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인사이트] 대륙을 연결하는 항만에서 만나는 자율주행 시대
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어디까지 변화시킬까?
지난 1999년 개봉한 SF영화, ‘바이센테니얼맨(Bicentennial Man)’을 알고 계시나요? 바이센테니얼맨은 개봉 당시 미래였던 2005년을 배경으로, 조립과정 중 결함을 지닌 가정용 로봇이 지능과 호기심을 습득해 인간으로 변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는 인공지능(AI), 로봇, 무인자동차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합니다. 개봉 당시에 허구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HER’, ‘아이, 로봇’, ‘토탈리콜’, ‘레디 플레이어 원’ 등 다른 SF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래 기술들도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틀렸습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빅데이터, 웨어러블 기술 등은 이제 현실에서도 활용 사례를 찾아볼 수 있죠. 하늘을 날 수 있는 자동차까지 등장한 것을 보니, 정말 엄청난 발전인 셈입니다.
맞아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했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실제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기술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 한계를 함부로 단언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자율주행 기술이 산업에서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자율주행을 떠올리면, 흔히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연상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책을 읽고, 게임을 즐기는 등 편리하겠다 정도를 떠올릴 수 있죠. 하지만, 자율주행은 단순히 인간의 편의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농업, 수산업, 광업, 제조업, 운수업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항만 산업 속 자율주행을 소개합니다.
국내에는 부산, 인천, 평택, 목포 등 여러 국제항이 있습니다. 국제항이 위치한 도시 항만 근처에 방문하면, 거대한 자동차를 볼 수 있는데요. 컨테이너를 싣고 나르는 컨테이너 트럭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엄청난 크기의 컨테이너를 항만에 옮기고, 차곡차곡 쌓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이 작업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크레인을 사용합니다. 컨테이너 전용 부두에 설치하는 대형 크기의 ‘겐트리 크레인’, 컨테이너 부두 야드에서 컨테이너를 옮기거나 들고 내려 적재하는 ‘트랜스퍼 크레인’ 등이 있죠. 이런 크레인을 사용해 배에서 컨테이너를 내리고, 전용 이동 장비로 옮기는데요.
항만 내에서는 ‘야드 트랙터’와 ‘야드 샤시’를 이용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보관시설까지 옮깁니다. 야드 트랙터는 컨테이너 트럭에서 앞쪽 운전석을 따로 떼어낸 것처럼 생긴 주행장치입니다. 저속으로 움직이고 가속도가 빠른게 특징이죠. 야드 샤시는 컨테이너를 올릴 수 있는 장치입니다. 야드 트랙터 뒤쪽에 연결해 사용하죠.
최근 야드 트랙터에 자율주행을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원하는 위치로 컨테이너를 자동으로 옮겨주는 데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죠.
자율주행을 항만에서 사용할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컨테이너를 안전하고 적절한 곳으로 옮기는 야드 트랙터를 자동화한다면, 사고발생, 산업재해, 인력난, 단순업무 반복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죠. 아울러 인력의 80% 이상을 감축할 수 있으며, 사람에 의한 실수를 줄일 수 있고, 24시간 항만을 가동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국내 항만들은 대부분 반자동화 터미널 수준입니다. 유럽, 미국, 중국과 비교하면 기술적으로 뒤처져 있는 수준인데요. 부산, 인천 등 일부 주요 항만에서 야드 크레인을 자동화했지만, 컨테이너를 이동시키는 야드 트랙터는 아직 사람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유럽 네덜란드에 위치한 로테르담항은 세계적인 스마트 자동화 항만으로 손꼽힙니다. 로테르담항은 완전 무인 자동화 터미널을 구축했죠. AI, IoT 기술을 활용해 항만 전체를 디지털 트윈화한 최첨단 항만으로 평가받습니다.
지난 2021년 7월, 아시아 최초의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을 구축한 중국의 칭다오항은 2020년 기준 컨테이너 물동량 항목에서 부산항을 제치고 세계 컨테이너항 순위에서 6위를 기록했습니다. 칭다오항은 2017년 처음 가동을 시작해 2019년 2차 확장까지 마무리하며 운영하고 있는데요.
자율주행 야드 트랙터들이 컨테이너를 야적장 앞으로 옮기면,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는 크레인들이 컨테이너를 야적장 내 이상적인 장소로 다시 옮기는 구조입니다. 또한, 작업하지 않는 시간에는 스스로 충전시설을 찾아가서 배터리를 충전하죠. 현재 칭다오항은 한 시간 당 43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요. 자동화 이후 업무 효율은 30% 이상 증가했지만, 필요 인력은 이전과 비교해 1/5 수준으로 인건비를 절감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항만 자동화 시설은 실업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 해외 항만들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근무 인력을 위해 새로운 직무교육을 진행했는데요. 로봇장비 모니터링, 원격운전 보조 등 차세대 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알아서 컨테이너를 옮긴다니…, 자율주행 야드 트랙터를 개발하는 대표 기업은 어디인가요?
탄소 배출량 감소에 대한 관심 증가, 항만 용량 제고 등에 따라 전 세계 항만들은 AI, IoT, 자동화 프로세스, 터미널 자동화 등 다양한 기술을 항만 시설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 항만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17억 달러(한화 약 2조 1,469억 원)로 이릅니다. 연평균 23.9% 성장해 2026년에는 51억 달러(한화 약 6조 4,407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하죠.
그 중에서도 야드 트랙터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7억 1,800만 달러(한화 약 9,073억 원)로 연평균 4.1% 성장해 2026년 8억 7,700만 달러(한화 약 1조 1,082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전체 스마트 항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 가량이죠.
지난 1994년 설립, 핀란드에 본사를 둔 ‘Konecranes’는 현재 크레인 및 리프팅 장비 제조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항만에 필요한 장비 업체 중 대표 기업 중 하나인데요. AGV(Auto Guided Vehicle) 기술을 바탕으로 무인 자동 컨테이너 수송 장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탄소중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을 활용한 컨테이너 수송장치를 개발하기도 했죠.
Konecranes의 무인 자동 컨테이너 수송 장치는 컴퓨터제어 시스템, 관리 및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통해 100%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주행, 운송, 배터리 충전 등을 스스로 수행하죠. Konecranes의 컨테이너 수송 장치는 약 70톤 정도의 무게에 달하는 컨테이너를 옮길 수 있으며, 정밀도 오차범위는 25mm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작업하는 것보다 더욱 정밀하다고 하네요.
AGV가 아닌 완전자율주행 야드 트랙터도 있습니다. 지난 2021년 7월, 아부다비 칼리파항 CSP 터미널은 중동 최초로 중국 업체 웨스트웰의 자율주행 야드 트랙터 ‘코몰로 Q-Truck’ 6대를 시범 도입했습니다. 코몰로 Q-Truck는 자율주행 레벨 5에 준하는 기술을 탑재했는데요. 360도 감각 시스템을 장착해 주행 중 교통을 감지, 스스로 장애물을 인지합니다. 항만 운영자가 야드 트랙터 주행 도로를 설정할 수 있죠.
코몰로 Q-truck은 281kWh 배터리를 탑재했으며, 최대 무게 80톤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충전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약 200km인데요. 이는 약 4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는 셈입니다. 특히, 기존 자율주행 야드 트랙터는 극한의 기후에서 운행할 수 없었지만, 코몰로 Q-truck은 차량 자체 전기시스템에 온도 조절 기능을 추가해 극한의 기후에서도 운행할 수 있다네요.
우리나라도 산업 성장을 위해 자율주행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항만 분야도 있나요?
지난 4월 26일, 해양수산부가 국내에 자동화항만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자율협력주행기반 화물운송시스템과 타이어형 크레인 자동화 및 안전모듈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자율협력주행기반 화물운송시스템은 화물을 선박에서 육지로 내리는 하역부터 항만 내 이동, 보관, 항만 밖 반출까지, 전반적인 물류 처리 과정을 자동화하는 기술인데요. 해당 기술을 도입한다면 화물운반 장비 스스로 주변 인프라와 상호 통신해 위험상황을 인지하고 회피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더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뿐만 아니라 산업계, 연구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한 정책과 별도로 규제 개선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난 4월 25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미국, 독일, 일본 등 자동차 산업 강국과 비교해 국내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발전 및 상용화를 위한 제도 개선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고 발표했죠. 특히, 자율주행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실제 주행할 수 있는 법률적 요건을 구축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율주행 기반 마련을 위해 운전주체, 차량장치, 운행, 인프라 등 4가지 영역에 대한 규제 정비를 추진했지만, 아직 임시운행만 가능한 실정인데요. 관련 법률 마련 및 제도 보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를 주행하기에는 무리인 상황입니다.
이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자동차 산업 선진국가와 비교하면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국가의 관련 제도 및 법 체계를 살펴보면, 자율주행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미국은 2016년 연방 자율주행차 정책을 발표했으며, 독일은 2021년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 운행을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했죠. 일본은 2019년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기술 개발에 앞서 선제적으로 자율주행 차량 기술 개발을 위한 정책 및 제도를 충분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자율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 분야를 살펴야 합니다. 여러 영역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확장할 필요가 있죠.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항만을 누비는 자율주행 운송수단과 함께 다양한 자율주행차가 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책임연구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라는 전문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