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오름차순의 추리 게임, '다빈치 코드'
다빈치 코드 (2004) <출처: divedice.com>
암호란 '뜻을 감추기 위해 꾸민 부호나 신호'를 일컫는 것으로, BC400년경 고대 그리스부터 전해 온 가장 기본적인 비밀유지 수단이다. 암호는 현재까지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여전히 보안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암호는 원래 목적인 보안뿐만 아니라 그 특유의 비밀스러움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소재로도 사용됐다. 이에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암호를 테마로 탄생하기도 했다.
보드게임 '다빈치 코드' 또한 암호라는 소재를 이용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동명의 소설, 영화의 제목을 배경으로 했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복잡한 플롯에 비하면 매우 쉬운 게임이다. 다빈치 코드는 상대방의 암호를 풀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다.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상대방보다 먼저 암호를 풀어내야 하기에 심리전과 속임수가 벌어지며, 약간의 운이 재미를 좌우하기도 한다.
게임 방법
다빈치 코드의 장점은 규칙이 간단해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심자에게 규칙을 설명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다빈치 코드의 구성물 <출처: divedice.com>
다빈치 코드에는 0~11까지의 숫자가 각각 하나씩 적혀 있는 흰색과 검은색 타일이 있다. 또한, 숫자 없이 막대 모양(-)이 그려져 있는 흰색과 검은색 타일이 한 개씩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커 타일이다. 즉, 다빈치 코드에 있는 타일은 총 26개다.
_모든 플레이어의 타일 배열 방식이 모두 같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출처: divedice.com> _
먼저, 이 타일들을 숫자가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 섞는다. 각 플레이어들은 26개의 타일들 중 4개씩을 무작위로 가져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지 못하도록 세워둔다. 남은 타일들은 더미로 만들어 모아둔다.
이제 숫자 타일들을 배열할 차례다. 타일을 배열할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큰 숫자가 오도록 한다. 같은 숫자의 흰색, 검은색 타일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검정색이 왼쪽, 흰색이 오른쪽에 오도록 배치한다. 단, 조커 타일은 이 규칙에 상관없이 아무 곳에나 놓을 수 있다. 게임의 목표는 내 코드가 밝혀지기 전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숫자 코드를 모두 밝혀내는 것이다. 자기 차례에 해야 할 일은 딱 두 가지다.
첫째, 타일 더미에서 타일 하나를 가져온 뒤 이 게임의 규칙에 따라 배치한다.
타일을 가져온다. 어떤 색의 타일을 가져올지 전략적으로 판단하면 좋다. <출처: divedice.com>
둘째, 상대방의 타일 중 하나를 지목해, 그 숫자가 무엇인지 맞혀야 한다.
추리가 맞았을 경우, 상대방은 자신이 들킨 타일을 눕혀 모두에게 공개한다. 추리가 틀렸을 경우, 정답을 틀린 플레이어가 더미에서 가져왔던 타일을 눕혀 모두에게 공개한다.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긴다.
상대방의 타일을 지목한다. <출처: divedice.com>
만약 추리가 맞았다면 계속해서 상대방의 타일을 추리할지, 차례를 다음 플레이어에게 넘길지 선택할 수 있다. 계속해서 추리를 할 경우 타일을 한 번 더 추리한다. 다만, 한 번이라도 추리가 틀리면 이번 차례에 가져왔던 타일을 공개하고 차례를 넘겨야 한다.
추리를 맞히면 그 타일을 공개한다. 여기서 멈추면, 타일을 1개 더 가지고 차례를 마칠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추리를 계속하지 않고 차례를 넘길 경우에는 이번 차례에 가져온 타일을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가진 코드에 대한 정보를 덜 노출할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코드가 하나 하나 드러나고, 이를 바탕으로 추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검정색 2 타일을 갖고 있는 것이 들통났고, 그 왼쪽에 흰색 타일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왼쪽에 있는 숫자는 검정색 2타일보다 작은 숫자다. 따라서 그 흰색 타일은 0 또는 1, 또는 조커라고 추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상대방의 코드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된다.
이렇게 해서 누군가 가진 코드가 모두 밝혀지면 그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탈락한다. 모든 사람을 물리치고 최후에 남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승리한다.
기본적인 추리 방법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적인 사고다. 상대방의 코드를 푸는 과정에서 100% 어떤 타일인지 알 수 있는 경우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우를 맞하는 것은 확률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내가 정확히 맞힐 확률은 극대화하고, 상대방이 맞힐 확률은 최소화하는 것은 순전히 플레이어의 능력에 달렸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운에 의지해야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운의 요소는 점차 줄어든다. 타일을 하나씩 가져오면서 코드가 길어지고, 길게 늘어선 코드 사이사이에 공개된 타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려면 약간의 암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타일을 지목할 때, 대부분은 자신에게 없는 숫자의 타일들을 물어보게 된다. 상대방이 물어보는 숫자들을 기억해 두고, 이 타일이 상대방에게 없다고 가정하며 추리를 이어간다면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도 있다.
추론의 예시 <출처: divedice.com>
예를 들어, 2인 플레이 시 위와 같은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방의 흰색 3번 타일과 검정색 7번 타일 사이에 있는 흰색 타일을 추리할 때, 그 타일은 4, 5, 6, 조커 타일 중 하나가 된다. 여기서 내가 가진 흰색 4와 조커 타일을 제외하면 후보는 5, 6 타일로 줄어든다. 이 때, 만약 상대방이 그 전에 흰색 5나 6을 불렀던 적이 있었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올바로 추리할 확률은 50%에서 100%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렇듯 다빈치 코드는 기억력과 논리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게임이다.
심리전 고수의 추리 방법
보드게임은 얼굴을 맞대고 하는 놀이다. 보드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커뮤니케이션에서 말보다 더 비중이 큰 것은 비언어적 소통이다. 승리에 있어 논리가 주된 요소라면 비언어적 요소, 즉 심리전의 요소는 부가적인 재미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보드게임, 특히 추리 게임에서는 승리를 위해 비언어적 요소를 제어하는 것이 좋은데, 다빈치 코드에서도 상대방의 행동을 통해 긴장 상태나 수를 읽을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아래 3가지 사항을 기억하는 것이다.
첫째, 상대방이 하던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를 놓치지 말자.
둘째, 안 하던 행동을 갑자기 하는 경우를 인지하자. 예를 들면 마시던 음료를 빠르게 자주 마시는 것, 갑자기 한숨을 쉬거나 팔짱을 끼는 것 등이 있다.
셋째, 당신이 관찰하고 있음을 상대가 알아채게 하지 말자.
게임의 분수령이 되기도 하는 조커 타일 <출처: divedice.com>
다빈치 코드에서 비언어적 신호는 조커 타일을 놓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타일을 뽑고 코드 사이에 놓을 때, 그 전에 비해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조커 타일을 뽑았다는 대표적인 신호다. 상대방에게 조커 타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몇 번 추리가 틀리고, 자신의 코드 사이 사이의 숫자들이 공개되면서 타격을 입는데, 이럴 때 관찰력이 빛을 발할 수 있다. 행동의 관찰은 속임수를 잡아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대방이 불렀던 숫자는 상대방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추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숙련자들의 게임에서는 이를 역이용해 본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숫자를 불러 상대방의 생각에 혼란을 주는 속임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뇌의 변연계는 부정적이거나 불쾌한 경험을 했을 때 이를 진정시키는 행동이 뒤따라오도록 한다. 속임수를 쓰는 것 또한 불쾌한 경험의 일종인데,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목을 만지거나 쓰다듬는 것, 입이나 코, 눈을 비비는 것, 눈을 자주 깜빡이는 것 등의 행동이 이어진다. 이런 것들은 즉각 읽을 수 있는 신호이므로, 게임 중에 제공되는 일종의 힌트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관찰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인지하면 이러한 행동들을 숨기게 되니, 들키지 않아야 한다.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플레이어를 교란하기 위해 인위적인 행동들을 할 것이다. 일부러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조커 타일은 지체 없이 바로 놓고 일반적인 숫자 타일들은 의도적으로 천천히 놓을 것이다.
한국어판의 발매
다빈치 코드는 2004년부터 국내에 유통됐는데, 정식으로 한국어판이 출판될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르고(Algo, 2002)와 코다(Coda, 2003) <출처: boardgamegeek.com>
다빈치 코드는 2002년 일본에서 '아르고'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됐으며, 2003년에는 독일 위닝무브즈(Winning Moves Deutschland GmbH)에서 '코다'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위닝 무브즈사는 2004년에 게임의 이름을 '다빈치 코드'로 바꿔 출시했고, 이 게임은 국내에 수입업체를 통해 소량 수입되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한국어판 게임의 유통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던 국내 보드게임 유통사는 위닝무브즈 사와 연락해 다빈치 코드의 국내 판권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판권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일본의 보드게임 제작사는 보드게임 시장에서 생소한 이미지였고, 제작사 가켄(Gakken) 역시 보드게임 전문 제작사가 아닌 일본 내 교구를 출판, 유통하는 회사였다. 때문에 일반적인 보드게임 라이선스 계약과 달리, 서적 출판 계약에 가깝게 다빈치 코드의 한국어판 제작이 진행됐다. 하지만 소통 과정이 굉장히 더뎠고, 이 기간 동안 국내에서는 위닝무브즈사에서 공식 수입한 독어판이 주로 유통됐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독어판에 익숙해지자, 다빈치 코드의 한국어판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기존 독어판 게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야 했다. 때문에 다빈치 코드의 국내 유통사는 독일 위닝무브즈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게임 박스의 아트웍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유통사는 박스의 재질, 광택 등을 독어판과 최대한 똑같이 제작하기 위해 6~8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다만, 한국어판만의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박스의 왼쪽 하단에 모나리자 이미지를 추가한 것이다.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만큼, 국내 소비자들에게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다빈치 코드의 독어판과 한국어판. 한국어판은 모나리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출처: divedice.com>
이렇게 새 상품을 만들듯 제작된 박스와 생산 공장에서 만들어진 타일을 더해, 2008년 다빈치 코드의 한국어판이 출시됐다.
운도 실력이다
다빈치 코드는 논리적, 심리적, 운의 요소가 녹아 있는 간단한 추리 게임이다. <출처: boardgamegeek.com>
다빈치 코드는 가볍게 플레이할 수 있으며, 운의 비중이 적지 않은 게임이다. 숫자 타일을 무작위로 가져오는 점, 상대방 코드에 대한 단서가 쌓이기 전에는 '찍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운의 비중이 크다.
대체적으로 운이 많이 작용할수록 게임의 난이도가 낮아지며, 진입 장벽이 낮아 입문자용 게임으로 불린다. 반대로 운이 적게 작용할수록 게임의 난이도가 높아지며, 자신의 전략에 따라 게임의 향방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자는 편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고, 후자는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게임 후 평가를 남기는 사람은 대부분 오랜 시간 게임을 해온 숙련자이기 때문에, 가벼운 게임들은 그 즐거움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는 예외다. 다빈치 코드는 보드게임을 오랫동안 취미로 한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게임 중 하나다. 논리적인 추리, 심리전, 운 등 3가지 재미있는 게임 요소를 적절하게 버무리면서 플레이 시간이 짧다. 바로 이것이 다빈치 코드가 지난 10년 간 사랑 받아온 이유다. 여기에 굳이 다빈치 코드가 동경대 수학과 학생, 그리고 세계 수학 올림픽 1회 우승자가 만든 게임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조성우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