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이제 혁신이 필요하다" -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
대학생 L씨는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며 벤처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평소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쉬운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본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 투자 회사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자본금은 지원해 주더라도 사업을 도와주거나 협업하지는 않았다. 어디 스타트업 기업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주는 곳은 없을까.
L씨와 같은 벤처기업 창업자라면 '패스트트랙아시아'를 눈여겨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2012년 2월 박지웅 대표와 티켓몬스터의 신현성 대표, 아블라컴퍼니의 노정석 대표가 함께 창립한 IT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을 통해 창업자에게 멘토링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국내외 벤처캐피탈을 통해 자본금을 제공한다. 사업을 원하는 사람과 함께 회사를 공동 창업하거나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벤처 기업을 지원한다. 현재 패스트트랙아시아와 함께한 벤처 기업은 '굿닥', '퀸시', '헬로네이처', 'CakeWalk', '푸드플라이' 등 5곳이다.
벤처 투자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자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31)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박 대표는 포항공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톤브릿지캐피탈 투자팀장을 역임하며 IT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해 대부분 성공시켰다. 티켓몬스터(약 3,000억 원)와 엔써즈(약 450억 원) 투자도 그가 리드했다.
IT동아: 먼저 스타트업 기업을 모집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해 달라
박 대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채널이 있고, 비공식적 채널이 있다. 우선 공식적인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선발된 인재와 패스트트랙아시아가 회사를 공동 창업하는 'CEO 프로그램'이다. CEO 프로그램에 지원하면 서류, 인터뷰, 프레젠테이션 등을 거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한다. CEO 프로그램은 1년에 4번, 분기별로 운영하는데, 적당한 인재가 없을 경우 선발을 안 할 수도 있다. 선발을 하면 함께 회사를 만든다. 의료 서비스 기업 '굿닥', 유아동복 전문 쇼핑몰 '퀸시'가 CEO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회사다.
공식적인 채널 두 번째는 소액으로 엔젤 투자를 하는 '패스트트랙아시아 탤런트 펀드'다. 이것은 이메일로 상시 접수를 받는다. 만약 지원한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판단되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투자를 결정한다. 아직까지는 이를 통해 투자된 경우가 없지만 계속 운영하고 있다.
비공식적인 채널은 신 대표, 노 대표를 찾아오는 예비 창업자를 소개받거나, 패스트트랙아시아 측에서 지속적으로 인재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또한 패스트트랙아시아 경영진, 포트폴리오 회사 경영진들이 참여해 '스타트업 스쿨'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인재들을 만나기도 한다. (2013년 스타트업 스쿨은 3월 9일부터 4월 27일까지 운영된다. http://bit.ly/YHAnnd 참조)
IT동아: 지원 자격이 있나
박 대표: 특별히 자격 요건을 정해두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있다. 첫째로, 유관 분야의 경력이 너무 길지 않고 연령대가 젊은 분들을 선호한다. 해당 분야의 경력이 너무 긴 분들은 현업에서 직접 일을 하지 않거나, 해당 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스타트업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며 편견을 깨는 것에 집중하는데, 선입견이 너무 많으면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해당 업에 대한 정보나 논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학습하고, 마인드는 열려 있는 35세 이하의 3~5년차 경력자를 선호한다.
두 번째로, 다방면에 거쳐 지식이 많은 '제너럴리스트'보다는 특정 영역에 전문적인 소질이 있는 '스페셜리스트'를 선호한다. 예를 들면 기획이면 기획, 영업이면 영업 등 특정 분야에 뛰어난 분들이 더 좋다. 세 번째로, 과거에 사업을 해봤던 분들, 특히 과거에 사업을 했을 때 잘 되지 않았던 분들을 선호한다. 이런 분들이 경험은 있으면서 편견은 적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는 남다른 경우가 많다.
IT동아: 스타트업 기업을 선정한 후 어떻게 협업하나
박 대표: 가급적이면 최대한 많은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패스트트랙아시아에서 하는 사업 형태는 여러 가지인데, 선발한 인재와 함께 회사를 공동 창업하는 것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이럴 경우에는 패스트트랙아시아가 먼저 사람을 뽑고, 양측의 아이디어를 조합한다. 우리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있고, 상대방도 생각한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테이블 위에 아이디어를 올려놓고 조합을 한다. 그리고 ‘이런 것을 하자’라고 정한다. 다음으로 필요한 인력을 뽑고, 서비스를 만들고, 출시하는 것까지 함께 한다. 여기까지 목표로 하는 기간은 두 달이다.
그 기간 동안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한다. 사무실은 서비스를 출시한 후에도 당분간 계속 제공한다. 그리고 회사의 재무, 회계, 행정, 홍보, 채용과 관련된 업무는 패스트트랙아시아에서 담당한다. 사실 갓 만들어진 회사가 빨리 성장하려면 사업의 핵심이 되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재무나 홍보 등은 회사의 성장에 핵심이 되는 것은 아닌데, 혼자 창업을 하면 계속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것은 우리가 대행을 하고, 창업자 분들이 실제 사업에서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IT동아: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는 금액은 어떻게 조달하고,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나
박 대표: 투자 자금은 신 대표, 노 대표, 스톤브릿지캐피탈, 미국의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등, 네 그룹이 조달했다. 또한 2012년 11월에는 국내 IT 업계의 유명 기업가, 개인 사업가들을 위주로 추가 금액을 조달했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아시아가 수익을 내는 방법은 하나다. 우리가 투자한 기업이 다른 곳에 팔리거나, 상장이 되었을 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도 일종의 벤처 펀드와 비슷한데, 보통 첫 번째나 두 번째 건이 회수되기 시작하는 시기가 4년 정도다. 그것보다는 빠르게 진행하고자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은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는 수익 창출보다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IT동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박 대표: 글쎄… 창업자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각자의 속마음이니(웃음). 아무래도 많이 부족할 것 같다. 아직 더 지원하고 싶은 영역들이 많은데, 시간과 자원 부족으로 미처 다 해드리지 못했다. 우리도 처음으로 사업을 하는데다, 이런 모델 자체가 한국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시행 착오를 많이 겪었다. 만약 우리와 함께 일하는 회사의 경영진들이 다음 회사를 만들 때도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것이 창업자들이 만족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IT동아: 앞으로 더 지원하고자 하는 영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박 대표: 앞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요소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엔지니어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에 기반한 제품을 만들 때, 어떤 회사든지 동일하게 적용되는 뼈대나 모델이 있다. 그런 인프라를 우리가 만들어 두었다가 창업자들이 가져다 쓸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맨땅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본 툴을 바탕으로 레고를 조립하듯이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대기업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대기업과 협업할 만한 비즈니스 기회를 계속 창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다 보면 서로 협업할 포인트를 찾을 수 있으며, 대기업에 누가 있고,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지 발굴해낼 수도 있다. 또한 큰 회사를 만나다 보면 배우는 것도 있고, 투자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채용 자체를 부문별로 강화하는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경영진을 채용할 때도 있고, 세일즈 인력을 채용할 때도, 엔지니어를 채용할 때도 있다. 채용해야 할 직군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따라서 각각의 직군을 채용하는 데 전문화된 인력을 두고, 필요에 따라 알맞은 사람들을 바로 뽑아서 지원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인사 부문이 상당히 중요하다 보니 이를 염두하게 됐다.
IT동아: 패스트트랙아시아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보인 성과는 어떠한가
박 대표: 아직은 얼마 되지 않아 큰 성과를 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헬로네이처, 푸드플라이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올해 2월과 지난해 2월의 월 매출과 거래액을 살펴보면 10배 이상 늘었다. 이는 스타트업 기업에 유의미한 성장이다. 이를 토대로 잘 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IT동아: 다른 투자 기업들과 비교해 패스트트랙아시아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박 대표: 일반적으로 투자 기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업 활동과 운영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는 대부분은 투자하는 사람들밖에 없는 반면, 패스트트랙아시아는 투자를 하는 사람보다는 기업의 성장을 돕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국내 투자 기업들이 "자금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지원한다"고 말하더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투자하는 사람이 약간의 짬을 내서 좋은 사람이 있나 없나 찾아보거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수준에 그친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이 단계를 넘어,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벤처기업을 지원한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투자한 벤처기업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벤처 펀드들이 조성한 펀드는 소수 지분 투자밖에 할 수 없고, 이미 설립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우리는 투자 활동의 자유도가 높다. 우리가 사람을 찾아서 회사를 세우기도 하고, 설립된 기업을 들여오기도 하고, 이미 회사를 세운 기업에 투자하기도 하고, 대기업과 협업하기도 한다. 이 점이 차별되는 부분이라 본다.
IT동아: 듣고 보니 한국의 벤처 투자가 상당히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대표: 그렇다. 한국에도 기존과는 다른 벤처투자 모델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보면, 벤처투자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벤처캐피탈끼리 서로 좋은 창업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좋은 창업자와 일을 하려면 창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창업자 중심의 서비스와 인프라도 많이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아직 그런 혁신이 부족한 것 같다. 약 15년 전 벤처 붐이 일어났을 때와 동일한 벤처투자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정형화되고 틀에 박힌 방식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서 들어오는 투자 제안들을 넘겨가면서 보고, 그 중에 좋은 것이 있으면 투자하지만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다. 다소 소극적인 것 같다.
한국에도 조금 다른 형태의 벤처 투자를 시도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그 회사들이 또한 열심히 경쟁하길 바란다. 그래야 벤처 기업과 벤처 투자기업 모두가 발전할 수 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이런 모델의 출발점이 되고자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IT동아: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박 대표: 한국에서 이런 사업 모델이 처음 시도되는 만큼,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단순히 투자만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인력들이 투자 기업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가치를 창출해내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길 바란다. 또한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주로 온라인, 모바일 기반의 마켓 플레이스와 e-커머스 분야의 스타트업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데, 이런 회사들 중에 성공 사례가 나오길 바란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