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6)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6)

반값 할인이라더니, 손님 대접도 반값?

일산에 거주하는 주부 장여진(31)씨는 최근 소셜 커머스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할인쿠폰을 가지고 인근 치킨집에 방문했다가 불쾌한 경험을 겪었다. 자리에 앉은 지가 10여 분이 흘렀지만 메뉴판은 커녕 주문을 받을 종업원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기다리다 못해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세웠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손님이 많아서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 부글거리는 속을 참고 메뉴판을 폈지만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서 점찍어 놨던 메뉴는 이미 동난지 오래다. 결국 장씨 가족은 한참을 기다려서야 ‘치킨집이 지정해 준’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장씨는 “소셜 커머스에서 쿠폰을 구입할 때 본 내용과 완전 딴판이었다”며 “손님이 몰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변명만 늘어놓으려면 왜 소셜 커머스 사이트와 계약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직장인 홍성수(27)씨는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홍씨가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간 곳은 양재동의 한 인도음식점. 앉자마자 종업원이 쿠폰을 제시하라고 무안을 주더니 이내 나온 음식은 평소보다 훨씬 작은 분량이었다. 치킨커리를 시켰지만 치킨은 달랑 두 점만 들어 있었고, 사이드메뉴인 탄두리 치킨은 뼈만 앙상한 몰골이었다. 게다가 인도식 빵인 난은 리필도 제대로 해주질 않았다. 옆자리 손님이 제 값 내고 주문한 요리와는 천지차이였다. 홍씨는 “할인쿠폰 고객이라고 차별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눈치 보면서 반값에 먹을 바에야 차라리 제 값 다 내고 먹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1)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1)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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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2)

소비자피해주의보? 소셜 커머스에 무슨 일이 생겼나

소셜 커머스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공동구매 방식을 결합한 전자상거래의 일종이다. 하루에 한 가지 상품을 파격적인 할인가에 판매하되 구매자가 일정 수 모이지 않으면 결제가 자동 취소된다. 이 때문에 구매자들은 SNS를 통해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으며 자발적으로 입소문 마케팅에 참여하게 된다. 비싼 홍보비를 줄여 업소와 소비자 모두가 혜택을 본다는 게 소셜 커머스 업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셜 커머스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각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는 사용자들의 불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구입한 품목 대신 다른 상품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추가비용으로 예산을 초과했다는 사람도 있다. 또한 상품의 질이 낮아 정상가가 의심된다는 사람도 있고, 업소가 문을 닫아 피해를 본 사람도 나타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나섰다. 소셜 커머스 소비자들의 피해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11월 29일부로 소비자피해주의보를 발령한 것.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3)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3)

이론상 ‘마케팅 혁명’에 가까운 소셜 커머스가 왜 ‘관리대상’으로 전락했을까. 소셜 커머스는 이미 해외 시장에서 검증 받은 마케팅 수단이다. 현재의 소셜 커머스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북미 그루폰(Groupon)은 설립 2년 만에 연매출 5억 달러(한화 약 5,700억 원)의 괴물 기업으로 성장했다. 쿠폰산업이 발달한 일본의 경우에도 소셜 커머스 산업이 막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4월부터 8월까지 관련 매출이 2억8000만 엔(한화 약 38억 원)에 이른다. 아사히신문은 올해 시장 규모가 잠재적으로 70억 엔(한화 약 965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소셜 커머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지자 국내에서도 너도나도 업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소셜 커머스를 서비스하던 업체는 단 3곳.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소셜 커머스 시장에서는 100개가 넘는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졌다.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고 남보다 더 파격적인 할인가를 내걸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쉬쉬하던 상처가 곪아 터지게 된 것이다.

반값 할인 문구에 숨겨진 허점

소셜 커머스 업체는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가져가고, 할인으로 인한 부담은 업소가 전부 짊어진다. 소셜 커머스 업체는 파격적인 할인이 가능한 이유가 홍보비용을 절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중소규모 업소의 예산에서 홍보비용의 비중은 크지 않다. 결국 업소는 이 손실을 박리다매(薄利多賣)방식으로 메워야 한다. 10개 팔았을 때 100원씩 남던 장사대신 100개 팔아서 10원씩이라도 남기는 장사를 해야 적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50%이상의 할인가를 적용했을 때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팔면 팔수록 늘어나는 손실을 감수하느냐, 다른 비용을 줄여서 손익을 맞추느냐. 눈 앞의 수익보다 장기적인 입소문 마케팅을 원한다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주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이 방식을 사용한다. 한 번 방문해 좋은 서비스를 경험한 소비자가 다음 번에도 찾아주기를 기대하고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세 업소는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 결국 ‘개업 이벤트’ 수준의 일회성 마케팅에 그친다. 게다가 소셜 커머스의 입소문 마케팅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일단 정상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다음 번에도 쉽게 제 값을 내려고 하지 않으며, 재방문율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후자를 택하는 업소는 편법을 택한다. 이미 홍보비나 인건비는 줄일 대로 줄였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실제로는 7만 원짜리 음식을 약 30% 할인해 5만 원에 제공하면서 쿠폰에는 정상가가 10만 원인 음식을 50% 할인해 5만 원에 제공한다는 눈속임을 쓰는 것이다. 더 심하게는 재료비에 손을 대 정상 음식과 할인 음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피해는 쿠폰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뒤집어쓰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정직하게 상품을 판매한 업소까지 피해를 본다.

소셜 커머스 업체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 벤처창업이 쉽다 보니 ‘수준 미달’ 업체들이 진입하게 된다.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고 구입한 쿠폰이 업체의 부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보상받을 방법이 막막해진다. 또한 사기 당할 우려도 있다. 파격적인 할인으로 소비자를 현혹한 후 대금을 챙겨 도주하는 업체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소셜 커머스 업계에서는 사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인터넷 쇼핑몰 업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03년 반값쇼핑몰로 큰 인기를 모았던 ‘하프플라자’는 반값에 제품을 팔되 그 손해분을 다음 주문자의 대금에서 충당하는 방식으로 물의를 빚었다. 배송지연과 환불문제로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하프플라자는 영업을 중단했고, 대표는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4)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4)

소셜 커머스 피해, 당분간 조심해야

결국 소비자 스스로가 조심하는 길이 최선이다. 공정위는 소셜 커머스 사업자와 서비스 제공업체가 믿을 수 있는 사업자인지 확인할 것, 이용약관과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할 것, 실제 가격과 비교해서 구매하고 충동적인 구매를 자제할 것 등의 소비자 유의사항을 전파했다. 또한 소셜 커머스를 이용하다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상담센터(1372번)에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5)
'파격 할인' 소셜 커머스의 그림자 (5)

소셜 커머스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 소셜 커머스의 올바른 개념이 정착되고, 양질의 업체만이 살아남는 시장 구도가 자리잡고 나서야 진짜 소셜 커머스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소셜 커머스 열풍, 알뜰 소비자들의 엘도라도인가 아니면 단순한 신기루인가.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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