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타트업] 7. 지산학연이 바꾸는 양자 생태계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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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과거부터 늘 기술의 수용자이자 실험처였다. 증기기관이 등장했을 때 도시는 공장의 굉음을 품었고, 전기가 도입되자 밤거리의 풍경이 바뀌었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양자기술'이 있다. 센서, 보안, 통신, 컴퓨팅 시뮬레이션 등 기술 영역을 넘어 도시 자체를 바꿀 기술이다. 그럼 과연 어떤 도시가 이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실험하고 실증하며, 산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도시의 승리>의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며, 혁신의 촉매다'라고 말했다. 양자기술의 실증 무대 역시 연구소가 아니라 도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출처=AI 생성 이미지
출처=AI 생성 이미지

기술이 아닌 생태계가 움직일 때

양자기술은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다. 초전도, 광자, 암호이론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융합이 필요하고, 유용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실험과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연구소 같은 폐쇄된 실험실이 아니라, 자체/업/계/구기관/정부가 함께 실행하는 열린 도시 생태계라야 한다. 바로 지산학연 협력 플랫폼이다.

예컨대, 세종시는 대한민국 행정수도로서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다. 중앙행정기관과 국책연구소, ICT 기업, 대학이 집적되어 있고,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세종테크노파크, 일자리경제진흥원 등의 혁신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인근 지역인 대전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의 협력 기반과 스마트시티 실증 환경이 결합되면, '양자기술 스타트업의 도시 실험실(Quantum Tech Startup Testbed)'로 진화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갖출 필요는 없다 - 연결하는 허브 전략

양자기술 생태계 구축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역량을 처음부터 갖추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세종시의 강점은 바로 이런 '연결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현재 충청권에는 양자기술의 핵심 요소들이 분산되어 있다. ETRI의 양자통신 기술, KAIST의 양자컴퓨팅 연구, 그리고 지역 스타트업들의 응용기술 개발 역량이 각자의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자기술 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기존 연구기관의 우수한 기초연구 역량과 스타트업의 빠른 상용화 역량, 그리고 공공부문의 실증 수요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부족한 역량은 국내외 전문기관과의 협력으로 보완하고, 강점 영역은 더욱 집중 육성하는 전략이 핵심이다.

세종형 양자 실증, 지금이 적기다

세종시에서는 이미 AI 기반 디지털 행정, 자율주행 인프라, 시민 참여형 정책모델 등 스마트 행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양자센서로 공공 인프라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거나, 양자난수생성기(QRNG)를 적용한 인증체계를 시범 운영한다면 기술 실증과 공공 혁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최근 세종시에서는 양자 머신러닝 기반 전력 최적화 솔루션을 실증한 엑스닷츠 같은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세종형 개방형 혁신 프로그램을 통해 첨단기술 스타트업의 실증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도시 기반 실증 경험이 쌓일수록, 양자기술의 상용화는 실험실을 떠나 시장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새로운 삼각편대, 정부-산업-연구의 역할 재편

기술 주도는 더 이상 연구소만의 몫이 아니다. 세종형 생태계는 다음 세 가지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작동해야 한다.

산업: 스타트업 중심의 빠른 시제품 실증 → 양자센서, 보안, 전력 최적화 등

학연: KAIST/ETRI 등과의 기술이전, 인력양성, 실증 연계

정부: 조달 실증, 스마트 행정 수요 기반 테스트베드 제공

이러한 삼각편대를 통해 기술개발 → 실증 → 제도화 → 시장확산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해야 한다. 특히 각 주체 간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외부 전문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는 개방형 접근이 중요하다.

세종시는 이런 협력 네트워킹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각 기관이 가진 우수한 역량을 파악하고, 이를 구체적인 실증 프로젝트로 연결하며, 성과를 시장으로 확산시키는 전체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역 리더십이 만드는 실행력

이러한 지산학연 생태계의 활성화에는 지역 리더십이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세종시 최민호 시장은 스마트 행정도시의 비전뿐 아니라, 양자기술이 지역 산업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다.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 / 출처=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 / 출처=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현재 양자기술 연구자로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최순원 박사의 아버지이기도 한 최 시장은, 기술과 정책의 간극을 이해하고 이를 연결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지역의 리더십이 기술에 대한 감수성과 실행 의지를 갖추고, 필요한 역량들을 전략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양자기술은 도시에서 자란다

기술 자체는 책상 위에서 탄생하지만, 기술 시장은 도시에서 성장한다. 양자기술은 아직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실증할 도시와 문제, 그리고 협력 생태계를 갖고 있다면 그 불완전함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들을 연결하고 실험하며 연대하는 '도시의 실행력'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갖출 필요는 없다. 있는 것을 연결하고, 없는 것은 협력으로 채우며, 작은 성공을 통해 더 큰 생태계로 확장해 나가면 된다.

양자기술의 시대는 멀지 않다. 그 첫 장면은 실험실이 아닌, 필요한 역량들이 자유롭게 연결되고 실험되는 열린 도시에서 시작될 것이다.

글 / 오득창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이사

LG전자에서 23년간 기술/사업개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고, 블루오션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이후 민간 액셀러레이터 와이앤아처 부사장, 계명대 핀테크비즈니스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기술 기반 창업 생태계 조성과 퀀텀테크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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