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미키타니 히로시] 암호화폐 '라쿠텐 코인' 공개... 일본의 거대 유통기업이 가상화폐에 뛰어든 이유?
[IT동아 강일용 기자] 일본의 전자상거래 업계는 크게 삼파전으로 압축된다. 아마존닷컴 재팬, 야후재팬 쇼핑, 그리고 바로 라쿠텐(樂天)이다. 미국 아마존닷컴이 출자한 아마존닷컴 재팬, 일본 소프트뱅크의 소유이긴 하지만 태생이 미국인 야후재팬 쇼핑 등과 달리 라쿠텐은 순수하게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업체다.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사장. 동아일보 DB>
라쿠텐은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7년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 みきたに ひろし)가 창업했다. 미키타니 히로시는 라쿠텐을 전자상거래를 바탕으로 인터넷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로 라쿠텐의 사업 영역을 확대한 인물이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줄곧 라쿠텐의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바탕으로 성장해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로 그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최고경영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분석에 따르면 미키타니 사장은 55억 달러(5조 9455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부자다. 그가 이끌고 있는 라쿠텐은 2016년 7819억 엔의 매출을 거뒀고, 약 1만 5000명의 직원을 둔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다. 약 1억 명의 가입자와 4만 4000개의 출점 점포(판매자)를 보유하고 있다.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미키타니는 어떻게 라쿠텐을 일으켰을까.
젊음을 낭비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 엘리트 비즈니스맨 관두고 창업 나서
미키타니 사장은 1965년 일본 간사이(관서) 지방 효고 현 고베 시에서 태어났다. 우리에게 고베(한신) 대지진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고베상과대학의 교수였던 아버지가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어린 미키타니 사장도 한동안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이때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까지 습득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두고두고 미키타니 사장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출처 플리커>
귀국 후 중학교에 들어간 미키타니 사장은 이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국 교육과 다른 일본 교육 특유의 답답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귀국 부적응 증세'를 나타낸 것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테니스라는 스트레스 배출구를 접하고 일본 교육과정에 적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키타니 사장은 1984년 일본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도쿄 히토쓰바시(一橋) 대학에 진학했다. 도쿄대, 교토대 등 종합국립대학 다음에 위치한 상과(경영) 중심의 국립대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이 종합대를 추구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대학은 상당수가 특정 학문 분야에 특화된 특성화 대학을 추구하고 있다. 히토쓰바시 대학의 경우 상과(경영, 경제)에 특화된 학문만 가르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가 첫 번째로 선택한 직장은 일본흥업은행(현 미즈호 은행)이었다. 직장에서 그는 테니스에 능한 엘리트 직장인이었다. 은행에서도 테니스부를 이끌며 은행대항 테니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의 앞날은 평범하고 순탄해 보였다.
변화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에 다시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미즈호 은행은 직원 재교육 제도의 일환으로 내부의 엘리트 직원을 2년 동안 미국에 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미키타니 사장은 이에 선발되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경영학 석사(MBA)를 받으러 떠났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미키타니 사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창업에 대한 관점의 차이였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베이커 도서관. 출처 플리커>
일본에서 창업이란 둘 중 하나에 해당되는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 놀라운 아이디어로 진행하거나, 조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들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란 인식이다. 정규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은 거대한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를 이끌어나가고 내부에서 출세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반면 미국에선 창업이 일상이었다. 회사에 다니다가 조금만 괜찮은 아이디어만 있어도 창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의 일원으로 출세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것이 더 높게 평가받았다. 일본의 엘리트 비즈니스맨은 그렇게 미국의 사업가 정신에 큰 감명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해 공부한 후 귀국한 미키타니 사장은 회사내에서 M&A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 일을 하며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 마스다 무네아키 츠타야서점 사장 등 일본의 신흥 벤처 사업가들과 교분을 나누게 된다. 이들이 젊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본 미키타니 사장은 자신 역시 언젠가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는 것을 꿈꾸게 된다.
변화의 계기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왔다. 1995년 1월 고베 시를 중심으로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훗날 한신 대지진이라고 명명된 이 대지진으로 약 63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고베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키타니 사장은 이때 숙부, 숙모 등 가족과 몇 명의 친구를 잃었다. 지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란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안정된 삶과 익숙한 편안함에 만족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정했다. 미키타니 사장은 당시 결정을 훗날 이렇게 밝혔다. "인생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돈과 지위를 잃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인생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미키타니 사장에게 큰 충격을 안긴 한신 대지진. 출처 플리커>
그는 많은 일본인 엘리트가 창업에 나서지 않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헤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대학 졸업 후 취직 대신 요리 사이트를 창업한 사람들 두고 주변에서 동정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라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젊은이들이 창업 대신 직장생활에 안주하는 것은 한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의 가능성을 믿고 전자상거래에 뛰어들다
회사를 그만둔 미키타니 사장이 처음 선택한 사업은 컨설팅이었다. 은행을 다니면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기업에게 경영에 관한 조언을 제공하는 컨설팅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컨설팅 사업은 스스로가 주(主)가 되는 사업이 아니라 미키타니 사장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7년 2월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인터넷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는 인터넷에 네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1) 인터넷은 더욱 간단해지고 더 편리해질 것이다. 2) 인터넷은 폭발적으로 보급될 것이다. 3) 모든 일본인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다. 4) 인터넷이 유통을 바꿀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망은커녕 56k 모뎀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황당하다 못해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즉시 주식회사 MDM(훗날 라쿠텐으로 이름 변경)을 설립하고 1997년 5월 1일 '라쿠텐 이치바(낙천시장)'라는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개시했다. 미국에서 아마존닷컴이 책뿐만 아니라 온갖 콘텐츠와 잡화를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변화를 꾀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라쿠텐도 함께 태어났다.
<라쿠텐 홈페이지 메인 화면>
하지만 라쿠텐은 업계의 선두주자가 아니었다. NEC, 후지쓰 등 일본의 대기업이 이미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라쿠텐 같은 영세한 기업이 설자리는 없어 보였다. 미키타니 사장은 살아남기 위해 두 가지 차별화된 전략을 선보였다.
첫 번째 전략은 저렴한 입점료였다. 당시 경쟁사들은 태동기라 상품이 잘 팔리지도 않는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서비스 입점료로 월 수십만 엔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입점하고 싶은 판매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반면 미키타니 사장은 사업이 잘 되든 안되든 업체들에게 입점료를 월 5만 엔만 받겠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전략은 발로 뛰는 것이었다. 미키타니 사장을 포함한 라쿠텐의 직원들이 판매자들을 직접 만나 라쿠텐에 입점하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성실한 인상을 주기 위해 판매자 앞에서 별로 힘들지 않은데도 땀을 흘리는 연기를 해가며 판매자들을 찾아나섰다. 판매자들에게 점포 근처에서만 물건을 팔지 말고 라쿠텐을 통해 일본 전역에 팔아보라고 권유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서비스 2개월 만에 50개, 반 년 만에 100개의 판매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이브카셀 전 루이비통 대표(왼쪽)와 함께. 출처 플리커>
이후 미키타니 사장은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해 고객과 판매자들을 라쿠텐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판매자들이 자사의 콘셉트에 맞는 판매 페이지를 만들 수 있도록 사이트를 간편하게 개편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이 때문에 라쿠텐은 사이트 구조가 통일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RMS(Rakuten Merchant Server)라고 불리는 이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는 문서작성기를 이용하는 것만큼 편리하고, 판매자 누구나 자유롭게 점포 페이지의 디자인, 상품 구성, 가격 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쇼핑은 엔터테인먼트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고객들이 판매자가 내놓은 물건에 입찰할 수 있는 온라인 옥션과 개인끼리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파는 프리마 옥션 등도 선보였다. 심지어 구매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싸지는 초기형 소셜 공동구매까지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마침내 라쿠텐은 대기업의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누를 수 있었다. 판매자 수도 1999년 1600여개, 2000년 2400여개를 돌파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 미키타니 사장은 라쿠텐을 자스닥(JASDAQ, 일본의 두 번째 주식거래소. 현 일본거래소 2부. 단 라쿠텐은 회사 규모가 크기 때문에 현재는 일본거래소 1부에 위치해있다)에 상장했다. 2005년 마침내 라쿠텐은 1만 5000개의 판매자와 4000억 엔의 유통 총액을 확보한 일본 1위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되었다.
라쿠텐 생태계를 만들다... 핵심은 라쿠텐 슈퍼 포인트
일본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한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사장은 그 다음 단계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신용카드, 금융, 포털 서비스, 여행, 증권, 프로 스포츠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만한 사례는 신용카드, 금융, 여행 서비스 등 세 가지다. 미키타니 사장은 이러한 라쿠텐의 사업 다각화를 라쿠텐 에코시스템(생태계)이라고 표현했다. 게다가 최근 아마존재팬에 전자상거래 1위 자리를 빼앗긴 라쿠텐은 다급해졌다. 이동통신과 가상화폐 발행까지 추진하고 있다. 과연 라쿠텐의 '빅픽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라쿠텐 로고. 라쿠텐 홈페이지 캡처>
라쿠텐 에코시스템의 핵심은 2002년 시작한 포인트 적립 제도인 '라쿠텐 슈퍼 포인트'다. 라쿠텐 슈퍼 포인트란 라쿠텐 이치바에서 구매한 물건 가격의 1% 정도를 라쿠텐 이치바를 포함한 라쿠텐의 전체 서비스에서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돌려주는 제도다. 각종 이벤트로 물건 가격에서 최대 20%까지 돌려주는 등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라쿠텐 회원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했다.
미키타니 사장과 라쿠텐은 이러한 라쿠텐 슈퍼 포인트를 바탕으로 자사의 금융 서비스를 성장시켰다. 미키타니 사장은 2001년 아오조라 카드를 3조 5000억 엔에 인수해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오조라 카드의 이름을 라쿠텐 카드로 바꾸고 라쿠텐 카드를 이용하면 전체 이용액에서 4% 정도가 라쿠텐 슈퍼 포인트로 적립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고객들이 라쿠텐과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또, 라쿠텐 카드를 이용하면 라쿠텐의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라쿠텐 홈페이지 캡처>
2008년에는 인터넷 전문 은행인 'e뱅크'를 인수해 라쿠텐 뱅크로 이름을 바꿨다. 2000년 설립된 e뱅크는 소액지급결제에 주력하는 바람에 적자에 시달리던 은행이었으나, 라쿠텐이 인수함으로써 상황이 달라졌다. 라쿠텐 은행에서 발급한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라쿠텐 슈퍼 포인트가 대거 적립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또한 라쿠텐 이치바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신용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라쿠텐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해 매년 고객수를 9% 이상 늘릴 수 있었다.
라쿠텐 여행은 원래 히타치가 운영하던 '여행의 창'이란 인터넷 호텔예약 서비스였다. 미키타니 사장은 이 서비스를 2000년 인수해 라쿠텐 여행으로 개편했다. 여행사의 상품을 팔던 다른 여행 서비스와 달리 여행의 창처럼 호텔, 비즈니스호텔, 료칸(일본식 고급 여관) 등을 판매자로 끌어들였다. 이를 통해 다양한 숙박 매물을 갖춰 사용자들을 라쿠텐 여행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지금도 라쿠텐 여행은 일본 현지 여행시 다른 여행 서비스보다 다양하고 저렴한 숙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당연히 라쿠텐 여행을 이용해도 라쿠텐 슈퍼 포인트가 적립된다.
이러한 세 가지 서비스 외에도 라쿠텐 에코시스템에 포함된 모든 서비스는 이용시 사용자들에게 라쿠텐 슈퍼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키타니 사장이 그린 라쿠텐 슈퍼 포인트를 중심으로 하는 라쿠텐 생태계다.
<라쿠텐 홈페이지 캡처>
미키타니 사장은 자신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유학시 전공한 기업 M&A를 적극 활용해 라쿠텐의 규모를 확장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거의 대부분의 신규 서비스를 기존의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형태로 진출했다. 일본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유망한 서비스를 인수해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4년 미키타니 사장은 10억 달러에 미국 온라인 리베이트(포인트 적립) 회사인 이베이츠(Ebates)를, 9억 달러에 인터넷 전화 및 메시징 서비스(VoIP)인 바이버(Viber)를 인수했다. 두 서비스 모두 라쿠텐 이베이츠, 라쿠텐 바이버로 이름을 바꿨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과 영국의 전자상거래 서비스 바이닷컴(Buy.com)과 플레이닷컴(Play.com)을 인수해 라쿠텐 글로벌로 개편하기도 했다.
미키타니 사장은 인터넷 업계 라이벌로 평가받는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유망한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차량 공유 서비스인 리프트에 3억 달러를 투자해 이사 자리를 확보했고, GM과 손잡고 무인 택시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라쿠텐은 모바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구상이다. 라쿠텐 홈페이지>
최근 미키타니 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바로 일본에 새 이동통신사를 차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라쿠텐은 이미 '라쿠텐 모바일'이라는 통신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라쿠텐 모바일은 일본의 이동통신사 '도코모'의 망을 빌려서 진행하는 MVNO(알뜰폰) 사업이다. 지난해 12월 미키타니 사장은 알뜰폰 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네 번째 이동통신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과거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보다폰 재팬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든 것과 유사한 행보다. 미키타니 사장의 야심대로 라쿠텐의 네 번째 이동통신사가 시장에 안착하면 라쿠텐 슈퍼 포인트의 활용 영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시장은 미키타니 사장의 이러한 야심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일본 이동통신 업계가 지난 20년 동안 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등 세 회사의 삼파전 구도로 굳어버렸고, 통신망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라쿠텐이 자리잡을 영역이 없다는 분석이다. 소프트뱅크조차도 보다폰 재팬의 인프라를 인수해 간신히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다가,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이 등장해 시장구조가 재편되기 전까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 바 있다.
아마존의 거센 도전... 판매자 중심의 사업 모델 한계
2016년 이후 미키타니 사장과 라쿠텐은 아마존닷컴 재팬, 야후재팬 쇼핑 등 경쟁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아마존닷컴 재팬에 지난 10년 동안 지켜온 일본 최대의 전자상거래 서비스라는 타이틀을 빼앗긴 것이 뼈아팠다.
아마존닷컴 재팬의 성공 비결은 '사용자 중심으로'다. 배송비 무료, 배송시간 지정 서비스 등 고객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 라쿠텐을 앞지르는데 성공했다. 또한 아마존닷컴 재팬은 일단 상품을 판매자한테 매입한 후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 서비스 등을 손쉽게 통일할 수 있었다.
반면 라쿠텐은 가격, 서비스 등을 입점한 판매자에게 맡겼기 때문에 "원하는 것과 다른 상품이 검색된다", "판매자마다 배송료와 서비스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사이트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등의 다양한 고객 불만이 터져나왔다.
판매자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은 분명 초기 라쿠텐이 대기업의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치고 앞서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뒤로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경쟁자는 판매자 중심을 넘어 사용자 중심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들고나왔다. 최근 라쿠텐의 부진은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있다.
라쿠텐 슈퍼 포인트를 가상화폐로 바꾼다... 거대 유통 기업의 실험
이러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미키타니 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진행 중이다. 사용자 중심으로라는 가치에 가장 잘 부합되는 자사의 서비스 라쿠텐 슈퍼 포인트를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암호화폐)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미키타니 사장은 지난 2월 말 열린 세계 최대의 모바일 기술 컨퍼런스인 MWC 2018에 참석해 라쿠텐 슈퍼 포인트를 가상화폐인 '라쿠텐 코인'으로 재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라쿠텐 서버에서 관리되는 마일리지 프로그램(라쿠텐 슈퍼 포인트) 대신 블록체인을 통해 관리되는 가상화폐(라쿠텐 코인)로 전 세계 누구나 라쿠텐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사실 라쿠텐의 이러한 행보는 갑자기 진행된 것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미키타니 사장은 가상화폐 지갑과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 '비트넷'을 인수하는 등 가상화폐에 큰 관심을 보낸 바 있다.
<미키타니 사장이 MWC2018에서 라쿠텐 슈퍼포인트를 라쿠텐 코인으로 개편한다고 밝히고 있다. 출처 라쿠텐 홈페이지>
기업이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이유는 보통 ICO(Initial Coin Offering, 가상화폐 공개)에 있다. 주식 시장에 상장할 만한 여력이 없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정규 상장이 어려운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가상화폐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주식 대신 가상화폐를 나눠주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 기업 공개와 큰 차이가 없다. 최근 암호화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이 ICO를 진행해 8억 5000만 달러를 조달한 바 있다.
라쿠텐 코인은 ICO를 목적으로 만든 가상화폐가 아니다. 라쿠텐은 지난 2000년 이미 자스닥에 상장해 기업 공개를 완료한 상태다. 라쿠텐 코인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 번째 목표는 환율, 환전 수수료 등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구매 수단을 만들려는 것이다. 라쿠텐 코인이라는 새로운 가상화폐가 활성화되면 일본 사용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용자들이 수수료와 환율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라쿠텐에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다. 이는 미키타니 사장이 꿈꾸는 라쿠텐의 글로벌화에도 부합한다. 두 번째 목표는 가상화폐 붐에 편승해 사용자들에게 라쿠텐이 낡은 유통 기업이 아닌 블록체인, 인공지능(현재 라쿠텐은 인공지능 기반의 쇼핑 추천 서비스도 개발해서 상용화를 꾀하고 있다) 등을 개발하는 최신 IT 기업임을 상기시키려는데 있다.
라쿠텐 슈퍼 포인트는 지난 15년 동안 라쿠텐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었다. 이제 그 자리를 라쿠텐 코인이 대신하게 된다. 라쿠텐이 제공 중인 모든 서비스에서 라쿠텐 코인을 이용할 수 있다. 라쿠텐이라는 거대 유통 기업이 그 가치를 보증하면서,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관리되는 가상화폐가 등장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체 블록체인 기술에서 운용할지 아니면 이더리움, 하이퍼레저 등 시중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지 라쿠텐 코인의 기술 기반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미키타니 사장은 "라쿠텐 코인은 국경없는 통화다. 고객과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라쿠텐은 판매자와 상인들의 네트워크를 재창조할 것"이라고 라쿠텐 코인을 발행한 의의를 설명했다.
참고문헌:
미키타니 히로시 저: 라쿠텐 스타일
신무경 저: 인터넷 전문은행 : 금융의 판을 바꾸는 거대 전쟁의 시작
중앙일보: 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2)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 -
http://news.joins.com/article/21454598
조선일보: 인구 줄어드는 일본의 유일한 해법… 개방 -
http://weekly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1/2017090101830.html
일본 위키피디아: 미키타니 히로시 -
https://ja.wikipedia.org/wiki/%E4%B8%89%E6%9C%A8%E8%B0%B7%E6%B5%A9%E5%8F%B2
테크크런치: 라쿠텐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발행 - https://techcrunch.com/2018/02/27/rakuten-will-
roll-its-9b-loyalty-program-into-a-new-blockchain-based-cryptocurrency-
rakuten-coin/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