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논객'과 '키보드 워리어'의 '간결'한 차이

김영우 pengo@itdonga.com

지난 10월 28일, 진보적 성향의 논객으로 알려진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 네티즌 '간결'과 한 판 토론을 벌였다. 토론의 주제는 NLL(북방한계선) 논란이었다. 이 토론은 큰 관심을 모았고 곰TV를 통해 생중계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토론 결과는 진중권 교수의 압승이었다.

'인터넷 논객'과 '키보드 워리어'의 '간결'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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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논객'과 '키보드 워리어'의 '간결'한 차이 (1)

네티즌 간결은 평소 자신의 블로그 및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련 자료를 꾸준히 정리해왔고, 다른 네티즌들과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며 자신 있게 진중권 교수에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실제 토론에서는 시종일관 진중권 교수의 페이스에 밀리며 제대로 의견을 펼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여 이런 토론에서 진보 논객들이 항상 보수 논객들에게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정 반대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진보적 성향의 띄던 DC인사이드의 정치사회갤러리 이용 네티즌들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전여옥 의원과 오프라인에서 각종 정치현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평소 꾸준한 게시판 활동을 하며 나름 '본좌(고수)'로 인정받던 이 네티즌들은 승리를 자신했지만, 정작 실제 토론에 나서자 전여옥 의원에게 이렇다 할 반격을 가하지 못하고 맥없이 '침몰'하고 말았다.

프로와 아마츄어, 현실과 가상 현실 간의 차이

이들 사례의 공통점이라면 서로 성향이 다른 '프로'와 '아마츄어'가 정치 토론을 벌였다는 점, 그리고 하나같이 아마츄어가 프로에게 맥없이 밀려 패배했다는 점이다. 굳이 정치 토론이 아니더라도 스포츠나 노래, 연기 등에서 애당초 프로와 아마츄어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터넷상의 글만 봐서는 당장에라도 이런 프로 논객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마츄어 논객들이 넘쳐난다. 그 이유는 뭘까?

'인터넷 논객'과 '키보드 워리어'의 '간결'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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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용어 중 '키보드 워리어'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공격적인 언행으로 거침없이 의견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키보드 워리어들은 인터넷상에서는 막강한 '화력'을 과시하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을 코너로 몰아넣곤 한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현실 토론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사 앞쪽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보듯, 그 결과는 반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네티즌 간결이나 당시 DC인사이드 '본좌'들을 모두 키보드 워리어라고 지칭할 순 없겠지만, 이들이 보여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의 화력 차이가 상당히 컸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논리와 사실보다는 '머릿수'가 중요한 인터넷 토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토론 사이의 환경 차이 때문이다. 일단, 토론자의 참여조건이 다르고, 승패의 조건도 다르다. 실제 토론과 달리, 인터넷상의 토론은 논객과 관전자의 구분이 모호하다. 인터넷 상의 토론은 누구나 처음에는 관전자의 입장이었더라도 언제라도 논객으로 난입해 토론의 주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인터넷상의 토론은 논리가 인정받거나 상대방을 설득한다 하여 승패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는 논객들이 얼마나 더 많이 난입해 동조하는 글을 올리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논리에 허점이 있는지, 혹은 제시한 근거가 사실 인지와는 관계없이 최대한 '자기편'을 많이 모으면 승리하기 때문이다.

토론 참가자의 자격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한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단순히 '머릿수'만 많으면 승리하는 이런 인터넷상의 토론에서 도출된 결과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는 의문을 가질 만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과연 '소통'에 유리한 공간인가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언뜻 보기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 하여 모든 커뮤니티에 다양한 성향의 이용자들이 골고루 모이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가지 이해관계나 취향만 같아도 간단히 친해질 수 있는 인터넷상의 특성상, 오히려 특정 주제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만들어진 지 오래된 커뮤니티일수록 두드러진다.

이렇게 '끼리끼리' 모이는 상황이라면 해당 커뮤니티에서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은 소외되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지며 제대로 된 토론도 힘들어진다. 인터넷은 분명 소통에 유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정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사회자가 없고 순발력도 중요하지 않은 인터넷 토론의 한계

이와 함께, 인터넷 토론의 가장 큰 한계 중 또 하나가 바로 '사회자'의 부재다. 토론 중 사회자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고 중간마다 내용을 정리해 잘못된 방향으로 토론이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토론에서는 이런 사회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트의 관리자가 있긴 하지만, 게시판 규칙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이들이 딱히 제재를 가하는 일은 없다.

때문에 토론 중에 부적절한 발언을 하거나 진의가 검증되지 않은 의견을 내놓아도 이를 걸러줄 시스템이 없다. 심지어 잘못된 방향으로 토론이 진행되더라도 이에 동조하는 참여자가 많다면 오히려 이런 흐름이 가속화되기도 하며, 개인 블로그에서 SNS에서 토론이 진행된다면 더중에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댓글을 지우거나 접속을 차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실제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순발력'이 인터넷 상의 토론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논객의 말재주가 어눌하거나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글자만으로 진행되는 인터넷 토론에서는 이 점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생소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몇 분의 시간을 내어 별도의 인터넷 창을 열고 정보 검색을 해보면 얼마든지 '아는척'을 하며 그 의견을 반박할 수 있다. 실제 토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 논객? 키보드 워리어?

정리해보면, 인터넷 상의 토론은 사회자도 없고, 순발력도 필요로하지 않으며, 단순히 자기편을 많이 모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만 익숙해진 인터넷 논객들이 실제 토론에서도 그 기세를 유지하기는 어려우며, 상대방이 지식과 경험이 많은 전문가라면 승산은 더욱 낮다.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되는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만큼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육체는 현실에 있는데 영혼만을 사이버 공간속에 옮겨 두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상에서 토론을 할 기회가 있다면 과연 내가 현실에서도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을지, 그리고 이런 논리와 지식으로 진정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인터넷 논객'이 '키보드 워리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아주 '간결'한 노력이라도 필요하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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