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인의무고용제, 채용만이 능사는 아니다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워진 (비장애인)외제차를 보면 왠지 무력감이 들곤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에 의문을 던질 이는 없겠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듯한 우리 사회의 정책은 비단 장애인 주차구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호랑이 발을 묶는다 하여 토끼 힘이 세지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고용 문제도 그렇다. 개별 기업에게만 '3.1%'의 의무고용비율을 강제 적용한다 해서 장애인이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완성하긴 어렵다. 그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직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그들 손에 적절한 능력을 쥐어줘야 한다.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근로자 중 79.5%가 경증 장애인이고, 단 20.5%만이 중증 장애인이다. 장애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증 장애인 수가,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 보다 약 4배 가량 많다. 이는 80%에 가까운 장애인이 단순 보호 대상이 아닌, 개인 능력을 바탕으로 소득 생활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음을 뜻한다.

중증 장애인이라 해서 직업 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 수집 가공 및 소프트웨어 테스트 기업인 '테스트웍스'는 발달장애인을 소프트웨어 테스팅 인력으로 고용했다. 테스트웍스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직원이 이미지 속 특정 개체를 캡처하는 바운딩 작업과 회귀분석 등의 업무를 비장애인보다 훨씬 정확하게 해낸다.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아 올바르게 적용한 사례다.

장애인 채용이 아닌 육성이
필요하다
장애인 채용이 아닌 육성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다른 장애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업 생활이 어렵다고 알려진 발달장애인도 충분히 개인 능력을 활용해 노동을 제공하고, 경제활동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확인됐다.

하지만 전체 장애인의 27%가 여전히 제한된 창의와 판단만 필요한 단순 노무 업무에 종사한다(한 눈에 보는 2019 장애인 통계). 여기에 장치나 기계를 조작/조립하는 직무를 더하면 그 수는 전체의 39.9%까지 늘어난다.

장애인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투게더'가 진행한 장애인 직업 교육 과정을 통해 이 같은 직무 편향을 설명할 수 있다. 워크투게더의 교육훈련정보를 들여다보면, 업무지원, 주차 안내, 바리스타나 문서 관리 등 여전히 단순 노무 위주의 훈련이 대부분이다.

장애인 고용 의무가 있음에도 고용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기업의 54.8%가 '적합한 직무 부족'을 그 이유로 꼽았다(2019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 국가가 나서서 물품 관리, 주차 안내, 바리스타 및 사무 보조직과 같은 단순 직무 종사자를 양성하고 있음에도, 기업들은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인적 자원을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양성하는 지금의 실태는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비아의 경우 전체 직무의 70% 이상이 개발자/엔지니어와 같은 전문 직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30%도 서비스 기획이나 UI/UX 디자이너(소프트웨어 상의 사용자 경험 전반을 디자인), 테크니컬 라이터 등과 같이 IT 업계의 고유한 특성이 반영된 직무다. 사실상 단순 노무 직무가 필요하지 않은 기업 환경에서, 장애인 고용 의무 이행만을 위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단순 노무 직무를 무작정 만들어낼 순 없는 노릇이다.

가비아 인사 담당자는 "장애인도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도록 직무를 선택함에 있어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이러한 생각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장애인 채용 과정에 참여한 가비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장애인 지원자 중 실질적인 개발 업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지원자 자신이 한 사람 몫을 다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라고 회상했다.

도입된 지 30년이나 된 장애인 의무고용제에는 강제된 채용은 있으나, 채용을 위한 육성(育成)은 없다. 다양한 직무 선택지를 바탕으로 한 자기결정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업주 중심의 시혜적이고 의존적인 고용제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장애인 고용 문제는 기업이 처한 실제 현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반영한 육성으로써 풀어낼 수 있다. 장애인이 특정 직역에만 종속되지 않고, 직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도록 본질적인 교육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늘 하는 소리로,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가비아는 장애인이 IT 업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실무 교육을 외부 기관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목표는 단순 채용에 있지 않다. 꼭 가비아에 입사하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IT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기업별 직무 구성을 고려해 장애인을 육성해야 할 의무는 오직 기업에만 있지 않다. 3.1%라는 일률적인 의무 부과만을 앞세워 매해 상승하는 장애인 고용률을 자축하기 보단, 국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애인 육성 사업을 운영하거나 직무 교육으로 인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등 실질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본질을 벗어난 피상적인 직무 교육은 장애인 노동시장의 수요 불균형을 야기한다. 나아가 이 같은 교육 시스템은 우리 사회에 장애인의 직무 능력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은 어쩌면 부족한 제도와 교육으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장애'를 학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글 / 가비아 콘텐츠팀 양희리
정리 / IT동아 김영우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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