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신고 포기하는 아동·청소년... "부모 통지 수사규칙 개정해야"
[IT동아 정연호 기자] 아동·청소년의 SNS 사용이 증가하면서 온라인 성착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SNS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온라인 그루밍을 통한 성착취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이 성범죄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꺼려해 관련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범죄 통계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과 배포 발생건수는 2020년 2621건으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디지털 기기나 온라인 플랫폼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10대 연령층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많이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0대는 SNS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신상정보를 밝히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심한 집단이다. 스마트폰으로 SNS를 많이 하는 만큼 온라인 성범죄에 취약하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아동·청소년은 인터넷에 더 많이 접속하게 됐고, 이들이 온라인에서 성적 행위를 강요받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를 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지원한 피해자 10명 중 2명은 10대였다(21.3%). 그다음으로 많은 연령층은 전체 21%를 차지하는 20대 피해자였다.
아동·청소년 디지털성범죄에서 가장 부각되는 문제는 ‘온라인 그루밍’이다. 온라인 그루밍은 가해자가 성착취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동과 청소년에게 접근해, 채팅·메일·오프라인 만남으로 관계를 구축하는 행위이다. 온라인 그루밍이 성희롱과 성범죄, 성착취 영상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범죄 피해가 극단적으로 확산한다.
피해 양상을 보면, 가해자는 주로 SNS나 오픈채팅방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가해자는 또래 남학생이나 여학생으로 가장을 하거나, 피해자의 SNS를 보고 이들의 관심사와 심리 변화를 파악하면서 호감을 쌓기 때문에 피해자도 크게 경계를 하지 않는다. 일부는 기프티콘이나 문화상품권을 주면서 환심을 사기도 한다. 이후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성폭행을 하거나, 피해자에게 신체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한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개인정보와 그동안의 대화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이에 응하게 된다.
가해자는 신체 사진을 받은 뒤 이를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피해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며,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피해가 확대된다. 신체 사진을 찍어서 보낸 경우 가해자가 “사진을 보낸 건 피해자”라고 몰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죄를 저지른 부도덕한 피해자라며 위축되는 피해자가 많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사건이 터지고 수사를 진행할 때 아동·청소년이 부모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는 걸 원하지 않아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13조는 ‘경찰은 고소인이 미성년자인 경우 법정대리인·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 또는 가족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미성년자의 권리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호자가 수사 및 재판과정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부모나 법정대리인에게 피해 사실과 수사 과정을 경찰이 통지하게 돼 있으며, 성범죄 피해 증거 채취 과정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가해자가 법정대리인인 경우엔 미성년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통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뢰관계인은 피해자가 신뢰할 만한 성인을 뜻하며 서류 제출만 하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이 성범죄 신고를 포기하고 있다
“경찰에 신고하러 간 것은 (신고에 대한)의지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신고를 하고 진술을 하면 보호자한테 피해 사실이 알려진다고 경찰서에서 얘기하니까, 거기서 포기하는 거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온라인상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 보호의 문제와 정책 대응방안'에 나오는 피해자 지원기관 종사자의 인터뷰 내용이다.
아동·청소년이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걸 꺼리는 이유는 ‘피해자도 범죄 발생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여기는 피해자 비난 통념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피해자가 자신이 직접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해서 전송한 경우라면 이들은 자기 잘못이 더 큰 건 아닌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건 아닌지 등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경찰이 인지수사로 범죄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본인의 피해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피해자가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의 심층 면접에서 한 경찰은 “미성년자 피해자들이 대부분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걸 싫어합니다. 특정 사진을 통해서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확인돼서 피해자에게 연락하면, 부모님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 조사를 거부하겠다는 피해자가 거의 99% 정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부모님이 동참한다고 해도 부모님 앞에서 자신이 피해를 당한 성착취 관련해서 대부분 다 축소해서 진술하고, 진술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온라인 성범죄는 복사와 유포가 용이해 짧은 시간에도 피해가 급속히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개입 없이 사건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비해야 한다. 사건을 덮는 것보다 나중에 알리더라도 우선적으로 피해를 신고하고 구제받아야 할 것이므로, 보호자에게 통지하지 않더라도 신뢰관계인의 후견 아래 사건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해자 동의 없이 법정대리인에게 피해 사실을 통보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헌법상 자기결정권, 형사소송법상 고소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채 법률 사무소의 조윤희 변호사는 국회에서 열린 '성범죄 피해 아동·청소년 최상의 이익을 고려하는 수사절차 개선' 토론회에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고소인이나 피해자가 통지를 원하지 않거나 통지하는 게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혹은 사건관계인에게 2차 피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통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 의사와 2차 피해 발생 관련해 예외를 두지 않고 법정대리인에게 수사상황을 통지하도록 하는 범죄수사규칙은 상위 법령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위 법령에 위배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범죄수사규칙은 규정의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