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보드게임 작가들이 모였다, '보드게임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
[IT동아 안수영 기자] 할리갈리, 루미큐브, 젠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보드게임이다. 전 세계 보드게임 시장에는 이처럼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와 에디터들이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어떻게 게임을 만들었을까? 유명한 게임을 만든 작가들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세계 보드게임 작가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행사, '보드게임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가 안양 에이큐브: 인텔TG랩에서 지난 5일부터 6일까지 개최됐다. 보드게임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하고자 마련된 국내 최초의 보드게임 디자인 국제 컨퍼런스다. 젠가(Jenga)를 개발한 레슬리 스콧(Leslie Scott), 프랑스의 대표 게임 디자이너 브루노 카탈라(Bruno Cathala) 등 세계 보드게임 디자인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섰다. 참가자들은 보드게임 업계 관계자들과 보드게임 작가, 그리고 보드게임을 교육에 활용하고자 하는 강사들이 주를 이뤘다.
유명 보드게임 '젠가',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보드게임 젠가를 개발한 레슬리 스콧(Leslie Scott)이 와서 젠가의 제작 경험을 공유했다. 젠가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쌓다, 짓다'를 의미한다. 나무 블록을 쌓는 규칙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레슬리 스콧은 그 경험을 따서 게임의 이름을 젠가라고 명명했다. 젠가는 1970년대 초 영국에서 개발해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보급됐다.
누구나 젠가 게임을 알고 있는 오늘날과 달리, 젠가가 처음부터 유명세를 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레슬리 스콧은 젠가를 열심히 홍보했지만, 젠가 하나만으로 유통시장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고 다른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미국의 가게에서 고작 12개를 팔았을 만큼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캐나다에서 제품을 홍보할 때에는 '젠가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스콧은 "젠가라는 단어는 어떠한 의미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상품명으로 적합하다"라고 설득했고, 그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젠가는 TV 광고를 할 때에도 이름을 부각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름은 우스꽝스럽지만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홍보했고, 그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젠가'라는 단어는 이 게임만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캐나다에서 젠가의 라이선스를 구입한 이후, 미국에서 전세계 라이선스를 구입하면서 젠가는 점차 세계로 퍼져나가게 됐다.
스콧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의 네이밍은 중요한 마케팅 요소다. 만약 이 게임이 젠가가 아닌 평범한 이름으로 명명되었다면 사람들은 지금처럼 젠가를 대명사로 떠올리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젠가만의 쉽고 간단한 규칙, 스릴 넘치는 아찔함 역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매력일 것이리라. 처음부터 인기를 끌지는 못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알리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겠다.
내 보드게임을 세계 시장에 출판한다, '킥스타터'
프랑스의 칼럼니스트이자 보드게임 킥스타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제이미 존슨(Jamie Johnson)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서 보드게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는 코난(Conan), 라이징5(Rising 5) 등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으며, 라이징5는 목표액의 170%를 달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펀딩이란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실현할 후원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의미한다.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면 금전적 여유가 없더라도 나만의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킥스타터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다. '좀비사이드(Zombicide)'처럼 킥스타터를 통해 탄생한 보드게임도 있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모집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제이미 존슨은 "킥스타터의 트렌드도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완제품을 판매하는 프리오더 개념으로 넘어가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킥스타터에 올린 게임이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게임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어떤 스타일의 게임인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메인페이지는 프로젝트의 인상을 결정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로 시작해야 한다. 배송 일정, 프로젝트 진행자의 경력도 후원자들이 궁금해하는 요소다"라고 말했다. 전세계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여러 언어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번잡해지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만약 다른 언어를 넣고 싶다면 링크를 연결해 다른 페이지에서 소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후원에 따른 리워드도 중요하다. 일괄적으로 같은 리워드를 주기보다는, 후원 레벨에 따라 리워드를 각각 다르게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찍 후원하는 얼리버드 유저에게는 좀 더 많은 할인 혜택을 주어야 프로젝트가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추가 비용을 내면 확장판을 제공하는 등의 요소도 필요하다.
제이미 존슨은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며 후원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후원을 했고 공장에서 물건이 어떻게 제작되고 있는지, 언제 배송할 것인지 등 사소한 것이라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후원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제공해 실질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좋다.
그는 "완전히 준비되기 전까지 시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킥스타터에 프로젝트를 올리고 난 뒤 준비하는 것은 안 된다. 시작하기 전에 만발의 준비를 갖춰야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다. 또한, 킥스타터에 게임을 소개하기 전에 주변의 지인들과 SNS를 동원해 미리 홍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작가와 함께하는 게임 대회도 열려
한편, 5일 행사에는 레슬리 스콧과 함께하는 젠가 대회도 열렸다. 강연을 듣던 참가자들은 일제히 젠가 대회에 참여하며 몸을 풀었다. 나무 블록을 뽑아서 맨 위에 쌓아올리는 단순한 규칙이지만, 나무 블록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즐거움을 선사했다. 참가자들은 조심스레 나무 블록을 뽑고 쌓으면서, 나무 블록을 와르르 쏟으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결승에 진출한 참가자들은 레슬리 스콧과 최종 대결을 펼쳤는데, 최종 우승은 젠가의 개발자인 레슬리 스콧이 차지했다. 이와 같은 부대행사도 행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마스터 클래스, 보드게임 시장 발전의 의의를 갖다
이번 보드게임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한 만두게임즈의 김기찬 대표는 "한국 보드게임 작가들을 위해 해외 유명 전문가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한국에는 보드게임 퍼블리셔가 서너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작가들이 해외에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가 교류하고 있는 해외 유명 전문가들을 데려와 노하우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이 우리 작가들의 게임을 보고 하나라도 해외 시장에 진출하도록 돕는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 여겼다"라며 행사를 기획한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첫 걸음을 뗀 보드게임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 행사는 보드게임 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보드게임 개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의의가 있다. 김 대표는 "세계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만큼, 이번 행사가 해외에도 이슈가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보드게임 시장 발전을 위한다는 취지에 적극 참여했고, 해외의 대형 보드게임 회사에서도 향후 참여 의사를 밝혔다. 덕분에 내년에 '보드게임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 유럽'이 확정됐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번 행사에서 피드백을 받아 내년도 방향을 정할 예정이다. 보드게임 시장 발전을 위해 내년 행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행사가 열린 '에이큐브: 인텔TG랩'은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네트워킹 공간이다. 스타트업과 예비창업자를 위한 각종 교육, 세미나, 창업지원 멘토링, 개발 대회, 네트워킹 파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안양창조산업진흥원(원장 박병선)과 IT동아(대표 강덕원)가 후원했다. 안양창조산업진흥원의 박병선 원장은 "보드게임은 세대를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놀이 문화다. 보드게임을 개발하는 작가들이 마스터 클래스 행사를 통해 유익한 정보를 얻어가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