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석과 새로움이 만난 게이밍 키보드, 로지텍 G810
[IT동아 이상우 기자] 키보드는 우리가 PC에 무엇인가를 입력하기 위한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수단이다. 단순한 텍스트 입력 외에도 각종 단축키를 입력하는 등 PC 사용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키보드는 게임을 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1인칭 슈터 게임(FPS) 같은 장르는 물론,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롤 플레잉 게임(RPG) 등 다양한 장르에서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입력장치다. 대전 액션 게임이나 슈팅 게임 등도 조이스틱과 비교해 손맛은 떨어지지만,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키보드가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키보드 중에는 게임에 특화한 제품도 있다. 우리가 흔히 '게이밍 키보드'라고 부르는 제품이다. 게이밍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 어떤 점이 다를까?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기계식 스위치다. 인쇄회로기판과 실리콘 접점을 이용해 입력하는 일반 키보드와 달리, 각 글쇠가 독립적으로 제작된 부품(기계식 스위치)를 사용한다. 이밖에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각 글쇠에 기능을 변경하거나, 키보드에 부착된 부가 버튼으로 여러 기능을 사용하고, 일부 제품 중에는 LED를 장착해 꾸며놓은 제품도 있다. 로지텍이 출시한 G810 오리온 스펙트럼 RGB(G810 Orion Spectrum RGB, 이하 G810)은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갖춘 게이밍 키보드다.
우선 기계식 스위치를 살펴보자. 우리가 흔히 아는 게이밍 키보드는 대부분 체리가 제작한 기계식 스위치를 사용하며, 어떤 종류의 스위치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청축, 갈축, 적축 등으로 부른다. 이보다 조금 더 저가의 키보드의 경우 체리 스위치보다 조금 저렴한 카일 스위치를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체리 스위치>
그런데 로지텍 G810은 이런 기계식 스위치 대신 자사만의 독특한 스위치를 사용한다. 마우스용 스위치(버튼)로 유명한 옴론과 합작해 만든 새로운 방식의 스위치로, 이를 로머G(Romer-G) 스위치라 부른다. 스위치의 가장 큰 특징은 LED 조명과 가장 어울린다는 점이다. 기존의 체리 축이나 카일 축은 스위치 가운데 십자(+) 모양의 축이 있어서, 대부분 축 바로 위에 LED를 내장하거나 축 전체를 LED 유닛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스위치 가운데 있는 축은 구조상 빛이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조명 역시 균일하지 못하다.
<로머G 스위치>
이와 달리 로머G 스위치는 축 가운데가 비어있는 방식이라, 이 비어있는 자리에 LED를 넣는다. 단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을 표현하는 RGB LED를 넣는 것도 가능하다. 이 덕분에 빛이 고르게 퍼지며, 특히 투명한 스위치 유닛을 통해 빛이 퍼지는 방식이 아니라 LED를 통해 빛을 직접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밝고 선명한 색을 구현할 수 있다.
<로머G 스위치의 LED 조명>
키캡의 내구도 역시 비교적 좋은 편이다. 십자축 하나에 키캡을 삽입하는 방식은 해당 키캡을 자주 끼웠다 빼면 구멍이 마모돼 키캡이 튕겨나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로머G 스위치는 고정 부위가 네 방향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의 주류로 쓰이는 방식이 아닌 만큼, 호환하는 키캡도 적은 점이 아쉽다.
타건감은 나쁘지 않다. 누르는 데 드는 힘은 체리 갈축과 비슷한 정도고, 가볍게 눌러도 키가 인식된다. 소리는 적축 키보드를 일명 '구름타법'으로 치는 것과 비슷하게 나며, 키를 눌렀을 때 나는 느낌은 기계식 스위치의 느낌과 함께 멤브레인 키보드(실리콘 접점을 사용한 일반 키보드)의 부드러운 느낌도 함께 나는 듯하다.
전반적인 타건감이 부드러우면서 경쾌하기 때문에 고속 입력 시 유용하다. 또한, 체리 청축 같은 클릭 스위치와 다르게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아서 일반 업무용으로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글쇠를 바닥까지 치지 않고 반 정도만 눌러 입력하는 구름타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에게 키를 입력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다.
키보드 자판 구성은 일반 키보드와 동일하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특히 한글 입력 시 자주 쓰는 오른쪽 시프트 키가 비교적 넓다. 다양한 기능을 사전에 등록하는 하드웨어 매크로 키는 없지만, 오히려 이 키가 없어서 더 깔끔한 면도 있다(하드웨어 매크로 키에 익숙하지 않으면 일반 키 입력 시 잘못 누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
우측 상단에는 LED 조명을 켜고 끄는 버튼과 음소거버튼이 있으며, 바로 옆에는 음량을 조절하는 스크롤 휠이 있다. 스크롤 휠 바로 아래에는 미디어 컨트롤 버튼이 있어, 이를 통해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 등을 쉽게 조작할 수 있다. 게임 중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화면을 전환할 필요 없이 이 버튼을 이용해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면 된다.
프린트 스크린 버튼 위에는 '게임 버튼'이 있다. 일반적으로 게이밍 키보드에는 윈도우 키 잠금 버튼이 존재한다. 게임 중 실수로 윈도우 키를 누르면 바탕화면으로 돌아가 시작 메뉴가 열리는데, 이 때문에 게임에서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윈도우 키 잠금 기능을 이용해 작동하지 않도록 고정한다(물론 윈도우 키를 빼버리는 사람도 있다). G810의 게임 버튼은 이보다 조금 더 진화한 버튼이라 할 수 있다.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윈도우 키뿐만 아니라 게임 중 거추장스러운 키를 모두 잠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엔터 키를 누를 때 위에 있는 \ 키를 잘못 누르는 경우가 많다면 이 키를 잠가버리면 된다.
전용 소프트웨어는 필자가 지금까지 사용해본 게이밍 키보드 중 가장 사용하기 쉽고 편했다. 각종 단축키를 등록하는 것은 물론, 각 게임별로 설정을 등록하면, 각 게임을 자동으로 인식해 설정을 바꿔주는 기능도 존재한다. 조명 점등 방식 역시 몇 가지 프리셋을 제공하고, 이 프리셋에서 특정 키의 색상을 사용자가 원하는 색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설정이 아주 간편하다.
키 누르기 히트맵 기능도 있다. 일종의 벤치마크 기능으로, 이 기능을 활성화한 뒤 키보드를 사용하면 자신이 어떤 키를 얼마나 자주 누르는지, 그리고 분당 키 입력 속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다.
G810 가격은 19만 9,000원이다. 여러 중소 제조사가 내놓은 제품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흔히 게이밍 기어 명가라 부르는 대표적인 제조사들이 내놓은 제품 사이에서는 비슷한 수준이다. 화려하고 기능이 많은 게이밍 키보드와 비교해 깔끔하면서 기본에 충실한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품이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