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내가 촬영한 영상을 전세계가 본다’ 유튜브 창립 멤버, 채드 헐리
[IT동아 강형석 기자] 불과 몇 년 전에는 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과정은 방송사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은 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어도 배포하는 것에 제약이 있었다. 기껏해야 전자우편으로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파일을 보내주거나, 블로그나 다른 개인 운영 홈페이지 등에 파일을 올려 놓고 이를 내려 받는 식이었다. 과거에도 동영상을 등록하고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용량에 의한 부담이 컸기 때문에 사용자가 등록하는 영상의 용량과 재생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등록하고 볼 수 있다면? 이런 물음에서 시작해 탄생한 것이 바로 '유튜브(YouTube)'다.
현재 유튜브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대중가수인 싸이는 강남스타일 하나로 세계적 가수가 됐고, 게임 방송으로 시작한 대도서관 역시 국내 유튜브 스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기업과 연예기획사, 개인들이 자신을 알릴 목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매체 또한 유튜브이기도 하다. 단순한 일상 외에도 교육, 정치, 경제, 연예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거미줄처럼 엮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월 방문자 10억 명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의 시작에는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채드 헐리(Chad hurley)가 있다.
예술을 사랑한 남자, 컴퓨터와 매체에 관심을 갖다
<채드 헐리(2009년, 출처:위키백과)>
펜실베니아 버즈버러(Birdsboro)에서 태어난 채드 헐리는 세 남매 중 막내로, 어려서부터 예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컴퓨터와 전자 매체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는 설립 초기 3명으로 시작했는데 개발자 출신인 스티브 첸(Steve Chen)과 조드 카림(Jawed Karim)과 달리, 탁월한 미적 감각을 살려 초기 유튜브 홈페이지의 디자인 및 내부 구성을 도맡았다. 현재의 유튜브 로고 또한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한편, 채드 헐리는 2009년에 포뮬러 원(F1) 레이스 팀에 투자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미국 샬럿에 본거지를 둔 'US F1'의 투자자로 나선 것. 팀의 2010 F1 월드 챔피언십 출전을 준비하면서 그는 재정적인 부분 외에도 기업 전략과 미디어 부문에도 협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F1의 특성상 투자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투자는 중단됐고, 팀은 F1 머신 개발과 엔진 수령을 하지 못한 채로 2010 F1 월드 챔피언십에 불참하게 된다.
페이팔에서 한솥밥 먹던 멤버들과 유튜브를 설립하다
유튜브의 탄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동영상을 검색하지 못한 것에 어려움을 겪자, 영상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 첫 계기는 바로 지난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벌어졌던 재닛 잭슨의 가슴노출 사건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지 못하면서다. 그 다음 계기는 같은 해에 벌어졌던 박싱데이 관련 영상을 검색으로 찾지 못하자 자신들이 직접 동영상을 올리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유튜브 설립 멤버, 좌측부터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이다. (출처:위키백과)>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은 2005년 2월, 유튜브닷컴(www.youtube.com) 이름의 도메인을 사들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페이팔(PayPal)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였다. 채드 헐리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해 감각적인 화면을 꾸밀 줄 알았던 웹 디자이너였고, 스티브 첸과 조드 카림은 일리노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개발자였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의 어느 허름한 차고에서 1,150달러를 손에 쥐고 시작했다.
유튜브는 당신 또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유(You)'와 텔레비전을 뜻하는 '튜브(Tube)'의 합성어다. 당신 또는 모든 사람이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의미, 말 그대로 누구나 동영상을 올려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외모에 점수를 매기는 사이트인 핫오어낫(HOTorNOT.com)의 동영상 버전에 가까웠다. 그래서 믿기 어렵겠지만 유튜브 초기에는 찾는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를 입력하는 자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 설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유튜브는 동영상이라면 모두 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정책 또한 사용자들이 다른 사이트에 콘텐츠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홈페이지에 가입이나 로그인하지 않아도 링크로 누구나 영상을 보도록 했다. 이 개방성이 지금의 유튜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부분들을 인정 받아 채드 헐리는 미국 월간지인 비지니스 2.0의 '50 People Who Matter Now' 28번째 인물에 선정되는 한편, 2008년에는 미국 제작자 조합상인 '뱅가드'상을 스티브 첸과 함께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 설립한 유튜브가 지금의 대형 온라인 미디어 사이트가 되기까지 순탄치는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투자를 받기는 했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용자와 동영상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투자비용은 계속 서버와 데이터센터 구축에 쓰였고, 적은 직원은 고강도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큰 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인수제안을 받기로 했다. 투자사인 세쿼이아 캐피탈을 통해 여러 기업의 인수제안을 받았고, 유튜브는 구글과 야후 사이에서 구글의 손을 들어줬다.
<캘리포니아, 산 브루노(San Bruno)에 위치한 유튜브 본사.(2010년, 출처:위키백과)>
유튜브를 떠난 채드 헐리의 새로운 시작
<채드 헐리 (2007년, 출처:위키백과)>
유튜브는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 즈음 되던 2006년, 구글에 16억 5,000만 달러에 인수된다. 채드 헐리는 엄청난 액수의 구글의 주식과 함께 유튜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첸은 최고 재무관리자(CFO)로 각각 임명되어 유튜브를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채드 헐리는 2010년에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놓고 고문으로 유튜브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유튜브의 고문 자리도 오래 가지 않았다. 2013년, 채드 헐리는 스티브 첸과 함께 유튜브를 그만 두고, 믹스비트(MixBit)라는 스마트폰 비디오 편집 관련 기업을 설립하게 된다. 최근 그들이 공개한 애플리케이션 믹스비트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쉽게 편집하고 공유할 수 있다. 아이폰용과 안드로이드용이 있다.
그는 새로운 기업의 설립 의의에 대해 유튜브를 언급하기도 했다. 유튜브는 완성된 동영상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쉽게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그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에 믹스비트는 그 근원인 동영상 자체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서비스라는 것. 다른 사람이 올린 영상을 조합해 자신만의 동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도 담았다.
젊은 청년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유튜브. 시작은 단순했고 과정은 험난했지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튜브에서는 수많은 영상이 등록되고 있으며, 전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새로운 시작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주목 받는 이유다.
글 / IT동아 강형석(redbk@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