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태의 디지털자산 리터러시] 디지털자산 업계의 다양성 확보와 건강한 생태계 조성

[IT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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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 업계의 다양성 확보와 건강한 생태계 조성


지난해 우리나라 지방은행 한 곳에서 내부 직원에 의해 2900억 원에 달하는 횡령 사고가 터졌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담당 부서장이 2007년부터 무려 15년간 자신이 관리하던 대출자금 등을 빼돌린 것. 이는 우리나라 은행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횡령이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한 대형은행에서도 약 772억 원의 횡령 사고가 일어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융기관의 내부통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은행이 가장 신뢰도 높은 금융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은행은 외부 감독, 자체 감사, 임직원 교육 등 다양한 형태로 내외부 리스크를 관리하고 감독받는다. 하지만, 은행을 비롯해 금융권의 횡령, 배임 등 사건 사고는 꾸준히 일어난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의 일탈, 단순 실수 등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부통제 제도의 미비 혹은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부통제란 금융기관에서 수행하는 활동이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해 오류나 부정으로부터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하는 시스템 혹은 인적 견제 활동을 뜻한다. 우리나라 대형 시중은행의 자산규모는 500조 원을 상회하는 만큼, 금융기관 문제 발생시 그 파급효과는 상상도 못할 만큼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였지만, 세계로의 확산 원인은 세계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었다.

이처럼 금융기관은 높은 수준의 정보보호 관리체계와 더불어 철저한 내부통제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내부통제 체계는 단순히 직원의 교육활동을 넘어서 금융시스템, 관리 프로세스 등 모든 사업추진 체계에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횡령 등 내부통제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미래 디지털금융을 꿈꾸는 디지털자산 산업에도 내부통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내부통제 실패 사례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미국의 디지털자산 거래소인 FTX는 NBA 구단 중 하나인 마이애미 히트의 홈구장 명명권을 구매해 ‘FTX 아레나’로 사용할 만큼 인지도가 높은 대형 기업이였다. 2019년에 설립된 FTX는 단기간에 세계 3위권 거래소로 성장했다. 낮은 거래 수수료와 자체 디지털자산인 FTT까지 발행하며 사세를 키워, 설립 3년만에 기업가치만 320억 달러(약 44조 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까지 훌쩍 뛰어넘었던 FTX는 2022년 11월, 단 일주일만 파산하며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세계 각국에 산재한 130여 개에 달하는 문어발식 계열사를 포함해 부채만 66조 원, 채권자 10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 파산 사태였다. FTX 투자기관에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미국 헤지펀드, 캐나다 교육연금 등 대형 기관자금도 들어왔다. 자체 발행된 FTT를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부실한 계열사 여러 곳에 자금을 지원하다가 유동성 위기가 터지면서 파산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구조조정 전문가이자 FTX의 파산 관재인으로 존 레이 3세가 선임되면서 FTX의 추악한 민낯이 세상 만천하에 드러났다. FTX는 결국 ‘사상 최악의 기업운영 및 파산사례’로 꼽히게 됐다. 고객자산의 대부분은 회사 운영자산과 섞여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고객데이터 관리조차도 형편없었다. 회사자금으로 개인 고급 주택을 구매하는 등 고객자금을 임원과 관계사에 불법 대출했다. 콜드월렛, 외부 수탁사도 거의 이용하지 않아 자산규모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을뿐더러 외부 회계감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회계검증도 불가하였다. 파산의 시발점은 자체 발행한 디지털자산의 유동성이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내부통제의 완벽한 실패였다.

민간과 공공이 힘을 합쳐 건강한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 출처=엔바토엘리먼츠
민간과 공공이 힘을 합쳐 건강한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최대 거래소로 군림했던 일본의 마운트곡스도 2014년 해킹사고 발생 후 파산했다. 당시 비트코인 85만개(당시 5300억 원), 현 시세로 무려 약 80조 원이 넘는 막대한 자산을 해킹당했다고 발표했다. 이후로도 국내외 거래소들은 해커들의 집중 타겟이 됐다. 바이낸스 조사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국내외 거래소 48개에서 4조 8000억 원의 고객자산이 탈취됐다. 거래와 수탁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적 문제와 내부통제 미비가 맞물린 결과였다. 이처럼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다양한 내외부 관계자와 상호견제, 보완, 균형 등을 통해 철저한 내부통제를 갖춰야 할 이유다.

도산절연과 커스터디의 필요성

FTX 파산 사태에서 유일하게 자본적 문제가 없었던 계열사는 FTX US이다. FTX US는 2017년부터 외부 커스터디(수탁) 업체에 고객 자산을 맡긴 덕에 완전히 이를 복구할 수 있었다. FTX가 보유한 고유자산과 고객자산을 완벽히 분리하여 도산절연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도산절연이란 '고객자산을 보유한 업체가 파산하거나 회생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고객으로부터 취득한 자산에 대해 그 효력이 미치지 않도록 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다. 전통 금융시스템에서 도산절연은 투자자보호를 위한 가장 기본이자 1순위로 꼽힌다. 증권사 주식은 예탁결제원이, 자산운용사 자금은 수탁은행이 보관, 관리하는 것과 같다. 핀테크 업계에도 이는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현행 조각투자라고 불리우는 토큰증권도 원화예치금은 은행이 보관하고 실물자산은 신탁사가 맡는 방식으로 투자자산을 보호한다. P2P투자 또한 고객의 투자금은 은행이 안전하게 예치 및 신탁한다.

지난 7월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에서도 고객자산과 운영자산의 분리는 핵심 규제사항으로 적용됐다. 디지털자산 매매를 위해 예치해 둔 현금은 은행에 별도 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한 것. 다만, 디지털자산의 경우, 법에서는 콜드월렛 70% 이상, 감독규정에서는 80% 이상만을 유지하도록 했다. 원화 예치금은 은행에 예치하도록 강제한 것과 달리 디지털자산은 자체 보관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지난 5월, 금융위에서 발표한 ‘`23년도 하반기 가상자산 사업자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약 645만 명에 이른다. 투자자가 보유한 원화예치금은 4조 9000억 원, 디지털자산 시가총액은 43조 6000억 원 규모로 디지털자산이 원화자산의 8배가 넘는 수준이다. 투자자 1인당 평균 675만 원이 넘는 디지털자산을 보유한 셈이다. 제대로 된 규제를 통해 진정한 투자자보호를 이루려면 원화 예치금뿐 아니라 디지털자산도 믿을만한 제3자, 즉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수탁사에 안전하게 맡겨 도산절연에 대비해야 한다. 콜드월렛이라는 기술적 방편은 완벽한 투자자보호를 달성할 수 없다. 수탁사 또한 투자자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써 국가의 강력한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자본금 규정, 전문인력 확보, 배상책임보험 등으로 기본적인 규율 수준을 높이고 정기검사, 회계감사 등을 통해 외부에서도 끊임없이 이를 견제하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간과 공공의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

디지털자산 시스템은 전통금융을 점차 닮아가지만, 그들과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전통금융은 정부 주도하에 만들어진 체계이자 시스템인 반면, 디지털자산은 민간에서부터 시작된 신기술이자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내부통제를 이루기 위해서 디지털자산 업계도 최소한의 시장감시자, 중개자 역할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사업자의 선의, 자체 노력에만 기댄다면 국내에서도 FTX, 마운트곡스 사태가 터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막연히 시장의 자정작용만을 기대하기에는 그동안 누적된 투자자와 투자자금이 너무 크다.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에 있는 투자자는 공식적으로 100% 개인이며 한국인이다.

정부 정책의 속도는 디지털자산 발전 속도를 절대 앞지를 수 없다. 정부는 기본이 잘 갖춰진 민간업체를 최대한 활용해 전략적 설계자와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 수행에 집중해야 한다. 법과 제도를 활용해 불법이나 위법을 저지르는 사업자는 엄단하고, 그들이 선관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가 산업 주도권을 민간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트코인 2024 컨퍼런스’에 참석해 자신은 비트코인 대통령으로서 미국을 디지털자산 수도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자산 경쟁에서 선두에 설 생각이 없다면 방향이라도 그들과 맞춰야 한다. 정부가 이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직접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공과 민간이 조화롭게 협력하여 다양성을 확보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금융 선진국과 속도 경쟁에서라도 뒤처지지 않는 길이다.

글 /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

시중은행 디지털금융 전략기획자 출신으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인피닛블록’의 공동 창업자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협의회 협의회장,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이사, 한국핀테크지원센터 혁신금융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새로운 시대의 부, 디지털자산이 온다’, ‘블록체인 트렌드’ 등이 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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