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NFT 비롯한 블록체인 산업, 네거티브 규제로 법적 명확성 확보해야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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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나라에서 백성이 이토록 가난한 것은 수레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 실학은 기존의 모순된 체계를 개혁해 국민을 부유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당시에 이 목표를 막는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현실에 맞지 않는 사상체계였다.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이 보기에 조선에서 물자가 지역마다 고르게 유통되지 못하는 이유는 수레를 이용한 유통경제가 발전하기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지역에선 많은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쓰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백성들이 수레를 사용해 물건을 유통해야 한다는 게 그가 내린 진단이었다. 박지원은 수레가 실용화되지 않은 책임은 현실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은 사대부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수레바퀴의 규격을 표준화한 청나라를 본받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옛날 이야기로 서두를 연 건 연암 박지원의 문제 인식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국내에선 가상자산에 대한 시각이 아직도 부정적이다”라는 점이다. 가상자산은 ‘도박’이라는 인식도 여전히 강한 것 같다.

출처=엔바토엘리먼트
출처=엔바토엘리먼트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정부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랫동안 정부는 가상자산 산업의 성장을 위한 제도 정비에 소극적이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인 NFT도 법적인 성격이 불명확하다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NFT는 금융상품인가? ‘대체불가능토큰’이란 이름 때문에 NFT는 토큰으로 여겨지고 있다. 토큰은 돈의 일종이며, 이로 인해 ‘금융’에 속한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뮤지컬 티켓을 NFT로 발행했다면 이는 ‘증명서’에 가깝지 금융상품으로 보긴 어렵다.

현재 NFT는 카드결제나 원화결제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 않다. 법적으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서 카드사도 적극적으로 이 산업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NFT 관련 벤처기업들은 원화결제와 카드결제가 안 돼 이용자 풀을 넓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부 대기업은 홈쇼핑 등을 통해 NFT를 원화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뮤지컬 나폴레옹 티켓의 NFT, 출처=NFT쇼박스 홈페이지
뮤지컬 나폴레옹 티켓의 NFT, 출처=NFT쇼박스 홈페이지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뮤지컬 티켓에 NFT를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연 티켓에 거래 내역이 공개되는 NFT를 적용하면 2차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암표 거래를 막을 수 있다. 또한, NFT 티켓 구매자에게 다음 공연에 대한 할인이나 배우 모습이 들어간 NFT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NFT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NFT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가 확장되려면 이용자 풀이 넓어져서 수요도 많아져야 한다. 수요가 많으면 산업의 발전이 뒤따른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와 사회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다양한 NFT 프로젝트가 진행되더라도 이를 활용할 이용자가 없다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한 도전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가상자산 업계의 성장을 막는 대표적인 장벽은 ‘불명확성’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한 도전도 법률적인 성격의 불명확함으로 인해 좌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업계에선 NFT를 비롯한 가상자산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란 법률과 정책에서 금지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가 되는 걸 먼저 막고 추후에 피해가 발생할 때 이를 규제하는 방식이다. 정책이나 법률에 허용되는 것들을 나열하는 포지티브한 규제를 이어가면 법률적인 불명확함은 여전히 남게 된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할 여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물음을 던져야 한다. 가상자산은 화폐인가? 가상자산이 화폐라면 당연히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다른 유형의 재화나 상품일 가능성이 있다면 시장 내에서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MBTI 성격유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유행이듯, 가상자산의 성격 유형에 따라 다른 규제나 정책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 중국은 새로운 기술에 폐쇄적이면서 보수적인 국가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외부적으로 폐쇄를 하고 내부 성장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실용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신기술에 대해 연구와 논의를 지속하고, 핵심기술인 경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기술 생태계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신기술에 대한 포지션은 무엇인가? 앞으로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가 어떻게 발전돼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글 / 게임체인 이광호 대표

게임체인은 NFT거래소인 NFTMANIA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NFTMANIA에선 누구나 NFT를 민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게임체인의 파트너들과 BAYC IP 라이센싱 사업 등 다양한 NF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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