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제도화를 위한 조언, DCON 2023

한만혁 mh@itdonga.com

[IT동아 한만혁 기자] 블록체인 업계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한때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관련 기업이 쏟아졌다. 새로운 기업이 탄생했고 기존 기업도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적극성을 보였다.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한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가상자산도 주목받았다. 한때 우리 국민의 60% 이상이 가상자산에 투자했을 정도로 광풍이 불었다.

어두운 면도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이 아닌 가상자산만 부각하는 일부 프로젝트 탓이다. 하루에도 수십배, 수백배 등락을 거듭하고 24시간 돌아가는 거래 시스템을 이용한 사기 사례가 적지 않았다. 수익률만 강조하면서 투자를 유도하고 투자금만 챙겨 사라지거나 시세 차익을 이용해 몇몇 관계자만 수익을 챙기고 회사 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가상자산 거래소나 프로젝트의 보안이 뚫리면서 해커가 가상자산을 탈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정부의 대응은 미지근했다. 이렇다 할 규제, 제도를 내놓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정부의 늦장 대응에 블록체인 업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블록체인 업계까지 번졌다. 여전히 가상자산 제도는 미비하고 빠르게 변하는 업계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블록체인 업계가 혼란스러운 이유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산업은 멈추지 않았다.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자기 규율로 스스로 정화하고 기존 산업과의 접목 등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컨퍼런스와 간담회 등을 통해 업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정부와 관련 기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조성을 위해 논의한 DCON 2023. 출처=IT동아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조성을 위해 논의한 DCON 2023. 출처=IT동아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위한 논의, DCON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한국경제법학회, 서울대학교 한국경제혁신센터와 함께 ‘DCON 2023: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한 디지털자산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가상자산 시장, 초기 거래소 공개(Initial Exchange Offerings, IEO), 토큰증권(Security Token, ST)의 특징을 살펴보고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조성을 위한 합리적인 제도를 모색하는 자리다.

참고로 IEO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투자자 모집, 가상자산 발행 등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거래소가 프로젝트를 우선 검증하고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ST는 가치가 있는 자산의 지분을 작게 나눈 후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가상자산 형태로 발행한 증권을 말한다. 부동산, 미술품 같은 실물자산은 물론이고 저작권, 지식재산권(IP), 이자 수익 같은 무형 자산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행사를 주최한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가상자산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만큼 아직 제도화되지 못한 IEO와 최근 주목받고 있는 ST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라고 소개하며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산업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포용 되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안수현 한국경제법학회 회장은 “가상자산 법적 지위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향후 발전 방향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산업의 책임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행사는 3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가상자산 시장, IEO, ST에 대한 주제 발표 이후 업계 전문가, 관련 학과 교수가 참여해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DCON 2023에 참여한 발표자 및 토론자. 출처=두나무
DCON 2023에 참여한 발표자 및 토론자. 출처=두나무

가상자산 시장의 특수성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 특성과 시장 획정’을 주제로 열린 첫번째 세션은 이상승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임용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규성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정원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가 토론에 참여했다.

이상승 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최근 불거진 업비트 독과점 논란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교수가 꼽은 가상자산 시장의 특징은 시간과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라고 해서 국내 거래소만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원화를 입출금할 때는 원화마켓 신고 사업자인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그 외에는 해외 거래소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가상자산은 원화 입출금보다 가상자산 간 거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제로 국내 투자자의 해외 거래소 이용률도 높은 편이다.

왼쪽부터 사회자 고란 알고란 대표, 이상승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임용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규성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정원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 김진수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출처=IT동아
왼쪽부터 사회자 고란 알고란 대표, 이상승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임용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규성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정원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 김진수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출처=IT동아

이 부분은 다른 토론자도 입을 모았다. 가상자산이 시간과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기존 자본 시장과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상자산 시장 범위를 따질 때 국경을 고려하지 말고 해외 거래소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업비트 독과점 논란은 잘못된 기준으로 인한 결과라고.

토론에 참여한 오규성 변호사는 “현실적인 시장 상황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규제와 제도를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독과점에 대한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변호사 역시 “거래소의 경우 원화 입출금보다 가상자산 간 거래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원화 입출금 거래량이 많다는 것만으로 독과점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화 입출금 거래 시장 외에 가상자산 중개 거래, 선물 거래 등 전체 이용 규모와 거래량을 알아야 독과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보호하는 IEO

두 번째 세션은 ‘가상자산의 IEO에 관한 합리적인 규제 연구’를 주제로 진행됐다. 김병연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 이후 안병남 금융감독원 디지털금융혁신국 팀장, 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토론했다.

김병연 교수는 우선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IPO)에 대해 설명했다. IPO는 자본시장법에 증권 발행과 유통에 관한 규제가 존재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건전성을 확보한다. 반면 ICO는 여전히 규제가 미비하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없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리 및 감독할 기관이 없다. 지금껏 ICO 사기 피해가 발생한 이유다.

김 교수는 ICO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IEO를 제시했다. 그는 IEO를 “자금 확보를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모든 행위(Initial Coin Offering, ICO)를 가상자산 거래소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가상자산 발행이나 프로젝트 진행 상황, 투자자 보호에 대한 책임을 거래소가 담당한다는 설명이다.

왼쪽부터 사회자 고란 알고란 대표, 김병연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병남 금융감독원 디지털금융혁신국 팀장, 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출처=IT동아
왼쪽부터 사회자 고란 알고란 대표, 김병연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병남 금융감독원 디지털금융혁신국 팀장, 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출처=IT동아

그는 “거래소는 자사 사업 역량과 신뢰도를 높이고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정부 규제가 없더라도 가상자산 시장 거래 안정성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건전한 시장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IEO가 제대로 진행되려면 거래소에 IEO 전 과정을 통제하는 규제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EO에 대한 책임을 지는 만큼 가상자산 발행사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과 같이 자율 규제가 만들어질 수 있는 좋은 여건”이라며 “IEO 시장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선영 교수는 “IEO는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김 교수 의견에 힘을 더했다. 또한 “거래소의 책임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제도화 첫걸음, ST

마지막 세션에선 최근 금융업계 화제인 ST에 대해 논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토큰증권 발행·유통 제도의 주요 내용 및 시사점’ 발표 후 이정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한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의 토론이 이어졌다.

왼쪽부터 사회자 고란 알고란 대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정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한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처=IT동아
왼쪽부터 사회자 고란 알고란 대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정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한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처=IT동아

김갑래 위원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ST 발행 및 유통 규율 가이드를 설명하며 “가상자산 중 증권성이 있는 건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고 나머지는 가상자산 법으로 규제한다는 의미”라며 “증권과 가상자산을 분리 관리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단호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증권은 금융투자 상품으로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김 위원은 “이번 가이드의 의의는 그동안 금지했던 ST를 인정한 것과 추후 저비용 맞춤형 증권 발행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ST를 인정하지 않았다. 투자자 피해가 생길 경우 책임질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기관이 참여하고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해 가이드를 내놓은 것이다.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맞춰 제도화한 것이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저비용으로 다양한 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 기존 증권 대비 안전한 매매가 가능하다. 김 위원은 “추후 혁신적이고 좋은 상품이 많이 나오고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안전하게 유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ST 발행 시 블록체인 기술을 수용하고, 유통 체계는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ST의 장점과 투자자 보호 문제를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 / IT동아 한만혁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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