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NGA

[CEO 열전] 천원샵의 창시자 야노 히로타케... 배경은 귀차니즘?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천원샵이란 1000원 내외의 저렴한 생활용품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슈퍼마켓을 의미한다. 이런 형태의 사업은 일본에서 시작했다. 천원샵은 일본어로는 100엔샵(100円ショップ)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해 1990년 초 일본 거품경제 시기에 급성장했다. 2000년대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등장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러한 100엔샵이라는 아이디어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 최대의 100엔샵 '다이소(Daiso)'의 창업주이자 현 최고경영자인 야노 히로타케(矢野博丈, やの ひろたけ)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00엔샵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다이소를 창업해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낸 그의 일대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야노 히로타케
<야노 히로타케 일본 다이소 창업자. 일본 다이소 제공>

사업 실패 후 야반도주... 불우하기 짝이 없던 사업가

야노 사장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중국 베이징에서 8남매 가운데 5번째로 태어났다. 사실 야노 히로타케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쿠리하라 고로였다. 쿠리하라 가문의 다섯 번째 아이라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그의 형제들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야노 사장은 의사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일본의 명문 사립대 주오대학 이공학부의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어린 시절 권투에 심취해 1964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의 삶은 변했다. 야노 사장은 히로시마 지방 유지의 딸이었던 아내와 결혼한 후 야노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집안의 후계자란 의미에서 성과 이름을 현재 이용하는 야노 히로타케로 변경했다. (우리나라에선 매우 보기 힘든 사례이지만, 일본에서는 딸만 있는 집안이 데릴 사위를 들인 후 사위에게 집안의 성을 주고 가문을 이어가는 경우가 제법 흔한 편이다.)

다이소
<일본 다이소 로고>

야노 사장은 장인에게 방어 양식장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3년 만에 700만 엔에 이르는 엄청난 빚을 지고 빚쟁이들을 피해 야반도주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 야노 사장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세일즈맨, 화장지 교환업, 볼링장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힘든 생활을 했다. 9번의 전직 후 1972년 약간의 종잣돈을 모은 야노 사장은 다양한 잡화를 이동하면서 판매하는 '야노 상점(矢野商店)'을 창업했다.

창업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야노 사장이 선택한 사업은 도산했거나, 자금 사정이 어려운 기업의 재고품을 저렴하게 매입한 후 이를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하는 것이었다. 즉, 현재 '지하철 행상인'들과 같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 여기에 화재라는 악재까지 일어나 그의 사업을 더욱 힘들게 했다. 힘들게 구매한 제품들이 불타버린 충격으로 그의 아내는 몸져눕게 됐다.

결국 야노 사장은 홀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행상인을 하게 됐다. 상품 진열 및 정리, 보충, 회계까지 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찬 미래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온 야노 사장은 결국 만사가 귀찮아졌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모든 제품의 가격을 원가와 관계없이 100엔으로 매긴 후 이를 판매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에 이어 4번째 슈퍼마켓으로 평가받는 100엔샵은 이렇게 한 사업가의 아픔과 '귀차니즘(만사가 귀찮음을 일컫는 속어)' 속에서 태어났다.

가격은 100엔이어도 품질은 그 이상... 100엔샵에 대한 편견을 부수다

100엔샵은 온전히 야노 사장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1970년대 이미 모든 제품의 가격을 하나로 통일하고 이를 판매하러 다니는 행상인들이 존재했다. 야노 사장은 단지 이를 100엔이라는 황당무계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책정했던 것뿐이다.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 등의 문제로 제품 원가가 상승하자 이러한 균일가 행상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야노 사장은 행상인끼리 모여 다니며 특정 장소를 하루 정도 임대해 판매를 진행하고 다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러한 친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1977년 야노 상점의 이름을 '다이소 산업(大創産業)'으로 변경하고 법인화를 추진했다. 비록 회사 규모는 작지만, 물건만큼은 크게 다루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야노 히로타케
<개업 초창기 다이소. 일본 다이소 제공>

다이소는 이렇게 균일가 행상인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하는 행사에서 시작했다. 주요 판매 장소는 슈퍼마켓의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을 보유한 슈퍼마켓들에게 부탁해 장소를 임대한 후 100엔짜리 제품을 판매했다. 슈퍼마켓 관계자들은 행상인들의 100엔짜리 저가상품이 미끼가 되어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야노 사장과 다이소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야노 사장은 100엔샵이 단순히 미끼상품에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100엔샵의 상품들의 원가는 개당 70엔 이하였기 때문에 품질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 두고 일본 주부들은 100엔샵 상품은 싸서 좋지만, 싼 맛에 쓰는 비지떡에 불과하다고 불평했다. 이를 들은 야노 사장은 구매 스타일을 바로 변경했다. 제품 매입가를 98엔까지 올려 100엔으로 가능한 최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슈퍼마켓의 주차장을 빌려 대규모 세일즈를 시작한 후에는 일부 제품을 100엔 이상으로 매입해 100엔에 판매하기도 했다. 가격은 저렴해도 품질은 저렴해서는 안된다는 야노 사장의 비즈니스 전략은 적중했다. 덕분에 다이소의 제품은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주부들에게 받게 됐다.

야노 사장은 행상인들의 제품은 A/S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고객들의 지적도 안타깝게 여겼다. 때문에 고객이 다이소를 통해 판매된 제품에 즉시 클레임을 걸고 판매자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고객들의 신뢰가 증가했고, 이는 다이소가 100엔샵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돌아왔다.

야노 히로타케
<1990년대 일본 다이소 매장 분위기>

하지만 일본의 유통기업 다이에의 나카우치 이사오 사장이 장소 대여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야노 사장과 다이소 사업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매장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장소 임대를 중단한다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100엔짜리 미끼상품이었던 다이소의 매출이 늘어나면서 정작 소비자들이 슈퍼마켓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이렇게 슈퍼마켓이 다이소를 거부하는 것을 본 야노 사장은 다이소가 살아남으려면 행상인 형태를 버리고 유동인구가 있는 곳에 매장을 차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아이디어인 100엔샵을 본격화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1991년 최초의 다이소 매장이 설립됐다. 위치는 시코쿠섬 다카마쓰 시였다. 자본이 부족했던 야노 사장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에 첫 번째 매장을 내야만 했다.

단 한 번 주어진 천운을 움켜쥐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야노 사장은 대단히 불행한 사업가다. 결국 선택한 100엔샵도 그리 큰 돈이 되지 못했다. 처음 다이소 매장을 낼 때만 해도 일본 전국에 널린 슈퍼마켓 주인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기회가 야노 사장에게 주어졌고, 그는 이를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그 기회란 바로 '일본의 거품 경제'다.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고 1990년 초부터 일본 경제는 10년이 넘는 장기 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많은 백화점과 슈퍼마켓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다이소 같은 100엔샵에겐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소비자들은 1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제법 쓸만한 품질의 제품을 판매하는 다이소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다이소의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5000만 엔에 불과했던 자본금은 27억 엔으로 급증했고, 2000년에는 일본 '벤처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다.

야노 히로타케
<2009년 대만에서 다이소로 브랜드 대상을 받은 야노 사장. 일본 다이소 제공>

다이소의 매장은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판매하는 제품도 100엔 일변도에서 벗어나 '고액상품'이라는 이름으로 150~200엔으로 확대했다. (1500~2000원이 고액이냐는 지적은 하지 말자. 다이소 입장에선 기존 제품보다 50~100%나 비싼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니 나름 고액이 맞다.) 2004년에는 고액상품이라는 이름을 폐지하고 100엔의 배수인 200, 300, 400, 500엔짜리 제품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500엔을 넘는 고액(?) 제품은 다이소의 콘셉트와 맞지 않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급성장한 다이소는 2000년대에 들어 마침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 특정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함으로써 해당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받는 업계의 큰 손이 된 것이다. 다이소는 더욱 많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 슈퍼마켓과 경쟁에서 앞서나가게 된다. 100엔샵이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에 이은 4번째 슈퍼마켓 모델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다이소는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기 시작했다. 2001년 8월에는 대만, 9월에는 한국에 지분 투자를 통해 첫 번째 매장을 설립했다. 이후 아시아 전역과 미국에도 매장을 냈다. 다이소가 직접 진출한 경우도 있고, 현지 회사와 합작해 진출한 경우도 있다. 한국의 경우 아성산업과 협력해 진출한 상태다.

다이소
<다이소글로벌 홈페이지에 있는 매장 위치도(왼쪽). 빨간 동그라미 안에 있는 한국은 매장이 없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연혁에는 2001년 한국에 첫 번째 매장을 낸 것으로 적혀있다>

다이소 글로벌 홈페이지에는 한국 지점이 없는 것으로 돼 있으며 글로벌 매장 숫자에서도 한국 매장은 빠져 있다. 한국 다이소가 한국 기업 소유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민한 한일관계를 감안해 표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연혁에는 2001년 한국에 첫 매장을 오픈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 그 반증이 아닐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주변 시장의 구매력을 분석한 후 매장 크기를 달리하는 다이소의 전략은 주효했다. 작은 슈퍼마켓만 한 매장부터 1000~2000평 이상의 대규모 매장까지 다양한 크기의 매장을 일본 전역에 설립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다이소는 일본에만 3150개, 전 세계적으로 4000개(한국 1200개 제외)의 매장을 보유한 명실상부 100엔샵의 선두주자다. 세리아, 캔두, 왓츠 등 일본 내에 많은 경쟁자가 생겨났지만, 이들을 모두 합쳐도 다이소의 매출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다이소는 상장 기업이 아닌 야노 사장의 개인 기업이라 매출이나 매장 규모에 관한 정보가 자세히 공개되어 있지 않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도 2014년 것으로 업데이트가 잘 되지 않고 있다. UBS그룹 AG에 따르면 다이소는 2016년을 기준으로 6000억 엔(약 6조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매출을 토대로 야노 사장의 재산은 19억 달러(약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블룸버그 기준). 방어 양식에 실패해 야반도주한 청년 사업가가 50년 간의 노력 끝에 100엔샵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개척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사장님의 황당 발언...너무 솔직한 게 죄?

야노 히로타케 다이소 사장은 성공한 기업가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황당한 발언으로 국내와 일본 웹 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좋게 말하면 진솔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발언으로 보인다. 100엔샵 아이디어를 낸 유통업계의 혁명가이자, 세계 최대의 100엔샵 다이소를 창업한 억만장자의 황당 발언은 이렇게 알려졌다.

다이소
<일본 다이소 매장 전경. 일본 다이소 제공>

야노 사장 인터뷰,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황당발언 버젼

#
Q. 브랜드 재팬 2012에서 다이소가 처음 10위 내에 진입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는 9위입니다.
A, 브랜드라면 그런 거잖아... 모카라든가 킬리만자로라든가.
Q, 그건 블렌드입니다.

#
Q. 2009년부터 POS 시스템을 직영점에 도입해 판매 데이터를 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나왔습니까?
A. 사실 PC를 통해 전달되고는 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터넷 같은 것도 모르는 구식 인간이라...

#
Q.100엔샵 업계 2위인 세리아는 매우 정밀한 분석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에 "세리아에 상점에서도 제품에서도 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아는데 진심이신가요?
A. 6년 전(2006년)까지 다이소는 망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다이소 따위는 바닥이 얕은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
Q. 2012년 매장의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했습니다. 파스텔톤과 핑크색을 적극 채용하고 대형 아크릴판을 아낌없이 장식에 사용했습니다. 상품 패키지에서도 젊은 여성을 위한 버라이어티샵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A. 모두 직원들이 정했습니다. 제 의견은 모두 부정당했죠. 제 생각은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온 이론이라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
Q.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데, 즐거우신가요?
A, 산다는 것은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
고객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다이소에 와서 물건을 사는 걸까요?

#
경영 전략 같은 것은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전에 미즈호 은행장과 함께 밥을 먹을 때 곧 다이소가 망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야노 사장은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은 아니지만, 한 번 출연하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일반적인 사업가들이 자신과 자신의 사업에 대해 매우 강한 자신감을 갖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 이러한 야노 사장의 발언을 사람들은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터넷 회자 버전은 일부 내용만 부각한 것이다. 야노 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두 번에 걸친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야노 사장이 전하고자 했던 참뜻은 사라지고 많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생긴 특유의 솔직하고 부정적인 표현만 남았다. 몇가지 우스운 멘트만 강조한 것은 악의적인 편집이라는 생각도 든다. 야노 사장이 진짜 전하고자 했던 다이소의 참된 경영철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야노 히로타케
<야노 사장. 동아일보DB>

야노 사장의 속마음

#
Q. 순위 급상승이 놀랍습니다. 수상소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홈페이지나 매장 등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A. 그것은 확실히 사실입니다. 저는 정말 열화(낡음)가 심한 인간입니다. 때문에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있어요. 예전에는 나름대로 자신감이나 힘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없어졌습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일을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
Q. 매일 아침 전 직원이 진행하는 상품 반출 작업은 여전히 계속하고 있습니까?
A. 최근 다른 회사에 아웃소싱을 맡긴 바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 3월부터는 관두고 다시 모든 직원이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상품 반출 작업을 하지 않자 쓸쓸하다" "조례 같아서 재미있었다" "컨디션에 악영향을 준다" 등의 아쉬운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상품 반출 작업은 모든 직원이 직위와 나이에 관계없이 짐을 나르고 몸을 움직이며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를 포함해 모든 직원은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외주로 맡기면 이것이 일이 아니라 작업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예전 경험이 생각납니다. 한 상점에 들어가 상점이 더럽다고 말하자 당시 점원이 "청소 담당자에게 말해두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매장이 더러운 것을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귀찮은 작업이라고 인식한 것입니다. 때문에 다이소는 모든 직원이 매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도록 했습니다. 청소가 힘든 작업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겁게 처리해야 할 일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100엔샵은 매우 힘든 사업입니다. 모두가 함께 땀 흘리지 않으면 해낼 수 없습니다.

#
Q. 100엔샵 업계 2위인 세리아는 매우 정밀한 분석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에 "세리아와 비교하면 상점과 제품 모두 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아는데 진심이신가요?
A. 6년 전(2006년)까지 다이소는 망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다이소 따위는 바닥이 얕은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우리의 제품을 사주는 것을 보면서 이 사업도 괜찮지 않나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세리아가 치밀한 분석으로 고객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뒤처진 것입니다. 이를 매우 큰일이라고 여기고 필사적으로 반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
Q. 2012년 매장의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했습니다. 파스텔톤과 핑크색을 적극 채용하고 대형 아크릴판을 아낌없이 장식에 사용했습니다. 상품 패키지에서도 젊은 여성을 위한 버라이어티샵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A. 새 매장은 조명, 통로, 넓이, 디스플레이 등 모든 것을 고객이 원하는 바에 맞춰서 디자인했습니다. 모두 직원들이 정했습니다. 제 의견은 모두 부정당했죠. 제 생각은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온 이론이라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대입니다. 진화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이대로 가면 사업이 망할지도 모르겠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했습니다. 위기 상황을 반등시킬 변화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리아, 캔두 모두 위협적인 경쟁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다이소가 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변화하지 않는 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젊고 유능한 인력들이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직원들이 침몰하는 배를 다시 꺼내준 것입니다.

#
Q.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데, 즐거우신가요?
A. 산다는 것은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즐거움은 노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