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년 된 도장기업 ‘경일산업’, 제조현장에 AI를 도입한 이유
[IT동아 김동진 기자] 제조업에서 도장은 제품 생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프레스나 다이캐스팅으로 부품을 정밀하게 만들어도 표면에 색상과 질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최종 제품의 상품성이 떨어진다. 자동차와 가전, 의료기기처럼 외관 품질이 중요한 제품일수록 도장 공정의 역할도 커진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경일산업은 액체도장을 전문으로 하는 뿌리기업이다. 2007년 사업을 시작해 2018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프레스와 다이캐스팅 공정을 거친 금속·플라스틱 부품에 고광택·고휘도 컬러와 금속 질감을 구현하는 ‘고휘도 도장 공법’을 주력 기술로 삼고 있다.

경일산업은 LG전자 2차 협력사로 TV 스탠드 베이스와 백커버 등 가전 부품을 주로 다뤘지만, 최근에는 자동차 센서 모듈과 의료기기 베이스, CCTV 카메라 부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올해 1월에는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300미터 규모의 행거 타입 도장 라인을 증설하고, 초음파 바스켓 자동 세척기 등 생산설비에도 투자했다.
문제는 생산 규모가 커지는 속도를 현장 관리 체계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생산 일정과 작업지시, 공정 현황 등 주요 데이터를 수기나 개별 엑셀 파일로 관리하다 보니, 생산 파트별 데이터를 담당자가 일일이 취합해야 했다.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중간관리자가 데이터 정리와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문제도 뒤따랐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던 경일산업은 최근 제조현장에 AI를 도입하고 생산관리 체계를 바꾸고 있다. AI 에이전트 전문기업 아티웰스와 협력해 흩어진 생산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고, 생산현황 파악부터 작업지시, 보고서 작성까지 자동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김길태 경일산업 대표에게 자세한 기술 활용 현황을 들었다.

생산 규모 커졌지만 관리는 여전히 엑셀…성장하면서 드러난 한계
경일산업을 이끄는 김길태 대표는 1983년부터 2007년까지 약 24년간 삼성전자에서 제조와 기술, 품질, 구매 업무를 경험한 제조업 베테랑이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 경일산업을 창업했다.
김길태 대표는 “아무리 정밀하게 가공한 부품이라도 최종적인 상품 가치와 품격을 결정짓는 과정에는 마지막 도장 공정이 있다”며 “전자제품과 부품 산업이 성장하면서 외관과 내구성을 함께 충족하는 고품질 도장 기술의 수요가 커질 것으로 판단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일산업의 고민은 생산 규모가 커지면서 시작됐다. 회사에 따르면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68% 증가했다. 새로운 도장 라인까지 증설하면서 생산 능력도 확대했지만, 생산 현장을 관리하는 방식은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데이터 관리였다. 생산 일정과 작업지시, 공정 현황 등 여러 정보가 수기 장부와 개별 엑셀 파일에 흩어져 있었다. 생산 파트마다 별도의 엑셀 파일을 사용하다 보니 관리자가 현황을 파악하려면, 담당자에게 자료를 받아 직접 취합해야 했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중간관리자가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투입하는 시간도 함께 늘었다.
17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중소 제조기업이 자체 개발자를 채용하고, 새로운 생산관리 시스템을 처음부터 구축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존 시스템을 전면 교체할 경우, 비용뿐만 아니라 현장 작업 방식까지 바꿔야 한다는 부담도 뒤따랐다.
김길태 대표는 “생산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현장 관리 체계가 성장 속도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수기와 엑셀 중심의 생산관리를 벗어나 데이터 기반으로 현장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충을 겪던 경일산업은 지난 3월 경상북도경제진흥원이 주관하는 ‘K-경북형 AI 동반성장 주력산업 육성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체계 개선에 나섰다. 이 사업은 앵커기업과 협력 중소기업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어 AI 전환(AX)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에이치티로보틱스가 앵커기업을 맡고 경일산업을 비롯한 7개 협력사가 참여한다.
사업에서 솔루션 공급을 담당하는 아티웰스는 경일산업에 AI 에이전트 플랫폼 ‘노드 스튜디오(Node Studio)’를 적용했다. 노드 스튜디오는 ERP와 MES, 설비 로그, 품질 데이터 등 기업 내부에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해 AI가 조회·분석하도록 지원하는 솔루션이다. 비정형 데이터 정제와 이상 징후 탐지, 데이터 분석, 리포트 자동화 등 업무 흐름도 구현할 수 있다.
경일산업이 아티웰스와 협업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기존 생산관리 시스템을 전면 교체하지 않고, 현장에서 이미 사용하던 데이터를 AI와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아티웰스는 경일산업이 기존에 사용하던 엑셀과 생산 데이터를 노드 스튜디오로 연동하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AI와 외부 데이터·업무도구 간 연결 방식을 표준화하는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활용했으며, 현장에는 이동식 터치 모니터와 AI 에이전트 운용을 위한 PC도 설치했다.

새 ERP나 MES를 처음부터 구축하기보다 기존 업무 환경을 유지하면서 AI 활용 환경을 더하는 방식이다. 자체 개발 인력이 부족하고 대규모 시스템 교체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 제조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접근이다.
엑셀 파일 취합하던 관리자…대시보드로 생산현황 확인
변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생산현황 관리다.
김길태 대표는 “과거에는 생산 파트별로 흩어진 엑셀 파일을 모아 담당자가 일일이 데이터를 취합해야 했다. 각 공정이 목표량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확인하려면 여러 자료를 거쳐야 했고, 생산일보 작성에도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며 “현재는 생산 데이터를 통합해 대시보드에서 현황을 확인할 수 있고, 현장에서도 이동식 모니터를 통해 작업지시와 목표 달성률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일산업과 아티웰스는 노드 스튜디오를 활용해 이 과정을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하고 있다. 생산 데이터를 통합한 뒤 실시간 생산현황을 대시보드에 표시하고, 생산 데이터를 토대로 AI가 생산일보를 자동 생성하는 기능도 구축 중이다.
중간관리자의 업무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료를 모아 엑셀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반복 업무를 줄이면, 그만큼 현장 관리와 품질 개선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
아티웰스가 제조현장에 솔루션을 적용하기 전 직접 공장을 방문한 점도 김길태 대표가 꼽은 특징이다. 이선구 아티웰스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경일산업을 직접 방문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작업자의 애로사항을 확인한 뒤 솔루션 적용 방안을 설계했다.

제조업은 같은 업종이라도 설비와 생산 방식, 데이터 관리 체계가 기업마다 다르다. 범용 AI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생산 현장에서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지뿐 아니라 작업자가 실제 업무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경일산업이 AI 전환을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AI 자체에 있지 않다. 핵심은 품질이다.
김길태 대표는 “생산 공정에 직접 방문해 작업자의 어려움을 청취한 뒤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는 아티웰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기술 도입을 결정했다”며 “노드 스튜디오를 활용해 2025년 5% 수준이었던 고객 불량률을 2026년 4%, 2027년에는 3%까지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생산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관리 업무를 자동화하면, 이상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고 관리자가 품질 개선에 집중할 여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일산업은 기존 가전과 자동차 부품에서 로봇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새로운 산업으로 진입할수록 높은 품질 기준과 안정적인 납기 대응 역량도 필요하다. 회사가 생산설비 확대와 함께 데이터 기반 생산관리 체계 구축에 나선 배경이다.
김길태 대표는 “도장이나 표면처리 같은 전통 뿌리산업도 더 이상 경험만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며 “제조 현장에서 쌓아온 노하우에 AI를 접목해 생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일산업의 사례는 중소 제조기업의 AX가 반드시 대규모 시스템 교체에서 출발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장에 이미 쌓여 있는 엑셀과 생산 데이터를 먼저 연결하고, 반복적인 취합과 보고 업무부터 자동화하는 방식도 하나의 접근법이다.
경일산업과 아티웰스의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시보드 구축과 업무 자동화를 넘어 실제 불량률 감소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는 향후 수치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개발 인력과 투자 여력이 제한된 중소 제조기업이 기존 업무 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AI를 현장에 접목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도는 제조업 AX의 현실적인 적용 사례로 살펴볼 만하다.
이선구 아티웰스 대표는 “중소 제조기업의 AI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스템을 무조건 도입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이미 쌓인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일”이라며 “경일산업처럼 기존 업무 환경을 유지하면서 반복 업무를 줄이고 생산·품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만들어, 개발 인력이 부족한 제조기업도 AI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