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웹툰 정착의 도화선이 되겠다" 레진코믹스

강일용 zero@itdonga.com

두 명의 기린아(麒麟兒)가 웹툰 시장에 '레진코믹스'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누적 방문자 5,000만 명을 기록한 인기 블로거 '레진'과 KTH 소속 기술 전도사(에반젤리스트)이자 한성대학교 겸임교수였던 개발자 '권정혁(필명: 구루)'. 두 명이 의기투합해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중심의 웹툰 시장을 바꾸려 한다.

이들이 지적한 현재 웹툰 시장의 문제점은 뭘까. 그리고 이들은 어떤 형태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IT동아가 두 명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웹툰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

권정혁
권정혁

일반적으로 인터뷰는 먼저 당사자 소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과감히 생략한다. 이들이 누구인지 보다 '무엇을 하려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레진코믹스가 기존 웹툰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레진: "그 동안 웹툰은 미끼상품에 불과했다. 포털이라는 거대한 서비스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웹툰 덕분에 막대한 트래픽과 광고수입이 발생했지만, 그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작가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웹툰이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레진코믹스는 다르다. 레진코믹스에선 웹툰이라는 콘텐츠 그 자체가 가치를 갖는다. 웹툰을 구독하기 위해 사람들이 지불한 금액을 작가들에게 전달한다.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을 부수는 시발점이 되려 한다는 의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레진코믹스란 유료로 웹툰을 구독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 넘게 포털에서 무료로 웹툰을 감상하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 듯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레진: "솔직히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돈을 내고 웹툰을 구독한다는 시스템이 과연 국내에 정착할 수 있을까… 음악이나 소설을 유료로 구독하는 사람은 상당하지만, 과연 웹툰 시장에 그런 독자들이 남아있을까"

"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웹툰이 무료인지 유료인지 여부가 아니다. 재미있어야 한다. 너무 재미있어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줄곧 재미를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존 웹툰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볼만큼의 재미가 없었다는 뜻인 걸까.

레진: "그렇지 않다. 기존 웹툰에도 충분히 돈을 보고 낼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 많다. 다만 레진코믹스가 지향하는 것과 조금 방향이 다를 뿐이다. 기존 웹툰 상당수가 한 편에서 기승전결이 완료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간에 한두 편 보지 않아도 웹툰을 감상하는데 지장이 없다"

"반면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는 작품은 스토리텔링(이야기 전달)을 중요시한다. 한화에서 모든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다음화로 계속 이어진다. 마치 잡지에 연재하는 만화처럼. 결국 다음화가 궁금해진 독자들이 자연스레 돈을 지불하고 웹툰을 감상하게 된다. 우리가 꿈꾸는 레진코믹스의 모습이다"

구루: "오해가 있을까봐 잠깐 여기서 얘기를 끊겠다. 레진코믹스는 기본적으로 유료 구독을 지향하지만, 기존 웹툰 감상 방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독자를 위한 배려를 준비했다. 웹툰은 기본적으로 무료로 구독할수 있지만, 유료 결제를 하면 4~8주 이후의 내용까지 먼저 볼 수 있다.

"일종의 부분 유료화다. 웹툰이 너무 재미있어서 견딜 수 없는 독자는 돈을 내고 좀더 일찍 보고, (보고 싶어 죽겠지만) 조금 참을 수 있는 독자는 조금 늦게 무료로 보는 거다. 이 방식을 도입하자 우리가 웹툰을 유료로 구독하도록 강제한다는 독자 분들의 불만도 사그라졌다. 오히려 댓글로 조금만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는데 왜 못 기다리냐고 옹호해주는 독자 분들이 있어 기뻤다"

"다만 작품이 완결되면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된다. 가격도 연재 당시 빨리 보려 할 때 보다 조금 올라간다. 그러니까 일종의 '본방사수'다. 연재 기간 동안 작품을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관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독자를 위한 서비스다. 또, 작가와 협의를 통해 오직 유료 연재만 진행하기로 결정한 작품도 존재한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여기 해당한다"

레진: "한마디 더, 서비스에 광고를 추가할 계획은 현재 전혀 없다"

진지한 얘기를 다루려 한다

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든다. 레진코믹스만의 강점은 뭘까. 어떤 매력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걸까.

레진: "일본에선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를 수위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눈다.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소년 만화. 조금 진지하고 성적으로도 수위가 있는 청소년용 만화. 그리고 애들은 가라 성인용 만화"

"레진코믹스의 방침은 이 가운데 청소년용 만화다.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포탈의 특징 상 다룰 수 없었던 진지한 내용의 작품도 여럿 있다(야하다는 의미가 아님을 주의). 만화는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인도 누릴 수 있는 콘텐츠다"

"때문에 네온비, 가스파드 등 유명 작가 분의 작풍이 조금 변했다. 그 분들이 언제까지 일상물만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평소에 구상해온 새로운 작품을 연재할 수 있는 공간을 레진코믹스가 마련해 드린 거다. 독자 분들도 이러한 작가의 도전을 따스하고 기대 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구루: "물론 누구나 볼 수 있는 작품을 연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

레진: "그래도 많은 작가가 우리의 꿈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작품을 연재하기로 결정하신 분까지 합하면 50여 명 정도다. 네온비, 가스파드, 샤다라빠, 마사토끼 등 작가 분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온라인 만화 잡지를 창간한 셈

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

둘의 말을 듣다 보니 과거 종이로 출판하던 만화 잡지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레진: "잡지라… 그래 잡지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라는 콘텐츠의 유통방식을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옮긴거다. 미국의 마벨코믹스, DC코믹스가 자사의 콘텐츠를 종이 대신 온라인으로 배포하는 것처럼"

"때문에 레진코믹스는 기존 만화 잡지의 편집부 역할도 겸한다. 작가들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스토리 진행 및 콘티를 같이 구상한다. 연재작 중에는 내가 스토리 작가를 맡은 작품도 있다. 겸사겸사 내가 편집장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

"잡지의 역할 중 하나가 신인 발굴/육성이다. 지금은 서비스 초기라 기존 유명 웹툰 작가 위주로 섭외했지만, 향후 서비스가 안정화되면 자체적으로 신인을 발굴/육성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작가 섭외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우리는 작가를 섭외할 때 유명세뿐만 아니라 멘탈이 강하신 분을 선호한다. '성실연재'를 최우선시 한다는 뜻이다. 독자와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물론 작가에게 연재를 독촉하지는 않는다. 작품마다 색이 다른데 어떻게 일괄적으로 특정 기간 내로 작품을 완성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작가와 협의해 주간, 격주간, 월간 등 연재 기일을 정한다. 매달 10일, 20일, 30일 연재처럼 조금 독특한 연재 형태도 가능하다. 획일적으로 일주일에 한편 연재할 것을 강요하는 포털의 방식과 다르다"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당 작품을 한데 모은 단행본 출간이다. 해당 작품을 영구히 소장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이 부분에 레진코믹스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레진: "레진코믹스는 온라인 기반이다. 온라인 기반인 만큼 아직 오프라인에 단행본을 낼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마사토끼님의 삼국지 가후전처럼 출판사를 소개해드리는 형태로 지원해드리려 한다"

중요한 문제부터 하나하나 처리해나갈 것

레진코믹스를 인터뷰하러 간다고 하자 지인이 '왜 댓글을 달 수 없는지' 꼭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구루: "(으쓱하며) 드디어 내 차례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요한 부분부터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을 남기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iOS, 웹 용 레진코믹스를 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급한 일을 처리한 후 댓글 남기기, 안드로이드 앱 호환성 향상 등에 착수하려 한다. 다른 이유가 있어 댓글을 막아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앱)만 출시했지만, 곧 iOS용 앱과 홈페이지를 출시해 스마트폰, 태블릿PC, PC 어디서나 만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iOS용 앱은 거의 완성단계니 조금만 기다리면 만나보실 수 있다"

"현재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CMS(콘텐츠관리솔루션)다. 지금은 작가 분들에게 이메일로 원고를 받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로 CMS를 구축해서 작가 분들이 직접 홈페이지와 앱에 웹툰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

"CMS는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조회수를 확인할 수도 있고, 어디서 접속한 독자가 많은지도 알 수 있다. 작가 분들이 작품의 가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수익배분은 최대한 작가를 배려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익에 관한 얘기를 배제할 수 없다. 수익이 없으면 그 어떤 참신한 서비스도 버틸 수 없기에. 여기에 관한 레진코믹스의 입장은 어떨까. 먼저 최소 구매 단위를 3,900원으로 정한 까닭과 정액제가 없는 이유를 물어봤다.

레진: "딱히 의미가 있어서 정한 가격은 아니다. 2,900원은 조금 적어 보이고 4,900원은 많아 보여 3,900원으로 정했다. 한번에 20코인을 제공하니 1코인에 200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다. 한번에 많은 양을 충전하면 코인을 보다 저렴하게 제공한다. 1코인 당 110~ 120원 내외로 저렴해진다"

"일괄적으로 한편당 100원을 받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100원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들어간 노력에 비해 너무 낮은 대가다. 웹툰 작가 혼자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 작가 분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사무실을 유지하려면 그 만큼 적당한 수입이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액제는 만화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 제작자를 말려 죽이는 시스템이다. 정액제를 도입하면 작가 분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게 된다. 만화라는 콘텐츠 전체를 평가절하하는 거다"

구루: "그렇다고 독자들의 바람인 정액제를 아예 외면할 수는 없다. 독자의 바람과 작가 분들의 노력을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수익배분에 관해 얘기할 차례다. 레진코믹스는 작가와 어떻게 수익을 배분할까.

레진: "수익배분은 민감한 사항이기에 여기서 딱 잘라 몇 대 몇으로 나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조가 '작가 분들이 돈을 버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작가 분들에게 최대한 수익을 배분해 드리려 한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약속 드린다"

출시 48시간 만에 만화 부문 1위… 이제 시작이다

레진코믹스 랭킹
레진코믹스 랭킹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향후 사업전망을 물어봤다. 과연 레진코믹스는 10년간 초토화된 국내 유료 만화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레진: "고사직전이었던 만화 시장은 포털 웹툰 연재 덕분에 그나마 그 명맥을 지난 10년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점은 그분들께 감사 드린다. 일각에선 우리가 마치 포털 웹툰 연재를 부정하고 그들과 싸울 것처럼 얘기한다. 아니다. 그분들과 우리는 동업자다. 같이 시장을 키워나갈 거다. 단지 그 분들이 소년만화와 일상물에 주력할 때 우리는 청소년용 만화와 극화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쪽을 구독하면 된다"

"포털 역시 웹툰의 가치를 인정하고 유료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연재가 종료된 작품이나 연재 중인 작품을 남들보다 일찍 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다만 홍보가 부족한 점이 아쉽다. 거의 대다수의 독자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여기서 느낀 안타까움이 레진코믹스를 창간한 이유 중 하나다"

구루: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고 시장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왜 콘텐츠를 돈 주고 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게임이나 음악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돈 주고 구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발생한 콘텐츠 매출 같은 경우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치고 전세계 2위를 차지하지 않았나.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는 출퇴근시간이 길어 그 무료함을 달래려고 게임 등을 찾는다고 한다. 이제 게임이 지겨워진 독자들이 만화로 눈을 돌릴 때가 됐다"

"사업 현황도 매우 긍정적이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경우 초창기에는 거의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진코믹스를 개시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했다. 출시 이틀 만에 구글 플레이 스토어 만화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레진코믹스의 미래는 밝다. 새로 웹툰을 연재하려는 작가 분들이 많이 연락주셨으면 좋겠다"

"현재 직원은 7명이다. 개발에 나를 포함해 4명, 콘텐츠 담당에 레진을 포함해 3명이다. 스타트업치고 상당히 많은 숫자다. 다들 그만큼 레진코믹스의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

레진: "다들 레진코믹스가 나 혼자 하는 서비스로 알고 있더라. 여기서 확실히 말하는데, 아니다(웃음). 다들 나 못지 않게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집에 들어가본 게 언제였더라…"

구루: "여기가 집이지" (인터뷰 장소는 회사 사무실이다)

업계에선 콘텐츠 사업자가 콘텐츠만으로 먹고 살려면 해당 콘텐츠에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1만 명이 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소위 '매직넘버'다. 아쉽게도 만화 시장은 이러한 매직넘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허영만, 김성모 등 기존 작가들이 이러한 벽을 부수고자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레진코믹스 역시 이러한 벽을 부수고, 국내 만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권정혁
권정혁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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