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 워킹대디의 하루... '워라밸' 해법은 유연근무제?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사회 전반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에 대한 열망이 확산되고 있다. 주당 52시간으로 짧아지는 근무시간 속에서 생산성을 강화하고, 낮은 출산율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워라밸을 실현하려면 직원 개인만의 노력으론 어렵다. 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업, 사회, 직원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합의의 한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유연근무제(Flexitime)'다. 유연근무제란 직원이 개인 여건에 따라 근무 장소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사무실(근무 장소)에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동안(근무 시간) 일하던 기존 근무방식과 달리, 주 40시간 동안 일하는 것만 만족하면 기업은 직원이 언제 어디에서 일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이러한 유연근무제는 유아 양육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은 한 '워킹대디(일하는 아빠)'의 얘기를 해보려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커뮤니케이션팀에서 근무 중인 허찬 차장의 얘기다. 유연근무제가 허 차장의 유아 양육과 워라밸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38살 워킹대디 허 차장의 하루

올해로 38살인 허 차장은 3살배기 딸을 양육중이다. 맞벌이 부부인 허 차장은 아내의 근무시간이 10시간 가까이 될 정도로 길기 때문에 본인이 자녀 양육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허 차장은 유아 양육을 위해 잘 나가던 자신의 '커리어(경력)'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그의 전 직장은 근무환경이 워라밸을 추구하지 않고 '워워밸(워크앤워크밸런스,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 풍자어)'을 추구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급여나 사회적 인식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부부가 둘 다 자녀 양육을 맡기 힘들 정도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해야 했다. 허 차장은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도 함께 아이를 돌본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딸을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데려오는 등 자녀 양육에 많은 편의를 봐주는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면서 유연근무제가 활성화된 한국마이크로소프트로 자리를 옮겼다. 허 차장의 뒤를 쫓아 다니며 그가 어떻게 일하는지 살펴봤다. 허 차장의 하루 일과를 통해 생산성(워크)을 유지하면서 자녀 양육(라이프)을 진행하는 워라밸의 사례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강조하는 워라밸의 핵심은 일을 적게하는 것이 아니다. 일은 다른 기업과 비슷하게 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많은 편이다. 실제로 허 차장의 일주일 근무시간은 42시간 내외로, 약간의 초과 근무를 하는 편이다. 만약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 일하는 시간은 여기서 더 늘어나기도 한다.

워라밸의 핵심은 직원이 자신이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하게 해주는 유연근무제에 있다. 허 차장의 일상은 일하는 시간과 자녀 양육을 위한 개인 시간이 뒤섞여 있다.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난 허 차장은 씻고 8시부터 9시 사이에 자신의 회사 업무를 진행한다. 노트북을 열고 아웃룩 같은 일정 관리 프로그램으로 이메일과 캘린더 등을 체크해 자신의 하루 일정을 정한다.

워킹대디
워킹대디

<출근에 앞서 집에서 이메일과 하루의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 허 차장의 모습>

9시부터 10시 30분까지는 개인 시간이다. 자녀를 깨운 후 여러 준비(세수, 아침 등)를 거쳐 어린이 집에 보낸다.

허 차장이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11시다. 11시부터 13시 사이에는 회의나 업무 준비 등을 진행한다. 점심 시간은 따로 없다. 약속이 없을 경우 30분 정도 시간을 내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약속이 있을 경우 시간을 내 제대로된 점심을 먹는다.

워킹대디
워킹대디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회사로 출발한다>

13시 30분부터 17시까지는 집중 근무시간이다. 반드시 회사에 있어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이때 처리한다. 이날 허 차장은 집중 근무시간에 팀원들과의 회의를 진행했다. 13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아태지역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 전원이 모여 업무 결과를 놓고 영어로 브리핑을 진행했다. 허 차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영상회의 서비스인 스카이프로 회의에 참석했다.

워킹대디
워킹대디

<아태지역 커뮤니케이션팀 전체 회의에 참여중인 모습. 별도의 장비 대신 PC에서 바로 전체 영상 회의에 참석해서 내용을 공유받는다.>

15시부터 1시간 동안 한국 커뮤니케이션팀 전원이 참석하는 전략 회의에 참석했다. 자신이 현재 진행 중인 일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추후 어떤 작업을 추가할지 결정하는 자리였다. 16시부터는 커뮤니케이션팀뿐만 아니라 마케팅팀까지 참여하는 전체 회의를 진행했다. 커뮤니케이션팀과 마케팅팀이 함께 진행하는 대규모 행사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워킹대디
워킹대디

<집중 근무시간에 회사내에서 진행해야 하는 업무를 처리한다>

17시에 회의 결과를 정리한 후 17시 30분에 회사에서 나섰다. 길이 막히기 전에 어린이집에 도착해 자녀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18시부터 21시까지는 씻기고 저녁을 먹이는 등 자녀를 돌봤다. 21시경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자녀를 대신 봐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허 차장의 잔업이 시작되었다. 약 1시간 동안 보고서를 작성해서 오피스365로 팀원들에게 공유하는 등 하루 업무를 마무리했다.

워킹대디
워킹대디

<커뮤니케이션 팀회의. 참고로 다른 사진은 실제 근무하는 모습을 몰래 찍은 것이지만, 이 사진은 연출이다.>

이날 허 차장은 회사에서 6시간, 집에서 2시간 등 총 8시간을 일했다. 아빠로서 딸을 충실히 돌보면서 회사의 차장으로서 성실히 근무한 것이다. 물론 언제나 이렇게 일할 수는 없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7~8시에 출근해 21~22시에 퇴근하기도 한다. 이때는 어쩔수 없이 자녀 양육을 위해 아내나 부모님 같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급한 일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평소에는 워킹대디라는 역할에 충실하다.

유연근무제의 세 가지 이점

유연근무제는 허 차장의 삶에 세 가지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자녀 양육이다. 늦게 출근함으로써 딸을 깨워서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었고, 일찍 퇴근함으로써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딸의 요구에 맞춰 근무 시간을 조정해 일과 생활을 양립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이동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허 차장의 집이 있는 성동구 마장동에서 회사가 있는 광화문까지는 원래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나, 출퇴근 시간에는 1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막힌다. 지하철을 타면 출퇴근 시간에도 일찍갈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이 꽉찬 차량에 타야만 했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다님으로써 허 차장은 차를 끌고다녀도 집에 일찍 갈 수 있었고, 사람없이 넉넉한 지하철을 타고다닐 수도 있었다.

세 번째는 하루를 좀 더 짜임새있게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녀를 재운 22시부터 잠에 드는 24시까지는 허 차장의 개인 시간이다. TV 시청이나 독서 등 내일을 위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회사 일이 많으면 이 시간은 잔업 시간이 되기도 한다.

허 차장은 "유연근무제로 일하는 것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집에 와서도 일에 신경써야만 하는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워라밸을 실현하기 위핸 직원과 회사간의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유연근무제는 출근과 업무 시간에 덜 구애받으면서, 확보한 시간 일부를 제 사생활에 할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워라밸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근무방식입니다"고 말했다.

핵심은 문화와 약속

허 차장의 하루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다. 기업의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개인의 삶도 챙길 수 있는 방법이 사실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워라밸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문화와 합의다. 회사 내부적으로 워라밸을 실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가 조성되면 설령 유연근무제나 오피스365 같은 스마트워킹 도구 등이 없더라도 자연스레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지난 2014년부터 '프리스타일 워크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워라밸을 위한 문화와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직원 역시 자신의 생활만 추구하지 않고 회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유연근무제 도입 등 워라밸을 위한 노력에 소극적인 이유로 직원의 생산성 저하 우려를 꼽았다. 유연근무제를 통해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라간다면 기업이 이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회사와 직원간에 믿음으로 합의가 이뤄지는 그때, 워라밸은 진정 이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전망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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