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드리운 식량위기 그림자…대체 원료 개발 시도도

권택경 tk@itdonga.com

[IT동아 권택경 기자] 지난 6월 미국에서는 난데없이 스리라차(Sriracha) 소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일이 있었다. 스리라차 소스는 베트남식 매운 고추 소스다. 미국에서는 후이 퐁(Huy Fong)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대명사처럼 통한다. 수탉 그림이 그려진 회사 로고 때문에 국내에서도 ‘닭표 스리라차 소스’로 널리 알려졌다. 후이 퐁의 제품은 원래 17온스(약 481g) 한 병에 5달러(약 6750원)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10배가 넘는 가격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나마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으로, 매대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후이 퐁 스리라차 소스가 품귀 현상을 겪은 건 생산이 일시적으로 중단됐기 때문이다. 멕시코 일대에 기후변화와 가뭄으로 작황이 나빠지면서 핵심 원재료인 붉은 할라페뇨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올해가 처음도 아니다. 후이 퐁은 지난해에도 작황 문제로 할라페뇨 공급 차질을 빚으며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후이 퐁의 스리라차 소스 / 출처=셔터스톡
후이 퐁의 스리라차 소스 / 출처=셔터스톡

스리라차 소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주요 작물의 흉작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식품이 품귀 현상을 빚거나, 가격이 치솟는 일은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었다. 특히 그 빈도와 강도가 높아진 엘니뇨 현상이 최근 이어진 주요 식량 원자재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꼽힌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수개월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뭄, 폭염, 홍수 등 기상 이변의 원인이다.

지난달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 커피 생산이 약 20%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인 커피 선물 가격이 다시 한번 오를 것이란 우려를 자아냈다. 인도네시아는 인스턴트 커피 등에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 품종 커피의 세계 3위 생산국이다.

설탕 또한 인도, 태국, 호주 등에서 가뭄으로 사탕수수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다. 세계 1위 생산국인 인도는 지난해 5월부터 설탕 수출을 제한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아예 전면 수출금지를 고려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달 발표한 식량가격지수에 따르면 설탕 가격지수는 162.7로 2010년 11월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확한 사탕수수를 운반하는 모습 / 출처=셔터스톡
수확한 사탕수수를 운반하는 모습 / 출처=셔터스톡

밀과 쌀, 옥수수와 같은 곡물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오는 2050년까지 주요 곡물 가격이 최대 23%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가 이대로 이어지면 일부 작물은 미래에는 재배가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생산량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기상청과 환경부가 지난 20202년 IPCC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해 분석한 결과 고추의 생산량은 세기말에는 89%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IPCC는 2050년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3°C 이상 상승하면 아라비카 품종 커피 경작할 수 있는 지역은 75%, 로부스타 품종 경작할 수 있는 지역은 63%가 사라질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모습 / 출처=셔터스톡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모습 / 출처=셔터스톡

이처럼 기후변화로 주요 작물 흉작이 이어지고 관련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자 대체재를 개발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대체식품 전문 기업 HN노바텍은 해외 바이어 측 요청으로 최근 카카오 대체 원료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가뭄이 이어지며 카카오 수확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카카오 선물 가격은 지난 8월 뉴욕국제선물거래소 기준으로 톤당 3400달러(약 459만 원)를 넘기며 연초보다 20% 넘게 급등한 바 있다.

대체 카카오를 활용해 만든 단백질바 시제품 / 출처=HN노바텍
대체 카카오를 활용해 만든 단백질바 시제품 / 출처=HN노바텍

에카오(Ecao, ECO+CaCao)라고 이름을 붙인 HN노바텍의 카카오 대체 원료는 카카오 고유 풍미를 내는 쓴맛, 떫은맛, 고소한 맛 등을 내는 성분과 영양소를 조합해 개발했다. 이를 위해 구성요소모방기술(Ingremimetics, Ingredient+Mimetics)이라는 핵심 기술을 적용했다는 게 HN노바텍 측의 설명이다.

HN노바텍 관계자는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나 생물체 특성을 연구하고 모방해 인류 과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구성요소모방기술은 원료를 분석해 그 맛과 영양을 모방하고 새롭게 재창조하는 기술"이라며 "이를 활용해 카카오 풍미를 재현했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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