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얼거림까지 죄다 기록한다, 보이스레코더 PRO U11
‘죽어도 리바이벌(revival)은 안한다’는 모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화자(話者)의 입에서 떠난 말은 찰나의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이 말을 온전히 주워담는 일은 대개 청자(聽者)의 몫이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놓치는 부분도, 전문 지식이 부족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모두 청자가 책임져야 한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라며, 화자가 오리발(?)을 내밀 때도 증명의 책임은 청자에게 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휴대폰에는 녹음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휴대폰 녹음 기능이라는 게 생각보다 변변찮다. 화자의 입에 최대한 가까이 들이밀지 않는 이상, 주변에서 발생하는 온갖 소리에 중요한 육성이 묻혀버리기 일쑤다. 특히 시끄러운 곳에서 녹음한 내용은 소리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다. 업무상 녹음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육성만 전문적으로 녹음하는 보이스레코더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대표적인 보이스레코더 제조사로는 삼성전자, 소니, 아이담테크(구 사파미디어)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중 아이담테크가 전문가용으로 내놓은 하이엔드 제품 ‘PRO U시리즈’는 뛰어난 녹음 품질과 다양한 기능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가장 최신 제품인 ‘PRO U11(이하 U11)’이 오늘의 리뷰 대상이다.
완성된 디자인? 전작과 동일한 외관
제품 외관은 전작인 ‘PRO U10’과 거의 동일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직육면체(44.5x17x103mm) 형태다. 앞부분에는 녹음 시간 및 각종 상태를 표시해주는 LCD 화면과 십자모양의 버튼이 있다. 버튼이 많은데다가 각 버튼이 2개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예를 들면 전원버튼은 녹음시작, 일시정지 기능을 겸한다) 처음에는 사용법을 익히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U11을 100% 활용하고 싶다면 반드시 사용설명서를 숙지하길 바란다. 하지만 기본적인 녹음 및 음원 재생 등의 기능을 사용할 때는 버튼을 한두 번만 누르면 되므로, 급박한 순간에 녹음하게 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위에는 10mm 크기의 지향성 마이크 2개와 무지향성 내장 마이크 하나가 달려 있다. U11의 녹음 모드는 ‘인터뷰’와 ‘회의’로 나뉘는데, 모드에 따라 사용되는 마이크가 다르다. 가령 인터뷰 모드에서는 지향성 마이크가 작동되어, 전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상당히 멀리서 잡아 내고 사용자 본인이 내는 소리와 기타 잡음을 크게 줄여 준다. 1대1 인터뷰, 강의 녹음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회의 모드에서는 무지향성 마이크가 작동되어, 근거리의 세밀한 소리를 빠짐 없이 녹음한다. 원탁에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았을 때처럼 U11의 방향과 상관 없이 주변 소리를 비교적 균등하게 담아 내야 할 때 유용하다.
왼쪽에는 마이크로 USB단자, 마이크로 SD카드 단자, 잠금 버튼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3.5mm 헤드폰 단자와 모드 변환 버튼이 있다. 내장 메모리는 모델에 따라 다르며(2GB, 4GB, 8GB), 마이크로 SD카드로 최대 32GB까지 확장할 수 있다.
뒤쪽에는 AAA 배터리 2개를 넣는 공간이 있다. 다른 보이스레코더처럼 내장 배터리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만일 사용 중에 배터리가 바닥났을 경우, 내장 배터리 방식은 속수무책의 상황에 놓이지만 U11같은 배터리 교체 방식은 여분의 AAA 배터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배터리 지속 시간도 최대 연속 47시간이나 된다. 어느 제품과 비교해봐도 부족하지 않은 사용량이다.
녹음 성능은 발군, 대기업 제품을 압도
성능면에서도 전작들의 명성을 그대로 잇는다. CD음질보다 뛰어나다는 아이담테크측의 주장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근거리에서 웅얼거리는 육성은 물론이고, 비교적 먼 거리의 육성까지 깨끗하게 들린다. 내로라하는 경쟁 보이스레코더와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성능이다.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녹음 성능을 칭찬했다. 왜 이 제품이 대기업 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음질이 뛰어나면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가령 뮤지컬이나 콘서트 음원을 녹취할 때도 유용하다. 아이담테크에 따르면, 일반 보이스레코더는 가청주파수 내의 목소리에 최적화됐지만 U11은 자연의 소리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음악을 녹음해 봤더니 MP3 뺨치는 음질을 자랑했다. 이쯤 되면 보이스레코더가 아니라 ‘사운드레코더’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비밀녹음 기능, 자동분할 기능, 파일복구 기능 등 다양한 편의 기능도 두루 갖췄다. 비밀녹음 기능은 녹음 시작 및 종료를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한다. LCD화면에 불이 들어오지도 않고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법적 분쟁을 위한 증거 자료를 확보하거나 흥신소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자동분할 기능은 녹음 시간이 길어질 때 자동으로 파일을 분할해준다. 비교적 오래 걸리는 강의나 회의에서 사용하기 좋다. 또 파일복구 기능은 실수로 삭제한 마지막 파일을 즉시 복구해준다. 보이스레코더를 사용하다 보면 실수로 파일을 지우는 경우가 의외로 잦은데, 참 유용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U11의 단점을 이야기할 차례지만, 사실 이렇다 할 단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디자인이 참 고리타분하긴 한데, 이는 보이스레코더 제품군 전반적인 특징이다. 사실 보이스레코더가 아이폰처럼 유려한 디자인을 갖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부분은 내구성과 A/S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삼성전자, 소니 등 경쟁사보다 A/S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몇 년 전 사파미디어에서 아이담테크로 제조사가 바뀌었을 때, 일부 사용자들은 A/S를 받는데 불편함을 겪기도 했다.
보이스레코더 사용자층은 비교적 좁다. 인터뷰와 취재가 잦은 기자와 블로거, 학원 강의를 복습하는 수험생, 법조인 및 흥신소 직원, 공연 예술가 등이 보이스레코더를 사용할 것이다. 이들이 보이스레코더를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점은 녹음 성능이며, U11은 그 부분을 기대 이상으로 만족시키고 있다. 애플이 ‘아이레코더’라도 내놓지 않는 이상, U시리즈의 명성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듯하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