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코리아] 서진FNI : 모자에 담은 소리, 웨어러블이 아닌 스마트 패션입니다.

지난 1월 실시한 '2019 스케일업 코리아 기업 공모'에는 50여개의 기업이 응모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었지만 이들 모두를 지원하기에는 프로젝트 팀의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프로젝트 팀은 최종적으로 5개 기업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응모 기업 중 아깝게 함께 하지 못한 일부 기업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이 기업들을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소개할 스타트업은 골전도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모자 '제로아이(ZEROi)'와 접을 수 있는 모자 '포캡(POCAP)'을 개발한 서진FNI입니다.

서진FNI 오태경 대표
서진FNI 오태경 대표

< 서진FNI 오태경 대표 >

"모자로 음악을 듣는다?"

"패션에 IT를 접목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난 서진FNI 오태경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다. 걱정이 앞섰다. 지난 10년간 IT 기자로 일하며 참 많이 듣고 접한 말이 '패션'과 'IT'다. '패션 산업에 IT를 더하다', 'IT와 패션의 만남' 등. 검색어 패션과 IT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뉴스만 6만 2,000건이 넘는다. 블로그, 카페, 포스트 등의 콘텐츠는 뺀 숫자다. 그만큼 수많은 경쟁자가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고 있는 영역이다.

피 튀기는 패션 IT 시장에서 오 대표는 서진FNI를 창업한 뒤, 스타트업으로 만 3년째를 향해가는 중이다(2016년 8월 창업). 그동안 위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특히, 하드웨어 제조 스타트업 특성상, 초기 샘플(MVP) 개발을 위한 투자금과 인력 충원, 협력사 네트워크 구축 등에 많은 자금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만, 멈추지 않은 걸음으로 이제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골전도 스피커를 탑재한 '제로아이', 출처:
서진FNI
골전도 스피커를 탑재한 '제로아이', 출처: 서진FNI

< 골전도 스피커를 탑재한 '제로아이', 출처: 서진FNI >

오 대표가 주목한 것은 '골전도 스피커'다. 골전도 스피커는 진동을 이용해 소리를 전달하는 기능이다. 소리가 고막을 통하지 않고, 두개골에 전도되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즉, 헤드셋이나 이어폰 등으로 귀를 막는 방식이 아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귀를 열고 외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것이 큰 장점이다. 또한, 헤드셋, 이어폰을 장시간 사용할 경우, 소음성 난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1시간에 10분 이상은 귀에 휴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골전도 스피커의 소리 전달 방식, 제공:
서진FNI
골전도 스피커의 소리 전달 방식, 제공: 서진FNI

< 골전도 스피커의 소리 전달 방식, 제공: 서진FNI >

그렇게 개발한 것이 제로아이다. 창업과 함께 골전도 스피커를 장착한 모자 제로아이의 1차 버전을 1년여만에 완성했고, 지난 2017년 글로벌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와 인디고고를 통해 공개했다. 포춘지, 씨넷 등 여러 글로벌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13만 달러, 약 1,300개를 선주문 받았고, 작년 4월부터 시작한 완제품 배송을 9월까지 마무리했다. 제로아이로 거둔 첫 판매이자, 첫 실적이었다.

미국 크라우드 펀딩에 이어 일본 진출도 이뤘다. 작년 NHK, 니혼TV 등에 소개됐고, 골전도 스피커 특성상 사용자 혼자 들을 수 있는 특징으로 주목받아 강제진출(?)로 이어졌다. 수출 규모는 6,000만 원 규모로 제로아이 판매개수는 600개. TV에서 소개된 뒤 온라인 정식 판매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오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제로아이, 출처:
서진FNI
미국과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제로아이, 출처: 서진FNI

< 미국과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제로아이, 출처: 서진FNI >

미국, 일본 진출을 바탕으로 국내 판매도 이어졌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를 통해 올해초 제로아이를 소개했고, 목표액 329%를 달성, 약 1,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6월말부터 순차 배송해 마무리했다).

제로아이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 결과, 출처: 와디즈
홈페이지
제로아이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 결과, 출처: 와디즈 홈페이지

< 제로아이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 결과, 출처: 와디즈 홈페이지 >

"스타트업 심사 매니저에서 창업가로"

오 대표의 첫 사회생활은 패션과 무관 했다.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삼성전자 앱 개발 지원 센터에서 근무하며 스타트업 심사 업무를 맡았다. 당시 모바일 혁명으로 불렸던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고, 약 150여 개 스타트업 심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돌연, 그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2013년은 중국 내 한류 열풍이 태동하던 시기로, 지인이 국내 의류 및 액세서리를 수입해 중국에서 판매하는 사업에 손을 보탰다. 온라인과 모바일을 벗어나 오프라인의 경험을 직접 체험해보겠다는 의지도 컸다. 중국 신장성과 상해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은 지속 성장했다. 국내 의류 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연예인 홍보 마케팅을 통해 백화점 내 매장 입점도 진행했다.

중국 상해에 위치한 텐센트 창업기지에서 발표하고 있는 오태경
대표
중국 상해에 위치한 텐센트 창업기지에서 발표하고 있는 오태경 대표

< 중국 상해에 위치한 텐센트 창업기지에서 발표하고 있는 오태경 대표 >

다만, 점차 치열해지는 중국 내 경쟁과 내 제품이 아닌 다른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에 창업을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고, 온라인과 IT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텐센트 창업기지에 입주하면서 패션 기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한국 액세서리 브랜드 'Ctrl+A'를 유통 전개한 경험을 살려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한 것이 현재의 '제로아이'로 이어진 셈이다. 서진FNI의 FNI는 'Fashion & IT'로 당시 오 대표의 의지를 담은 사명이다.

모자, 제로아이 아이템을 생각한 뒤에 그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패션과 IT를 접목하기에 한국 시장이 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자는 국내에 정통성이 있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전세계 모자 생산 1위 기업은 국내 기업이다. '영안모자'는 수십년간 세계 모자 생산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이 야구 모자의 원조인 미국의 프로야구리그(MLB), 대학야구리그의 60~70%를 공급하고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자와 관련된 생산 설비와 디자인 인력, 노하우 등의 국내 경쟁력은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다. 오 대표는 국내 모자 생산 인프라에 골전도 스피커라는 기술을 더하면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로아이
제로아이

< 제로아이 >

오 대표는 작년부터 국내외에서 부각되고 있는 골전도 스피커 관련 시장 성장도 긍정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사실 판매 제품이 없었기에 통계 자체가 없었다), 작년 국내 골전도 헤드셋, 이어폰 시장 규모는 1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골전도 헤드셋의 대표 브랜드 '애프터샥'은 홈쇼핑도 진행, 온/오프라인에서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오 대표는 "하이마트 같은 전자제품 판매점에 골전도 스피커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이 열리는 단계로, 2016년 이후 관련 시장은 꾸준하게 성장 중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제품 완성도를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형"

하드웨어 제조 업체로서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은 중 하나가 '공장'이다. 자사 제품을 직접 생산, 설계할 수 있는 공장의 유무는 제품 퀄리티를 높이는 필수 조건 중 하나다. 다만, 스타트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아직 안정적인 판매처 및 유통망 등을 갖추지 못한 스타트업에게 초기 비용이 많이 투자되는 공장 구축은 실패했을 경우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서진FNI는 서울 화곡동에 35평 규모의 공장을 '설립'하고 30년 경력 모자 장인과 모자 1위 브랜드 출신의 원단 전문가 등을 영입했다. 안정적인 생산을 위한 봉제 라인과 인력을 충원하면서 서진FNI는 100% Made in Korea를 구축했다. 많은 공장들이 중국, 동남아 등 해외로 이전한 뒤 저가로 다른 곳에 생산을 납품하는 방식을 택하는 상황에서, 서진FNI만의 퀄리티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서진FNI 공장 사진, 제공: 서진FNI
서진FNI 공장 사진, 제공: 서진FNI

< 서진FNI 공장 사진, 제공: 서진FNI >

특히,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봉제 과정과 전문 시설을 갖추는데 주력했다. 오 대표는 봉제를 담당하는 직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미싱을 시작한 전문 장인으로 경험과 기술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제품 A/S 기간 1년을 보장하는 이유다.

서진FNI 공장 사진, 제공: 서진FNI
서진FNI 공장 사진, 제공: 서진FNI

< 서진FNI 공장 사진, 제공: 서진FNI >

제로아이 1차 버전을 판매하면서 받은 피드백을 통해 2차 버전도 개발 중이다. 골전도 스피커를 모자 내부에 장착하기 때문에 외부로 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간다. 스피커와 사용자 머리 사이에 천이 덧대어져 있어 설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이를 보완한 제품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제로아이 제품 용도도 명확하게 찾았다. 처음에는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지만, 제로아이가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이에 등산용과 낚시, 런닝 등 용도별 제로아이 모자를 설계해 2차 버전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제로아이를 구매한 사용자들이 등산할 때 많이 사용한다는 조사를 통해 타겟을 세분화한 것으로, 런닝용 제로아이는 썬캡 형태로 디자인도 바꿔 개발 중이다.

용도별 모자 제작을 시작한 서진FNI
용도별 모자 제작을 시작한 서진FNI

< 용도별 모자 제작을 시작한 서진FNI >

공장 설비 및 신제품 개발, 이전 제품 출시를 통한 시장 조사 등을 통해 제품 가격도 지속적으로 낮춰갈 예정이다.

"주머니에 접어 넣을 수 있는 모자, '포캡' 개발"

제로아이에 이어 새로운 제품도 개발했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이른바 플렉서블 모자 '포캡(POCAP, POCKET+CAP)'이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반으로 접어도 원상태로 복원되는 모자 챙이 특징이다. 복원력과 형태 유지를 위해 수많은 실리콘으로 테스트, 관련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오 대표는 모자 챙의 두께, 내구성, 원료 배합 등 그간 수많은 실패를 통해 찾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서진FNI의 포캡
서진FNI의 포캡

서진FNI의 포캡, 접어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서진FNI의 포캡, 접어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 서진FNI의 포캡, 접어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

포캡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킥스타터를 통해 미국에 먼저 선보였고, 약 1,000개를 선주문 받아 3만 5,000달러를 모았다. 1차 선주문 물량은 지난 6월초 시작해 배송도 모두 마무리했다. 사용자 반응은 제로아이 때보다 훨씬 좋았다는 후문. 국내에서도 5월 23일부터 6월 2일까지 와디즈를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으며, 이번주부터 배송을 시작해 7월내 모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오 대표는 "포캡 시장 반응이 예상보다 좋습니다"라며, "제품 입점 문의, 특히 중국 유통 문의도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웃었다.

서진FNI 사무실 한쪽에 그동안 테스트한 모자챙이 쌓여
있다
서진FNI 사무실 한쪽에 그동안 테스트한 모자챙이 쌓여 있다

< 서진FNI 사무실 한쪽에 그동안 테스트한 모자챙이 쌓여 있다 >

"웨어러블의 다음 단계는 스마트 패션입니다"

오 대표는 "제로아이, 포캡의 시장 경쟁력을 확인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시장 반응이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제로아이 추가 주문도 들어왔지만,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한 뒤 더 완성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진행하지 않았습니다"라며, "IT 기술을 접목한 웨어러블 제품은 스마트 패션 시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IDC 발표에 따르면, 스마트 밴드 성장률은 계속 줄었습니다. IT 기술, 기능을 기존 디자인과 연결해 패션 의류로 자리 잡아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마트 패션은 이제 시장이 열리는 단계입니다. 서진FNI는 모자라는 아이템으로 양산화까지 시도했습니다. 스스로도 겁 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핸드폰과 시계, 밴드가 플랫폼으로 발전했듯, 의류도 또 하나의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진FNI가 선보이는 모자, 스마트 패션 제품에 많은 관심을 부탁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서진FNI 오태경 대표와 공장 직원들 모습, 제공:
서진FNI
서진FNI 오태경 대표와 공장 직원들 모습, 제공: 서진FNI

< 서진FNI 오태경 대표와 공장 직원들 모습, 제공: 서진FNI >

서진FNI는 겁 없는 도전 중이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초기 스타트업이 제품 생산을 위해 공장까지 설계했다는 것은, 달리 말해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다. 뒤는 없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그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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