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과 사진전, '여기, 멈춘 시선'의 박기호 사진가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16년 1월 15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화랑 'L153 Gallery'에서 박기호 사진가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지난 2015년 12월 1일부터 오는 2016년 1월 28일까지 '여기, 멈춘 시선'이라는 주제의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그가 지금까지 촬영했던 사진들과는 다른 측면을 담고 있다. 30년간 집중했던 인물 사진도,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치밀하게 준비해 제작했던 상업 사진도 아니다. 그저 조용한 일상을 담고 있다.

박기호 사진작가
박기호 사진작가

그는 이번 사진전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30년간 인물 사진을 찍었다. 자연을 담은 풍경 사진은 시도해 본 일이 거의 없다. 그저, 풍경 사진에는 감각이 없다고 여겨 왔다. 하지만, 지난 5년 전부터 공부를 위해 떠난 미국에서, 경기 침체로 문을 닫은 빈 가게들을 촬영하며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다. 사진이란, 사진가가 의도에 맞게 구도를 잡아 촬영하기보다, 장소든, 사물이든, 피사체를 만나 대화하다 보면 저절로 그것들이 스스로 자신을 내어 준다는 점이다. 나는 그 순간을, 그 자체를 사진으로 담았다. 풍경 사진도 그렇더라. 자연이 내어 준 것을 꾸밈없이 그들의 소리를 담았다"라고.

그리고, 그는 이번 사진전 작품을 35mm 필름 카메라도, DSLR 카메라도 아닌 아이폰으로 찍었다. 연예 기자도 문화 기자도 아닌 IT기자가 그를 만난 이유다.

- 작가 소개 –

박기호 사진가는 1960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1986 Rhode Island of School of Design'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세계적인 사진가 'Bruce Davidson'의 어시스턴트로 발탁되어 그의 여러 작업에 참여했다.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1987년 'Newsweek'의 한국 파견 사진기자로 귀국, 이후 약 20년 동안 한국에서 'Businessweek', 'Fortune', 'Time', 'Forbes' 등 다양한 해외 유명 잡지사들과 작업했다.

타임지 장동건
타임지 장동건

그리고 그는 지난 2007년 인물 사진에 오브제를 덧붙인 3차원적인 사진을 시도한 'Photography & Texture'로 첫 개인전을 가진 후, 돌연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중심으로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던 중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다큐멘터리화한 'Everything Must Go'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인물을 중심으로 바라보던 사진에서 사물 또는 공간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전환된 시각을 표현한다. 이후 '빈 공간이 말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듣기를 시도한 작품들로 2011년 뉴욕과 보스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한국에 돌아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가지고 철거 되는 재개발 지역의 빈집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2년 동안 촬영, 2014년 'One Season'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 캠퍼스와 연세 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금요일. 점심시간을 막 지난 뒤 방문한 연희동의 L153 갤러리는, 전시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누군가의 작은 작업실처럼 느껴졌다. (이제와 말하지만) 만약 기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 L153 갤러리가 있었다면, 아직 임대되지 않은 어느 가게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으리라. 실제로 '여기인가?' 싶어 앞에서 몇 번을 망설였으니 말이다. 오후 2시.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박기호 사진 작가가 화랑으로 들어섰다. 그는 처음 만난 기자를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생각보다 화랑이 정말 아기자기해서 놀랐다(웃음).

박기호 사진가(이하 박기호): 하하. 공간이 꽤 협소하다(웃음). 많이들 놀라곤 한다. 이곳은 걷다가 문득 들어와서, 아무 제한 없이, 그렇게, 누구나 들어와서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개된 작은 전시 공간이다. 보시다시피 많은 사진을 전시하지도 않았고…, 오는 7월 프랑스에서 진행할 사진전에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L153 갤러리
L153 갤러리

IT동아: 먼저 화랑에 도착해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진을 아이폰으로 촬영하셨다고.

박기호 : 최근 화가, 시인 등 예술가들을 아이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음… 시작은 딱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한 인물을 촬영했었다. 평소처럼 카메라를 준비했고, 평소처럼 인터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는 포즈로, 소위 말하는 딱딱한 포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긴장된 얼굴 표정은 덤이었고(웃음). 사진 결과물을 보면 마치 마음이 비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박기호 인물사진
박기호 인물사진

그래서 가지고 있던 아이폰으로 그냥 사진을 찍었다. 셔터음을 줄이고. 이후에 결과를 봤더니 이게 너무 재미있더라. 자연스러운 표정, 자연스러운 포즈, 자연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더라.

IT동아: 그 부분은 기자도 동의한다. 오늘처럼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사무실에 돌아가 찍은 사진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질문을 주고 받는 지금 이 상황을 누군가 뒤에서 계속 찍어주면, 그 순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담곤 한다.

박기호 : 무거운 35mm 카메라를 들고 접근할 때, 사진 찍히는 사람이 약간은 부담스러워 하더라. 잡지 화보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일 경우에는 평소 모습보다 과장된 포즈를 취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아이폰으로 작업하면, 사진을 찍을 때 그 피사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의 내면까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가끔 예술가들은 나의 지나친 접근에 방해를 받기도 하고, '정말 이걸로 찍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여느 어색함이나 거짓됨 없이 아주 편한 포즈를 취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안의 솔직한 감정까지 사진에 잡아낼 수 있었다. 이제 아이폰으로 찍는 사진들은 잡지 한 페이지로 레이아웃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실제 박 사진가는 자신이 운영 중인 홈페이지에 아이폰으로 작업한 사진을 따로 분류해 공개했다).

아이폰 인물사진
아이폰 인물사진

기자님도 잘 아시지 않는가(웃음). 카메라를 들면, 상대방은 (사진을 찍힌다는) 나름의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카메라를 없앴더니, 있는 그대로의 표정이 나오더라. 상대방은 사진 찍히는 줄도 잘 모른다.

박기호 인물사진
박기호 인물사진

IT동아: 아이폰과 같은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그만큼 좋아진 것이라고 생하시는지.

박기호 :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전에는 이렇게 작업할 수 없었다고. 반대로 말하자면, 이제는 아이폰 성능이 좋아져서 그만큼 결과물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예전 핸드폰은 카메라에 여러 문제가 있었다. 작은 해상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색감 등이다. 하지만, 이제는이러한 문제를 조금씩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사물, 공간, 인물 등 피사체를 촬영할 때 아무런 중간 과정(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준비 과정)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촬영을 시작할 때, 얼마나 많은 준비 과정이 필요한가.

"빈 집, 철거될 공간도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IT동아: 사진이 좀 독특하다. 사진을 전통 한지에 프리트한 것도 눈에 띄고.

박기호
박기호

박기호 : 나이 50에 미국으로 다시 사진을 공부하러 갔었다. 그 이전에는 약 30년 동안 포춘지, 타임지 등에서 인물 사진을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의 타임지 표지 사진도 촬영했고. 그런데, 너무 지쳤었다. 사진가로,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경력도 쌓아갔지만, 아직 내가 모르는 사진 기술, 기법 등은 도무지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떠났다. 사진 공부하러(웃음).

결정하는 과정이 힘들었지, 막상 떠나기로 결정한 뒤 실행에 옮길 때는 어렵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 2년이 가장 행복했다. 그 2년 동안 한가지 촬영한 작품이 있다. 'Everything Must Go'라고,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의 빈 가게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혹독한 경기 침체로 미국 전역에 빈 가게들이 많았다. 가게는 내놔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니, 그렇게 몇 년을 사람 없는 공간이 되버린 것이다.

박기호 Everything Must
Go
박기호 Everything Must Go

박기호 Everything Must
Go
박기호 Everything Must Go

그렇게 그 곳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그 공간이 담고 있는 냄새가, 역사가 보인다. 판매하다가 그대로 남겨져있는 가게 속 신발, 손님들이 지켜 봤을 미장원 속 거울 등. 사진을 보면, 시간이 담겨 있고, 그 시간은 그 공간의 역사를 느끼게 하더라.

IT동아: 그 때의 경험, 그 때의 모습으로 국내의 빈 공간도 담은 것인지.

박기호 : 한국에 돌아와서 약 3년 동안 철거를 기다리는 빈 공간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빈민촌, 연립주택이 들어선 지역 등…. 독립문 일대, 북아현동 등을 다니면서 그 공간을 담았다. 그리고 이 때 딱 눈에 들어온 것을 바로 촬영하기 위해 아이폰을 사용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카메라 꺼내고, 준비하고, 설정 바꿔 가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박기호 여기, 멈춘 시선
박기호 여기, 멈춘 시선

박기호 여기, 멈춘 시선
박기호 여기, 멈춘 시선

연세대 강의를 끝나고,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한 뒤, 북아현동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지나가면서,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고, 아이폰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그 때 아이폰으로 촬영한 이유는 추후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갔더니 철거했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너무 마음에 들어서) 프린트해서 봤는데, 이게 썩 괜찮았다. 다른 사진가도 이렇게 잘 나올지 몰랐다더라. 하긴, 내 자신도 놀랐으니 말 다했다(웃음).

박기호 여기, 멈춘 시선
박기호 여기, 멈춘 시선

어느 사물을 봤을 때, 단 10초만 지나도 사물이 달라보일 때가 있다. 그게 사람이건, 자연이건, 1초만에도 바뀐다. 35mm 카메라를 셋팅하려면 오래 걸릴 때가 많다. 휴대폰도 사진가가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담고나 하는 느낌,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수 있다. 이제는 그게 너무 좋다.

IT동아: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박기호 : 기자님이 앉아 있는 의자 뒤에 있는 사진은 괴산에 있는 풀무원의 연수원을 촬영한 사진이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이다(웃음). 나중에 다시 카메라를 들고 가서 재촬영했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 사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촬영할 수 없다. 딱 그랬다. 먼저 찾아가 촬영한 눈 덮인 그 곳의 사진은, 다시 돌아와 촬영한 그 곳의 사진과 달랐다.

박기호 풀무원
박기호 풀무원

요즘은 휴대폰, 아이폰도 또 하나의 작업도구라고 생각한다. 기존 35mm 카메라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카메라와 휴대폰을 직접 비교해 어느 것이 더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카메라는 이럴 때 이래서 좋고, 휴대폰은 저럴 때 저래서 좋은 것이니(웃음).

IT동아: 혹시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있으신지.

박기호 : 대부분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 촬영하지만, 딱 하나 있다. (사진전에서 소개한 작품은 모두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라고) 'HIPSTAMATIC'라는 카메라 앱이다. 여러 사진 앱을 사용해봤는데, 이게 나와 가장 잘 맞더라(웃음). 특히, 흑백으로 전환해주는 기능이 내게 딱이었다.

HIPSTAMATIC
HIPSTAMATIC

HIPSTAMATIC
HIPSTAMATIC

IT동아: 카메라가 아닌, 아이폰으로 촬영해서 좋았던 다른 점은 없었는지.

박기호 : 음.. 아, 이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여긴 나남출판의 본사다. 누굴 좀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이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왼쪽 위에 앉아있는 이 분을 사진 안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바로 뒤가 벽이어서, 전체 공간을 담을 수가 없더라.

결국은 벽에 아이폰을 딱 붙여서 원하는 앵글을 확보했다. 여담이지만, 만약 일반 카메라였다면, 렌즈 길이만큼 앵글을 손해봐야만 했을 것이다. 왼쪽 상단의 인물도 담아내지 못했을테고. 그리고 간단한 수정이나 편집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할 수 있다.

박기호 카페
박기호 카페

그는 화랑에 들어서고 난 뒤, 기자와 헤어질 때까지 줄곧 웃음과 온화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에도 관심을 보이고, 기자가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농담도 주고 받았다. 약 1시간 동안 그와 사진, 카메라, 아이폰 등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많은 대화 중에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

"예전에는 이런 사진 작품을 주고 받는 것도 어려웠다. 신문사에서 일했을 때다. 당시 판문점에서 북한과 회의하는 사진을 촬영하고, 이걸 저녁 신문(석간이 아니다. 밤 11시에 인쇄하는 저녁 신문을 말한다)에 올리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아나. 그냥 차로 달리는 거다. 판문점에서 서울 신문사까지. 그랬는데, 이제는 이렇게 사진을, 작품을 손쉽게 보낼 수 있다. 이게 다, 휴대폰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참 많이 달라졌다"

박기호 사진작가
박기호 사진작가

(그가 기자에게 내준 숙제가 하나 있는데, 고민이다. 최근 칼자이스가 내놓은 아이폰용 렌즈(ExoLens)를 아무래도 자기보다 먼저 접할테니, 어떤지 꼭 좀 전해달라더라. …큰일이다. 저 렌즈는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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