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활성화와 이용자 보호 균형 맞춘 디지털자산기본법
[IT동아 한만혁 기자] 글로벌 주요국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를 담은 ‘지니어스(GENIUS)’ 법안이 상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이미 디지털자산 발행 및 유통 전반에 대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는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법률로 관련 산업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국회의원이 현행 법률의 한계를 보완하고 규제 공백을 해소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발의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후속 법안으로 디지털자산 산업 진흥 및 이용자 보호를 위한 종합적인 규제를 담고 있다.
민병덕 의원은 “디지털자산시장의 투명성 제고, 관련 산업 육성 및 자율성 강화, 이용자 보호 제도 개선을 통한 산업 활성화 및 이용자 보호의 균형이 목표”라며 “디지털자산 산업 성장 환경 구축, 이용자 보호 및 건전한 이용 환경 마련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법안의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민병덕 의원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국제적 정합성 확보, 다른 법률과의 조화를 위해 ▲자본시장과 금융 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융소비자보호법), 전자금융거래법,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소비자기본법 등 국내 법률 ▲유럽 MiCA, 일본 지급결제법, 홍콩 가상자산사업자 운영 지침 등 주요 국가 입법례 및 규제 사례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 권고 사항을 반영했다. 또한 지난 4월 초안 마련 후 3회에 걸쳐 공청회를 열고 학계, 법조계, 업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 및 보완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자산 및 디지털자산업의 법적 정의, 적용 범위 규정 ▲디지털자산업 분류 및 시장 진입 규제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 설립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에 대한 사전 인가제 도입 ▲디지털자산 거래지원(상장) 및 종료(상장폐지) 규제 ▲디지털자산 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규제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 등이다 .
디지털자산 및 디지털자산업의 법적 정의, 적용 범위 규정
법안은 디지털자산에 대해 ‘분산원장에 디지털 형태로 표시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한다. 단 거래 또는 이전 가능성이 낮거나 기존 금융 관련 법률에서의 규제가 더 적합한 경우 디지털자산 정의에서 제외한다.
또한 디지털자산을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과 ‘일반 디지털자산’으로 분류한다.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은 원화 또는 외국 통화의 가치와 연동되면서 환불이 보장된 것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의미한다. 일반 디지털자산은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외의 디지털자산으로 밈코인, 유틸리티코인, 거버넌스코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안은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해외에서 이루어진 행위에도 적용한다. 가령 해외 디지털자산업자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려면 관련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또한 해외 거래소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행위가 국내에 영향을 미치면 법안에 따라 처벌한다.
디지털자산업 분류 및 시장 진입 규제
법안은 디지털자산업을 유형에 따라 10개로 분류하고 해당 업을 영위하는 자를 디지털자산업자로 정의한다. 법안이 명시한 10개 업은 ▲디지털자산매매업 ▲디지털자산중개업 ▲디지털자산보관업 ▲디지털자산지갑관리업 ▲디지털자산집합관리업 ▲디지털자산일임업 ▲디지털자산자문업 ▲디지털자산주문전송업 ▲디지털자산유사자문업 ▲기타디지털자산관련업이다. 참고로 기존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매매업, 교환업, 중개업, 보관업, 지갑업으로만 분류했다.
각 업은 특성에 따라 인가, 등록, 신고 등 진입 규제를 차등 적용한다. 디지털자산매매업, 디지털자산중개업, 디지털자산보관업은 인가가 필요하며 자본금은 최소 5억 원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디지털자산지갑관리업, 디지털자산집합관리업, 디지털자산일임업, 디지털자산자문업은 등록 대상이며 자본금은 최소 1억 원 이상이다. 디지털자산주문전송업, 디지털자산유사자문업은 신고만 해도 된다.
법안은 디지털자산업의 겸업을 제한하지 않는다. 즉 은행, 증권, 보험 등 전통 금융 산업뿐 아니라 일반 기업도 디지털자산업을 병행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산업과의 융합 및 결합을 허용함으로써 국가 경쟁력 제고, 디지털자산 시장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디지털자산업자에게는 전산 안정성 유지 의무를 부여한다. 전산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정보 보호 최고 책임자를 지정하고, 해킹 등 침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 지체없이 금융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이용자 피해에 대한 책임 이행을 위해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 설립
법안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설치 및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디지털자산위원회는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 및 진흥을 위해 관련 정책 및 계획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로 ▲이용자 보호 및 디지털자산 산업 진흥을 위해 3년마다 ‘디지털자산 기본 계획’ 수립 ▲연도별 시행 계획을 매년 수립하고 이행 여부 평가 ▲디지털자산 산업 및 시장 실태조사 매년 실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디지털자산위원회는 민간위원장 1명을 포함한 30명 이내로 구성하고 민간위원 비중을 2/3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에 대한 사전 인가제 도입
법안에 따르면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즉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발행 요건은 국내 설립 법인, 자기자본 5억 원 이상이다. 자기자본의 경우 초안에는 30억 원이었으나 최종안에서 5억 원으로 줄였다. 분산원장으로 인한 높은 전산 안정성, 준비금을 통한 환불 보장으로 자기자본 중요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일반 디지털자산의 경우 금융위원회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해당 신고서가 수리되면 발행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발행신고서에 대해서 형식심사만 실시하고, 신고 수리한 신고서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법으로 공시한다. 해외에서 발행되거나 발행 주체가 없는 경우 발행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단 거래소 등에서 거래지원하는 경우 거래지원 심사를 거쳐야 한다.
디지털자산 거래지원 및 종료 규제
법안에 따르면 거래소가 디지털자산을 거래지원할 경우 자체 심사, 적격성 평가 위탁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자체 심사 방식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거래 지원 심사 기준에 따라 자체 심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에 보고 후 거래지원한다. 적격성 평가 위탁 방식은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에 평가를 위탁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거래 지원한다.
거래지원을 유지하려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거래소가 주기적으로 자체 심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에 통보한다. 또한 거래지원 유지 심사 중 종료 사유가 발견되면 거래지원적격성평가원회에 거래지원 종료 심사를 요청한다.
거래소가 거래지원 및 유지 심사 기준 관련 사항을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한다. 또한 거래지원 디지털자산에 대한 최신 정보를 공시하지 않고 그로 인해 이용자 손해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디지털자산 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규제
법안은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행위 ▲시세 조종 행위 ▲부정 거래 행위 ▲시장 질서 교란 행위 등의 디지털자산 관련 불공정거래 행위를 금지한다.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감시는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도록 규정한 기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달리 시장감시위원회에 감시 업무를 부여한다.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한 제재도 강화한다. 기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과징금 및 형사처벌에 그쳤으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자산 동결, 디지털자산 거래 제한, 임원 선임 제한 등 자본시장과 동일한 수준으로 제재한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
법안은 디지털자산 산업의 자율규제 체계 구축을 위해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를 설립하도록 규정한다.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는 자율규제 업무, 자율 분쟁 조정, 표준 약관 업무, 회원 및 임직원 교육 업무 등을 수행하고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 시장감시위원회를 운영한다.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는 디지털자산 거래지원 적격성 평가, 거래지원 및 유지 심사 결과 관리, 거래지원 종료 사유 발생 시 거래지원 종료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총 9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위원회 추천으로 총회를 거쳐 임명한다. 8명의 위원은 금융위원회 위원장 추천(2명), 협회 추천(4명), 거래소 등 추천(2명)으로 선임한다.
시장감시위원회는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 행위 관련 심리 업무 및 회원에 대한 감리 업무 등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확인하면 금융위원회에 통보한다.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총 9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위원회 추천으로 총회를 거쳐 임명한다. 8명의 위원은 금융위원회 위원장 추천(4명), 협회 추천(4명)으로 선임한다.
업계, 빠른 입법·시행 요구
민병덕 의원이 대표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명확한 규제와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디지털자산업자와 이용자의 이해상충 해소, 이용자 보호,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에 필요한 요건을 담고 있다.
민병덕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디지털자산 규제를 넘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금융 주권을 지키기 위한 기반”이라며 “법안이 시행되면 디지털자산 시장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활성화해 우리나라가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안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는 초안 작성 후 바로 발의한 것이 아니라 학계, 법조계,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보완 및 개선했기 때문이다. 이제 업계는 빠른 입법과 시행을 요구한다. 평소 방향뿐 아니라 속도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민병덕 의원이니만큼 남은 입법 절차도 빠르게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