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1세대 인터넷·클라우드 기업 가비아가 소용돌이에 빠진 이유?
[IT동아 김영우 기자] 지난달 24일, 경기도 과천시 가비아 사옥에서 흔치 않은 성명서 하나가 나왔다. 노동조합이 없는 이 회사에서, 등기이사를 제외한 임직원 411명 가운데 334명(81.3%)이 이름을 올린 공동성명이었다. "주식은 팔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일터는 팔고 떠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성명은 창립 이후 처음 나온 규모의 집단적 의사 표명이라고 한다.

계기는 명확하다. 국내 인터넷·클라우드 인프라 1세대 기업으로 꼽히는 가비아를 두고 창업자, 글로벌 사모펀드, 그리고 행동주의 펀드가 뒤엉킨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 사안을 다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토종 IT 기업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갈 위기"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두 가지를 놓친다. 하나는 가비아라는 회사가 지난 28년간 실제로 무엇을 쌓아왔는가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며 만든 제도가 정작 이 싸움의 무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업 28년간 순조로이 성장한 가비아
가비아는 국내 인터넷 산업의 태동기를 함께한 몇 안 되는 산증인 중 하나로 꼽힌다. 1998년 3월 설립돼 이듬해 도메인 등록과 웹호스팅 사업을 시작했다. 포털과 쇼핑몰, 기업 홈페이지가 막 늘어나던 시절, 국내 도메인·호스팅 시장을 개척한 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에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인증 국제도메인 등록기관으로 선정됐고, 2005년 10월에는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상장 당시 상반기 매출 66억원, 순이익 9억원 규모였던 이 회사는 20년이 지난 지금 연 매출 2800억원대, 영업이익 35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7년에는 인터넷 회선 연동(IX)·IDC·콘텐츠 전송 사업을 하던 케이아이엔엑스(KINX)를 인수해 데이터센터·네트워크 영역으로 사업을 넓혔고, 2013년 9월에는 국내 업체로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자체 IaaS 서비스 'g클라우드'를 출시했다. 2017년에는 국내 세 번째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을 취득하고 공공기관 전용 클라우드도 선보였다. 도메인·호스팅으로 시작해 IDC·클라우드·보안·그룹웨어까지, 국내 중소기업과 창업자들이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영역을 하나씩 넓혀 온 것이 이 회사의 대체적인 흐름이다. 지금의 경영권 다툼을 '가격이 적정한가'의 문제로만 보면, 국내 인터넷 산업 초기부터 이런 기반을 쌓아온 이력은 논의에서 곧잘 빠진다.

위기의 전말
현재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창업자 측인 김홍국 대표 등은 지분 24.4%를 글로벌 사모펀드 맥쿼리자산운용에 주당 4만8000원(직전 종가 대비 41.6% 프리미엄)에 매각하고 공개매수를 통해 자진 상장폐지하는 계약을 지난 7월 체결했다. 여기에 3대 주주 얼라인파트너스(지분 14.29%)와 2대 주주 미리캐피탈(지분 24.2%)이 가격이 낮게 책정됐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얼라인은 창업자가 매각대금을 재투자해 경영에 계속 참여하는 구조인 만큼 일반주주와 경제적 대가가 다르다고 문제 삼으며, 이사 정원 확대와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요구했다. 이사회 구성의 향방은 오는 10월 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소액주주 보호법이 어쩌다 공격 무기가 됐나
이번 다툼이 유독 격렬하게, 그리고 빠르게 이사회 재편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이어진 상법 개정이 있다. 2020년 감사위원 분리선출·3%룰 정비를 시작으로, 2025~2026년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을 2명 이상으로 늘리고, 자기주식 소각까지 의무화하는 개정이 잇따랐다.
취지는 분명했다. 대주주와 경영진만 보던 이사회가 전체 주주를 보게 하고, 한국 자본시장을 오래 짓눌러온 지배구조 불신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이 개정으로 주주가 이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 자체가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가비아가 바로 그 구체적인 무대가 됐다. 얼라인은 이미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주주제안으로 이사 2명을 5인 이사회에 진입시켰고, 이번 임시주총에서는 정원을 7명으로 늘려 추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와 개별 기업의 사정이 맞물린 결과가 지금의 가비아 경영권 분쟁이다.
선의로 만들어진 제도가 이끌어낸 의외의 결과물?
선의로 설계된 제도가 시장에서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2014년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대표적이다. 소비자 간 가격 차별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공평하게 비싼 값에 휴대폰을 사는 시장'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통 경쟁이 억제되면서 소비자의 이익보다는 통신사의 수익성 개선에만 도움이 되었다는 지적이 뒤따랐고, 팬택 등 일부 단말기 제조사가 시장에서 퇴출된 데에도 단통법이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통법은 시행 11년 만인 지난 7월에야 폐지됐다.
상속·증여세도 비슷한 사례로 거론된다. 최고세율 50%(최대주주 할증을 더하면 최대 60%)에 이르는 국내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막고 세대 간 재분배를 이루겠다는 취지로 설계됐다. 하지만 이 부담 때문에 가업이 승계 되지 못하고 해외 자본으로 유력기업이 넘어가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락앤락이 자주 거론돼 왔다. 밀폐용기로 유명한 락앤락의 김준일 창업주는 2017년 지분 전량(63.56%)을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6293억원에 매각하며 "경영권을 2세에게 상속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주주 할증까지 더한 실질세율은 65%에 달했다.
상법 개정과 단통법, 상속세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약자를 지키려는 좋은 의도'가 시장을 통과하며 다른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 번 만들어진 제도는 좀처럼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경영진의 책임은?
물론 이 대목에서 가비아 경영진의 책임도 짚을 필요가 있다. 가비아는 최근 3년간 시가배당률이 최고 0.69%(2022년), 배당성향은 최고 7.09%(2024년)에 그쳤다. 코스닥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갖춘 회사가 주주환원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저평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동안 이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꼽힌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맞이한 위기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외부 자본의 공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시장경제 체제에서 사모펀드의 투자 판단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지분 매집, 그에 따른 경영권 변화 자체를 도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맥쿼리의 인수 시도도, 얼라인과 미리캐피탈의 반발도 모두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합법적인 경제활동이다.
다만 그 판단과 별개로, 가비아가 이번 사태로 남기는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대한민국 IT 생태계를 초창기부터 개척해 온 기업 하나의 운명이, 기술력이나 서비스 품질이 아니라 지배구조 설계와 법 개정의 타이밍, 자본시장의 셈법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비아는 경쟁력을 잃어서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성장 잠재력을 갖췄기 때문에 저평가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그 꼬리표가 행동주의 펀드와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약자 보호라는 선의를 바탕으로 개정된 법률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는 10월 8일로 예정된 가비아의 임시주주총회 결과에 이례적으로 높은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날 이후 '가비아'라는 기업의 의의와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