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스팸 사기 사례로 본 '사기의 대원칙'
[IT동아]
스마트폰 사용자 중 '검찰'로부터 연락 한번 안받아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피싱 사기'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성행하고 있음을 뜻한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등을 통해 금전 탈취를 시도하는 스팸 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뿐더러, 그 수법 또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올해 1분기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만 약 1,500억 원 규모에 이르며, 연간 피해자는 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보이스피싱 사기는 3,000억 원 이상의 피해액을 발생시켰으며, 그 규모는 해가 거듭될수록 여전히,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스팸 사기 관련 기사와 기상천외한 수법을 마주하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있다. 스팸을 통한 각종 사기 피해는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허술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스팸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우월한 지적 능력을 뽐내는 소위 '뛰는 자 위의 나는 자'인 걸까?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 지를 알면 게임 끝이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년 개봉)의 마지막 대사다. 이 영화는 사기꾼들의 시각에서 왜 사람들이 사기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대사에는 '인간 심리'와 '갈망'에 대한 사기의 대원칙이 들어 있다.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그 수법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변했지만, 이 모든 사기 수법을 관통하는 원리는 분명 존재한다. 모든 사기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익숙한 형태'의 탈을 쓰고 자행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원칙 아래 사기 피해의 대상은 그저 바보 같은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사기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누구든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칙 하나. 감정을 극대화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게 하라
사람을 속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함에 앞서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인간이 지닌 감정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쁨이나 두려움, 호기심 등의 감정은 삶을 더 나은 곳으로 향하도록 하지만,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이성의 끈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할인 쿠폰이나 이벤트 당첨 등과 같이 기대하지 않았던 요행으로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는 것이 '기쁨'이라는 감정을 이용하는 대표 수법이다. 또한 가족이 위험 상황에 처해있다거나, 불편한 사건에 휘말렸음을 암시하는 수법 또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건드린다. 대표 유형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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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둘. '결핍'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
뇌 과학 분야에서도 주장하듯, 인간은 불안정한 상황이나 불분명한 처지에 놓이는 결핍 상황에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고, 이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무언가를 계속 갈망한다. 원하는 바를 얻어내거나 결핍 상황을 해결해야만 비로소 인간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절대로 결핍으로 인한 불안감을 방치할 수 없게 설계됐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결핍 상황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인 방식을 취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괴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방식임에도, 결핍 상황에 처한 개인은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이를 신뢰하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사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 순간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았다'는 증언을 하곤 한다. 선심 쓰듯이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겠다거나, 신규대출 또는 저금리 전환대출이 가능하다는 내용, 배송주소를 잘못 입력하여 상품이 출고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 공공연히 활용되고 있다는 내용 등이 이러한 결핍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사례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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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님의 배송주소를 찾을 수 없어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배송 주소를 확인해주세요.'
원칙 셋. '익숙함'이라는 탈을 찾아 씌워라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사기 행각에 성공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익숙함'이라는 탈을 씌우는 것이다. 일상에서 있음 직한 혹은 실제로 이뤄지는 형식의 틀을 모방하여 그들만의 수법을 완성시킨다. 이러한 익숙한 틀은 2% 어색하거나 부족하더라도 관계 없다. 이미 감정의 동요나 결핍 해소의 욕구를 경험한 사람들은 2%의 어색함을 눈치챌 판단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택배 회사를 가장하거나, 모바일 청첩장/초대장을 사칭한 스미싱 문자, 또는 입사지원서를 가장한 피싱 메일까지 모두 한결같이 일상의 익숙함에 기대어 사람들을 기만한다. 익숙함의 탈이야말로 이 모든 사기가 가능하게 하는 '마지막 한 수'다. 익숙함의 탈을 쓴 문자 메시지는 이런 형태다.
- '모바일 청첩장이 도착했습니다.'
- '배송중인 상품의 현황을 확인하세요.'
- '입사 지원서를 제출합니다.' 또는 '입사 지원 결과를 알려 드립니다.'
- '고객님의 이번달 전화요금이 미납되었습니다. 링크를 통해 납부 진행해주세요.'
- '10월 인기 종목 소식지를 제일 먼저 받아보세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등과 같은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사기는 현대의 최신 기술을 악용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여느 사기 수법들과 동일하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고 최대한 익숙/친숙한 형태로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과 성을 다한다. 상대방의 의심이 해제되는 순간, 그들은 개인의 정보와 소중한 자산을 낚아채고 유유히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사라진다 해도 인간 심리를 악랄하게 이용하는 '사기꾼'이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임이 분명하나,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레이더망 안에 있다. 사기 피해를 한번도 당한 적이 없다면, 이는 자신의 영민함 덕택이 아니라 새로운 수법의 시험 대상자에서 운 좋게 제외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 사람을 속이기 위해 그들이 투입하는 에너지에 비해, 우리는 그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그들이 들이는 노력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든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 응당 믿어왔던 것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것, 자신 또한 사기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항시 인지하고 경각심을 지니는 것과 같은 관심과 노력이다.
글 / 가비아 콘텐츠팀 양희리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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