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흥망사] 끝내 이루지 못한 '콜라독립'의 꿈, 815콜라

김영우 pengo@itdonga.com

애국심이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뜻한다.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적거나 없다면 국가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다만, 이런 숭고한 의미와 어울리지 않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마케팅에 애국심을 결부시키는 경우도 있다. 내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곧 나라 사랑이라는 이른바 '애국 마케팅'이 그것이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존중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애국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 다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으나, 의외로 유사한 사례는 오래 전부터 많이 있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시절에는 정부기관이나 시민단체가 아닌 일반 기업들이 애국 마케팅에 편승하기도 했는데, 1998년 범양식품에서 출시한 '콜라독립 815(이하 815콜라)'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1998년 출시된 범양식품의
815콜라
1998년 출시된 범양식품의 815콜라

코카콜라 라이선스 생산하던 그들이 815콜라를 출시한 이유

범양식품은 1973년에 설립된 음료 생산업체로, 대전시에 본사를 둔 자본금 45억 원 수준의 중소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미국 코카콜라 컴퍼니로부터 원액을 받아 국내용 코카콜라를 라이선스 생산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하지만 한국 시장이 점차 커지자 미국 코카콜라 컴퍼니는 한국에서 직접 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95년, 범약식품과의 계약을 해지했으며, 1997년에는 한국코카콜라를 설립하게 된다.

위기를 맞은 범양식품은 그동안 코카콜라를 라이선스 생산하던 경험을 살려 독자 브랜드 음료를 생산,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98년 4월에 출시된 콜라독립 815, 통칭 ‘815콜라’였다. 815콜라가 출시된 당시는 대한민국 전체가 외환위기의 여파로 신음하고 있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대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해외자본의 손에 넘어가고 있었고, 서민들 역시 대규모 정리해고 및 취업난, 물가폭등에 시달리며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출시된 815콜라는 위기에 처한 한국 토종 기업의 명맥을 되살리고 무너진 한국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운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어필하는 마케팅을 했다. 제품명 및 광고 문구에 '815', '콜라독립'이 들어간 것 역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날인 8.15 광복절을 떠올리게 하기 위함 이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인 한글과컴퓨터 역시 자사의 문서 편집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의 특별판을 '한/글 815'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815 마케팅'의 전성기였다.

'콜라독립전쟁' 강조한 애국 마케팅의 결과는?

또한 815콜라를 출시한 범양식품은 자사가 예전에 코카콜라를 라이선스 생산하던 업체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815콜라의 맛이 코카콜라와 별다를 것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 였다. 이는 당시 해외자본의 본격적인 침투에 거부감을 느끼던 한국 국민들의 심리를 강하게 자극했으며, 몇몇 연예인이나 정치인들 역시 이에 호응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8년 방영된 815콜라의 TV 광고(모델:
최종원)
1998년 방영된 815콜라의 TV 광고(모델: 최종원)

특히 범양식품은 1998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이른바 '콜라독립전쟁' 이벤트를 열고 판촉사원을 '815 독립군'으로 칭하는 등, 상당히 노골적인 애국 마케팅을 했다. TV나 신문 등을 통한 광고 역시 대대적으로 하면서 이 제품이 해외자본에 맞선 국산 제품이라는 점을 크게 강조했다. 이런 마케팅이 초기에는 효과가 있었다. 1999년, 815콜라는 국내 콜라 시장에서 점유율이 13.7%까지 올라가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범양식품이 외친 '콜라독립'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한계를 맞이한 '콜라독립'의 꿈

하지만 815콜라의 활약은 곧 한계를 맞이했다. 인지도가 높아졌다고는 해도 일개 중소기업인 범양식품이 글로벌 거대기업인 코카콜라와 정면 승부를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코카콜라는 8.15 콜라가 등장할 즈음인 1998년 상반기에 91억 800만원의 광고비를 지출했는데,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80%나 커진 액수였다. 같은 시기의 범양식품 역시 만만치 않은 액수인 14억 9,700만원에 달하는 광고비를 썼다. 이 정도만 해도 회사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큰 출혈이었지만, 코카콜라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였다.

그리고 이 시기를 즈음해 코카콜라는 유통망을 상대로 대규모 물량공세, 그리고 할인 공세를 본격화했다. 코카콜라와 815콜라의 판매가격이 거의 비슷해진 것이다. 그리고 815콜라의 맛에 대해서 혹평을 하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범양식품이 이전에 코카콜라를 라이선스 생산하던 경험이 있긴 했지만, 코카콜라의 원액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체 기술력 만으로 코카콜라의 맛을 완전히 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코카콜라처럼 제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지 못해 생산 시기, 혹은 구입처에 따라 815콜라는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 웅진식품에서 재출시한 815콜라
2016년에 웅진식품에서 재출시한 815콜라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 국가경기가 상당부분 호전되었고, 외환위기 시절에 지나치게 강조된 애국 마케팅에 싫증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고, 맛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으면서 가격도 코카콜라와 그다지 차이가 없는 815콜라는 점차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815콜라는 점차 매장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2004년, 생산을 중단했다. 그리고 2005년 3월, 범양식품은 파산선고를 받고 쓰러지게 된다. 이후, 브랜드를 인수한 웅진식품에서 2016년에 815콜라를 다시 출시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글로벌 시대에 갖춰야 할 기업의 경쟁력은?

애국 마케팅은 적절히 이용하면 경우에 따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IMF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인 재난, 혹은 월드컵과 같은 전국적 규모의 이벤트가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도 제품의 품질과 차별화된 특징, 그리고 적절한 가격이다. 815콜라는 이 중 그 어느 것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초반에 반짝 관심을 끈 후 시장에서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010년대 이후, 애국 마케팅에 집중하는 기업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대 기업의 상당수는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기업의 본사 위치나 CEO의 출신지에 따라 기업의 국적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므로 애국 마케팅의 효용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기업들은 골똘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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