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독일식 보드게임의 태동, 카탄의 개척자

안수영 syahn@itdonga.com

카탄의 개척자(이하 카탄)는 독일의 보드게임 작가 클라우스 토이버(Klaus Teuber)가 만들고, 독일의 제작사 코스모스(Kosmos)가 발매한 문명 개발 보드게임이다. 이 게임은 1995년 발매된 뒤 독일의 유명한 2대 게임상(올해의 게임상 'Spiel des Jahres'과 독일 게임상 'Deutscher Spiel preis')을 모두 수상하며 보드게임 대중화에 성공, 독일에서 국민 게임의 지위를 얻었다. 대개 보드게임 전문가들은 플레이하기 쉬운 가족 게임을 지지하는 성향이 있고, 보드게임 팬들은 복잡하고 묘미 있는 게임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카탄이 위의 두 상을 모두 수상했다는 것은 게임성, 대중성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카탄의 개척자 한글판
카탄의 개척자 한글판

독일에서 카탄이 크게 성공하자, 독일 보드게임 업계에는 많은 인재들이 모였고 독일 보드게임 산업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후 카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까지 1800만 카피 이상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카탄과 그의 형제들

카탄의 개척자의 게임 모습
카탄의 개척자의 게임 모습

카탄은 무인도에 도착한 개척자들이 나무, 흙벽돌, 철, 밀, 양모 등의 자원을 얻어 마을을 만들고, 마을을 도시로 발전시키며 경쟁하는 게임이다. 게임 시작 시 주사위 2개를 굴리고, 그 합이 되는 숫자 칸에 인접한 개척지나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다. 모은 자원을 이용해 도시 확장을 위한 도로 건설, 새 위치에 마을 건설, 마을을 도시로 올리기, 발전 카드 구입 등을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자원을 다른 플레이어와 바꾸는 등 협력을 하거나, 좋은 위치에 먼저 마을을 짓기 위해 경쟁하기도 한다. 일정 레벨의 개발에 먼저 도달한 사람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카탄의 개척자의 지형 타일들
카탄의 개척자의 지형 타일들

각 칸의 색깔은 어떤 자원이 생산되는 지역인지를 의미하며, 숫자는 자원의 빈도를 의미한다. (아무래도 주사위 2개의 합이 12가 나오는 경우보다는 7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판은 모듈화된 육각형 칸과 숫자를 조합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이 섬은 매번 지형이 달라지고, 자원 생산 빈도가 달라지며, 그로 인해 게임의 양상도 바뀐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는 밀이 아주 귀해서 밀을 많이 쥔 사람이 게임의 열쇠를 쥔다거나 하는 식으로 게임 분위기가 확 바뀐다.

카탄의 개척자와 카탄의 개척자
확장판들
카탄의 개척자와 카탄의 개척자 확장판들

사실, 카탄의 초기 게임 규칙은 지금보다 더 복잡했다. 작가의 아들 구이도 토이버의 의견에 따라 복잡한 요소를 상당수 포기했고, 현재와 같은 게임이 됐다고 한다. 그 대신, 카탄에서 구현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은 확장판이나 다른 게임으로 제작됐다.

카탄의 첫 번째 확장판인 '항해사'는 주요 섬 바깥에 작은 섬들이 추가돼, 선박을 활용해서 마을을 확장할 수 있다. '도시와 기사' 확장판은 도시의 성장과 기술 개발, 야만인의 침입과 기사의 활동을 추가해, 보다 전략적으로 카탄을 즐길 수 있다. '상인과 야만인' 확장판은 2인 플레이 규칙 등 9개의 확장 모듈을 추가, 게이머의 취향에 맞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4번째 확장판인 '탐험가와 해적'은 게임 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배를 중심으로 탐험/어획을 하며 해적선, 금 자원 생산 등의 흥미 요소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이 모든 확장판들은 최대 4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각 확장판에는 더 많은 플레이어가 즐길 수 있는 5~6인용 확장판이 또 존재한다.

미국 시장 진출

카탄은 어린이 탐정 소설 '디 드라이(Die Drei)'로 유명한 독일 코스모스가 처음 출판했다. 코스모스 사는 그 전까지 책을 주로 출판해 오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카탄이라는 보드게임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카탄 이후 '우봉고(Ubongo)', '로스트시티(Lost Cities)' 등의 보드게임이 높은 판매액을 내면서, 이제는 보드게임이 코스모스 사의 주요 수익모델이 됐다.

카탄 출판 초기, 북미 지역의 판권은 메이페어(Mayfair) 사가 발빠르게 갖고 갔으며, 이는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메이페어는 초기에 북미 버전의 카탄을 독일 버전과 다른 테마와 열등한 그래픽으로 만드는 바람에 보드게이머들의 빈축을 샀다.

원본 카탄의 시대적 배경은 중세로 그려졌는데 반해, 북미판은 신대륙 발견 시대를 바탕으로 했다. 가령, 화승총 병사의 일러스트가 등장하고 캐릭터들의 복장도 서부 개척 시대를 연상케 한다. 이는 '도시와 기사'와 같은 확장판이 나올 때 설정이 서로 맞지 않는 어색한 결과를 초래했다.

북미 버전의 카탄이 안고 있는 더 큰 문제는 호환성이었다. 지금은 그래픽의 품질이 많이 개선됐으나, 어쨌거나 일러스트가 독일 버전의 그것과 다르다. 결국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독일어판의 확장팩과 서로 호환되지 않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메이페어가 발매한 초창기 북미 버전의 게임 박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왔던 버전이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메이페어가 발매한 초창기 북미 버전의 게임 박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왔던 버전이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사진 출처: Boardgamegeek.com>

어느 날, 메이페어의 사무 직원이었던 제이 퉈멀슨(Jay Tummelson)은 향후 독일식 보드게임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 직감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독일 제품과 같은 생산 라인에서 독일 품질의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메이페어의 경영진들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나 리오그란데게임즈(Rio Grande Game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리오그란데게임즈는 우수한 독일 보드게임을 다수 출판하며 메이페어보다 훨씬 더 영향력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현재 리오그란데게임즈의 콘텐츠 중에는 여전히 카탄은 없으나, 라이벌격인 게임 '카르카손(Carcassone)'이 있었고(지금은 다른 회사가 판권 보유 중), 독일 유력 게임 대부분을 북미판으로 출판하고 있다. 리오그란데게임즈는 최근 자체 개발 게임에 주력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는데, 그 중에는 '도미니언(Dominion)'과 같은 대작들이 있다.

일본판 카탄

일본의 비디오 게임 개발사 캡콤(Capcom)의 CEO는 카탄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보드게임 카탄은 일본 내 비디오 게임을 정식 발매하고 유통하는 회사 '캡콤'이 직접 진행했다. 이 때 캡콤이 카탄에 대해 가진 권리는 '일본 내' 가 아니라 '아시아 내' 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발매된 카탄도 캡콤 일본어판의 컴포넌트와 그래픽을 그대로 따르게 됐다.

캡콤이 발매한 일본판 카탄과 지형 타일들. 박스 일러스트에서 일본 비디오 게임 잡지 패미통이 생각난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캡콤이 발매한 일본판 카탄과 지형 타일들. 박스 일러스트에서 일본 비디오 게임 잡지 패미통이 생각난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사진 출처: Boardgamegeek.com>

그러나 일본판 카탄은 북미판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보드를 재조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카탄은 육각형의 보드 모듈을 매번 재배치해서 게임을 할 때마다 다른 상황이 연출되도록 하는 것을 큰 묘미로 한다. 그러나 일본판 카탄은 보드에 육각형의 모듈들이 일부 고정된 채로 출시됐다. 게임판의 크기는 독일어판의 1/2 수준으로 작았으며, 확장판 호환은 아예 불가능했다. 이 상품은 일본의 보드게이머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카탄의 공식 수입원인 코코캡콤은 아무도 갖고 싶어하지 않는 일본판 카탄을 수입해 왔다. 결국, 보드게임 소매상들이 각자 독일어판이나 영어판의 카탄을 직접 병행 수입해오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카탄의 한국 상륙

2002년 이전,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보드게임들은 소수의 동호인들이 해외 구매를 해 온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대중에게 알려진 보드게임들은 많지 않았다. 이 시기에 카탄은 보드게임 동호인들에게 최고로 평가되고, 가장 많이 알려진 게임이었다. 이 동호인들이 2002년 이후 보드게임 카페의 태동기에 중요한 역할들을 하면서, 카탄은 집중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후 훌륭한 보드게임들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며 카탄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카탄은 코어 게이머와 캐주얼 게이머 모두에게 사랑 받는 보드게임으로 남아 있다.

2002년, 코코캡콤이 일본판을 바탕으로 만든 최초의 한국판 카탄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2004년에 코코캡콤 버전의 카탄을 울며 겨자먹기로 판매하던 '페이퍼이야기' 사가 우여곡절 끝에 코스모스 사와 직접 계약하고 독일판을 바탕으로 한 한국판 카탄을 정식 발매한다. 2007년부터는 페이퍼이야기를 인수한 '코리아보드게임즈' 사가 독일판을 바탕으로 한 한국판 카탄을 출판하고 있다.

최초의 한국어판 카탄의 개척자의 구성물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최초의 한국어판 카탄의 개척자의 구성물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사진 출처: Boardgamegeek.com>

카탄과 모노폴리

'모노폴리(Monopoly)'는 1930년대 미국에서 출판돼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보드게임이다. 모노폴리와 카탄은 게임의 테마와 외형은 크게 다르지만, 두 게임 모두 천문학적인 판매 수를 기록하며 대중에 잘 알려졌다. 이에 두 게임은 서로 비교되곤 한다.

모노폴리의 찬스 카드. 카탄의 패러디 그래픽이며, 실제로 출판된 바는 없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모노폴리의 찬스 카드. 카탄의 패러디 그래픽이며, 실제로 출판된 바는 없다. <사진출처: Boardgamegeek.com>

<사진 출처: Boardgamegeek.com>

카탄과 모노폴리는 (1) 주사위 운에 따라 자원을 늘릴 수 있고, (2) 이 자원을 재투자해 게임판 위에 건물을 늘리면, (3)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한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즉, 두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은 '자원 재투자'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꽤 다르다. (1) 카탄은 모노폴리보다 자원의 종류와 사용처가 다양해 득점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더 다양하고, 보다 전략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2) 모노폴리는 다른 플레이어 모두를 파산시키는 것을 제1의 목적으로 하며, 게임 후반에 소수의 플레이어가 부를 독점하며 나머지 플레이어들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반면, 카탄은 약자들이 동맹해 강자를 위협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게임 후반까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오마주의 단골 소재

다른 보드게임에서 카탄의 패러디나 오마주도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보드게임 작가 우베 로젠베르크(Uwe Rosenberg)가 만든 게임 '아그리콜라(Agricola)'에는 부두 일꾼 카드가 있는데, 이 카드는 카탄에 대한 오마주다. 캐릭터의 일러스트는 카탄의 작가인 클라우스 토이버를 뜻하며, 카드의 내용도 카탄에서 자주 등장하는 2:1 교환과 3:1 교환이다.

아그리콜라의 부두 일꾼 카드. 캐릭터가 클라우스
토이버다.
아그리콜라의 부두 일꾼 카드. 캐릭터가 클라우스 토이버다.

이 밖에도 '세븐 원더스(7 Wonders)'의 카탄 버전 보드 등, 카탄에 대한 오마주를 표하는 보드게임들은 더 찾아볼 수 있다.

원더스의 카탄 확장
원더스의 카탄 확장

카탄 대회

카탄은 오늘날 보드게임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잡은 만큼, 카탄 대회도 매년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코스모스가 주도했으나, 최근에는 전 세계 카탄의 유통사들이 협력해 각국에서 대회를 치르고 대표를 선발, 독일에서 본선을 치르는 구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국내 대회가 열리고는 있지만, 독일 왕복 여행 비용 때문에 대표 선수가 실제로 본선에 참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05년, 카탄의 국내 수입원인 코리아보드게임즈가 국내 예선전을 치러 뽑은 대표 두 명을 지원해 세계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카탄이 거래와 설득이 필요한 게임인 만큼, 언어 소통의 문제로 고배를 마셨다.

2011년에 개최된 카탄 대회 모습
2011년에 개최된 카탄 대회 모습

카탄 대회는 국내에서도 자주 열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 플레이어들과의 교류전 형식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2011년 성남시청에서 열렸던 카탄 토너먼트에서는 일본인 플레이어 3명이 참가해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위 사진의 여성(우측)은 일본인인데, 2009년 카탄 세계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다.

치기공사에서 세계 최고의 보드게임 작가로

카탄의 작가 클라우스 토이버의 본업은 원래 치(齒)기공사였다. 독일의 의료 정책이 변화하며 일이 줄어들자, 그는 보드게임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것이 생애의 역작 카탄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이 부분은 모노폴리(Monopoly)의 작가 찰스 대로우(Charles Darrow)가 세계 경제공황 시절, 실직자에서 슈퍼스타로 떠오른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겠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게임 내에서 운이 작용하지 않아서 잘하는 플레이어만 항상 이기는 게임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내일 일어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인생이 지루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1988년 'Barbarossa', 1990년 'Hoity Toity', 1991년 'Drunter und Druber', 1995년 'The Settlers of Catn' 등 운의 요소를 담은 게임들로 올해의 게임상 Spiel des Jahres을 4차례 수상했다. 그는 이후에도 'Lowenherz', 'Anno 1503'과 같은 게임을 출판하며, 운과 전략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게임들을 개발하고 있다.

카탄의 주요 수상 경력

2012 JoTa - Best Game Released in Brazil (Critic Award)
2011 Ludo Award Winner
2008 BoardGamer.ru Recommendation
2006 Origins Awards Winner, Game Accessory of the Year (for Catan: Event Cards)
2005 Gra Roku Winner
2004 Hra roku Winner
1996 Origins Awards Winner, Best Fantasy or Science Fiction Board Game
1995 Deutscher Spiele Preis Winner
1995 Essener Feder Winner
1995 Meeples' Choice Award Winner
1995 Spiel des Jahres Winner
Games Magazine Hall of Fame Inductee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개발팀 박지원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http://me2.do/F1AqbsEs)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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