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파트 사로잡은 그 샤워기, 과연 소비자도 사로잡았을까?
[디자인 스케일업 (한국디자인진흥원x인터비즈)] 세비앙(4)
27년간 샤워기와 사랑에 빠진 기업, 기억하시나요? 1993년 설립된 국내 유일 샤워 전문 기업, 세비앙의 이야기입니다.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저희 스케일업팀이 여러분에게 세비앙을 소개했던 시기는 8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더위를 쫓으며 세비앙이 위치한 경기도 광주시에 달려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두꺼운 패딩을 입지 않으면 밖에 나가기 꺼려지는 겨울이 다가왔네요.
세비앙 류인식 대표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류 대표는 B2B에서 B2C로 사업 모델 전환을 희망하고 있었죠.
세비앙은 지난 20년 넘게 전국 아파트와 오피스텔, 빌라 등에 샤워기를 납품했습니다. 국내 주요 건설사와 B2B 파트너로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갖췄죠. 연 매출 100억 원의 안정적인 영업 구조도 확보했습니다. 그런 세비앙이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변화를 선언했습니다. 주거 트렌드를 반영한 욕실 디자인을 확대해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리빙 상품을 출시, 일반 소비자에게 손을 내민 것입니다.
세비앙이 내민 손을, 과연 소비자들은 맞잡아줬을까요?
B2B에서 B2C로
류인식 세비앙 대표는 첫 만남에서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한다는 개념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선도하자는 마인드를 늘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것,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제품, 그리고… 새로운 고객.
세비앙은 제조기업의 기본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어디까지나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올곧은 다짐이다. 20년 이상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로 증명했다. 이어진 도전은 B2C 시장이다. 어려운 도전이고 급격한 변화지만, 류 대표는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3개월 전 류 대표는 마치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 단호한 모습이었다.
세비앙은 소비자와 만나는 첫인상부터 바꿨다. 바로 자사몰, 홈페이지다. 지난 9월부터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세비앙 마케팅팀은 목표를 세 가지로 세웠다. 첫째, 자체 온라인몰과 함께 소셜커머스, 오픈마켓 등으로 온라인 채널을 확대한다. 둘째, 일반 소비자에게 세비앙과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콘텐츠 디자인을 강화한다. 셋째, 온라인 광고 및 홍보, 마케팅 강화다.
결과가 나타났다. 설마 했다. 이렇게 빠를 줄이야. 작년 동기 대비 자사몰 월 매출은 3000~4000만 원 정도였지만 11월 예상 매출은 1억 원이란다. 참고로 이 매출 지표는 B2B 매출을 포함하지 않은 일반 소비자용 리빙 상품 매출 성적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것은 매출 지표 그래프가 꾸준하게 우상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계속 성장 중이다.
류 대표는 "9월부터 홈페이지를 리뉴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리빙 상품을 배치했고 제품 상세 페이지를 강화했다. 마치 도매상과 같았던 지난 모습을 온라인 마케팅팀이 하나씩 뜯어고쳤다"며 "사용자 경험을 생각했다. 일반 소비자를 위한 샤워기 전문몰을 세비앙의 얼굴이라 생각하며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인상이 달라졌다. 포털에서 세비앙을 검색하면 '샤워기 전문몰'이 먼저 등장한다. 세비앙의 새 얼굴이다. 회사소개와 연혁 등으로 점철된 흔히 볼 수 있는 기업 홈페이지가 아니다. 이건 마치 … 인터넷 쇼핑과 흡사하다. 아니, 빼닮았다. 스크롤을 조금 내렸더니 'MD 추천 아이템' 메뉴도 등장했다. 이건… 쇼핑몰이다.
보편적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마케팅을 조금씩 시도 중이다.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 블로그를 활용한 체험단 등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품을, 자사몰을, 세비앙을 알리고 있다. 목표는 자사몰 유입 인원 증가였는데, 자연스럽게 판매 매출도 따라오고 있다. 새로운 데이터다. 세비앙에게 정말이지 낯선 데이터다. 자사몰을 통한 판매는, 기존 B2B 판매와는 시작부터 끝까지 낯설기만 하다.
류 대표는 "온라인 마케팅팀이 열심히 준비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도 따라오고 있다. 지금은 MD를 추가로 찾고 있다"며 "스케일업을 진행하며 기존 영업 마케팅팀과 온라인 마케팅팀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 노력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요도의 차별 없이 세비앙 전체가 원하는 목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 기본을 지킨다는 것
다만, 류 대표는 세비앙의 변화에 대해서 기본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겉은 변했지만, 속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설명을 부탁했다.
"홈페이지를 리뉴얼하고, 온라인 판매 채널을 강화하고,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댓글 이벤트와 같은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지만, 세비앙이 제품에 담는 기본 철학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27년 동안 샤워 제품을 만들어온 세비앙이에요. 샤워기는, 물이 잘 나와야 하고, 미끄러지면 안 되고, 들기 편하게 가볍고,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아야 합니다. 기본입니다. 샤워기의 기본은, 우리 세비앙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속'이에요."
세비앙답다고 생각했다. 외형은 달라졌지만, 속은 그대로다. 그렇게 기본을 그대로 지키면서, 일반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준비했다. 어린이를 위한 샤워기, '키즈앙'이다.
키즈앙은 세비앙이 처음으로 선보인 필터 샤워기다. 수돗물 벌레, 수돗물 유충 등으로 필터 샤워기를 찾는 수요가 늘어났을 때에도 세비앙은 참고 기다렸다. 당시 류 대표는 "정수장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으로 필터형 샤워기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시류에 편승해 똑같은 제품을 선보이고 싶지 않았다"며 "우리 스스로 더 완벽한 제품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한 바 있다.
키즈앙은 그렇게 준비한 제품이다. 어른보다 민감한 아이의 피부를 위해 잔류염소와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필터를 넣었다. 샤워기 수압을 줄였고, 무거운 무게를 줄였다. 아이들은 물건을 쉽게 떨어뜨리고 던지기에, 트럭이 밟아도 견디는 내구성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필터에 신경을 많이 썼다. 타제품과 비교해 오래(최장 1개월) 사용할 수 있고, 교체를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보완했다.
매번 교체해야 하는 필터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조만간 구독 서비스도 시행할 예정이다. 세비앙은 전국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보상판매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별 배송과 A/S 등을 무리 없이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자부한다. 조만간 일반 성인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의 필터 샤워기도 선보일 예정이다. 필터를 샤워기 몸체가 아닌, 샤워호스 끝에 끼워 용량을 늘렸다. 류 대표는 "교체한 필터는 최장 3개월 동안 이용할 수 있다"며 "3M과 협력해 개발한 필터로, 욕실과 샤워기에 어울리는 제품으로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B2C 변화를 모든 직원과 함께한 스케일업
궁금했다. 지난 3번의 미팅, 스케일업팀과의 만남은 세비앙에게 어떤 결과를 남겼을까.
"세비앙은 B2C로의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직원들 모두에게 전한, 도전과제였죠. 그런데 체질 개선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쉽나요. 알게 모르게 B2B 모델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스케일업과 함께 하며 '아 이제 정말 B2C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우리 세비앙 안에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어요. 중요한 사업 모델이라는 것,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었어요."
얼마 전 류 대표는 세비앙 내부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스스로 진단하는 평가에 가까웠단다. 결과는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스케일업팀과 함께하며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류 대표는 말했다.
"온라인 마케팅팀을 만들고 그 안에서만 B2C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세비앙이라는, 회사 전체가 우선순위로 같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스케일업은 그 중심축을 잡아줬어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업이 사업모델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 팀, 일부 직원 몇 명의 공허한 목소리로 끝나는 일도 부지기수다. 더구나 10년, 20년 가까이 기존 업무를 지속하던 세비앙은 귀찮은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속된 말로 귀찮은 일이 늘어난 셈 아닌가. 하지만, 세비앙은 지난 3개월간 스스로 많은 것을 바꿨다. 류 대표는 "이 변화를 이끌어 준 것이 스케일업"이라고 전했다.
이제 세비앙은 일반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제품에 담는 열정은 그대로다. 욕실, 샤워기의 기본은 그 누구한테도 뒤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욕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조하는 게임 체인저, 세비앙에게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 응원을 부탁드린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