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보다 데이터 경쟁" 김은찬 교수가 말하는 한국형 피지컬AI 전략

[IT동아 박귀임 기자] 국제로봇연맹(IFR) '세계 로보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 1위(2024년 기준)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2019년 이후 연평균 7%씩 증가해왔다. 하지만 범용 하드웨어의 가격 양산 경쟁만으로는 승부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젠슨 황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화두를 던진 이후 '피지컬AI(physical AI)'는 로보틱스·제조업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가 됐다.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인공지능(AI)이 산업 현장에 스며드는 지금, 한국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김은찬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인공지능학과 교수 / 출처=IT동아
김은찬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인공지능학과 교수 / 출처=IT동아

김은찬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인공지능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왔다. 토스뱅크를 시작으로 CRK와 몬드리안AI, 그리고 케이엔로보틱스 등 부임 이후 6개 기관과 산학협력을 체결했다. 초기에는 금융·산업 데이터와 AI 인재 양성이 중심이었다면 최근 2년 사이에는 철도 운전 지원, 자율 주행·휴머노이드 로봇처럼 AI가 물리적 현실에 직접 개입하는 영역으로 협력의 무게중심이 옮겨왔다. 김은찬 교수를 만나 그 흐름의 배경과 피지컬AI 시대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6개 MOU, 그리고 방향 전환

김은찬 교수의 산학협력 이력은 우연히 쌓인 목록이 아니다. 2024년 11월 7일 토스뱅크와의 협약이 시작이었다. 2025년 9월 CRK, 2025년 12월 16일 몬드리안AI, 2026년 2월 26일 애니디어, 2026년 7월 디앤디코퍼레이션(D&D), 2026년 8월 케이엔로보틱스까지 이어졌다. 김은찬 교수는 이 흐름을 "초기에는 금융과 산업 데이터, AI 인재 양성 중심이었다면 이후에는 산업용 비전 AI, AI 플랫폼, 바이오 AI, 철도 운전 지원,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 등 실제 산업 시스템에 AI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점차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성격도 제각각이다. 토스뱅크와의 협약은 공동 기술개발보다는 정보시스템학과 학생들이 디지털 금융기업의 기술 환경을 접하도록 세미나·인턴십·채용 연계에 중점을 뒀다. 협약식에는 토스뱅크 CTO를 비롯한 기술 부문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몬드리안AI는 AI 인프라·클라우드·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대학이 알고리즘과 모델 연구를 맡고 기업이 산업 데이터와 실증 환경, 개발 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로 협력하고 있다. 애니디어는 반려동물 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이다. 이에 화합물 구조·효능·독성·대사 안정성처럼 이질적인 정보를 함께 해석해야 하는 신약 후보물질 탐색에 AI를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CRK와는 2025년부터 산업용 비전 AI 시스템과 제품 데이터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주요 연구개발 단계를 마치고 기술 문서 정리와 운영 전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와 케이엔로보틱스가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 기술협력 MOU를 체결했다 / 출처=한양대학교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와 케이엔로보틱스가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 기술협력 MOU를 체결했다 / 출처=한양대학교

지금 가장 구체적인 연구와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협력은 D&D와 케이엔로보틱스다. D&D와는 철도 운전 지원과 정보시스템 분야의 연구·자문을, 케이엔로보틱스와는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 지능화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김은찬 교수는 한양대학교와 케이엔로보틱스 간 산학공동연구의 연구책임자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회사 엔지니어들이 현장과 제품 개발을 담당한다면 김은찬 교수는 중장기 연구개발 방향과 AI·데이터 기반 기술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의 AI 연구 방향, 로봇 인지·판단·운영 최적화 기술, 정부 연구개발사업 기획, 특허 포트폴리오, 기업공개(IPO) 준비 과정의 연구개발 체계까지 함께 검토하는 수준이다.

철도와 로봇, 다른 산업이 같은 문제 푼다

김은찬 교수는 처음부터 '피지컬AI'라는 개념에 맞춰 철도와 로봇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부터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산업 AI, 자율 시스템과 정보시스템을 연구해왔고, 그 연구가 실제 산업 문제와 연결되는 과정에서 철도와 로봇으로 확장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두 분야는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철도와 로봇은 모두 'AI의 판단이 현실 세계의 움직임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사이버 물리시스템'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로봇에서는 AI의 판단이 이동, 물체 이송, 작업 수행으로 직접 이어진다. 철도는 현재로선 운전자를 지원하는 형태가 중심이지만, AI가 차량과 선로·운행 상황을 분석해 속도나 운전 방식을 제안하고 실제 운행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김은찬 교수는 "두 분야 모두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해 화면에 결과를 보여주는 AI가 아니라, 현실의 운영 과정에 참여하고 사람이나 기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AI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케이엔로보틱스가 국내 기술로 개발한 물류 분류 시스템인 3D 소터(Sorter) 구역 운행 모습 / 출처=케이엔로보틱스
케이엔로보틱스가 국내 기술로 개발한 물류 분류 시스템인 3D 소터(Sorter) 구역 운행 모습 / 출처=케이엔로보틱스

이 구조는 기술적으로도 겹친다. 김은찬 교수는 네 단계로 정리한다. 첫 번째 단계는 센서와 데이터로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인지와 상태 추정이다. 로봇은 카메라와 라이다로 장애물과 위치를 파악하고, 철도는 차량·선로·신호·운행 데이터로 위험을 판단한다. 두 번째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로봇은 경로 혼잡이나 충돌 가능성을, 철도는 정시성·에너지 사용량·제동거리를 예측한다. 세 번째는 계획과 최적화다. 로봇은 이동 경로와 작업 순서를, 철도는 운전 패턴과 가속·감속 시점을 결정한다. 마지막인 네 번째의 경우 안전한 실행과 피드백이다. 김은찬 교수는 "한 번의 판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결과를 다시 센서와 데이터로 확인해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는 실시간 처리, 엣지 AI, 이상 탐지, 설명 가능한 AI, 사람의 개입과 안전 제어가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결국 두 분야 모두 센싱, 인지, 예측, 계획, 실행, 피드백이라는 동일한 기술 흐름을 공유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에서 에이전틱AI는 여러 시스템과 AI 모델을 연결하고 목표를 단계별 작업으로 나누는 상위 의사결정 계층 역할을 한다.

철도에 이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신중한 답이 돌아왔다. 김은찬 교수는 "철도는 안전성이 매우 중요한 산업이므로 AI가 즉시 차량을 자율 제어하는 형태보다는, 사람의 판단을 지원하는 단계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철도의 운영 체계는 차량 한 대에 그치지 않는다. 속도와 제동·가속 상태, 선로와 신호 시스템, 운행 시각표, 관제 정보, 역사와 전력설비, 기상과 장애물, 유지보수 정보, 운전자와 관제사의 판단까지 모두 포함된다. 김은찬 교수는 "철도 분야의 피지컬AI는 특정 AI 모델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연결하고 이를 안전한 의사결정과 실행으로 전환하는 문제"라며 이 구조를 인지, 판단, 권고, 사람의 확인, 실행, 결과 피드백이 연결되는 운영 체계로 본다고 설명했다.

한국 피지컬AI 이중적 위치에

한국 피지컬AI 수준을 해외와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김은찬 교수는 단순 순위 매기기를 경계했다. AI 모델, 로봇 하드웨어, 부품, 제조 역량, 현장 데이터, 사업화 규모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김은찬 교수가 짚은 구도는 이렇다. 그는 "미국은 대규모 AI 모델과 월드모델, 컴퓨팅 인프라, 연구 인력과 투자에서 가장 앞서 있다"며 "2025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는 중국의 20배를 넘었고, 범용 AI와 로봇 AI를 잇는 플랫폼 경쟁에서도 강점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미국과 중국의 최상위 AI 모델 성능 격차는 크게 좁혀지는 추세다. 중국은 로봇 하드웨어 공급망과 양산 속도, 시장 규모, 실증 데이터 축적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2024년 전 세계 신규 산업용 로봇 설치의 54%가 중국에서 이뤄졌고, 중앙·지방정부가 휴머노이드와 체화지능 산업을 전략적으로 지원한다. 일본은 감속기, 액추에이터, 센서, 정밀제어 등 전통적인 로봇 하드웨어와 부품에 강점이 있으며 최근에는 이를 AI 로봇·피지컬AI 모델로 연결하는 정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대해 김은찬 교수는 "다소 이중적인 위치"라고 표현했다. 이어 "한국은 '로봇을 사용하지 못하는 국가'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자동화 기반을 범용 AI와 지능형 운영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하는 단계"라고 진단을 내렸다. 한국은 제조업의 로봇 활용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범용 피지컬AI 모델, 대규모 행동 데이터, 로봇 운영 플랫폼, 핵심 부품과 세계시장 규모에서는 미국·중국·일본을 추격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하드웨어 경쟁 아닌 데이터와 운영 체계 집중해야

그렇다면 하드웨어에서 밀린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김은찬 교수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벌이는 전략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산업 특화 ▲현장 데이터 자산화 ▲통합 운영 소프트웨어 ▲안전성·신뢰성 등 네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 "범용 휴머노이드 한 종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제조, 물류, 조선, 철도, 배터리, 반도체처럼 한국이 강한 산업에 특화된 피지컬AI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면서 "피지컬AI의 핵심은 로봇의 외형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학습할 수 있는 행동 데이터다. 한국이 자동차·전자·조선·물류 등에서 오랜 기간 축적한 공정과 숙련자의 작업 노하우를 안전하게 수집·표준화해 학습 데이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해외 로봇을 사용하더라도 여러 제조사의 로봇과 설비,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창고관리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생산실행시스템)·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 센서와 작업자를 통합 운영할 수 있는 AI 플랫폼을 확보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며 "산업 현장은 데모 영상과 달리 한 번의 오작동도 큰 사고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AI의 판단 근거와 이력을 확인하고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 안전 인증과 성능평가 체계를 함께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케이엔로보틱스의 3방향 무인지게차(Very Narrow Aisle, VNA) 운행 모습 / 출처=케이엔로보틱스
케이엔로보틱스의 3방향 무인지게차(Very Narrow Aisle, VNA) 운행 모습 / 출처=케이엔로보틱스

결국 김은찬 교수는 "한국의 전략은 가격이 낮은 범용 하드웨어를 대량 생산하는 것보다 산업별 현장 데이터와 AI, 로봇, 운영 시스템을 결합해 실제 생산성을 높이는 고신뢰 통합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한국 피지컬AI 산업의 방향에 대해 김은찬 교수는 "범용 휴머노이드가 사람의 모든 업무를 대신하기보다는 구조화된 산업 현장에서 경제성이 명확한 작업부터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초기에는 물류 이송, 부품 공급, 검사, 순찰, 위험지역 작업처럼 범위가 명확한 분야가 중심이 되고 이후 여러 대의 로봇과 설비가 상태를 공유하며 작업을 조정하는 다중 로봇 운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기술적으로는 개별 로봇의 인지 성능보다 로봇·설비·디지털 트윈·기업 정보시스템을 연결하는 운영 플랫폼이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은찬 교수에 따르면 관리자가 작업 목표만 제시하면 에이전틱AI가 작업을 분해해 여러 로봇과 시스템에 배분하되, 안전 기준을 벗어나면 사람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형태가 현실적인 발전 방향이다. 산업 구조 역시 로봇을 한 번 판매하고 끝나는 방식에서, 운영·유지보수·모델 업데이트를 지속 제공하는 서비스형 로봇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철도와 로봇에 이어 다음 도전 산업을 묻자 김은찬 교수는 조선업을 꼽았다. 이어 "조선소는 작업 공간이 넓고 구조가 계속 바뀌며, 고소·밀폐·고온 환경과 중량물 작업이 많기 때문에 기존의 고정형 산업용 로봇만으로 자동화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현장"이라며 "피지컬AI를 적용하면 선박 블록과 작업 환경을 인식하고 이동하는 로봇, 용접과 검사를 보조하는 로봇, 자재를 이송하는 자율주행 로봇, 작업자의 안전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하나의 운영 체계로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휴머노이드 형태 자체가 아니다. 작업에 따라 바퀴형이나 다족형, 로봇팔, 드론 등 가장 적합한 하드웨어를 선택하고 이를 AI 기반 운영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난·안전 분야에도 관심을 내비쳤다. 위성·드론·환경센서로 재난 상황을 추정하는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AI가 필요한 조사 경로와 대응 작업을 계획하고 드론이나 지상 로봇에 임무를 배분하는 신뢰 가능한 재난 대응 시스템을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은찬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특정한 형태의 로봇을 개발하는 것보다, 불확실한 현실 환경을 이해하고 사람과 협력하면서 안전하게 행동하는 신뢰 가능한 피지컬AI를 다양한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연구 목표"라고 밝혔다. 철도에서 로봇으로, 그리고 조선과 재난안전으로. 한양대 연구실을 거점으로 한 그의 산학협력은 완결된 프로젝트라기보다, 피지컬AI가 산업 현장에 스며드는 속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실험처럼 보인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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