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한글공방 정유진 대표 “자연의 이치를 담은 한글, 그림으로 그린다면?”
[IT동아 권명관 기자] 전세계가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CT 산업을 이끌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현재 미국 상장 기업 Top10으로 성장했다. 네이버(NHN), 카카오 등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발맞춰, 경기도(도지사 이재명)와 경기콘텐츠진흥원(원장 송경희, 이하 경콘진) 역시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문화창조허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경기문화창조허브는 경기 남부(판교, 광교)와 북부(의정부), 서부(시흥), 서북부(고양), 서남부(광명) 지역에서 총 6개 허브를 운영하고 있다. 성과는 꾸준히 나타났다. 2019년 12월 기준, 창업 1720건, 일자리 창출 5210개, 스타트업 지원 3만 6381건, 이용자수 49만 7654명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이중 광교 경기문화창조허브(이하 광교 허브)는 올해부터 문화예술과 이공학적 기술을 결합한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고자 문화기술(CT, Cultural Technology) 산업 육성 지원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문화기술이란, 예술과 디자인, 인문사회학 분야의 지식 및 감성에 이공학적 기술을 더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총체적인 기술을 뜻한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광교 허브는 올해 문화기술 스타트업을 위해 ‘아이디어 개발 지원’, ‘상업화 제작 지원’, ‘공공 콘텐츠 제작 지원’ 등 단계별 지원 사업을 펼쳤다. 이에 IT동아가 광교 허브의 상업화 제작 지원을 받은 한글공방의 정유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글공방은 한글 제자원리에 따라 그림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글이 그리는 그림’을 알리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한글을 문자가 아닌, 작품으로 생각해본다면?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한글공방은 어떤 스타트업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정유진 대표(이하 정 대표): 먼저 묻고 싶다. 기자님은 한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말이다.
( 잠시 당황한 기자에게 )
하하. 한글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듣고, 읽고, 쓰는, 우리 문자, 우리 글이다. 자연스럽게 익힌다. 누구나 익숙하게 사용하고. 사실 그것이면 충분하다(웃음). 하지만, 조금 더 한글을 들여다 보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쉬운 문자’, ‘세종대왕의 예민정신’ 등… 한글을 표현하는 수많은 정답지 같은 말이 있다. 한글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단 한번도 한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사람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본 뒤, 그 사람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한글이 그랬다. 한글이 글, 문자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보였다.
IT동아: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마치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작곡가가 만든 음악과 같은 작품이라는 것인가.
정 대표: 맞다. 한글은 수학과 과학, 철학, 미학, 음악과 연결되며, 이 모두를 포괄하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이렇게 생각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한 사람의 ‘예술가’로 보고, 한글을 세종대왕의 ‘예술작품’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한글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 한글이라는 예술작품을 또 다른 관점으로 보며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한글공방은 ‘한글이 그리는 그림’을 표현한다. 한글의 제자원리를 따라 코드화한 색과 형태를 입력해 그림으로 만들었다. 글, 문자를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웃음).
자연의 이치를 담은 한글, 소리를 표현한 문자
IT동아: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한글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ㄱ’, ‘ㄴ’, ‘ㄷ’과 같은 자음, ‘ㅏ’, ‘ㅓ’, ‘ㅗ’와 같은 모음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인가.
정 대표: 비슷하다. 한글공방이 진행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각각의 색을 입혔다. 그리고 발음하는 소리의 맑음과 탁함에 따라 채도를 더했고. 색과 채도를 입히는 일련의 과정은 한글 제자원리에서 찾았다.
( 정 대표의 말에 기자는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
너무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웃음). 한글공방을 시작하기 전, 남편과 함께 집필한 책이 있다. ‘안녕, 낯선 한글’이라는 책이다. 남편이 작성한 한글 관련 석사 논문에서 찾은 아이디어를 약 9년 동안 집필하면서 발간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지금의 한글공방을 창업할 수 있었는데, 복잡한 원리는 이 안에 다 있다.
IT동아: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설명을 부탁한다.
정 대표: 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세종대왕의 포부는 꽤 거창했다. 천지자연의 이치에 띠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물 흐르듯 자연스레 담을 수 있는 문자를 원했다. 훈민정은 제자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천지자연의 원리는 오조리 음양오행일 뿐이다. …(중략)… 사람의 소리는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사람들이 살펴서 깨닫지 못한 것일 뿐이다.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성음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자연,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훈민정음 제자해 중
세종대왕은 이 쉽지 않은 일을 ‘소리에 따라 이치를 다하면 된다’라고 일축했다. 즉, 말소리 자체를 문자로 만들었다.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으면서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 청각에서 시각으로 직곽적인 감각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문자. 그래서 자연을 담은 문자.
당시 세종대왕과 학자들은 만물을 이루는 근원으로 오행(물, 불, 흙, 쇠, 나무)와 다섯 개의 발음기관인 아, 설, 순, 치, 후를 기질에 따라 서로 상응하는 것끼리 짝지었다. 길고 우툴두툴한 어금니와 나무, 불같이 날카롭게 움직이는 혀, 쇠와 같이 단단하고 끊는 이, 촉촉하며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과 목구멍. 이처럼 상응하는 기질로 맺어진 관계를 찾았다. 이렇듯 세종대왕은 당시 널리 신봉되던 자연관인 오행의 철학을 훈민정음, 한글에 고스란히 담았다.
IT동아: 잠시 숨 한번 쉬고 넘어가자. 한글 제자원리에는 이미 오행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럼, 이 같은 제자원리에 따라 한글을, 문자를 각각의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인가.
정 대표: 그렇게 생각했다(웃음). 오행의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한글에 오행에 따른 오방색을 연결해봤다. 그리고 소리의 맑고 탁함에 따라 채도를 대입해봤고. 그렇게 문자마다 다른 색과 채도를 찾았다. 즉, 자음과 모음에 해당하는 고유의 색과 채도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한글에는 초성과 중성, 종성이 있다. 이를 하나로 조합해서 몇 가지 그림 패턴(색동, 사각조각보, 팔각조각보, 물수제비)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어려운 과정을 쉽게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한글을 입력하면 바로 변환할 수 있다.
한글공방의 서비스, ‘한글이 그리는 그림’
IT동아: 재미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홈페이지에서 한글 한자한자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재미있다. 몇 가지 법칙에 따라 변환하는 과정도 그렇고.
정 대표: 남편의 논문에서 시작해 지금의 한글공방으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과 변곡이 있었다. 우리의 문화인 한글을 놀이로 체험하고 예술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공방의 서비스, ‘한글이 그리는 그림(이하 한글그림)’은 읽지 않아도 되는 문화예술의 한 형태다. 한글의 소리원리를 담은 색과 합자원리를 담은 형의 조합이다. 한글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글 원리를 체험할 수도 있다(웃음).
지금까지 한글그림 서비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 조금씩 정체성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한글그림 노트와 세종대왕 피규어를 제작했는데, 노트 안에 있는 QR코드와 세종대왕 피규어에 내장한 NFC 칩을 통해 한글공방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할 수 있다.
물론, 아직 한글공방 홈페이지는 더 가다듬어야 한다. 다만, 이 같은 연결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글그림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오는 10월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한글그림 노트와 세종대왕 피규어를 제작해 알리고자 한다.
IT동아: 한글그림을 매개체로, 여러 사람을 다양한 형태로 연결할 수 있는, 문화예술 서비스 플랫폼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 맞다. 한글그림을 다양한 사물에 입힐 수 있지 않을까? 각 사물의 소리를 한글그림으로 그려 덧입힐 수도 있다. ‘일상을 (한글을 매개체로) 예술로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에 금세 이룰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천천히, 한걸음씩, 꾸준하게 걷고 싶다(웃음).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글을 하나의 작품으로, 콘텐츠로 기획해 제작하는 지금의 일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우리 한글공방에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