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조종석에 앉는다면? 한국항공대 ‘2026 AI 파일럿 탑건 챌린지’ 본선 이모저모
[IT동아 김영우 기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언이 있다. 이는 4세기 말~5세기 초 고대로마의 군사학 서적에서부터 확인되는 문장으로, 무려 150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단지 그 방법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최근 우크라이나, 이란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드론 전쟁’이 나름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사람이 직접 타고 조종하는 병기는 비싼데다 인적자원 손실의 우려도 크지만, 원격으로 조종하거나 AI가 자동 제어하는 병기는 그런 우려가 덜하다는 것이 속속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로봇, 드론과 같은 첨단기술과 국방 부문의 융합은 부정할 수 없는 트렌드다.

한국항공대학교 SW중심대학에서 개최한 ‘2026 AI 파일럿 탑건 챌린지(2026 AI Pilot Top Gun Challenge)’는 이러한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준 이벤트였다. ‘AI 파일럿의 한계에 도전한다’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 참가한 전국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이 학습시킨 ‘AI 파일럿(조종사)’을 가상의 F-16 전투기에 태우고 시뮬레이터를 통해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작년까지 한국항공대학교 학내 행사로 진행되던 것을 올해부터 전국대회로 확대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항공청, 공군, 대한항공, 한국항공우주산업, 한화시스템, 현대로템, LIG D&A, 리얼타임비주얼 등이 후원사로 참여해 행사를 뒷받침했다.
지난 4월 27일 참가 접수로 시작된 이 대회는 5월 21일 공통교육, 8월 27일 예선 등을 거쳐 9월 17일 한국항공대 대강당에서 본선 토너먼트가 열리면서 클라이맥스를 맞이했다. 총 873명, 290개 팀이 참가를 신청했고, 84개 팀이 예선전을 치르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은 17일 본선 행사 환영사를 통해 “이번 대회는 가상의 교전 상황을 만들고 AI를 교육시켜 경쟁하는 일종의 창의력 스포츠”라며 “3개월 이상의 대장정을 거쳐 AI를 성장시킨 참가자들은 물론, 총 3000만원에 이르는 상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운 후원사들에게도 큰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본선대회에는 치열한 예선전을 통과한 GoGoSSung(숭실대), Fight’s On(연세대), 진짜 보라매(공군사관학교), HannamAir(한남대), 추락도락이다(연합팀), KAU_InMOLab(한국항공대), 궁채초절임(연합팀), Yaksha(UNIST), 불나방(서울대), 구리인창(연합팀), 에어프라이어(한국항공대학교), 드래곤(경기대학교), TrAI Everything(연합팀), FNG(공군사관학교), SSUPERSONIC(숭실대), Check-Six(조선대) 등 총 16개 팀이 참가해 1:1 토너먼트 방식으로 16강전을 진행했다. 도그파이트(Dog Fight) 중에 상대 전투기를 완전히 격추시키거나,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타격을 입힌 뒤 제한시간(200초)을 넘기면 승리하며, 3승을 먼저 달성하면 다음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팀의 AI 에이전트 기반 파일럿들은 F-16 기체의 기본적인 제어 뿐 아니라 공중전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적기의 위치와 속도, 방향을 예측해 최적의 방어회피 및 공격추격 전술을 수립할 수 있도록 3개월 간 학습을 거쳤다. AI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어떤 방향으로 학습했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관건으로 작용했다.
학습 방향에 따라 각 팀 AI 파일럿의 전술도 조금씩 달랐다. 어떤 AI는 선회 기동운동을, 또 어떤 AI는 잦은 고도 변경을 중시했으며, 또 어떤 AI는 무리하게 적기를 격추시키기 보다는 선제 타격 후 남은 시간 동안 방어회피에 집중하면서 판정승을 노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팀마다 각기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AI를 육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16강, 8강, 그리고 4강전을 거쳐 오후 4시 30분부터는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결승전에는 서울대 학생들이 조직한 ‘불나방’팀과 아주대, 서울대, 포항공대 학생들의 연합팀인 ‘추락도락이다’팀이 맞붙었다. 특히 추락도락이다팀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으로 결승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발휘해 주목받았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된 결승전 1회전에서는 최적의 선회 경로로 적기의 꼬리를 잡은 추락도락이다팀이 여유롭게 승리했다. 이어 진행된 2회전의 경우,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양측이 정면으로 맞붙어 서로 동시에 공격하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타격 시점이 좀 더 빨랐던 추락도락이다팀이 승리했다.
3회전에서는 불나방팀 측에서 과감하게 고도를 높이며 승부수를 거는 것이 돋보였다. 이에 추락도락이다팀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시시때때로 서로를 살짝 스치는 듯한 장면이 이어졌는데, 이때마다 추락도락이다팀은 한발 먼저 공격을 가해 착실히 상대방의 피해를 누적시켰다. 이를 통해 3회전 역시 결국 추락도락이다팀이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시상식을 통해 추락도락이다팀은 상금 1000만원에 해당하는 대상(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한국항공대학교 총장상)을 받았다. 준우승한 불나방팀은 상금 500만원에 해당하는 최우수상(공군참모총장상)을 받았다.

4강전 진출 2팀(Fight’s On·TrAI Everything)에게는 각각 상금 200만원에 해당하는 우수상(우주항공청장상·공군교육사령관상)이 수여되었고, 8강전 진출 팀 중 4팀(Check-Six·에어프라이어·궁채초절임·HannamAir)에게는 각 상금 100만원에 해당하는 장려상(한화시스템·LIG D&A·한국항공우주산업·현대로템 사장상)이 수여되었다.
그 외에도 상금 200만원에 해당하는 학술상(대한항공 부회장상)이 Fight’s On팀에게, 상금 100만원에 해당하는 전략상(리얼타임비주얼 대표이사상)이 추락도락이다팀에게 수여됐다. 이날 참여한 나머지 8개팀에게도 상금 50만원에 해당하는 본선진출상(한국항공대학교 SW중심대학사업단장상)이 수여되는 등 총 16팀이 3000만원의 상금을 나눠 가지며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히 이날 우승팀인 추락도락이다팀은 대상과 더불어 전략상까지 차지하는 2관왕을 달성했다. 아주대 국방디지털융합과 이규연 팀장을 비롯해 같은 학과 소속 신준화·전다함,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신지환,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이태민 팀원으로 구성된 이 팀은 대회 기간 내내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추락도락이다팀 이규연 팀장은 “고성능 GPU 인프라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충실한 강화학습을 진행한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며 “특히 다양한 전략을 갖춘 모델을 다수 상대하게 한 것이 유효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전문가 키노트도 함께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방위사업청(DAPA) 소속 임상민 박사는 ‘차세대전투기 기술 개발 동향 및 전망’을,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속 정소영 부장은 ‘무인기 자율화 기술 개발 동향 및 전망’을 주제로 각각 현황과 향후 전망을 공유했다.
이번 대회는 단순한 시뮬레이터 경연을 넘어, AI가 실시간 판단과 전술 수립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현재의 기술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모든 교전이 시계내(WVR, Within Visual Range) 근접전 위주로 진행되고 기체의 무장 또한 기총(그래픽상으로는 레이저 형태로 구현됨)에 국한되는 등, 현대 공중전의 다양한 양상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 주최측은 차기 대회부터 가시거리 밖에서 교전하는 BVR(Beyond Visual Range·시계외) 교전과 2대2 공중전, 전자전 등 현대전에 걸맞은 다양한 테마를 추가해 대회 수준을 한층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항공청, 공군을 비롯해 대한항공, 한국항공우주산업, 한화시스템, 현대로템, LIG D&A, 리얼타임비주얼 등 다양한 후원사가 참여한 것 역시 이 대회에 대한 업계와 정부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주최측이 한층 고도화된 차기 대회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챌린지형 경진대회가 국방 AI 인재 양성의 실질적인 통로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IT동아 김영우 기자(pengo@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