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스타트업 바로 알기]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육성하라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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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많은 이가 스마트폰을 휴대하기에 이와 관련된 스타트업을 시도하려는 이들이 넘쳐 난다. 실제 스마트폰 사용자 특정 집단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거나, 기존에 접하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순식간에 성공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에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으레 '카카오톡'이나 '배달의 민족', '직방' 같은 스마트폰 연관 앱과 서비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성공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특히 2030의 젊은 층)이 너도나도 뜰 만한 앱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관련해서 이번 글에서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이상으로 중요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아래 도표는 미국에서 1992년~2013년 내 벤처캐피탈이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투자한 년도별 금액 그래프다. 2013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금액은 한화 9,500억 원에 이른다. 3D프린터나 오픈소스 하드웨어에 힘입어 시제품 생산이 과거보다 손쉬워지고, 크라우드 펀딩의 대중화로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곳에 많은 돈이 몰린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국처럼 하드웨어 스타트업 붐이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그 이유로 3가지를 든다.

미국 벤처캐피탈 투자 금액
미국 벤처캐피탈 투자 금액

첫째,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려면 최소 다음의 8단계를 거쳐야 한다. 바로, 기획 -> 디자인 -> 설계 -> 시제품 제작 -> 신뢰성 확보 -> 제품 생산 -> 유통 -> AS다. 각 단계마다 사람이 필요하며,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제품은 일반적으로 고객이 수년간 사용한다. 이에 제조사는 신뢰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한다. 온도 테스트(고습 테스트, 고온 테스트, 열충격 테스트, 저온 테스트 등)와 내구성 테스트(낙하 테스트, 진동 테스트, 특정 부위 누름 테스트 등)는 기본이며, 해당 제품의 고유 특성에 따른 추가 테스트도 셀 수없이 많다(예를 들면 휴대폰 신뢰성 테스트 룸에는 약 400개가 넘는 종류가 존재한다). 또한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금형설계, 금형제작, 사출, 조립, 검사 등 각 단계별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이마저도 단계를 간단히 축약한 것). 또한 유통과 AS도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이에 반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어떠한가? 온도 테스트와 내구성 테스트 등 물리적 테스트는 아예 없다. 시제품(프로토타입) 제작과 양산 제품의 개발은 동일한 개발자로도 가능하다. 유통, 판매, AS 등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따로 필요 없다. 이처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다양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반드시 도모돼야 한다.

둘째, '생태계'를 만드는 수단이 된다. 생태계(혹은 플랫폼)의 중요성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필자가 앞서 연재한 '3D프린터의 세계(http://it.donga.com/20694/)'에서도 언급했는데, 새로운 생태계 탄생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중국의 휴대폰 업체 샤오미(小米)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휴대폰 제조 공장이나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휴대폰 제조를 외부에 맡기며 시작했다. 행동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원가 수준의 매우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개선한다. 이런 방식으로 충성 고객을 만들고 수익은 유료 게임과 광고로부터 얻는다. 약 5년 간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샤오미가 일반 게임회사처럼 게임 자체로 고객에게 어필했다면, 샤오미도 아주 획기적인 게임을 내놓지 않고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샤오미는 현재 휴대폰만 아니라 텔레비전, 헤드폰, IT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샤오미 헤드폰
샤오미 헤드폰

< 샤오미 헤드폰을 홍보하는 샤오미 홈페이지 - http://www.mi.com/en/miheadphones >

샤오미가 이렇게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이유는 하드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만들어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그 매니아 고객으로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 플랫폼을 디딤돌로 삼아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하는 전략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떠한가? 제품 판매로 수익을 올리기에 급급하다. 고객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제품에 충실하게 반영하는 제조사가 과연 몇 곳이나 될까? 이런 분위기 탓에 우리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단순히 '제조 스타트업'으로 인식한다. 더불어 중국 등에서 모방하면 그만이기에 선뜻 도전하기조차 꺼린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중요한 세째 이유는, 한번 놓친 기술 트렌드는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 대비 2배에 육박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투자가 미국에서 2013년에 이루어졌다. 투자 대상에 해당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새로 신설된 곳도 있지만, 2000년 경에 생겨난 스타트업으로 2번째 혹은 3번째 주력 개발 상품에 대한 투자가 상당 수다. 조본(Jawbone), 소노스(Sonos), 리트로(Lytro) 등이 그 예다.

4번의 투자를 받은 리트로
카메라
4번의 투자를 받은 리트로 카메라

< 리트로 1세대 카메라-왼쪽 사진, 4번에 걸쳐 총 1,500억을 투자 받은 리트로 카메라-오른쪽 사진 - https://store.lytro.com >

다시 말해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설립 초창기에 제품이 크게 히트하지 못했더라도, 불굴의 투지와 노력으로 재도약해 좋은 제품으로 개선되면 큰 돈이 몰린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지속적인 기술 축적과 아이디어 업그레이드를 실시하여 제2, 제3의 개선품이 나올 때 성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보다 성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초창기 제품의 한계나 문제점을 개선하고 아이디어를 추가할 때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가치는 급격히 높아진다. 일회성 아이디어가 아닌 꾸준한 인내심과 중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자,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근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 낸 그럴듯한 제품을 본적이 있는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아닌 기존 주요 업체까지 포함하더라도 딱히 떠오르는 제품이 없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꼭 필요하건만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럴듯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발견하기 어려운 걸까?

불과 5~10년 전만 하더라도 제조를 근간으로 하는 하드웨어 관련 중소기업들이 국내에 많이 존재했다. 통신 산업과 닷컴 열풍에 힙입어 다양한 기기와 설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으면 벤처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이때 다양한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고 산업 전반의 제조 혁신도 일어났다. 필자는 통신기기 제조사에 근무했다. 여러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들고 필자의 회사를 찾아왔다. 필자가 수행한 핵심적인 일 한가지는 중소기업이 가져온 기술에 대해 실제 적용 가능성을 평가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술을 제품화하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은 자신들 기술을 평가할 장비가 부족하며, 정보 및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민감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제품 납품을 희망하는 '을'기업을 위해, 상대적으로 장비와 정보를 많이 보유한 '갑'기업이 을기업의 기술을 평가하고 실용성을 판단한다. 누가 등 떠밀어 하는 활동이 아니다. 갑기업은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여러 기술에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신기술을 보유한 을기업의 제품을 도입하는 게 더 유리하기에 그리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갑에 해당하는 기업마저 위태한 상태다. 그러니 을기업인 중소 기업들도 적지 않게 문을 닫고 있다. 뭐가 문제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외부 환경 요인 중 제어 불가능한 요인(예, 글로벌 과잉 투자 등)을 제외하고 따져보면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무분별한 수직 계열화다. 여기서 '무분별'이라는 개념은 이익 중심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중심의 판단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직계열화'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나 전략적으로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기 위하여 기업 인수합병(M&A)을 실시한다. 주로 대규모 기업이 소규모 기업을 인수한다. 중견기업 이상의 대기업은 사세 확장 및 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 전후방 산업의 기업을 인수한다. 중소기업은 자신의 회사가 팔리면 주로 경영진이 큰 돈을 거머쥐기에 인수합병을 결정한다. 이렇게 모기업에 인수되면 인수되기 전까지 여러 거래선을 갖고 있던 회사가 이젠 모기업을 위한 기술 개발에 힘쓰게 된다. 소위 '기술의 독점(exclusive)'이다. 신기술은 모기업 외 다른 기업에 절대 공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모기업의 경쟁력을 배가하는 데 당연히 도움이 된다. 또한 대기업에 인수됨으로써 적재적소에 큰 투자가 이루어져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헌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은 주력 사업 선정 후 나머지는 알짜 계열사라도 매물로 내놓는다. 여러 기술을 보유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 수요 및 공급에 대한 다양성이 존재해야 그 바탕에서 다양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나마 최근 대기업들이 매우 바람직한 활동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보유한 특허나 기술 중 무리가 없는 분야에 대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죽어버린 현 상황에 이런 모색을 통해서라도 불씨를 살려야 한다.

둘째,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의 늦은 도입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기술이나 제품을 소개하면서 목표 투자 금액과 목표액 달성 일정을 인터넷에 올리면, 일반인 누구나 이에 투자하여 향후 수익 발생 시 그 수익을 서로 배분하는 펀딩 방식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클라우드 펀딩이 금지돼 있다. 대표적인 해외 사이트로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가 있다.

신규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 마케팅, 영업, 유통을 직접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까? 물론 투자자의 확실한 신뢰를 얻어 좋은 가이드를 받는다면 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그런 신뢰를 줄 만큼 안정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사실상 거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제품 개발과 마케팅, 영업, 유통 등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물론 그래도 정부 등 각종 투자처에서 여러 방편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해외처럼 크라우드 펀딩이 보편화되어 있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하면 많은 일반인들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외 크라우드 펀딩은 수요 예측과 마케팅 측면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 속에서 좋은 아이템은 많은 투자자들의 투자를 이끌어 낸다. 또한 이런 투자자들은 해당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 제품 홍보에도 두 팔을 걷고 돕는다. 돈도 없고 마케팅, 영업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일면식도 없는 여러 투자자가 투자도 해주고 홍보도 해준다.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확률이 높겠는가? 전통적인 투자 방식의 성공 확률이 높겠는가? 답은 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크라우드 펀딩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이다.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

세째로, 정규 교육의 다양화 및 보편화다. 앞선 연재에서도 반복 언급한 대로, 중고등학교 때는 입시에 목을 메고 대학에 와서는 대기업 입사나 공무원 취직에 매달려야 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는 학생들은 대학으로 보내는 게 좋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학생들은 그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의 창의성이 학교 교육을 통해 모두 동질화되는 현 상황은 문제가 많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유망한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탄생하기에 우리의 현 상황은 매우 척박하다. 그러니 새로 탄생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주변에 있다면 아낌 없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사항이 신속하게 개선돼야 하겠다. 경영서적이나 자기계발서에는 '전략적 사고'라는 단어가 빠지질 않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중장기적으로 상황을 보고 현재를 모색해야 한다. 필요 이상의 단기적인 경기 부양은 되려 부작용을 낳는다. 스타트업 지원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기술 확보를 위해 성실히 노력한 스타트업과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민/관/사가 힘을 합치는 사례
민/관/사가 힘을 합치는 사례

< 일반인+중소기업+정부기관이 힘을 합치는 사례 : 경기콘텐츠 진흥원 홈페이지 캡쳐 >

위 그림은 매우 바람직한 사례다. 일반인의 아이디어를 실제 해당 상품 분야의 기업과 연계해 제품화를 도모한다. 난이도가 높은 기술 구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은 아니다. 일상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개선한 제품이나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을 실제로 만들어 보도록 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이런 공모전이 단발 기획 이벤트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크라우드 펀딩 등과 결부되어 활발하게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단기 부양보다는 중장기적인 전략과 실행이 절실한 시기다.

글 / 김영준 (3dbiz@naver.com)
한국 3D프린팅비즈니스코칭센터(K3DBC) 대표 겸 창의 혁신 강사.
새로움에 도전하기를 즐거워 하는 사람. 20건이 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18년 간 3D 설계 및 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 현재 3D프린팅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자 3D프린팅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3D프린팅 스타트업, 라온북>)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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