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싼 다이슨? 가장 비싼 손풍기? '99달러 승부수' 눈길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글로벌 기술 기업 다이슨(Dyson)이 첫 휴대용 선풍기(일명 '손풍기')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HushJet Mini Cool fan)’를 출시한다. 주로 고가의 하이엔드 가전을 선보여 온 다이슨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형 가전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신제품 출시를 넘어, 다이슨이 향후 어떤 브랜드 전략을 펼쳐 나갈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HushJet Mini Cool fan) / 출처=다이슨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HushJet Mini Cool fan) / 출처=다이슨

명암 엇갈린 실적… ‘위기 속 기회’ 엿보는 다이슨

최근 다이슨이 공식 발표한 2025년 재무 실적을 살펴보면 뚜렷한 명암이 엇갈린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다이슨의 2025년 글로벌 전체 매출액은 61억 3000만 파운드(약 10조 원)로, 전년인 65억 7000만 파운드(약 10조 7000억 원) 대비 4억 4000만 파운드(약 7100억 원) 하락하며 아쉬운 성적표를 남겼다. 실적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의 관세 타격과 주요 시장의 지속적인 소비 심리 위축 등이 지목되었다.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해 온 다이슨에게 매출 하락은 분명 뼈아픈 악재다. 하지만 이 데이터가 부정적인 상황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지표는 오히려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다이슨의 2025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11억 1000만 파운드(약 1조 8000억 원)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 또한 15% 성장한 6억 파운드(약 9800억 원)를 달성했다.

외형 성장이 꺾인 것은 명백한 위기지만, 수익성 개선 수치는 다이슨에게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무작정 제품을 많이 팔아 덩치를 키우는 전략 대신, 개당 이익률을 높여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체질 개선을 하고자 하는 시도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시계, 패션 업계 사례로 본 프리미엄 브랜드의 입문형 전략

이러한 맥락에서 5월 국내 출시를 앞둔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는 다이슨의 프리미엄 생태계로 새로운 소비자를 유도하는 ‘입문형(Entry-level)’ 라인업의 성격을 띤다.

이미 시계, 패션 등 프리미엄 업계에서는 새로운 소비층 확대를 위해 이러한 입문형 전략을 적극 활용해 왔다. 고가 시계로 유명한 오메가(OMEGA)는 2022년, 30만 원대 ‘문스와치’를 스와치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이며 전 세계적인 화제와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대중성 확보가 기존 명품으로서의 희소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했다.

티파니앤코(Tiffany & Co.) 역시 은(Silver)을 소재로 한 비교적 접근성 높은 주얼리인 '리턴 투 티파니(Return to Tiffany)' 컬렉션을 1997년부터 선보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는 브랜드의 문턱을 낮추는 성공적인 입문로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대중화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조율이라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다이슨 또한 기존 고가 라인업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들에게 휴대용 선풍기라는 친숙한 기기를 통해 ‘다이슨 생태계’의 경험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고자 하는 다이슨에게 있어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제품이다.

제품에 적용된 다이슨의 허쉬젯(HushJet) 기술 이미지 / 출처=다이슨
제품에 적용된 다이슨의 허쉬젯(HushJet) 기술 이미지 / 출처=다이슨

최첨단 기술 적용한 휴대용 선풍기, 뛰어난 제품이긴 한데

공개된 제품의 사양은 확실히 기존 미니 선풍기들과 체급을 달리한다. 시중에서 흔히 구하는 일반적인 휴대용 선풍기의 모터 회전수가 대략 3000~5000 RPM, 풍속이 초속 4~5m/s 수준인 반면,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은 최대 6만 5000 RPM으로 회전하는 브러시리스 모터를 탑재해 최대 25m/s의 고속 바람을 뿜어낸다. 수치상으로만 모터 회전수는 10배 이상, 풍속은 5배 이상 강력한 셈이다.

여기에 저압 영역을 만들어내는 베르누이 원리를 활용해 팬 뒤쪽의 공기를 자연스럽게 앞으로 끌어오는 다이슨의 허쉬젯(HushJet) 공기역학 기술을 적용했다. 이처럼 제트 엔진을 방불케 하는 구조를 갖췄음에도 38mm의 슬림한 디자인과 212g의 초경량 설계를 적용했으며, 최대 6시간 지속되는 배터리로 편의성을 높였다.

각종 외신을 종합해 보면 이 제품의 해외 출시 가격은 99달러 혹은 99파운드(약 13만~17만 원) 내외다. 다이슨 로고가 박힌 기기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가격이지만, 휴대용 선풍기로서는 상당히 높은 가격대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지닌 제품이다. 소비자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가격에 대한 체감 온도차가 클 수밖에 없다.

다이슨이 이번 제품에 목에 걸어 사용할 수 있는 넥 독(Neck Dock)을 기본 제공하고, 카넬리안/스카이, 잉크/코발트, 스톤/블러시 등 다이슨 고유의 세 가지 색상으로 다채롭게 마감한 것도 결국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단순한 선풍기를 넘어 일상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이자 ‘가장 접근하기 쉬운 다이슨’으로서의 가치를 어필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는 책상 위에 세워서 이용할 수 있다 / 출처=다이슨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는 책상 위에 세워서 이용할 수 있다 / 출처=다이슨

깐깐한 테스트베드 한국, 다이슨의 방향성 정할 분기점 될까

참고로 오늘 배포된 다이슨코리아의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선풍기는 국내 5월 출시 예정이나,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국내 판매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다이슨이 한국 시장 내에서의 가격 책정에 그만큼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최근 다이슨은 한국 청소기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크게 하락하는 등 다소 불안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삼성, LG 등 국내 경쟁사들의 견고한 점유율 방어와 신흥 가성비 브랜드들의 약진 속에서 섣부른 고가 정책은 자칫 소비자의 외면을 부를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전체 파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을지라도, 기술 트렌드에 극도로 민감하고 프리미엄 소비에 대한 깐깐한 눈높이를 가진 소비자들이 모여 있는 훌륭한 테스트베드(Testbed)다. 가격대에 걸맞은 가치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한국 시장에서 검증 받는다면 브랜드 프리미엄 역시 증명할 수 있다.

분명 성능 및 기능 면에서 기존의 휴대용 선풍기를 확실히 능가하지만, 소비자들이 과연 이 정도의 스펙을 휴대용 선풍기에서 필요로 할지, 그리고 실제 가격만큼의 효용성을 느낄 수 있을지는 본격적인 출시 이후의 시장 반응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손풍기'가 향후 다이슨의 프리미엄 전략에 어떤 의미 있는 지표를 남길지 두고 볼 일이다.

IT동아 김영우 기자(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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