드를 안 가져가기 위해 경매를 해야 한다. 이 경매에서는 가장 먼저 패스한 플레이어가 안 좋은 카드를 가지게 되며,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그 때까지 경매에 건 금액을 모두 버리게 된다. 결국 플레이어들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돈을 써야 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쓰면 이후 사치품 경매에서 승리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비용을 조심스레 계산하게 된다.

에이지 오브 스팀
에이지 오브 스팀

에이지 오브 스팀. <출처: divedice.com>

철도 전략 게임 '에이지 오브 스팀(Age of Steam, 2004)'에서는 플레이 순서를 경매로 정한다. 플레이 순서를 경매로 정하는 것도 특이한데, 경매의 방식도 특이하다. 경매에서 먼저 패스한 순서대로 게임을 늦게 플레이한다.

가장 먼저 패스한 플레이어는 모든 돈을 회수할 수 있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패스를 할 때마다 자신이 건 돈의 절반을 회수하게 된다. 다만,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두 명의 플레이어는 자신이 건 모든 돈을 내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게임이고, 게임 순서가 게임에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앞 순서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경매에서 돈을 회수하는 규칙은 1, 2등 플레이어에게는 치킨 게임을, 나머지 플레이어들에게는 격렬한 눈치 싸움을 경험하게 한다.

펠릭스. 누군가 패스할 때 마다 주머니가
공개된다.
펠릭스. 누군가 패스할 때 마다 주머니가 공개된다.

펠릭스. 누군가 패스할 때 마다 주머니가 공개된다. <출처: divedice.com>

'펠릭스(Felix: The Cat in the Sack, 2007)'는 모든 사람이 한 장씩 골라 내려놓은 경매 물품을 비공개로 하고 경매를 하는 게임이다. 경매에서 누군가 패스를 할 때마다 비공개했던 경매 물품이 한 장씩 펼쳐지며, 최후에 낙찰된 플레이어는 모든 경매물품을 확인하고 가져오게 된다. 다만, 경매 물품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카드가 있다. 따라서 최후의 한 장이 치명적인 마이너스 카드라면, 그 때는 경매를 낙찰받는 플레이어가 화를 당할 수 있다. 경매에 있어 상품의 정보 공개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일종의 함정이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게임이다.

아문레
아문레

아문레. <출처: divedice.com>

'아문레(Amun-Re, 2004)'는 태양신 라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각 시대별로 나일 강 유역의 각 지역을 경매해 농사, 피라미드 건설 등을 진행한다. 지역을 경매할 때에는 가격 선점의 요소가 있다. 시작 플레이어부터 돌아가며 원하는 지역 카드의 가격표에 자신의 표시(marker)를 놓는다. 누군가 지역 카드의 가격 칸에 표시를 놓으면, 다른 플레이어는 그 가격 아래로 더 이상 표시를 놓을 수 없다. 두 개 이상의 표시가 있을 경우, 더 저렴한 가격에 표시를 놓은 플레이어는 다른 지역으로 표시를 이동해야 한다.

이렇게 표시를 옮길 때마다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가 표시를 놓은 지역에 더 비싸게 들어가 점유할 것인가', '아무도 표시를 놓지 않은 지역을 저렴하게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여러 경매 물품에 대해 동시에 각각 경매가 진행된다는 점이 신선한 게임이다.

키 플라워
키 플라워

키 플라워.

2014년 페어플레이 차트 1위를 차지한 리차드 브리즈의 '키플라워(Keyflower, 2014)'는 일꾼놓기 게임구조를 경매와 결합한 작품이다.

키플라워에서 플레이어들은 승점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 가지고 있는 일꾼 말을 육각형 타일의 각 면에 놓는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일꾼을 놓은 플레이어는 타일을 가져올 수 있다. 처음에는 일꾼 말을 하나만 놓지만, 그 이후에는 2개, 3개 등으로 숫자가 높아진다. 한 번 일꾼이 놓이면 그와 같은 색의 일꾼을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일꾼의 숫자와 색을 모두 신경써야 한다.

경매게임의 또 다른 수작,
드림팩토리.
경매게임의 또 다른 수작, 드림팩토리.

경매게임의 또 다른 수작, 드림팩토리.

이 외에도 영화를 제작하는 테마의 경매게임 '드림팩토리(Dream Factory, 2000)', 패스할 때마다 현재까지 모인 경매금액을 가져가는 '모굴(Mogul, 2002)', 카드 조합 경매인 '캣츠앤잼머 블루스(Katzenjammer Blues, 1998)', 입찰한 금액 자체가 경매물품이 될 수도 있는 '머니(Money, 1999)', 원스어라운드 경매를 전략게임에 적절히 녹인 '피렌체의 제후(2000)', '고아(Goa, 2004)'와 '다섯 부족(Five Tribes, 2014)', 숨겨진 경매게임의 명작인 '피자로&코(Pizarro&Co., 2002)', 블라인드 경매가 적절히 사용된 '왕좌의 게임 보드게임(Game of Throne, 2003)' 등은 경매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 볼 만한 작품들이다.

디자이너 라이너 크니지아

위에서 언급한 게임인 '메디치', '태양신 라', '모던아트', '하이 소사이어티', '아문레'가 모두 한 사람이 만든 게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보드게임 산업에서 다작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라이너 크니지아(Reiner Knizia)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너 크니지아
라이너 크니지아

라이너 크니지아. <출처: boardgamegeek.com>

1957년 독일에서 태어난 라이너 크니지아는 독일 울름 대학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아, 국내 보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크니지아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그는 금융업에서 종사하다 충분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고, 은퇴 후 전업 디자이너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이상적인 취미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1990년 골드디거와 데스페라도스를 시작으로 보드게임 디자인을 시작, 500여 개의 보드게임을 출판한 다작의 제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경매 트릴로지(메디치, 모던아트, 태양신 라), 타일 트릴로지(티그리스&유프라테스, 사무라이, 사막을 지나서)를 꼽을 수 있다.

크니지아에게 SDJ를 선사한 켈티스
크니지아에게 SDJ를 선사한 켈티스

크니지아에게 SDJ를 선사한 켈티스.

그는 '켈티스(Keltis, 2008)'를 통해 2008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 Winner)을 거머쥐며, 보드게임 관련 상은 모조리 다 휩쓸었다.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반지의 제왕'이며, '반지의 제왕: 대결(Lord of the Rings: confrontation, 2010)'은 2인용 게임의 명작으로 평가 받는다.

반지의 제왕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반지의 제왕: 대결
한글판(2002)'
반지의 제왕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반지의 제왕: 대결 한글판(2002)'

반지의 제왕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반지의 제왕: 대결 한글판(2002)' <출처: divedice.com>

이렇게 많은 작품을 디자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게임들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그의 모든 게임을 플레이해보는 이벤트인 '크니지아톤(크지니아와 마라톤의 합성어)'이 진행되기도 했다.

크니지아는 이익과 위험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게임을 잘 만든다고 평가 받는다. 그의 경매 게임들이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매 게임의 장점과 단점

경매게임은 참여하는 사람들, 그리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매번 게임 진행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하면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경매 방식에 대한 규칙을 익혀두면 추후 다른 게임들을 접했을 때 쉽게 적응할 수도 있다. 경매게임을 통해 거래 감각을 미리 일깨워뒀다면, 이베이(ebay)와 같은 경매사이트에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 (다만, 1등이 '2등이 제시한 금액'을 지불하는 프록시 경매(Proxy Auction) 방식은 아직 보드게임에서 흔하지 않다)

구매와 소비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이렇게 친숙한 게임 구조가 또 있을까? 경매 시스템은 현재에도 많은 게임에서 차용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경매가 중심인 게임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경매 게임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으로는 게임의 밸런스 문제를 들 수 있다. 경매 게임에서는 한 플레이어가 쉽게 경매를 포기해버리거나, 꼭 입찰하지 않아도 되는 물품을 낙찰받았을 때, 게임의 승자가 전략과 무관하게 쉽게 뒤바뀔 수 있다. 최근 나오는 게임들은 전략적인 선택과 효율성을 지향하며, 이에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 밸런스를 플레이어에게 맡기기보다는 게임 내부의 장치로 조절하려 한다. 때문에 새로 발매되는 게임에서는 경매 구조가 제약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또한, 경매게임은 기본적으로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경매는 플레이어들의 상호작용을 흥미 있게 이끄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게임의 경향은 1인부터 4인까지 적은 게임 인원을 요구하고, 상호작용은 조금 적은 대신 계획적인 게임 진행을 중점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경매를 주요 시스템으로 하는 게임은 이러한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이 게임구조의 태생적인 한계이지만, 양날의 검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경매게임은 플레이어들의 상호 작용을 증진시키고, 많은 인원이 즐길 수 있는 장점을 지니기도 한 것이다. 경매의 약점과 장점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인정한다면, 경매는 보드게임의 게임구조 중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메디치, 태양신 라, 모던아트와 같은 경매게임의 걸작(masterpiece)이 이 장르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훌륭한 게임들이 현실 세계의 경매를 게임구조의 하나로서 완벽히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러한 틀을 깨는 새로운 게임구조가 등장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존재하는 경매 게임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즐겁다. 아직 경매게임들을 접해 본 적이 없다면, 함께 지르러 가자. 승리를, 그리고 재미를.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권성현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195&category_id=195)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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