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리의 잇(IT)트렌드] 디지털 성범죄 피해, IT 기술로 막는다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전국 직장인, 그중에서도 열정 하나만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대리님들을 위한 IT 상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점심시간 뜬금없는 부장님의 질문에 난감한 적 있잖아요? 그래서 저 송대리가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장님, 아니 더 윗분들에게 아는 ‘척’할 수 있도록 정보 포인트만 쏙쏙 정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테슬라, 클럽하우스, 삼성, 네카라쿠배 등 전 세계 IT 소식을 언제 다 보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피곤한 대리님들이 작게나마 숨 한번 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요즘은 디지털 세상이라, 디지털 성범죄 문제도 심각하다며?

맞습니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n번방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영상을 녹화해 돈을 뜯는 몸캠 피싱도 있고요. 모두 영상을 퍼뜨리겠다며 피해자를 궁지로 몰았습니다. 지난해 여성인권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지원한 건수만 해도 17만 건이라고 하는데요. 그만큼 디지털 성범죄가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각한 거죠.

불법 촬영물이 온라인으로 퍼지는 것도 문제지만, 2차 피해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피해 신고를 하면 지원센터에서 피해 영상을 찾아서 삭제하고는 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모두 다 찾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사람이 하는 이상, 검색해서 찾아내는 속도가 확산하는 속도를 따라잡지를 못하는 겁니다.

2. 요즘 기술이 많이 발전했는데 일일이 검색을 하면서 찾는 방식밖에 없는 거야?

예전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웹하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개발한 2019년에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시스템을 적용해 어느 정도 자동화가 됐는데, 웹사이트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웹하드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18명이 3개 조로 24시간 모니터링을 합니다. 모니터링으로 찾아낸 불법 영상물 정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제공해서 불법 촬영물 필터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합니다. 그러면 웹하드 사용자가 이 데이터베이스를 필터링을 적용해 불법촬영물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ETRI에서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감시망을 웹사이트 내 유해 콘텐츠까지 확장한 겁니다. 테스트 결과 기존 업무량을 86%나 줄여준다고 합니다. 이번 달 안에 지원 업무에 시험 적용하고 올해 안에 정식 운영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이 기술의 핵심은 콘텐츠 유해성을 분석, ·검출하는 AI 기술입니다. AI가 등록된 키워드로 웹페이지들을 검색하고 웹페이지 내 텍스트나 이미지를 분석해 유해성을 검출합니다. 프레임당 약 100만 회의 세부판단을 근거로 영상 간 유사도 비교를 수행할 정도로 AI 엔진이 정교하다고 합니다. 정확도는 99.4% 이상이고 검출 속도가 0.01초 이하라고 하니 상당한 성능이죠.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진행된 시험 기간 동안, 피해 영상물의 검색 키워드, 썸네일 이미지, 인터넷 주소(URL) 등을 활용해 총 1만 8,945건의 웹사이트를 자동 수집했고, 이 중 유해 사이트 2,631개를 걸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3. 정확도가 99%고 검출 속도가 0.01초라는 건 완벽하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성행위나 특정 신체 부위가 노출을 찾아내는 정도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발전이기는 합니다만…디지털 성범죄와 2차 피해를 빠르게 막으려면 좀 더 기술이 발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개발 중인 기술 중 특정 피해자의 특징값으로 그 피해자를 식별할 수 있게끔 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단순 음란물인지, 피해자가 존재하는 불법촬영물인지를 판단하는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건데요. 빠르면 올해 안에 개발 완료가 된다고 합니다.

4. 인터넷에 있는 영상이나 사진을 지우는 건 국가 기관만 가능한 건가?

민간에도 디지털 장의사라는 게 있습니다. 이전엔 ‘인터넷 장의사’, ‘디지털 리무버’, ‘디지털 세탁소’ ‘디지털 청소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제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용어로 자리 잡은 듯하네요.

디지털 장의사는 원래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인터넷에 남겨 놓은 ‘디지털 유산’을 청소해주는 업체에서 출발했습니다. 미국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이라는 업체가 처음 시작한 거로 알려졌는데요. 생전에 300달러(약 35만 원)를 내고 회원가입을 해 놓으면, 죽은 이후에 회원과 관련된 인터넷정보를 샅샅이 뒤져서 삭제해 줍니다. SNS 계정, 게시물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글에 올린 댓글까지 없애 줍니다.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업체들이 많이 생겼어요.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 거죠. 모든 게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세상이니깐요. 인터넷상에서 온갖 활동을 다 하는 세상이잖아요? 삶의 흔적이 자연스레 인터넷에 남을 수밖에 없죠.

유해사이트 자동 수집 시스템을 시연 중인 연구진 (출처=ETRI)
유해사이트 자동 수집 시스템을 시연 중인 연구진 (출처=ETRI)

5. 국내에도 디지털 장의사가 있겠지?

국내에도 물론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해외랑 하는 일이 조금 다릅니다. 장의사란 이름이 무색하게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요청이 더 많다고 합니다. 2008년에 연예인 평판을 관리해주는 업체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디지털 장의사의 전신이라고 보면 될 거 같아요. 현재 국내 디지털 장의사 업체는 파악된 곳만 전국 약 50여 개라고 하고, 활발히 활동하는 업체는 20여 개 수준이라고 합니다.

통계를 보면 실제로 죽의 자의 인터넷 데이터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은 전체의 5%도 안 될 만큼 그 수요가 적은 편입니다. 대부분 살아있는 사람들이 요청한다는 겁니다. 삭제를 원하는 데이터도 다양합니다. 단순히 자기가 올린 글만 지워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뉴스, 동영상, 댓글, 평판을 저해하는 각종 게시물 삭제 등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다 보니, 이와 관련한 요청도 많은 상황이고요.

6.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찾는다면 어떻게 지우게 되는 거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AI를 활용해 검색하는 단계는 아니고요. 포털사이트나 음란물 전문 검색 사이트를 활용해서 검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업체마다 방법과 노하우는 다르겠죠. 이렇게 찾아낸 건 방심위에 차단을 요청하거나 서비스 제공자에게 삭제를 요청합니다. 근데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 사이트라면 삭제가 쉽지 않습니다. 사이트 관리자에게 영상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입증하는 내용을 써서 삭제를 요청해야 하는데, 해당 사이트에서 삭제를 거부해버리면 사실상 방법이 없어요. 특정 회사 호스트를 이용하지 않고 자체 서버를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라면 더욱 대처가 어렵고요. 설령 삭제된다고 해도 누군가 언제든 다시 올릴 수 있어서 피해자들은 계속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삭제가 쉽지 않다 보니 거짓 신고를 이용해서 게시물을 내리는 일종의 편법도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웬만한 사유로는 신고해도 영상이 내려가지는 않는데, 저작권 문제 다릅니다. 이걸 이용하는 겁니다. 해당 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과거 게시물에 업로드해서 수정하는 건데요. 과거 게시물에 동영상만 추가해서 수정했기 때문에 실제 동영상이 추가된 건 최근이라도 게시물의 날짜는 예전으로 나옵니다. 그걸 근거로 플랫폼에 ‘이 블로그에 올라온 동영상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식으로 신고하는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저작권 위반 문제로 신고가 들어오면 삭제 처리가 빠르게 됩니다. 저작권 위반으로 경고를 3번 받으면 채널 자체가 삭제되기도 하고요. 좋은 의도로만 쓰면 다행이지만, 이걸 악용해서 일부 유튜버들을 공격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7. 그런 편법도 있었구나. 국내 포털에는 어떤 방법을 써?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네이버 등 대형 포털에 있는 지식인 게시물 같은 데에 비슷한 편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해당 게시물이 마치 불법적인 것처럼 보이게 해서 지워질 수 있도록 하는 건데요. 피해자들을 위해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방법이 악용되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일은 없어야겠죠.

8. 구글의 경우는 어때? 구글도 해외 업체잖아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구글은 좀 다릅니다. 원문을 구글 서버에 보관하는 게 아니라 제목, 요점 등만 수집해서 보관하다가 링크를 클릭하면 원문으로 연결해주는 형태인데요. 원문을 삭제해도 수집된 데이터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히 흔적을 지우려면 별도로 이 데이터까지 지워야 하는 거죠. 먼저 원문을 지우고, 구글 검색 결과까지 지워야 하는 겁니다. 삭제 요청을 하기만 하면 되지만, 일반인이 하기에는 조금 복잡하죠.

앞으로는 서비스 제공자 차원에서 이용자들이 손쉽게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삭제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잊힐 권리’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으니깐요. 자기 실수이든 아니든 인터넷에 남아있는 글과 이미지, 영상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 모두 디지털 세상의 피해자가 될 수 있잖아요. 디지털 흔적이 삶과 죽음을 뒤바꿀 정도니깐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해야겠습니다.

송태민 / IT전문가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대기업까지 다양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현재 KBS 라디오 ‘최승돈의 시사본부’에서 IT따라잡기 코너를 담당하고 있으며, '애플워치', '아이패드 미니', '구글 글래스' 등의 국내 1호 구매자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를 IT 얼리어답터이자 오타쿠라고 칭하기도. 두 딸과 ‘루루체체 TV’ 유튜브 채널, 개그맨 이문재와 ‘우정의 무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어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며, IT 전문서, 취미 서적 등 30여 권을 집필했고, 음반 40여 장을 발표했다.

정리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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