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인프라를 스타트업 혁신 플랫폼으로 탈바꿈…‘한국수자원공사’
[IT동아 김동진 기자] 기후위기가 산업 전반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특히 물산업은 기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지만, 오랜 기간 공공 인프라 중심의 안정적 구조에 머무르면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이하 K-water)는 공공 인프라를 개방하고,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중심에 있는 조직이 K-water 기후테크혁신처 창업혁신부다. 단순한 지원 부서를 넘어 스타트업 발굴부터 실증, 투자, 해외 진출까지 전 과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은진 창업혁신부장을 만나 공공이 산업 혁신의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들었다.

급격한 기후위기 대응 위해 혁신 동력 활용...'K-water'
창업혁신부의 출발점은 문제의식이었다.
이은진 부장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대응하기 위해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위기의식이 창업혁신부의 출발이었다”며 “기존과는 다른 파괴적 혁신 동력을 지닌 스타트업의 에너지를 공공 인프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에 K-water는 2004년부터 중소기업 지원을 이어왔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접근 방식을 바꿨다. 단순 협력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중심 생태계 구축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물산업플랫폼센터를 출발점으로 조직을 확장했고, 현재는 기후테크혁신처 체계로 개편했다.
이 조직은 창업혁신부를 중심으로 ▲기술협력부(AI 융합사업팀) ▲K-테스트베드부 ▲판로지원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창업혁신부가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협업 구조를 설계하면, 기술협력부는 공동 기술 개발과 기술 이전을 맡고, 테스트베드부는 실제 환경에서 기술 검증을 지원한다. 이후 판로지원부가 시장 진출을 담당하는 구조다. 이를 토대로 ‘아이디어 → 기술개발 → 실증 → 시장’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성장 사다리를 형성했다.
이은진 부장은 “이같은 구조는 단순 개념이 아니라 실제 프로그램으로 작동한다. 스타트업에게 ▲기술 멘토링 및 컨설팅 ▲K-water 현업부서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솔루션 개발 및 PoC (과제당 최대 2200만 원 지원) ▲K-테스트베드 실증 지원 및 패스트트랙 적용 ▲출자 벤처펀드 운용사 우선 추천 및 IR 기회 제공 ▲국내외 전시회·구매상담회·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참여 등을 단계적으로 지원한다”며 “공공이 단순 지원자가 아니라 ‘성장 경로 설계자’로 기능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공기업 최초이자 유일하게 중기부 창업지원 사업인 초기창업패키지와 창업도약패키지를 2019년부터 7년간 수주해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성과도 올렸다”고 말했다.
공공 인프라를 ‘혁신 실험장’으로…스타트업 데스밸리 극복 비결
딥테크 스타트업의 가장 큰 문제는 초기 검증이다. 기술이 있어도 실증할 환경이 없고,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시장 진입이 막히는 ‘데스밸리’ 구간을 만난다.
어렵게 실증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시장 진입 단계에서 규제와 기존 제도라는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한다. 예컨대 공공 조달 시장에 진입하려면, 업력과 납품 실적, 재무 안정성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은진 부장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기술은 준비됐는데 ‘납품할 자격’이 없어서 공공 시장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규제 현실화가 필요한 지점”이라며 “납품 실적이 있어야만 공공 조달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면 스타트업은 사실상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실증과 사업화 사이의 단절이 여전히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증과 사업화 사이의 단절을 막으려면 기술력 중심의 평가방식으로 전환하고, 혁신 제품과 기술 트랙을 별도로 도입하는 등 규제와 평가제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water는 이 지점을 공공 인프라 개방으로 풀었다. 전국 댐과 정수장 등 물관리 현장과 연구시설을 테스트베드로 제공하고, 국가 K-테스트베드 체계와 연계해 78개 기관, 1498개 실증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 K-water 자체 물산업 테스트베드도 142개소 규모로 운영하며, 누적 수백 건의 실증 과제를 진행했다.
이은진 부장은 “스타트업이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의 신뢰를 얻고 판로를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라며 “K-water는 공공 인프라가 이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 지원과 실행체계를 설계하고 꾸준히 이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결과 여러 협력 기업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대표 사례로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이 있다. 수퍼빈은 K-water가 조성 중인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빌리지에서 기술을 실증하며 사업 기반을 확보했고, 이후 투자 유치와 판로 개척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며 “폐기물 관리 솔루션 기업 리코 역시 유사한 경로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K-water는 짧은 기간 내 수퍼빈, 리코, 오토노머스에이투지, 그리너지 등 4개의 예비 유니콘을 배출했다. 물산업을 넘어 기후테크 전반으로 외연을 확장한 결과다.
1200억 투자…공공이 ‘마중물’ 역할을 맡다
스타트업이 생존하려면 기술 실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스타트업은 성장 단계에서 멈춘다.
K-water도 이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책을 마련했다. 벤처펀드 출자에 나선 것이다. 2019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약 1200억 원을 투자했고, 총 7000억 원 규모의 펀드 조성에 참여했다. 이 중 약 3800억 원이 기후테크 분야 기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은진 부장은 “초기에는 공기업이 벤처펀드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벤처'라는 단어만 나와도 리스크가 큰 게 아닌가 하는 보수적인 우려가 컸다. 벤처펀드에 대한 생소함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가장 큰 숙제였다”며 “그 결과 해당 펀드를 활용해 지난해까지 약 1700억 원이 실제 기후테크 기업 투자로 이어졌다. 또한 기후테크 투자에 관심 있는 36개 투자사가 모인 ‘물산업투자기관협의회’를 구성해 현재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공이 단순한 지원을 넘어 시장 자금을 기후테크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시장 연결자' 역할을 하며 선순환 체계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증에서 끝내지 않는다…판로·해외 진출까지 연결
K-water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스타트업의 ‘실증 이후’까지 고민했다.
K-water는 스타트업의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공공 조달 연계 ▲구매상담회 및 수요기관 매칭 ▲국내외 전시회 참여 ▲해외 테스트베드 및 무역사절단 지원 등으로 초기 레퍼런스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히 테스트베드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스타트업이 ‘첫 납품 실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간 단계까지 개입하는 구조다.
자체 플랫폼을 통해 솔루션 유통과 수요 연계를 지원하고, 내부 사업에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즉, 공공이 ‘첫 고객’이자 ‘시장 연결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다.

이은진 부장은 이같은 성과를 얻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전했다.
그는 “최초 '창업 생태계'라는 낯선 영역에 대한 도전 자체가 큰 장벽이었다. 물관리 분야에는 전문가지만, 스타트업 관련 경험은 전무한 조직에서 지원 체계를 처음부터 설계해야 했다. 창업 분야에 대한 경험도 부족한 상태에서 까다로운 정부 지원 사업을 수주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며 “혁신이 생명인 스타트업과 협업하려면 공기업 특유의 호흡과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조직 내부에 혁신 DNA를 이식하는 과정 자체가 도전이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스타트업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서울과 대전을 수없이 오가며 직접 발로 뛰었다. 구성원들이 이처럼 열정적으로 헌신한 덕분에 조직이 자리잡고 든든한 지원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음 단계는 ‘기획 창업’…공공이 직접 만든다
현재 창업혁신부가 주목하는 다음 단계는 ‘기획 창업’이다. 기존처럼 기업을 선발해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디어 발굴부터 법인 설립, 초기 운영까지 직접 기업을 설계하는 모델이다. 초기부터 수요와 현장 적용환경을 정밀하게 설계하면, 딥테크 기업들이 실증 이후 흔히 마주하는 진입 장벽과 판로 단절의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K-water는 ‘협업형 컴퍼니빌더(스타트업 스튜디오)’ 설립을 추진 중이다. 아이디어 발굴부터 법인 설립, 초기 운영까지 직접 개입하는 구조다.
이은진 부장은 “기후테크는 민간이 단독으로 시작하기 어려운 분야다. 기술 사업화와 실증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공공이 초기 리스크를 분담해야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며 “이에 K-water는 민간 액셀러레이터와 협력해 투자와 기술 이전, 스케일업까지 연결하는 ‘딥테크 특화 엔진’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water는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은진 부장은 “현장에서 느낀 가장 큰 한계는 규제와 시장 구조다. 기술이 있어도 실증과 사업화가 막히는 경우가 많다. 공공이 앵커가 돼야 시장이 열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며 “미국과 유럽 사례를 보면 공공이 초기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공공이 앵커 역할을 해야 기술이 시장으로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K-water는 앵커 역할에 더욱 집중해 올해 예비 유니콘 2개를 추가로 발굴하고, 해외 테스트베드 확대와 CES 동반 참가 등으로 글로벌 진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동시에 스타트업과 함께 개발한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실증사례를 확산함으로써,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입증해 나갈 것”이라며 “스타트업 발굴과 내부 혁신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우리 혁신기업들이 글로벌 기후테크 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겠다. 공공이 초기 시장과 해외 진출의 문을 여는 플랫폼으로 역할해 관련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