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페달 블랙박스’보다 시급한 ‘오조작 방지장치’
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지난해 경기 부천의 한 전통시장에서 1톤 화물트럭이 상인과 시민들을 덮쳐 4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직후 세간의 이목은 또다시 ‘급발진 여부’에 쏠렸지만, 논란은 채 하루도 가지 않아 종결됐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사고 트럭 운전석 발밑에 운전자 스스로 장착해 둔 ‘페달 블랙박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가 달려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차량 결함 가능성과 운전자의 착각·변명 사이
오늘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오류를 일으키듯, 자동차 역시 전자 신호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조사가 독점한 정보 불균형을 깨기 위해 급발진 교통사고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차량 결함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급발진이라 주장되는 모든 사고가 차량 결함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 수사 현장과 법정에서 마주하는 급발진 의심 사고의 상당수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밝혀집니다.
대형 사고를 낸 운전자가 형사처벌과 민사 배상 책임을 피하려고 급발진을 핑계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지만, 더 무서운 것은 운전자 스스로도 속는 ‘확증편향적 착각’입니다. 당황한 순간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잘못 밟으면, 차가 굉음을 내며 튀어 나갑니다. “왜 차가 안 멈추지?”라고 생각하며 가속페달을 더 힘껏 짓누르게 됩니다. 운전자는 사고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내 기억과 물리적 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사후 기록장치에 불과한 ‘페달 블랙박스’의 역설
급발진 논란이 커지면서 많은 운전자가 불안감에 운전석 발밑을 찍는 ‘페달 블랙박스’를 달고 있습니다. 제조사의 사고기록장치(EDR)를 믿지 못하겠으니 내 무고함을 영상으로 증명하겠다는 자구책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페달 블랙박스는 급발진 사고를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페달 블랙박스는 사고가 난 뒤 원인을 가려내는 ‘사후 채증 장치’일 뿐, 차가 인도로 돌진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브레이크를 대신 밟아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무죄를 입증하려고 달아둔 카메라가 법정에서는 운전자의 과실을 빼도 박도 못하게 증명하는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설령 영상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차량 결함을 입증하고 수년 뒤 손해배상을 받는다 한들, 이미 잃어버린 생명과 무너진 일상은 그 어떤 승소 판결문으로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불교의 ‘독화살 비유’, 누가 쏘았는가보다 멈추는 것이 먼저다
지금의 급발진 논쟁은 불교 경전 ‘전유경’에 나오는 ‘독화살의 비유’와 꼭 닮았습니다. 독화살에 맞은 사람이 당장 화살을 뽑으려는 의사에게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활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 독의 성분은 무엇인지 다 밝혀내기 전에는 절대 화살을 뽑지 마라”고 고집을 부리다 결국 독이 퍼져 숨지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로 위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의 순간적 오류를 사후에 완벽히 규명하는 것은 운전자에게도, 제조사에게도 지극히 어렵습니다. ‘범인이 운전자의 발인가, 제조사의 컴퓨터인가’를 따지는 건 독화살을 누가 쏘았는지 찾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에서 규명하기도 어렵고 생명을 구하는 대응책도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실수로 밟았든 기계가 오류를 일으켰든, 차량이 비정상적으로 돌진하는 것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와 “나는 안 헷갈려요”… 자동차에도 ‘입마개’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왜 운전자들은 정작 사고를 막아주는 오조작 방지장치 대신 페달 블랙박스에만 관심을 가질까요? “나는 베테랑이라 절대 페달을 헷갈릴 리 없다”는 과신 때문입니다.
이는 개 물림 사고에서 견주들이 “우리 개는 순해서 절대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믿는 것과 똑같습니다. 주인은 안 문다고 확신하지만, 만에 하나 발생하는 물림 사고는 타인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법은 견주의 주관적 믿음과 무관하게 맹견에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2톤에 달하는 쇳덩어리인 자동차는 통제를 잃는 순간 맹견보다 훨씬 치명적인 흉기가 됩니다. “나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는 운전자의 확신, 제조사의 차량에 대한 완전 무결함의 확신은 “우리 개는 안 문다”는 착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맹견에게 입마개를 채우듯, 자동차에도 전·후방 장애물이 있을 때, 가속페달을 밟아도 출력을 강제로 차단하는 기술적 입마개, 곧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를 채워야 합니다.
정부는 2029년 승용 신차부터 이 장치의 장착을 의무화하고 올해 8월 기존 차량용 튜닝부품 인증기준도 마련했지만, 2029년은 너무나 멉니다. 신차 의무화 시점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기존 운행 차량도 인증받은 오조작 방지장치를 쉽게 장착할 수 있도록 정부 보조금 지원과 자동차보험료 할인 특약 확대가 시급히 병행돼야 합니다.
마치며
급발진의 공포 속에서 페달 블랙박스를 다는 것은, 독화살이 날아오는데 방패 대신 범인을 찍을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완벽한 법적 방어는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고가 나지 않도록 차를 멈춰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술과 법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안전의 길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