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음향 센서 개발' 시그널크래프트, 소리로 설비 고장 잡는다 [ICT이노베이션스퀘어확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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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박귀임 기자] 공장 설비가 고장 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는 신호는 눈이 아니라 귀에 먼저 들어온다. 기계 요소 중 하나인 베어링이 마모되며 내는 미세한 진동음이나 배관 이음새에서 새어 나오는 압축공기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숙련된 정비 인력의 감에 의존해온 이 영역에 주목한 음향 AI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시그널크래프트다.

배 위에서 설비를 점검하고 수리를 담당했던 김선범 시그널크래프트 대표는 이 경험을 발판삼아 2025년 창업했다. 승선 시절부터 체감한 음향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AI 기반 음향 센서를 개발, 신소재 공정 기업 실증을 시작으로 제조업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김선범 대표를 만나 창업 배경부터 기술 전략까지 들어봤다.
3년 승선 경험으로 창업 결심
김선범 대표는 한국해양대학교 기계공학부에 진학 후 실제로 배를 탔다. 2020년부터 배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설비 상태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조치하고, 고장이 나면 수리하는 것이었다. 이 경험이 시그널크래프트의 시작점인 셈이다.
3년간의 승선 생활을 마친 후에는 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준비했다. 김선범 대표는 "먼저 요트 창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트와 관련된 일은 기술로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고객 니즈를 맞추는 서비스업에 가까웠다. 기술적으로 뭔가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기엔 모자랐다"고 회상했다.
이 무렵 글로벌 AI 기업 오픈AI의 챗GPT가 두각을 나타내며 AI 대전환기가 시작됐다. 김선범 대표는 "AI의 발전 방향에 나의 상상력과 경험을 결부하면 좋은 아이템이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024년 창업을 결심했고, 1년 정도 준비해 시그널크래프트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시그널크래프트는 '시그널(Signal)'과 '크래프트(Craft)'를 합친 것으로 김선범 대표가 직접 지었다. 시그널은 이 회사가 만들어내려는 가치를, 크래프트는 그 가치를 정교하게 빚어낸다는 행위를 뜻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신호(소리)를 구체적인 가치로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선범 대표는 "시그널이라는 단어가 음향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신호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의 방향성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되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시그널크래프트는 김선범 대표를 포함해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력은 제각각이다. 강병하 CTO는 대기업에서 소음·진동 프로젝트를 수행한 음성·사운드 AI 연구원이고, 정현후 프로덕트 엔지니어는 음향 스타트업을 운영한 바 있다. 다양한 경력의 팀원도 함께 한다. 김선범 대표는 이들의 공통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라고 짚었다. 이어 "소음이라는 주제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이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면서도 "추상적인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덧붙였다.
설비 감시 음향 센서 개발···5분 만에 설치 완료
시그널크래프트는 설비 감시 음향 센서 '가디언AI(가칭)'를 개발했다. 가디언AI는 공장 설비에 자석으로 부착할 수 있는데, 5분 만에 설치가 끝나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분해나 배선 작업 없이도 압축공기 누설, 스팀 누설, 회전설비 베어링 이상음 등 설비가 고장 전에 내는 신호를 24시간 상시 수집한다. AI가 정상 상태와의 편차를 감지해 담당자에게 즉시 알리는 구조다.

대규모 설비 교체 없이 핵심 계통 한두 곳부터 실증을 시작해 효과를 확인한 뒤 전 공정으로 넓혀가는 것이 시그널크래프트가 제안하는 도입 방식이다.
시그널크래프트가 내세우는 대표 실증 사례는 신소재 정밀 공정 기업 A사다. 진공펌프와 워터칠러 등 복합 설비를 소수 인원이 관리하던 A사는 서브모듈 이상이 세이프티 시스템 작동으로 이어져 진공 펌프 전체가 정지하고 공정을 처음부터 재시작해야 하는 문제를 겪고 있었다. 시그널크래프트는 설비 5대에 외벽 자석 부착 방식으로 음향 센서를 달아 5분 만에 설치를 마쳤다. 4주간 실증을 진행해 시그널크래프트 측 추산으로 위험 비용 7000만 원을 방어한 사례까지 만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김선범 대표는 이 성과에 대해 공동연구라고 표현하며 "처음에는 '고장을 막아준다'는 단순한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A사의 설비가 신제품이라 큰 고장이 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것도 할 수 있냐'는 식의 공동연구 관계로 발전했다. A사는 지난 5월부터 약 3개월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시그널크래프트는 최근 제지 기업에도 실증을 제안했다. A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이다. 김선범 대표는 "노후 설비를 보유한 레거시 산업을 우선 타겟으로 삼는다"며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 한번 멈추면 손실이 큰 화학공장이나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제지공장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오래되고 마진이 크지 않은 레거시 산업일수록 필수 소비재 특성상 매출은 크지만 영업이익률은 낮은 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고, 이런 곳에서 작은 공정 개선만으로도 눈에 띄는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시행착오 속 음향 전략 바꿨다
시그널크래프트가 압축공기 누설, 스팀트랩 고장, 베어링 이상음처럼 전혀 다른 소리를 하나의 AI로 구분해내는 기술의 뿌리는 노이즈캔슬링이다. 김선범 대표에 따르면 모든 신호에는 의미가 있는데, 의미 있는 신호(시그널)와 그렇지 않은 신호(노이즈)를 구분해 노이즈를 걷어내고 시그널만 압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그널을 작게 압축해야 서버실이 아닌 공장 현장의 작은 컴퓨터에서도 AI가 실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다.
흥미로운 건 김선범 대표가 이 기술을 "완성됐다"고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고객 스스로도 자신에게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딜레마를 깨고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걸 찾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기엔 음향 데이터만으로 판단하려 했지만 현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음향 데이터에 공장이 기존에 수집해온 데이터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가디언AI를 다듬고 있다. 음향과 제조설비 데이터의 투트랙 전략인 셈이다.
김선범 대표는 "기존 공장이 이미 갖고 있는 데이터에 자사의 음향 기술을 얹어 AI 모델링하는 방식이다. 기계공학 전공 지식과 현장 경험, 그리고 AI 모델링 역량을 모두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행착오도 겪었다. 김선범 대표는 가장 어려운 지점에 대해 '고장 데이터를 구하는 일'을 꼽으면서 "가디언AI 학습에는 고장 데이터가 많아야 하는데, 그건 곧 고객 설비가 자주 고장 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걸 바랄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그널크래프트는 접근을 바꿨다. 설비가 가장 정상적으로 잘 돌아갈 때의 소리 패턴, 즉 '골든배치'를 찾는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김선범 대표는 "특정 소리가 정해진 순서와 타이밍대로 나야 공정이 정상이라는 뜻이고, 이 흐름에서 벗어나는 패턴을 통해 고장 징후도 어느 정도 포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핵심 기술은 동일, 적용 방식만 다르게
시그널크래프트의 확장 전략은 '핏이 맞는 유료 레퍼런스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말로 요약된다. 김선범 대표가 여러 제조업체를 접촉하며 확인한 공통점은 현장마다 AI 인력이나 데이터 수집 방법이 없어 자체적으로 풀지 못하는 '사일로화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시그널크래프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템플릿화해 다른 현장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A사와의 공동개발이든, 향후 설비사·OEM 확장이든 핵심 기술은 동일하며 적용 방식만 다르다는 것이다.

경쟁 솔루션 대비 차별점을 묻자 김선범 대표는 '현장과의 소통력'을 꼽았다. 제조 현장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오랜 경험과 관행에 기반해 설비를 운영해온 만큼, 낯선 제품이나 솔루션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음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로 문제를 진단하겠다는 접근은 현장 입장에서는 더욱 검증되지 않은 낯선 제안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런 벽 앞에서 김선범 대표의 무기는 다름 아닌 현장 경험이다. 배를 타며 설비를 직접 다뤄본 덕분에 현장 용어와 정서에 익숙하고, 이로인해 보수적인 공장 현장직들과도 소통에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장직과의 소통은 김선범 대표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
수익 모델은 최종적으로 하드웨어 센서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구독형으로 제공하는 형태를 목표로 한다. 다만 순서는 소프트웨어가 먼저다. 김선범 대표는 "하드웨어는 한번 만들면 수정이 어렵다. 소프트웨어를 먼저 구축하고, 여기에 맞춰 하드웨어를 개선해 양산하는 순서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그널크래프트는 동남권 ICT이노베이션스퀘어 확산사업을 통해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의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스타트업 초기 성장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다. 김선범 대표는 "투자사 밋업과 네트워킹 행사 등 초기 사업의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 스파크랩 대표의 진심 어린 조언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시그널크래프트는 음향 AI 스타트업의 답을 찾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배 위에서부터 쌓아온 현장 경험을 무기 삼아 제조업 현장의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이 시그널크래프트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김선범 대표는 "특정 산업을 전문적으로 다루기보다 범용적인 솔루션을 지향하고 있다. 대상 산업도 제조업을 넘어 방산 등으로 계속 탐색 중"이라면서 "이 부분이 자리 잡히면 스케일업은 더 빠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