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피지컬AI협회 출범 “국회·정부·산업·학계 모여 국가 대전환 전략 모색”
[IT동아 강형석 기자] 피지컬 AI(물리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VLA – Vision Language Action, 이하 VLA)을 의미한다. 모든 과정이 사전 프로그래밍이 아닌 인공지능의 자율 학습과 판단으로 이뤄진다. 피지컬 AI가 로봇, 사물 인터넷(IoT) 기기, 차량 등에 적용되면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해 고위험 및 고강도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업 로봇은 작물 상태를 인식하고 스스로 수확 작업을 수행하며, 수술 로봇은 의사의 지시를 이해해 수술을 보조한다.
업계는 피지컬 AI가 생성형 인공지능 다음 시대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의 다음 시대는 피지컬 AI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성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모건 스탠리는 휴머노이드 100 보고서에서 피지컬 AI 시장이 60조 달러(약 8경 4180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피지컬 AI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기기 내에서 인공지능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역량 확보가 필수다. 기존 규칙 기반 시스템과 달리, 데이터 학습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역량을 갖추려면 반도체, 로봇 플랫폼, 소프트웨어, 응용 서비스 등 산업 전반의 융합이 필요하다.
피지컬 AI 시장은 아직 기술 표준과 시장 지배자가 정해지지 않은 과도기 상태다. 미국, 중국을 포함한 선진국도 개발 초입 수준이다. 이는 곧 선제적 투자와 생태계 구축으로 주도권을 확보할 기회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반도체와 제조 강국인 대한민국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았다.
2025년 10월 1일, 한국피지컬AI협회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피지컬 AI 국가 대전환 전략' 행사를 개최, 대한민국이 피지컬 AI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공유했다. 이번 행사는 피지컬 AI 기술이 가져올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대비하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행사장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권향엽, 박민규, 박희승, 서왕진, 손명수, 안도걸 국회의원과 조국혁신당 서왕진, 이해민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한규 의원은 “우리는 거대한 기술혁신의 변곡점 앞에 섰다. 처음 챗GPT가 등장했을 당시 의구심 어린 시선이 이제는 선망과 확신의 시선으로 변했다. 거대언어모델이 전 세계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피지컬 AI 시대를 맞았다. 인공지능과 산업, 다종다양한 노동 형태가 복합적으로 결합하면서 우리 산업 구조와 노동 환경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피지컬 AI 시대의 선도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설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지컬 AI를 미래 성장 동력을 책임질 핵심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피지컬 AI 1등 국가' 육성 의지를 밝혔다. 2026년 예산안에서 인공지능 분야에 10조 원을 편성했으며, 피지컬 AI 중점사업에 5000억 원을 신규 배정했다. 피지컬 AI 분야에는 향후 5년간 총 6조 원을 투입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하 NIPA)은 '피지컬 AI 전 세계 연합(글로벌 얼라이언스)'를 출범해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나선다.
정책과 기업 사이를 연결할 ‘한국피지컬AI협회’ 출범
행사는 한국피지컬AI협회 출범식을 겸했다. 공식 출범한 한국피지컬AI협회는 정부의 비전과 시장의 현실을 잇는 핵심 가교 역할을 맡는다. 기술 개발과 산업 현장의 유효 수요를 발굴하고 피지컬 AI 기술의 실질적 상용화를 추진하게 된다.
한국피지컬AI협회는 핵심과제 4가지를 제시하며 피지컬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렸다. 첫 번째는 VLA 시험 플랫폼 개발이다. 정밀한 물리엔진 기반의 디지털 트윈 환경을 구축, 실제 로봇 없이도 가상 공간에서 시험하고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반을 마련한다. 두 번째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다. 가상 시험 및 실제 환경을 결합해 수십만 시간 규모의 로봇 행동 데이터셋을 축적할 계획이다.
세 번째는 전국 권역별로 특화된 실증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실제 환경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술을 검증한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도 무상으로 활용 가능한 시설을 확보해 산업 전반의 동반 성장을 꾀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검증된 피지컬 AI 관련 제품들이 국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유태준 한국피지컬AI협회 협회장은 "기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시장을 만들고 선도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한국피지컬AI협회는 기술 상용화를 추진해 신산업의 미래를 열겠다"고 말했다.
피지컬 AI 1등 국가를 위한 청사진은?
먼저 연단에 오른 이태희 국민대학교 교수는 피지컬 AI이 사이버 공간을 넘어 실물 경제와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최종 진화 단계가 될 것임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반도체, 플랫폼, 소프트웨어, 응용 서비스로 이어지는 피지컬 AI 가치사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피지컬 AI 시장의 현실도 언급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와 세계 1위의 로봇 밀도라는 강점을 가졌지만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과 플랫폼 소프트웨어 부문은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국가 GPU-데이터 허브 구축, 전국 단위 테스트베드 확충 등 공공 부문이 '인프라 구축'과 '생태계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언했다.
이어 강연에 나선 장종찬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하 KEIT) 본부장은 피지컬 AI의 핵심 두뇌가 될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인공지능 연산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은 저지연, 보안, 개인화가 특징이다. 장종찬 본부장은 정부 주도로 진행 중인 ‘K-온디바이스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개발사업’에 주목했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제조 및 하드웨어 역량을 높인다면 향후 기술 경쟁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정수진 NIPA 지역AX본부 본부장은 다윈의 진화론을 인용하며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변화 적응력이 생존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NIPA 주축으로 형성된 피지컬 AI 전 세계 연합을 통해 국가 경쟁력 확보와 기술 주도권, 산학연관 협력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시장 지원을 위해 2025년 8월, 조직 개편을 진행했으며 지역AX본부는 서울대, 카이스트, 현대차, 네이버 등과 피지컬 AI 부문 실증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이다.
최홍섭 마음AI 대표는 피지컬 AI의 성패는 VLA 모델을 학습시킬 양질의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실 세계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 안전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최홍섭 대표는 이 문제를 극복할 방법으로 정밀한 물리엔진 기반의 가상 시험장인 '디지털 프루빙 그라운드(DPG – Digital Proving Ground)' 구축을 제안했다.
현실로 다가온 미래, 산업 현장을 바꿀 피지컬 AI 혁신 사례는?
김한준 퓨리오사AI 최고기술관리자(CTO)는 엔비디아 데이터 센터용 그래픽 처리장치(GPU)와 경쟁하는 인공지능 가속기 '레니게이드(RNGD)' 개발 사례를 발표했다. 레니게이드는 텐서 축약 처리(TCP - Tensor Contraction Processor) 기술을 담은 인공지능 가속기로 대규모 인공지능 모델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 가능하다. 성능·효율·프로그래밍 수행 능력 등 세 가지 어려움을 해결했다는 게 김한준 CTO의 설명이다.
퓨리오사AI는 레니게이드의 뛰어난 전력 대비 성능(tokens/s/watt)은 데이터센터의 총소유비용(TCO) 절감에 도움을 준다는 입장이다. 이 외에 개방형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 – Software Development Kit)를 제공, 대한민국 피지컬 AI 기업이 전 세계 시장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가능성을 지원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여준구 대동로보틱스 대표는 고령화율 45%에 달하는 농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피지컬 AI 농업 로봇을 제안했다. 대동로보틱스 자료에 따르면 수확·운반 로봇을 도입하면 인건비 50% 절감, 작업 효율 30%가 향상됐다. 자동 방제 시스템을 더하면 물과 농약 사용량을 각각 최대 90%와 30%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준구 대표는 “피지컬 AI가 첨단 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통 제조업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 '성공적인 전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영 LIG넥스원 본부장은 현대 전장의 비대칭성에 대응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언급했다. 인간 병사를 대신해 위험 지역에 투입되고 통신 두절 상황에서도 자율 임무 수행이 가능한 피지컬 AI 기반 무인체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군에서 쓰는 인공지능은 인간 지휘관의 '조언자' 역할을 하지만, 피지컬 AI 시대가 도래하면 자율적 전투원으로서 미래 전장이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LIG넥스원은 미국의 쉴드AI, 고스트로보틱스 등과 방산 기술 협력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외부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데이터·알고리즘·시스템'의 완전한 자주권 확보가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정규환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VLA 기반 로봇 수술 사례를 다뤘다. 수술 도구를 인식해 외과의에게 전달하는 'RoboNurse-VLA' 시스템, 실제 담낭 절제술 시뮬레이션에서 100% 성공률을 보인 SRT-H 프레임워크 사례 등이 소개됐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뮬레이션과 현실 간의 격차, 전문가 수술 데이터 부족, 엄격한 의료 규제 장벽 등 상용화를 막는 요소가 많다는 이야기다. 정규환 교수는 “기술 발전 및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