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 서울시도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서울시도 스타트업이었습니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서울특별시 경제정책실 투자창업과의 송광남 과장의 이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기자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서울시도 스타트업이었다는 그의 말에서 작은 울림을 느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몇 년 전 시청한 미국 드라마가 생각났다. 파격적인 오프닝으로 화제를 끌었던 미국 HBO의 ‘THE NEWSROOM(이하 뉴스룸)’이다.

서울시 경제정책실 투자창업과에서 만난 송광남 과장
서울시 경제정책실 투자창업과에서 만난 송광남 과장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시즌3로 방영한 뉴스룸은 ‘왜 미국이 가장 위대한 국가인지 말해 달라’는 대학생 질문으로 시작한다. 애매하게 답변을 회피하려는 작중 주인공에게 사회자가 제대로 된 답변을 종용한다. 그리고 약 4분간에 걸쳐 속사포 같은 말로 미국이 위대하지 않은 이유를 말한다. 아연한 청중들 앞에서 주인공은 혼잣말처럼 읊조린다. 현재 미국은 위대하지 않지만, 한때 위대한 영웅들이 있었다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뉴스룸 오프닝 영상에 담기지 않은 뒷부분의 답변이 더욱 걸작이다, 출처: 왓챠 유튜브 채널
뉴스룸 오프닝 영상에 담기지 않은 뒷부분의 답변이 더욱 걸작이다, 출처: 왓챠 유튜브 채널

맞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잘못된 것을 감추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잘했다고 포장해서는 안된다.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것은, 곧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작용한다. 송 과장은 스스로 말한다. 서울시도 스타트업이었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서울시 창업 생태계, 전세계 20위

지난 6월, 서울시는 ‘서울, 글로벌 창업 생태계 Top 20 진입, 창업생태계 가치 47조 원 평가’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글로벌 창업 생태계 분석기관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이 발표한 글로벌 창업 생태계 순위에서 ‘서울’이 Top 20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이어 서울의 창업 생태계 가치(Ecosystem Value)는 47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출처: 스타트업 지놈 홈페이지
출처: 스타트업 지놈 홈페이지

해당 평가는 100개국 270개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서울은 조사 대상에 포함된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출처: The 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20). 서울은 지난 2017년에 글로벌 Top 30위 밖에 위치했고, 2019년 차세대 유망 생태계를 평가하는 ‘Next 30’에 포함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글로벌 Top 20위로 평가받았다.

특히,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순위 상승의 원인으로 ‘유니콘’으로 불리는 고성장 스타트업 등장과 아시아의 기술혁신 허브로서 높은 R&D역량 보유, 높은 특허출원율 등을 꼽았다. 공공정책 분야에서 서울시의 인공지능(AI), 핀테크, 생명과학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도 높게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은 R&D 투자에서 조사 도시 38개국 중 5번째로 많이 투자하는 국가다.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4.5%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다.

스타트업 지놈은 여기에 주목했다. 서울의 스타트업 스케일업 정책과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1조 2,000억 원 규모의 펀드, 신생 스타트업을 위한 성장주기맞춤형 지원 등의 창업지원 정책에 대해 ‘창업가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라고 소개했다.

스타트업이 서울을 선택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스타트업 지놈, 출처: 스타트업 지놈 홈페이지
스타트업이 서울을 선택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스타트업 지놈, 출처: 스타트업 지놈 홈페이지

이는 앞서 소개한 송 과장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서울시가 스타트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지 몰랐다는 그의 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는 “건강한 스타트업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지원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 변화하듯,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생태계도 변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생태계(Startup Ecosystem)란 무엇인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주요 국가는 지난 몇 년 간 스타트업에 집중했다. 장기적으로 이어진 경기 침체, 빠르게 발전하는 IT 신기술로 인한 생활의 변화 등으로 고심한 해결책이다. 스타트업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정보통신기술(ICT), 인터넷 등을 활용한 개방성을 무기로 스타트업만의 네트워크와 생태계를 구축한다. 즉, 안정적이고 생산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일자리 창출 모색하는, 경기 침체 탈출의 주요 해결책으로 꼽힌다.

송 과장은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서울창업허브(SBA)를 필두로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다. 스타트업과, 그들과 호흡해야 한다. 스타트업과 멀티 떨어져서 그저 지켜보는 것으론 불가능하다. 우리 스스로 같이 혁신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라며, “스타트업 뒤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에서 고민한 서울시

서울시의 고민은 크게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으로 나뉠 수 있다. 최근 스타트업이 스케일업을 강조하는 이유와 같다.

"창업(Start-Up)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Scale-Up)이다."

지난 2016년 11월, 창업진흥원 주최로 개최한 '세계 기업가정신 주간(GEW)' 세미나에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세계적 전도사이자, 베스트셀러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 저자인 다니엘 아이젠버그(Daniel Isenberg) 박사가 건넨 말이다. 그는 창업과 성장을 언급하며,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창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정은 아이를 잘 키우도록 하는 성장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니엘 아이젠버그 박사의 모습(좌)과 그의 저서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우), 출처: 위키피디아, 동아닷컴
다니엘 아이젠버그 박사의 모습(좌)과 그의 저서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우), 출처: 위키피디아, 동아닷컴

이어서 그는 "창업 결과에 매달리다 보면, 숫자에 연연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생각은 '많을수록 좋다'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선진국들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사해보면, 숫자에 치중한 창업 지원은 생태계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시장규모 성장의 80%는 결국 상품 판매에 따른 기업 성장에 의해서 결정된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데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창업 이후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2017년 12월, 아이젠버그는 인터뷰를 통해 "양육부담이 저출산을 야기하듯, 성장이 어려운 기업 생태계는 창업을 위한 인재와 투자 유입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독일, 스위스, 영국 등 선진국은 종사자수 10인 미만 스타트업 일자리 비중이 20% 미만으로 스타트업이 고용에 기여하는 효과가 작다. 덴마크의 경우, 2000년대 초 창업 지원을 통해 창출된 벤처 중 5년 뒤 고성장한 기업은 1% 미만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덴마크는 스타트업 중심이 아닌 스케일업 중심 정책으로 돌아선 대표적 국가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울시도 변화를 택했다.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송 과장은 “스타트업 질적 성장을 위한 고민을 계속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SBA다. 정부, 지자체가 독단적으로 판단해 움직이지 않는다. 민간과, 스타트업과 함께 고민한다. 우리는 이를 호흡하고 있다고 말한다”라며, “먼저 SBA를 통해 시도하고, 안되는 것은 민간과 컨소시엄을 구축해 시장의 반응을 살핀다. 현재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귀를 열고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마포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창업허브(SBA), 출처: 서울시
서울시 마포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창업허브(SBA), 출처: 서울시

이어서 그는 “시장과 소통하길 원한다. 스타트업 성장, 스케일업이라는 큰 주제는 정했다. 갈 길은 명확하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세부적인 것을 조율하고 있다. 지속적인 수정이다”라며, “도저히 정부, 지자체만의 힘으로 어렵다고 판단하면, 민간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그렇게 연결한 것이 SBA가 구축한 파트너들이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사례에 대해 송 과장은 지난 8월말 시행한 인건비 지원 사업을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스타트업 생태계는 전례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 소재 스타트업에 대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총 5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되는 바이오, 비대면 등 유망 분야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7일부터 5인 이상 서울 기술 창업기업(투자유치 누적금 1억 원~50억 원 기업)을 대상으로 1인당 월 100만 원의 인건비를 총 1만명에게 지원했다. 이는 지난 6월 서울시가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대응 기회 선점을 위한 차세대 유망 스타트업 스케일업 전략의 일환이다.

인건비 지원의 가장 큰 목적은 스타트업이 추진하고 있는 기술, 제품 개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기술 인력의 고용안정성을 높여 고용시장 충격 완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인건비 지원 사업은 단순 고용지원금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민간투자자 등으로부터 투자유치를 받은, 기술력과 사업성을 검증받은 유망 스타트업에게 기술인재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유망기업을 위한 성장 지원금’이다.

서울시 우수스타트업 기술인력 인건비 지원 사업 포스터, 출처: 서울시
서울시 우수스타트업 기술인력 인건비 지원 사업 포스터, 출처: 서울시

‘스타트업 기술인력 인건비’는 상시 고용인원 5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1인당 월 1백만 원씩 5개월간 지급한다. 15인 이상 기업의 경우 최대 7명까지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기업 당 3명까지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지원신청규모와 잔여예산 등을 고려해, 10인 이상~15인 미만 기업의 경우 2명을 추가(최대 5명)로 지원하고, 15인 이상 기업의 경우 4명까지 추가(최대 7명) 지원한다.

인건비 지원과 함께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을 위한 자금 지원도 나섰다. 경쟁력있는 스타트업이 성장 동력을 잃지 않도록 ‘성장촉진 종합패키지’ 방식으로 총 100억 원을 지원한다. 제품화, R&D, 인력고용, 판로개척 등 기업에게 필요한 부분을 파악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4차 산업혁명, 스마트시티, 바이오‧의료 등 미래먹거리 성장 산업 분야 기업 중 2018년 이후 국내‧외 벤처투자기관으로부터 1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의 누적투자유치 실적을 보유한 ‘유망 스타트업’ 100개사를 선발해 각 기업별 최대 1억 원씩 지원한다. 지원 대상 선별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신청하는 방식이 아니다. 민간벤처투자기관이 직접 투자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스타트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는 곧 민간과 함께 대화하고, 호흡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힘들어 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정책을 밝힌 서울시 송광남 투자창업과장
코로나19로 힘들어 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정책을 밝힌 서울시 송광남 투자창업과장

송 과장은 “서울창업허브의 이태훈 본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심사위원 10여명이 스타트업 발표 내용을 10분 정도 듣고 지원 기업을 선발하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고. 짧은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스타트업이 얼마나 많이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라며, “함께 해야 한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많은 민간 파트너와 정부, 지자체가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자 한다”라고 강조했다.

선순환 구조다.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향한 목표. 많은 관계자, 많은 관계사가 뭉쳐 하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가 추구하는 바다. 송 과장은 “혁신을 가져오려면, 스타트업이 혁신하려면, 해당 팀과 팀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이 다양하고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 서로를 믿는 신뢰는 기본이다”라며, “서울시도 스타트업이었다. 우리도 배우는 과정이었고,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배울 각오를 다졌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타트업 지놈으로부터 서울시 창업 생태계를 글로벌 Top 20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아직이다. 서울시의 경쟁력은 이대로 만족할 수 없다. 일본 도시개발 조사기관인 모리메모리얼재단(MMF) 산하 도시전략연구소가 발표한 '글로벌 파워 시티 지수'(GPCI)에 따르면, 서울시는 런던, 뉴욕, 도쿄, 파리, 싱가포르, 암스테르담에 이어 7위에 위치한다”라며, “앞으로도 우리 서울시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스타트업 스케일업 정책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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