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취약 극복] 에이티소프트 “전자 점자, 문서 표·셀까지 표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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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차주경 기자] 시각장애인들은 요철 구조로 된 ‘점자’를 손 끝으로 읽어서 정보를 얻는다. 점자 책과 점자 문서, 점자를 표현하는 전자 점자 단말기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기술도 속속 등장했다. 덕분에 오늘날, 시각장애인들은 한결 원활하게 각종 문서를 읽고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점자를 개선할 문제는 많다. 그 중 하나가 ‘표’와 ‘셀’의 표현이 어려운 점이다. 글자를 나열한 일반 문서는 그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근차근 글자를 읽으면 이해 가능하다. 같은 이치로, 글자 기반 문서를 점자로 만드는 것은 쉽다.
반면, 표와 셀과 글자, 사진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 문서는 읽기 까다롭다. 복잡한 표 안에 수많은 숫자들이 새겨진 연말정산, 표와 전문 용어 각주가 많은 건강검진 문서 등을 떠올리면 쉽다. 보통 사람도 읽기 어려운 이들 문서를 점자로 표현하는 것, 이런 점자 문서를 시각장애인이 읽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공교롭게도, 표와 셀이 많고 이들이 병합 혹은 분할된 문서들은 대부분 아주 중요한 정보를 담았거나 공공기관이 다루는 문서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은 이들 문서를 읽을 때, 점자보다는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음성 정보에 의존했다. 그래야 표와 셀 안에 있는 글자나 사진들을 혼동하지 않고, 순서에 따라 들으면서 뜻을 정확히 파악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연말정산과 건강검진 등 민원 문서에는 개인 정보가 있는데 이것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 모두 불편한 장애인은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이들은 점자에만 의존한다.
이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전자 점자 생성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 '에이티소프트'의 도전 과제다. 박호성 에이티소프트 대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 문제를 발견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글자는 물론 표의 구조와 내용까지 이해하도록 돕는, 온전히 읽고 뜻을 이해하기 쉬운 전자 점자를 만들 결심을 한다.
그는 먼저 접근성 태그를 활용해서 문서의 표, 표 안의 셀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표, 그리고 표 안의 셀로 구성한 특정 서식에 점자의 속성을 미리 지정하는 원리다. 알고리듬이 이 속성을 발견하면 지정한 기준에 맞게, 그리고 원래 문서 속의 데이터와 결합해 알맞은 점자로 변환하는 구조다. 기준을 정하는 접근성 태그는 한국 점자 규정과 점자 도서 제작 지침에 따른다. 점자 세계의 표준 맞춤법을 지킨 셈이다.
위 표를 예로 들자. 위 표를 일반 방법(접근성 태그 없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단순 변환)으로 점자 변환하면 ‘교육비 부담 내역’, ‘단위 : 원’, ‘교육비 구분’, ‘1월’, ‘2월’, ‘3월’, ‘4월’, ‘학교명’, ‘5월’, ‘6월’, ‘7월’, ‘8월’, ‘납입금액계’ 등 항목의 이름과 값이 뒤섞인다.
눈을 감은 채, 이들 항목의 이름과 값을 그저 듣기만 한다고 가정해보자. 문서의 속성과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 원하는 항목,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조차 아주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각장애인들은 항상 이런 불편에 괴로움을 겪는다.
반면, 위 표를 에이티소프트의 아이디어로 점자 변환하면 ‘교육비 부담 내역, 단위는 : 원’, ‘표 시작선’, ‘교육비 구분은 중학교’, ‘학교명은 A중학교’, ‘사업자 번호는 000’, ‘1월에는 0원’, ‘2월에는 0원’, ‘3월에는 1만 1,600원’과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
즉, 에이티소프트의 기술은 표와 셀의 속성을 파악하고, 이것이 지칭하는 내용을 자동으로 찾아내 알기 쉬운 형태의 점자로 변환한다. 분할이나 병합된 표, 머릿글과 소제목, 구분선 등 점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요소도 손쉽게 변환한다. 그러면 점자를 읽는 시각장애인은 표와 셀에 쓰인 정보 가운데 꼭 필요한 것만 찾고 듣고 쉽게 이해한다. 다른 정보와 혼동할 우려도 적다.
박호성 대표는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고 고도화하려고 우리나라 주요 서식 개발 기업과 손 잡았다. 시각장애인의 관점을 반영한, 이들에게 실질 혜택과 편의를 줄 기술을 만들자는 공감대 아래 양사의 협업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전자 점자 변환 솔루션 ‘이닷익스프레스(eDotXPress)’다.
이닷익스프레스는 앞서 든 예시처럼, 복잡한 표로 구성한 문서를 이해하기 쉬운 점자로 자동 변환한다. 변환 서식과 원칙을 범용 기준에 따라 정한 덕분에 어떤 유형의 문서에든 적용 가능하다.
공공 기관의 증명서는 출력이나 열람되기 전, 대부분 HTML 혹은 PDF로 만들어진다. 이닷익스프레스는 증명서가 출력이나 열람되기 이전 단계에 개입한다. 그리고 점자 속성을 포함한 서식과 한국점자규정에 따라 읽기 쉬운 전자 점자 문서로 만든다. 텍스트를 점자로 변환하는 만큼, 변환한 점자 파일은 용량이 아주 작다. 변환 속도도 거의 실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다. 이렇게 만든 전자 점자 문서를 점자정보단말기에서 재생하면 시각장애인들도 원활하게 문서를 읽고 정보를 얻는다.
이 기술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 그 덕분에 솔루션 설치도, 유지보수도 쉽다. 서버의 자원도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 설치하려는 기관이나 기업, 다루는 문서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 설계도 된다. 에이티소프트는 이닷익스프레스를 도입하려는 공공기관이나 교육기관, 일반 기업에 찾아간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설치와 적용, 테스트와 서버 최적화까지 지원한다. 그 기관이나 회사에서만 사용하는 문서 서식이 있더라도 문제 없이 점자 변환한다.
박호성 대표는 전자 점자 변환 기술을 개발하고 고도화하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안산 청년창업사관학교 본원에서 에이티소프트의 문을 열고, 지식정보서비스 기업의 기본기를 다졌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산학연 지원 사업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개발한 후, 2019년 창업경진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조달청 우수 제품, 혁신제품 인증도 받았다.
그 결과, 에이티소프트는 이닷익스프레스를 우리나라 공공 기관 곳곳에 보급했다. 국세청 홈택스, 교육부 NICE,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통보 등 민감한 정보를 가진 공공 문서를 점자로 만드는 데 에이티소프트의 기술이 쓰인다. 앞으로 학생 생활기록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증명서 발급에도 이닷익스프레스가 도움을 줄 전망이다.
박호성 대표는 더 많은 공공기관, 더 다양한 기업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 점자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원과 같은 의료 기관, 은행과 카드사와 보험사 등 금융 기업, 대국민 서비스를 하는 이동통신사, 대학교 등이 나서서 전자 점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없애고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의 의도를 제대로 지킨다고 강조한다.
지금 장애인 차별 금지법은 시각장애인에게 전자정보와 비전자정보를 전달할 수단으로 '음성' 혹은 '점자' 둘 중 하나를 마련하도록 지도한다. 박호성 대표는 장애인들의 문해력과 시각장애 정도를 고려할 때, 음성과 점자를 상호 보완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원문서를 다루는 모든 부문에 전자 점자 생성 솔루션을 보급하는 것도 필수라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음성 정보 전달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고, 시청각장애인은 쓸 수 없다.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문서를 그 자리에서 손에 넣어 명확하게 읽고 이해하도록, 정보를 손쉽고 정확하게 알도록 점자 정보 전달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금융이나 보험의 고지서, 이동통신사나 공공 요금의 청구서에는 수많은 표와 사진이 있다. 이 문서는 인쇄본이 아니라, 대부분 모니터상의 웹 페이지로 제공된다. 이들 문서를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읽으려면, 문서로의 점자 변환을 신청한 다음 그 결과물을 다시 배송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즉시성’, 빠르게 문서를 받아 읽고 대응하는 점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심각한 차별을 받는 것이다.
반면, 전자 점자 생성 솔루션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원하는 문서를 터치 한두 번만으로 손쉽게 점자로 변환하고 그 자리에서 결과물을 받아 읽는다. 여기에 표의 내용과 구조까지 표현한다면 금상첨화다. 장애인들도 정보를 원활하게 받고 이해하도록 이끈다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의 취지와 잘 어울린다.
최근 정부 기관 여러 곳이 홈페이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때 시각장애인의 불편과 전자 점자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서비스를 도입하면 자칫 정보 왜곡과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
첨부 파일과 내용이 다르거나 잘못 변환된 점자를 제공하는 것이 그 사례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에는 웹 접근성 지침에 따라 스크린 리더(화면의 내용을 목소리로 읽어주는 기능) 기능을 넣는다. 여기에 음성 서비스를 따로 마련하는 것도 사족에 가깝다. 정보 왜곡을 막고 예산 낭비를 줄인다. 나아가 시각장애인이 단번에 효용을 느끼도록 돕는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하기 쉽게 변환하는 전자 점자 생성 솔루션 보급이 그 시작이다.
박호성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이 우리나라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문서를 쉽게 읽고 이해하도록 돕겠다. 정확한, 신속하고 편리하게 전자 점자 문서를 만들어 그 자리에서 가져다주도록, 전자 점자 생성 솔루션의 고도화와 보급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