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개통기] "개통, 느려도 너~무 느려"

나진희 najin@itdonga.com

저렴한 요금제가 장점이나
가입 신청이 몰려 해피콜은 '감감무소식'
고객센터 연결이 어렵고, 신청 과정이 복잡한 것은 아쉬워

요즘 알뜰폰(MVNO)이 대세다. '저렴한 요금제'에 우체국이란 든든한 지원군까지 얻었기 때문. 알뜰폰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뜨거워 우체국에서 접수하는 에넥스텔레콤의 기본료 1,000원짜리 요금제는 이틀 만에 신청자가 5,000여 명을 넘어섰다.

기본료가 1,000원이라니... 부가세까지 포함해도 1,100원이다. 혹하지 않는가? '이 금액으로 번호 유지비는 나오려나'하고 업체 걱정까지 하게 된다. 거기다 요금제 출시를 기념해 얼마간은 가입비와 유심(USIM)비도 공짜다. 정말 1,100원만 있으면(유심 요금제 사용 시) 새 번호를 얻을 수 있는 거다.

자연스레 기자도 슬쩍 마음이 움직였다. 1,100원에 번호 하나가 더 생긴다니... 하루 종일 업무 관련 메일, 전화, 문자, 메신저 대화에 시달리므로 개인용 번호를 만들어 친목과 업무 연락을 분리하고 싶었다. 사실 업체 관계자나 직장 상사가 볼까 봐 카카오톡 등 SNS 상태를 마음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것도 불편했다. 별생각 없이 '힘들다ㅠㅠ'라고만 적어도 면담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 대부분 직장인이 공감할 것이다. 업무용 카카오톡 프로필은 항상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처럼, 개인용 카카오톡은 마음 가는 대로 꾸며 놓고 싶었다('셀카'도 멋대로 올리고).

기자는 지인들과 주로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연락한다. 업무를 제외하고는 전화나 문자를 할 일도 별로 없다. 그래서 이동통신(이하 이통) 3사의 1만 원이 넘는 표준 요금제는 과하다고 생각했다. 기자의 계획은 이랬다. 전화와 문자 기본 제공량이 없는 알뜰폰의 몇천 원짜리 저렴한 요금제에 가입한다. 그리고 주로 와이파이(Wi-Fi)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한다. 현재 집과 사무실에 무선 공유기가 설치되어 있어 와이파이를 잡아 쓰기 좋다. 기존 휴대폰으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 중이므로 여차하면 테더링(휴대폰을 모뎀으로 활용하는 것)해 와이파이 환경을 만들면 된다.

그래서 직접 알뜰폰을 신청했다. 이 기사는 알뜰폰을 개통하기까지 겪은 일을 다뤘다. 미리 말하자면, 우체국에서 알뜰폰 신청서를 넣을 때만 해도 이 기사가 이렇게 늦게 나갈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12/10 (화) - 개통 신청... "꼼꼼히 봤어야 하는데"

알뜰폰 요금제
알뜰폰 요금제

지난 9일, 개편된 우체국 알뜰폰 요금제 접수가 시작됐다. '우체국 알뜰폰 요금제 버전2'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편 이전보다 피처폰(일반 휴대폰) 모델이 많이 늘었으며 기본료도 대체로 낮아졌다. 역시 가장 눈길을 끈 건 에넥스텔레콤의 후불형 '홈1000' 요금제. 이 요금제는 기본료 1,000원인 상품으로 요금이 저렴한 대신 무료 음성/문자/데이터 제공량이 전혀 없다. 선불형 요금제가 아니므로 따로 금액을 충전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사용한 만큼만 요율대로 계산해 요금을 내는 것. 앞서 말했듯이 가입비와 유심비뿐 아니라 약정도 없다. 통화 요금율도 음성 초당 1.8원, 문자 건당 20원으로 이통 3사의 일반 요금제와 비슷하다.

광화문 우체국
광화문 우체국

서랍 속에서 자고 있던 중고 휴대폰을 들고 우체국을 찾았다. 현재 전국 226개 우체국에서 알뜰폰 접수를 대신해주고 있다. 어느 우체국에서 알뜰폰을 판매 중인지 알고 싶다면 우체국 알뜰폰 공식 홈페이지(http://www.epost.go.kr/comm/alddl/alddl06k001.jsp)를 참고할 것. 기자는 마침 종로 쪽에 갈 일이 있었기에 광화문 우체국을 방문했다.

광화문 우체국의 알뜰폰 코너는 처음 판매를 시작했던 지난 9월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그 때만 해도 기다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 들어서자마자 바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번호표를 뽑아야 했을뿐더러 기자 앞의 대기 인원이 8명이나 됐다. 어쩔 수 있나. 가만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주위를 둘러보니 기다리는 사람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었다. 알뜰폰용 휴대폰을 전시해둔 곳 앞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생이 제품을 구경하고 있었다.

차례가 되어 창구로 가서 앉았다. 상담원은 사람이 많아 피곤할 텐데도 이것저것 묻는 말에 친절히 대답했다. 혹시 몰라서 가져간 중고 2G 휴대폰(LG전자 롤리팝2) 단말기를 보여줬다. 이 휴대폰으로 번호를 얻은 후 태블릿PC에 카카오톡을 설치할 요량이었다. 상담원은 이를 살펴보더니 "SK텔레콤용 휴대폰이라 가입할 수 있겠네요"라고 했다. 상담원은 기자가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제품명, 일련번호 등을 전산에 입력했다. 혹시 몰라 챙겨갔는데 들고 가길 정말 다행이었다.

에넥스텔레콤은 KT의 망을 임대한 알뜰폰 사업자다. 따라서 KT와 SK텔레콤 단말기를 모두 쓸 수 있다. 참고로 SK텔레콤과 KT는 (약간의 제약은 있지만) 서로 단말기를 함께 쓸 수 있다(LG유플러스는 LG유플러스 전용 단말기만 개통 가능). SK텔레콤 휴대폰으로 KT에서, KT 휴대폰으로 SK텔레콤에서 개통할 수 있는 것. 다만, 몇몇 스마트폰은 LTE가 아니라 3G로만 쓸 수 있고, 휴대폰 기종에 따라 MMS를 받지 못하는 것도 있으니 개통 전에 반드시 상담원에게 이를 확인하자.

신청서를 작성하며 "요금제가 너무 싸서 남는 게 있나요"라고 상담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근데 사람이 통화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오래 하게 되고 그렇잖아요"라는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해당 요금제의 요금표를 자세히 살펴보니 데이터 요율이 비상식적으로 비쌌다. 무려 1MB당 512원이었다(홈1000, 홈 알뜰 9000 요금제의 경우 데이터 미가입 시). 이통 3사 일반 요금제의 데이터 요율은 51.2원이다. 10배나 높은 수치다. 만약 LTE34 요금제의 기본 제공량인 550MB만큼 데이터를 쓴다면? 추가 요금이 28만여 원이 붙는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괜히 기본료가 싼 게 아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데이터를 썼다가는 '요금 폭탄'을 맞기 십상이었다. 거기다 자세히 읽어보니 에넥스텔레콤 요금제에만 작은 글씨로 '6개월 이내 해지 시 가입비/유심비 청구'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알뜰폰 업체에는 이런 제약이 없었다.

접수는 잘 끝났지만 마음속은 복잡했다. 'LG유플러스용 중고 휴대폰도 있는데 다른 알뜰폰 사업자 요금제도 잘 알아보고 할 걸 그랬나', '해피콜 오면 데이터 차단부터 해 달라고 해야겠다', '6개월 이내에 해지할 일은 없겠지' 등 생각이 많아 영 기분이 찝찝했다.

개통 신청 중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차분히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혹시 우체국 알뜰폰을 개통할 생각이라면 홈페이지(http://www.epost.go.kr/comm/alddl/alddl02k001.jsp)에서 요금제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가길 권한다.

상담원은 며칠 내에 개통을 위한 '해피콜'이 갈 것이라 했다. 우체국은 어디까지나 '접수 대행'이다. 우체국에서 바로 휴대폰을 개통할 수는 없고, 업체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한다. 보통 해피콜 후에 스마트폰이나 유심을 택배로 받는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혹시 해피콜을 놓칠까 봐 스마트폰을 '벨소리+진동'으로 설정해 두었다.

12/12 (목) - 신청 3일째

지금껏 연락이 없었다. 접수 당일 연락이 올까봐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봤건만... 택배도 이틀이면 도착하는 세상에 전화가 3일째 없다니. 우체국에서 가져온 팸플릿에서 에넥스텔레콤의 고객센터 번호(1588-1635)를 발견했다. 전화를 걸었으나 '뚜뚜뚜뚜'하는 연결 불가 신호음만 들렸다. 이상하다 싶어 한참 후에 전화해보니 '대기 인원이 많아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해피콜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2/16 (월) - 신청 7일째, 다른 알뜰폰 업체로 전향

개통을 신청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거의 매일 하루에 한 번 이상 에넥스텔레콤 고객센터에 전화했으나 상담원과 통화가 불가능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알뜰폰 업체를 찾아봤다. 기준은 '저렴한 기본료', '유심 요금제', '추가 요율이 저렴할 것', '가입비와 유심비 없음'이었다. 에버그린모바일(KT 망 사용)의 '스마트제로 05' 요금제가 물망에 올랐다. 이 요금제는 기본료 5,000원(부가세 포함 5,500원)에 무료 데이터 100MB를 포함한다. 음성은 1초당 1.8원, 문자는 1건당 20원, 데이터는 1MB당 51원이다. 음성과 문자 요율은 우체국 1,000원짜리 요금제와 같으나 데이터 요율이 1/10이다(이통 3사 일반 요금제 수준). 후불형 요금제이고 가입비(1만 4,400원)도 면제다. 다만, 유심비(기본 5,500원, 금융 유심은 8,800원)는 청구되는데 KT용 남는 유심이 있다면 이것도 없다.

기다리며 마음이 바뀌어 롤리팝2대신 중고 블랙베리를 개통하기로 했다. 블랙베리는 '카카오톡 되는 피처폰'이라 불린다. 전화, 문자, 메신저만 블랙베리로 하고, 이것으로 하기 힘든 작업은 기존 스마트폰으로 하면 되니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직접 찾아가볼까 싶어 알아보니 에버그린모바일 대리점은 전국에 4개, 그중 서울 지점은 영등포 쪽에 1개 있었다. 대리점을 가느니 인터넷으로 하는 편이 더 편리하겠다 싶었다. 에버그린모바일 홈페이지(https://www.egmobile.co.kr/)에서 스마트제로 메뉴를 찾아가 통화와 데이터 제공량을 선택한 후 '신청서 바로가기' 버튼을 눌렀다. 참고로 요금제표 아래에 유의사항과 개통절차에 대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이를 자세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12/17 (화) – 신청 8일째, 새로 신청서 접수

여전히 우체국 알뜰폰에서 연락이 없었다. 전날 알아본 대로 에버그린모바일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작성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맞는 짝인지 확인하는 '실명 인증'과 이를 휴대폰,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등으로 본인인지 확인하는 '본인 인증'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째서 실명 인증과 본인 인증을 함께 하느냐고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그는 "휴대폰을 명의도용 등 범죄에 악용하는 사용자가 있어서 이를 막으려고 두 번의 인증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참고로 에넥스텔레콤은 온라인으로 신청 시 1회선만 개통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혹시 모를 악용 사고를 대비한 것이다.

인터넷 신청서
인터넷 신청서

개인정보, 휴대폰 정보 등을 입력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다만, 인터넷을 통한 신청서 작성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휴대폰, PC 등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은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겠다. 중간에 휴대폰 기종에 따라 모델명, 일련번호, 맥(MAC) 주소 등을 적는 항목이나 유심 번호를 적는 것이 그렇다.

모델명과 일련번호는 보통 휴대폰 배터리를 빼면 안쪽에 적혀있고, 와이파이 맥 주소 등은 휴대폰 메뉴의 설정 쪽에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기존 유심을 재활용하려면 유심 번호를 적어야 하는데 이는 유심에 쓰여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신청서를 쓸 때는 옆에서 누가 꼼꼼히 이를 확인해줘야 할 것 같다. 왜 많은 사람이 대리점을 찾아가 휴대폰을 개통하겠는가. 판매원이나 상담원이 이 같은 복잡한 과정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인터넷으로 무사히 알뜰폰 신청서를 작성했다. 기자는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라 신분증 등을 팩스로 보낼 필요도 없었다. 이제 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12/19 (목) – 새로 신청한 지 3일째

에버그린모바일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하지만 아직도 '신청서 확인 중'이었다. 참다못해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원은 영업일 기준 2~3일간 신청서를 확인하고 그 후 해피콜을 걸기 때문에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중에 연락이 갈 것이라 했다. 또한, '요즘 신청자가 많아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체국에서 알뜰폰을 신청한 지 10일이 흘렀다. 그간 급한 성질에 '그냥 이통 3사의 조금 비싼 표준 요금제로 개통할까? 이 앞 대리점에 가면 바로 될 텐데'라는 생각을 어찌나 했던지…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오기가 생겼다. 대체 언제쯤 도착하나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12/22 (일) – 새로 신청 6일째, 해피콜 오다

일요일 오후, 드디어 기다리던 해피콜이 왔다. 모르는 번호라 광고성 전화로 생각하고 안 받았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거기다 일요일에 해피콜이라니… 정말 가입자가 몰려 직원들이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상담원이 현재 기자가 KT에 몇만 원 연체 금액이 있어서 개통이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이상하다 싶어 KT 고객센터에 전화해보니 번호 이동하느라 생긴 휴대폰 할부금이 남아 있었다. 깜빡 잊고 자동이체를 신청하지 않았나 보다. 연체금을 치른 후 다시 에버그린모바일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원이 신청서에 입력한 정보 몇 가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유심은 23일에 발송하므로 24일쯤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라 택배 물량이 많다면 26일에 도착할 가능성도 있단다.

12/23 (월) – 새로 신청 7일째, 확인 전화가 오다

오전쯤 다시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SK텔레콤용으로 나온 블랙베리가 맞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하고 혹시나 싶어 유심을 발송했는지 물었다. 오후 5시쯤 일괄 발송한다고 했다. '오늘 받기는 글렀구나!'

12/24(화) – 신청 8일째, 처음 신청부터 총 15일째. 유심 도착

오전부터 오매불망 택배만 기다렸다.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니 신청서 상태가 '상품 발송 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쉽게도 운송장 번호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행히 상담할 때 어느 택배 회사인지 물어봤기에 그 업체 사이트에 회원 가입해 오기로 한 택배를 조회했다.

오후 4시 20분쯤 택배가 도착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유심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바로 휴대폰에 끼워 쓸 수는 없었다. 개통센터로 전화해 유심 등록 절차를 거쳐야 했다. 참고로 에버그린모바일 개통센터 운영 시간은 평일 오후 5시까지다. 개통할 수 있는 시간이 40여 분 남은 거다. 거기다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혹시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전화를 걸었다. 개통센터 두 곳 모두 통화 중이었다. '오늘 개통 못하면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휴대폰을 쓰지 못한다'는 생각에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 14번 내리 전화를 걸었을 때 드디어 상담원과 연결됐다.

개통 절차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휴대폰 번호조차 나와있지 않았다. 상담원은 개통이 끝나면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서 자신의 번호를 알아내면 된다고 했다. 오후 6시가 되기 전까지 유심을 휴대폰에 낀 채 전원을 켜면 안 된다고도 경고했다.

통화를 끝낸 후 오후 5시 4분에 엠세이퍼(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기자의 명의로 휴대폰이 개통됐다는 문자가 왔다. 이제 개통이 끝났나 보다. 그런데 상담원은 6시까지 절대 켜지 말라고 했다. '뒤를 절대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옛이야기 속 주인공의 심정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휴대폰을 켰다. 설명서에 나온 대로 2~3차례 껐다가 켜니 'olleh' 표시가 뜨며 제대로 신호를 잡았다. 블랙베리를 KT 통신망에서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설정을 끝낸 후 무리 없이 전화, 문자(SMS, MMS), 인터넷 등을 할 수 있었다.

12/26 (목) – 사용 3일째, 우체국 알뜰폰은 이미 취소?

전화를 사용하다보니 궁금한 점들이 생겼다. '신청한 요금제 대로 가입이 잘 된 걸까?', '데이터가 얼마나 남았는지, 추가로 전화를 몇 분했는지 등은 어디서 확인하지?', '혹시 기본 제공량이 다 끝나면 데이터를 차단하는 서비스도 될까?' 등. 이를 묻기 위해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통화량이 많아서인지 상담원과 연결이 어려웠다. 연락처를 남기면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안내 음성에 따라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끊었다.

약 1시간 30분 이후 전화가 왔다. 답변 내용은 이렇다. 신청한 내용대로 가입되었으며, 데이터 제공량 중 남은 것은 공식 홈페이지에 가입해 정회원임을 인증하면 확인할 수 있다. 또는 지금처럼 고객센터에 전화해 얼마만큼 남았는지 물어보면 된다. 아직 따로 고객센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은 없다. 데이터가 60%, 80%, 100% 소진되었을 때마다 문자로 알려준다. 추가 사용량이 1만 원 단위를 넘었을 때도 문자를 보낸다. 아쉽게도 아직 기본 제공량을 다 썼을 때 자동으로 데이터를 차단해주는 서비스는 없다.

상담원과 통화 후 홈페이지에서 정회원 인증을 했다. 문자로 온 인증번호를 입력하니 간단히 절차가 끝났다. 이통 3사만큼은 아니지만 가입 정보, 요금 조회, 실시간 요금 조회, 부가 서비스 신청 등 필요한 것들은 홈페이지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잊고 있던 우체국 알뜰폰 신청 내역이 생각났다. 에넥스텔레콤의 홈1000 요금제 말이다. 알고 보니 에넥스텔레콤은 지난 23일부터 요금제 신청 접수를 중단한 상태였다. 매일 1,000여 명씩 가입 인원이 몰려 지금껏 신청된 것들을 개통하기에도 벅차다는 것. 기자의 신청 내역은 어떻게 처리된걸까 궁금해 고객센터에 연락했다.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앞서 말했던 KT의 연체금 때문에 개통이 취소됐다는 거다. 이 사실을 전달했어야 하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다보니 누락된 것 같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렇게 연락을 못 받은 사람이 꽤 됐다. 그 사실도 모르고 몇 주를 기다렸다니… 기존 휴대폰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분실 등으로 급하게 휴대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정말 난감했겠다.

이렇게 약 2주의 시간을 들여 알뜰폰에 가입해봤다. 알뜰폰은 이통 3사와 통화 품질 등이 같지만 요금은 더 저렴한만큼 분명 경쟁력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대에 차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인력이 부족해 사람이 몰리면 고객센터 연결이 어려웠고, 상담원들의 고객 응대도 이통 3사 수준만큼은 안 됐다. 경우에 따라서 상담원의 말투가 피곤하고 기분 나쁘게 들릴 때도 있던 것. 아무래도 아직 서비스 초기 단계라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듯싶다. 또한, 고객센터 앱이 없는 업체가 많고, 부가 서비스도 많이 부족하다. 기자가 이에 대해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라. "1,000원, 5,000원짜리 요금제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라고. 맞다. 결국 결정은 소비자의 몫이다. 전화/문자/데이터 등 메인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것인지, 돈을 더 주고 고객 서비스/멤버십 서비스/부가 서비스 등을 합한 코스 요리를 먹을 것인지. 다만 가입 전에 관련 사항들을 자세히 알아두는 것이 후회없는 선택을 하는 지름길이다.

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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