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중고차, 완성차업계 진출로 해결되나?
[IT동아 정연호 기자] 자본주의의 바탕은 ‘탐욕’일까 ‘신뢰’일까? 자본가가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은,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반면, 사람 간의 신뢰가 사회의 경제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주장도 있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금융거래와 상업거래를 할 수 있을까? 신뢰지수는 그 사회의 경제 성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정보 비대칭 때문에 ‘역선택’이 빈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구매자가 갖는 정보가 판매자보다 적기 때문에, 좋지 않은 물건을 비싼 값에 구입하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은 오랜 시간 동안 역선택이 두드러지는 곳이었다. 차량의 상태를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이 외관이므로, 딜러들이 중고 차량을 확보한 뒤 차량 수리 및 정비보단 도색과 광택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중고차 시장에 나온 상품을 소비자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게 어려운 이유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사람들이 중고차 거래를 꺼리게 만든다.
중고차 시장이 바뀌려면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하면 그만큼 상품의 품질과 서비스가 보증된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정만기 회장은 산업발전포럼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가 내년 1월부터 중고차 사업을 위해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를 위한 물리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산업협회는 현대차와 기아, 쌍용차, 한국지엠, 르노삼성차 등의 완성차 업체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 대수는 251만5000여 대로 신차 거래 대수의 1.32배에 달한다. 수입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를 매매하고 있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부터 동반성장위원회 권고에 의해 대기업 진출이 제한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고차 판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2019년 2월에 만료됐다. 중소기업벤처부(이하 중기부)는 지난해 5월까지 ‘생계형 적합업종’ 최종 심의를 진행해 결정을 해야 했지만, 현재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생계형 적합 업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끝난 경우 진행하는데, 차이점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권고라면 생계형 적합업종은 법적 제도라 지키지 않을 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중고차 업체는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했지만, 동반성장위원회는 이에 대해 ‘일부 부적합’이란 판단을 내렸다. 중기부는 이를 종합해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해야 한다.
빛 좋은 개살구? 중고차 피해는 여전..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이하 소비자주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60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8명은 ‘중고차 시장이 매우 혼탁·낙후된 시장이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79.9%). 세부적인 이유로는 ‘허위·미끼 매물 때문(54.4%)’, ‘가격산정 불신(47.3%)’, ‘주행거리 조작, 사고이력 조작, 비정품 사용 등에 따른 피해(41.3%)’, ‘판매 이후 피해보상 및 A/S에 대한 불안(15.2%)’ 순으로 이어졌다.
이어,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56.1%였다. 이유로는 ‘혼탁하고 낙후된 중고차 시장을 투명하고 선진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56.3%)’, ‘정확한 중고차의 품질, 투명한 거래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가격으로 사고팔 수 있어서(44.1%)’와 같은 답변이 나왔다.
소비자주권은 “중기부는 권한과 역할을 발휘하여 기존 중고차 업계와 완성차 업체 간 이해를 조정하되, 소비자후생과 권익을 좀 더 제고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인증 중고차(제조사의 인증 절차를 통과한 중고차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도)’ 형태로 판매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미국 및 독일 등 주요 자동차 선진국에서도 완성차 업체가 일정 수준의 인증 중고차 판매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어 “매집한 중고차에 대하여 중고차의 잔존가치 평가를 어떻게 전문화, 체계화할지 향후 오픈 플랫폼을 통하여 중고차의 품질, 평가, 가격 산정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신차 판매량의 증감을 위하여 중고차량의 가격 산정을 임의로 조절하는 행위를 못 하도록 하고, 만약 적발되면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연맹 발표에 따르면, '1372 소비자 상담센터'에 접수된 지난해 중고차 관련 소비자 피해는 총 5165건이다. 저렴하게 매물을 올려놓고 매장에 방문하면 ‘체납 세금이 있다’던가 ‘수리비가 많이 든다’며 다른 중고차 구매를 유도하는 허위/미끼 매물은 235건에 달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판매자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성능상태점검 기록부를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하지만, 성능상태점검 기록부에 체크하는 항목 이외의 부품(배터리, 브레이크 관련, 엔진경고등 등 소모품)에서 성능상태가 불량한 피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점검 항목이더라도 보증기간(구매 후 1달 이내) 또는 보증거리(2,000km 이내)를 초과하면 보증수리를 받을 수 없어,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자동차 전체가 이상이 없다고 믿고 구매하나, 실제 구매하면 성능상태점검 기록부 점검 항목 이외 부품은 전혀 수리가 되어 있지 않아 수리비가 과다하게 나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자동차 운행 자체를 할 수 없고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큰 경우가 있어 소비자의 안전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소비자 편익 위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중고차매매산업 발전 협의회’를 발족해 간담회를 거치고, 중기부를 주관으로 재협상을 진행했지만 아직 합의안을 끌어내지 못했다.
양 측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점유율을 첫해엔 3%, 2025년까지 10%로 제한할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는 10%의 기준을 260만 대(전년도 사업자 거래 수와 개인 거래 수)로 중고차 업계는 110만 대(전년도 중고차 사업자 거래 수)로 잡으며 의견이 갈렸다. 또한, 완성차 업계는 인증 중고차 외엔 경매를 통해 일반 중고차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중고차 업계는 모든 중고차를 공개입찰 플랫폼에서 공개입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를 판매하는 부분에 대한 손해를 보상하는 목적으로 ‘신차 판매권’을 요구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김주홍 상무는 “심의위원회에서 중고차 시장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판결이 나면, 이에 응할 것”이라면서,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중고차를 적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게 가능해진다. 우리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면, 5년 10만 킬로 대상으로 성능 테스트나 품질 보증을 한다. 또, 거기에 대한 절절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명확한 기준 없이 가격이 측정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중고차 업계는 영세업종으로 보기 힘들다. 보통 중고차 사업을 하려면 300평 규모의 사업장을 갖고 있어야 하고, 부동산 다음으로 가치가 있는 ‘차(중고)’라는 재산품목을 갖춰야 한다. 영세 사업자도 있겠지만, 대부분 많은 매출을 올리는 대규모 사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으로 지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이하 한국자동차연합회)는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중고차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고차를 신차와 교환할 때, 완성차 업체에서 중고차 가격을 보증해주는 만큼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들은 천만 원에 거래되는 차량이 1200, 1300만 원까지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국자동차연합회 관계자는 “중고차는 가격이 높다 보니 매출액도 부풀려질 수 있지만, 영업이익이 높지 않다. 온라인에선 중고차 시세가 투명화돼 있고, 차량을 매입하거나 판매할 때 모두 경쟁을 하기 때문에 가격을 적정하게 측정하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완성차 업계가 판매할 중고차는 5년에 10만 킬로 이내 차량이다. 이런 차량은 기존 시장에서도 문제없이 유통되고 있으며, 판매 이후의 하자 문제도 거의 없다. 완성차 업체가 들어온다고 소비자 보호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전했다. 사실상, 완성차 업체의 진입이 중고차 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뜻이다.
중고차 시장의 문제는 ‘허위 매물’이다. 이는 주로 딜러나 사업자보단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허위 매물을 전문적으로 등록하는 조직에 의해서 발생한다. 한국자동차연합회 관계자는 “이를 막기 위해선 현재 관련된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 이 법안들은 등록된 사업자가 아니면 영리를 목적으로 중고차 광고를 금지하거나, 별도의 모니터링 조직을 만들어 허위매물을 모니터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방안이 허위 매물을 줄이는 실효성 있는 방법이다”라고 전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법적인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에, 우선 양쪽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면서 시간이 지체된 측면이 있다. 앞으로 심의위원회에서 심의 기준에 따라 업종이 영세한지, 아닌지를 직접 판단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라면서 “상생협약 노력이 무산되면서 남은 절차는 심의위원회에 상정해서 결정을 받는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